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배우들이라고 출연작이, 캐릭터가, 혹은 본인의 연기가 항상 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그리고 몇몇 배우들은 이를 스스로 인정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미국 매체 '인디와이어'에서 본인의 퍼포먼스에 아쉬움을 표한 배우들을 소개했다. 해당 기사를 바탕으로 셀프 디스를 한 배우들의 '말말말'을 모았다.


제게 맞는 역은 아니었어요

1 제이크 질렌할
<페르시아의 왕자> 다스탄 왕자
 
2010년에 개봉한 인기 비디오 게임 원작 영화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고대 단검을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가 대치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영화는 평단에서도, 관객에게서도 외면받았는데.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영화의 주인공은 페르시아의 왕자다. 제작진은 다스탄 왕자 역에 아랍계 배우가 아닌 백인 제이크 질렌할을 캐스팅했고, 영화는 지금까지도 최악의 화이트워싱 캐스팅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개봉으로부터 9년이 지난 2019년,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으로 극장을 찾았던 제이크 질렌할은 ‘야후’와의 인터뷰에서 그 역할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인정했다. 그는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를 통해 많은 걸 배웠어요”라며 역할 선택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말했다. “맡은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하려 해요. 왜 그 캐릭터를 연기하려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확실히 알려 해요. 때로는 실수로, ‘나를 위한 역은 아니었어’ 혹은 ‘그 역은 나랑 잘 맞지 않았어’ 싶은 역을 맡을 때도 있어요. 많죠. 영화가 작고 크고를 떠나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역할을 맡으려 해요.”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

감독 마이크 뉴웰

출연 제이크 질렌할, 젬마 아터튼, 벤 킹슬리

개봉 2010.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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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2 엠마 스톤
<알로하> 앨리슨 잉

엠마 스톤이 무려 중국계 하와이안으로 출연한 <알로하>는, 하와이 파견군인 브라이언(브래들리 쿠퍼)이 옛 애인과 새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스톤이 연기한 캐릭터의 이름은 앨리슨 잉. 또 다른 화이트워싱의 사례다. 스톤이 이에 공개적으로 사과한 일이 있다. 2019년 골든글로브 호스트 산드라 오는, 무대에서 그해 화제작이었던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을 소개하며 “이 영화는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과 <알로하> 이후 처음 아시안 아메리칸이 주연을 맡은 영화입니다“라고 했다.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에서 스칼렛 요한슨이 일본인 캐릭터를 연기한 바 있다.) 이에 <더 페이보릿>으로 시상식에 참석했던 스톤이 객석 어딘가에서 “미안해요!”라고 크게 소리친 거다. 산드라 오는 그 목소리에 감사의 제스처를 보내기도 했다.

시상식 오프닝 모놀로그에서 조크로 활용되었을 만큼 <알로하> 또한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만큼이나 캐스팅으로 논란이 되었던 대표적인 작품이다. 스톤은 이에 “제 캐스팅은 많은 이들에게 웃음거리, 풍자의 대상이 되었죠. 저는 할리우드 화이트워싱의 유구한 역사와, 그 문제가 얼마나 만연한지에 대해 배웠어요”라고 했다.

알로하

감독 카메론 크로우

출연 엠마 스톤, 브래들리 쿠퍼, 레이첼 맥아담스

개봉 미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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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같은 영화에 캐스팅해주셔서 감사해요!

3 할리 베리
<캣우먼> 페이션스 필립스/ 캣우먼
 
<캣우먼>의 캣우먼, 할리 베리는 2005년 골든라즈베리 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상이니까 다 좋아 보이지만, 이 상은 아니다. 골든라즈베리 어워즈는 최악의 영화를 꼽는 시상식이다. 대부분의 수상자가 불참하지만 베리는 직접 상을 받으며 수상소감을 전했다. “생전 이 시상대에 설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네요. 우선 쓰레기 같은 영화에 저를 캐스팅해준 워너 브러더스에 감사해요. 이 영화는 제 커리어에 필요한 영화였어요. 저는 맨 꼭대기에 있었는데(2002년 할리 베리는 <몬스터 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지금은 밑바닥에 있네요!”

그는 지난해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다시 한번 <캣우먼>을 언급했는데. “유색인종 여성이 수퍼히어로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시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요? 그런데 스토리가 좋진 않았던 거죠.”

캣우먼

감독 피토프

출연 할리 베리, 벤자민 브랫

개봉 2004.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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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했어요!

4 크리스토퍼 플러머
<사운드 오브 뮤직> 본 트랩
 
견습 수녀 마리아(줄리 앤드루스)가 명문 집안 본 트랩가의 가정교사가 되어 일곱 명의 아이들과 교감하게 되는 이야기. 오스카 5관왕에 빛나는 <사운드 오브 뮤직>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영화 중 하나다. 하지만 본 트랩을 연기한 크리스토퍼 플러머의 사랑은 받지 못한듯 하다. 얼마전 세상을 떠난 故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2010년 ‘보스턴 글로브’와의 인터뷰에서 “캐릭터가 좀 지루했다”고 했다. “제작진과 함께 트랩을 흥미로운 캐릭터로 만들어보려 애썼지만 헛수고였어요. 누구에게도 매력적인 캐릭터가 아니었죠. 제 취향도 아니었고요.” 극 중 트랩은 애국심이 강하고 규율을 중시하는 퇴역 군인으로 묘사된다. 이듬해 ‘할리우드 리포터’와의 인터뷰에서는 “끔찍했어요. 캐릭터에 유머를 조금이라도 담아보려 미친 듯이 노력해야 했죠”라고 까지 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

감독 로버트 와이즈

출연 줄리 앤드류스, 크리스토퍼 플러머, 리처드 헤이든, 엘레노 파커

개봉 1978.02.04. / 1969.10.29.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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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일라잇'은 출판되어서는 안 됐을 책

5 로버트 패틴슨
<트와일라잇> 에드워드 컬렌
 
믿고 보는 배우로 거듭난 로버트 패틴슨을 스타로 만든 작품은 <트와일라잇> 시리즈였다. 정작 그는 <트와일라잇>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영화 홍보 때 토크쇼와 인터뷰에서 이를 누누이 말해왔는데. “소설을 읽으면, 스테파니(원작 소설 작가)가 벨라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게 확실히 느껴졌어요. 이 책은 출판되어서는 안 됐을 책이라고 생각했죠. 스테파니의 성적 판타지를 읽는 것 같달까. 스테파니가 이 책이 그녀의 꿈에 바탕을 둔 작품이라고 했는데. ‘이런 섹시한 남자가 내 꿈에 나왔다니’ 하고 책을 썼을 거라고 생각하면, 그녀는 자신의 픽션에 빠져있는 게 분명해요.” 원작의 존재조차 몰랐던 패틴슨이, 소설을 이렇게까지 안 좋아했는데 <트와일라잇>에 합류한 이유는 크리스틴 스튜어트였다. <인투 더 와일드>를 보고 스튜어트에 호감을 가졌던 그는 그녀의 캐스팅 소식을 듣고 출연을 결심했었다.

트와일라잇

감독 캐서린 하드윅

출연 크리스틴 스튜어트, 로버트 패틴슨

개봉 2008.12.10. / 2018.12.12.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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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도 별로 연기도 별로

6 조지 클루니
<배트맨 4 - 배트맨과 로빈> 배트맨/ 브루스 웨인
 
크리스찬 베일과 로버트 패틴슨 전에 조지 클루니가 배트맨을 연기했다. <배트맨 4 - 배트맨과 로빈>은 수많은 코믹북 팬과 평론가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시간이 지나 주연 조지 클루니에게도 영화를 옹호할 이유가 흐려지자, 그도 이에 가세해 영화가 졸작임을 인정했다. “영화도 별로였고(shit), 제 연기도 아주 별로였어요. 아키바 골즈먼이 각본을 맡았는데. 그라도 이렇게 말할 거예요. ‘그 대본은 끔찍해요!’ ‘내가 좀 못 썼죠.' 조엘 슈마허 감독도 기꺼이 ‘영화가 형편없었지’라고 말했을 거예요.”

배트맨 4 - 배트맨과 로빈

감독 조엘 슈마허

출연 아놀드 슈왈제네거, 조지 클루니, 크리스 오도넬, 우마 서먼, 알리시아 실버스톤

개봉 1997.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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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혼란스러워요...

7 제레미 아이언즈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알프레드 페니워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은 팬들 사이에서 재앙으로 불린다. 브루스 웨인(벤 애플렉)의 집사 알프레드(제레미 아이언즈)는 그나마 영화에 호감을 불어 넣어주는 캐릭터였지만, 제레미 아이언즈는 영화가 부족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영화에 대한 혹평에 대해 “8억 달러나 들여 만든 영화이기에 질타를 맞는 건 당연한 일이긴 한데…  영화 자체가 좀 혼란스러웠다”고 고백했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감독 잭 스나이더

출연 헨리 카빌, 벤 애플렉, 에이미 아담스, 로렌스 피시번, 제시 아이젠버그, 제레미 아이언스, 홀리 헌터, 갤 가돗, 로렌 코핸, 제프리 딘 모건, 제이슨 모모아, 에즈라 밀러, 다이안 레인

개봉 2016.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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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싫어요!

8 다니엘 래드클리프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 해리 포터
 
다니엘 래드클리프도 본인 연기에 학을 뗀 적이 있다.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 같은 영화는 보기가 참 어려워요. 제 연기가 별로거든요. 보기 싫어요.” ‘데일리 메일’과의 인터뷰에서 래드클리프는 말했다. “영화에서 제가 한 음으로만 연기하고 그 연기에 안주하는 게 보여요. 연기가 뜻대로 안 되는 게 보여요.”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

감독 데이빗 예이츠

출연 다니엘 래드클리프, 엠마 왓슨, 루퍼트 그린트

개봉 200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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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억양이 저랬다고..? 제발 다시 찍고 싶다

9케이트 윈슬렛
<타이타닉> 로즈 드윗 부카터

<타이타닉>은 크게 성공했지만, 당시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는 영화만큼이나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영화가 3D 판으로 재개봉했을 때 윈슬렛은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타이타닉>을 회상했다. “모든 장면을 볼 때마다 그랬어요, ‘정말? 진짜? 저렇게 연기했다고? 오 마이 갓… 내 미국 억양이 저랬다고? 차마 못 들어주겠다. 끔찍해!’ 다행히 지금은 훨씬 나아요. 제 연기를 보는걸 좀 어려워하는데, 특히 <타이타닉>은… 제발 다시 찍게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타이타닉

감독 제임스 카메론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케이트 윈슬렛

개봉 1998.02.20. / 2018.02.01.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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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이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