2004년 영화 <시실리 2km>로 데뷔해 <차우>, <점쟁이들> 등 개성 넘치는 코믹 스릴러 영화를 만들어온 신정원 감독이 8년 만의 신작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을 들고 돌아왔다. 이번 작품의 소재는 외계인으로,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 행복한 신혼부부 소희(정현)와 만길(김성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만길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소희는 미스터리 연구소 소장 닥터 장(양동근)에게 만길의 뒷조사를 맡긴다. 그리고 만길이 외계에서 온 언브레이커블 이라는 것과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희와 닥터 장에 소희의 고등학교 동창 세라(서영희)와 양선(이미도)이 가세하며 반격에 나서고, 여기에 정부 요원까지 합세하며 이들의 싸움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줄거리만 언뜻 보아도 범상치 않은, 최근 한국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함으로 중무장한 영화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을 기대해도 좋은 이유들을 짚어보았다.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감독 신정원

출연 이정현, 김성오, 서영희, 양동근, 이미도

개봉 2020.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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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실리 2km

감독 신정원

출연 임창정, 권오중, 임은경, 변희봉

개봉 2004.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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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

감독 신정원

출연 엄태웅, 정유미, 장항선, 윤제문, 박혁권

개봉 200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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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쟁이들

감독 신정원

출연 김수로, 강예원, 이제훈, 곽도원, 김윤혜, 양경모

개봉 2012.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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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원 감독 연출 & 장항준 감독 각본 참여

185cm 이상에 훤칠하면 외계인이다.” 귀신(<시실리 2km>), 무속신앙(<점쟁이들>)에 이어 이번엔 외계인이다. 외계에서 온 죽지 않는 존재 언브레이커블과 그 대척점에 서 있는 인간들은 각자의 정체를 숨기고 서로를 죽이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누구도 쉽게 죽지 않는다영화는 오래전 장항준 감독이 쓴 원작 시나리오를 신정원 감독이 각색한 것이다.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정말 죽지 않는 인간이 몇천만 명 중 한 명의 확률로 있다는 설정이었는데 감독이 거기에 언브레이커블이라는 존재를 만들어내며 SF적 설정을 더한 것이라고. 또한 "최근 젠더 위주의 이슈도 있는데 현재의 시대 상황을 담아서 재창조해낸 영화"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영화 곳곳에 감독의 전작을 오마주한 장면이 배치되어 있어 신정원 감독의 팬이라면 관람 중 이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을 것


빌리 아일리시의 <배드 가이>와 영화 속 ‘배드 가이’들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신정원 감독은 만길의 캐릭터에 대해 소희의 남편 만길은 영화적으로는 죽지 않는 언브레이커블이지만 소희, 새라, 양선 세 여성의 시각에서는 간단히 말해배드 가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메인 음악은 지난 2019년 가장 뜨거웠던 히트곡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의 배드가이(Bad Guy). 영화에 젠더 이슈를 담았다는 감독의 말처럼 세 여자가 중심이 되어 극을 끌고 가는 플롯은 여성 영화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외계인과 인간의 사투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그 안의 주제 의식은 못된 놈들을 향한 세 여자의 복수극’, 그리고 남자들 바람피우지 말라는 메시지이다.


코미디, 스릴러, SF, 호러, 액션까지 다양한 장르 널뛰기

한 편의 영화에 이토록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작품은 흔치 않다.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은 신정원 감독이 가장 잘 다루는 코믹과 호러를 베이스로 SF와 액션까지 골고루 잘 담아냈다. 또한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B급 유머와 함께 스릴러의 장르적 포인트도 잘 살려냈다소희가 자신의 남편 만길이 언브레이커블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세라, 양선과 함께 역으로 그를 죽이기 위해 도모하는 장면부터 심장 쫄깃해지는 서스펜스가 시작된다. 더불어 산길에서 펼쳐지는 긴박한 자동차 추격신과 후반부 만길이 선보이는 액션 또한 주목할만하다. 스토리의 인과관계를 파악하려 한다면 되려 재미가 반감될 것. 스크린에 아무렇게나 펼쳐진 이야기들을 그저 생각 없이 가볍게 보면 러닝타임 내내 웃으며 보다 나올 수 있다.


믿고 보는 배우들의 완벽한 하모니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은 특히 쟁쟁한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죽지 않는, 그러나 죽어 마땅한 남자를 죽이기 위해 의기투합한 세 친구 소희, 세라, 양선을 연기한 이정현, 서영희, 이미도는 실제로 나이가 비슷한 또래 배우들로, 극중 진짜 친구와 같은 완벽한 하모니를 뽐낸다. 여기에 180 이상에 훤칠하면 외계인이라는 언브레이커블의 외적 요소에 실제로 밝은 갈색 눈동자를 가진 김성오의 외모가 그가 외계인이라는 정체에 타당성을 더해준다. 진지한 연기부터 코믹, 액션까지 다 소화해내는 모습 또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시트콤 <논스톱> 시리즈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속 양동근의 비주얼이 몹시 반가울 것! 양동근은 특유의 어눌한 듯한 말투와 행동으로 등장할 때마다 큰 웃음을 선사하며 스크린 가득 진한 존재감을 채운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놓치면 안 되는 쿠키 영상

영화 마지막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 짧은 쿠키 영상이 하나 있다. 영상에서는 주유소에서 소희가 경유를 마실 것처럼 보여주며 끝이 나는데, 이는 영화 속에서 만길이 경유를 마시던 것과 연결되며 소희도 언브레이커블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영화 초반 만길이 소희를 죽이려고 물에 약을 타고 그 물을 소희가 마셨지만 그녀는 죽지 않고 파란 무언가를 토해내며 살아난다. 이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만길은 언브레이커블인 약방 영감(김기천)을 찾아가, 쉬이 죽지 않는 그녀에 대해 이야기하며 “뭔가 좀 달라, 이 여자 이상해”라며 이야기하는데 이것이 복선이었던 것. 이 쿠키 영상이 영화의 후속편을 예고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영화 속 비밀 하나는 해결하며 마무리가 된다.


씨네플레이 객원기자 B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