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픽사가 <소울> 다음 주자로 내놓은 영화, <루카>. <루카>는 루카(제이콥 트렘블레이)와 그의 친구 알베르토(잭 딜런 그레이저)의 특별한 여름을 담았다. 맑은 날의 이탈리아 지중해 해안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두 소년의 뜻밖의 여정을 보고 있으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언론 시사를 통해 기자들에게 먼저 공개된 후 여러 매체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는 <루카>. 놓쳐서는 안 될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를 짚어봤다.

루카

감독 엔리코 카사로사

출연 제이콥 트렘블레이, 잭 딜런 그레이저, 엠마 버만

개봉 2021.06.17.

상세보기

바다 밖은 위험해? 아니, 바다 밖은 즐거워!
바다 괴물의 특별한 육지 모험

루카는 물속에 사는 바다 괴물이다. 육지의 사람들이 양을 치듯 물고기를 치며 엄마, 아빠, 할머니와 함께 오손도손 살아가던 그는, 어느 날 낚시를 나온 사람의 배에서 떨어진 물건들을 발견하고는 인간 세계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한다. 하지만 인간의 물건을 본 부모님은, 바다 위로 절대 올라가면 안 된다며 루카를 엄하게 꾸짖을 뿐이다.

호기심이 한껏 차올랐을 때쯤 루카 앞에 알베르토가 나타난다. 루카가 집으로 가져가려 눈독 들이던 축음기를 알베르토가 선점한 것인데. 루카는 알베르토의 뒤를 쫓다가 우연히 바다 위로 올라가고. 바다 괴물이 물 밖에서는 인간의 모습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늘도, 구름도, 햇빛도, 그늘도, 나무도. 어둑한 바닷속에 살다가 이제 막 뭍으로 올라온 루카에게는 이 모든 것이 낯설다. 머리카락과 비늘 없는 팔다리도 어색하고, 헤엄만 치던 그이기에 걷는 것도 쉽지 않다.

쉽진 않은데, 재미는 있다! 루카는 알베르토의 육지 아지트에 초대받았다. 입으로는 “나 이제 돌아가야 해!”를 백번 외치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한순간에 바깥세상의 매력에 빠져, 이제는 알베르토의 아지트를 제집처럼 드나든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둘은 그렇게 모험을 시작한다. 이게 다 베스파 때문이다.

아지트는 알베르토가 그동안 모아온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했지만, 이 중에서도 루카의 흥미를 끄는 건 이탈리아의 스쿠터, 베스파가 그려진 포스터였다. 베스파를 타고 달리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만으로도 루카는 행복해지고, 베스파로 세상을 누비는 것은 이제 그의 꿈이 되었다. 문제는 이들의 아지트가, 베스파는커녕 사람 한 명 살지 않는 외딴 섬에 있다는 건데. 루카와 알베르토는 이 소소한 듯 원대한 꿈을 안고 인간 마을로 떠난다. 안타깝게도 이들이 사는 세상은 인간과 괴물이 공생하는 세계가 아니다. 마을 곳곳에는 바다 괴물을 무찌른 것을 기념하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물만 닿으면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탓에, 식탁의 물컵, 길가의 물웅덩이마저 루카와 알베르토에겐 치명적이다. 위험이 가득한 이곳에서 두 소년은 정체를 들키지 않고 베스파를 만날 수 있을까.


어쩌면 인생 전체를 바꿀 힘을 가진
유년 시절의 우정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 <코코> <업> 등 스튜디오의 주요 작품만 봐도 알 수 있듯 픽사는 성장 이야기에 주목해왔다.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루카>는 루카의 모험기이자 성장기다. 먼저 수면의 벽을 깨고 육지에 터를 잡은 알베르토가 없었다면 루카는 감히 뭍으로 올라오지 못했을 거다. 알베르토 역시 베스파를 향한 루카의 타오르는 열정이 없었다면, 차마 인간 마을로 나아가 새 세상을 겪지 못했을 거다. 마을에서 새로 사귄 인간 친구 줄리아(엠마 버만)가 없었다면, 배움의 즐거움을 깨닫고 학교라는 또 다른 새 세상을 꿈꿀 수도 없을 거다. <루카>는 어쩌면 인생 전체를 바꿀 힘을 가진, 유년 시절의 유대를 다룬다. 서로에게 용기를 줌으로써 서로의 안전지대에서 벗어나 한 발짝 나아가게 하는 소중한 우정. 간단하고도 깊은 메시지를 전하며, 한참 전에 유년 시절을 보냈을 어른 관객의 향수까지 자극할 거다.

사실 <루카>는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다. 감독은 제노바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경험을 되새겨 <루카>를 만들었다. 이 이야기는 사실 루카와 알베르토의 이야기가 아니라, 13살의 엔리코와 알베르토의 이야기였던 거다. 감독은 친구 이름인 알베르토를 그대로 썼지만, 주인공을 엔리코라고 부르면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보일 것 같아 자신의 이름을 루카로 바꿨다고 밝힌 바 있다.


직접 갈 수 없다면!
<루카>로 대신하는 이탈리아 여행

<루카>의 배경은 가파른 산과 바다가 만나는 해안 마을 포르토로쏘다. 이렇듯 배경 설정이 구체적인 건 역시 영화가 감독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감독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풍경에 사실성을 더했고. 미술팀은 제노바 답사에서 느낀 것을 토대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그곳의 공기와 정취를 영화에 옮겨 놨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제노바는 작은 마을이기에,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 알고 지낸다. 스스럼없이 말을 주고받지. 매일 같은 시간에 만나 커피 한잔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작은 마을만이 가진 분위기 같았다. 우린 그런 느낌을 살리려 했다.”(<루카> 애니메이션 슈퍼바이저, 마이크 벤투리니) 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쉽지만, 이런 때기에 <루카>의 국내 극장 개봉은 너무도 반갑다. (북미에서는 <소울>이 그랬던 것처럼 OTT서비스인 디즈니 플러스로 공개된다.) 바다, 젤라또, 파스타, 그리고 스쿠터 라이딩으로 가득 찬 이탈리아에서의 휴가를 큰 스크린으로 만끽해보자.


2D와 3D의 조화!
수채화를 옮겨 놓은 듯한 비주얼

바닷물을 표현하는 데 돈을 꽤나 썼겠구나. <루카>를 보고 나면 드는 생각 중 하나다. 물론 이 생각에 이르기 전에 감탄이 먼저 나온다. 모래에 닿는 파도의 포말부터 해 질 녘의 윤슬까지, 시시각각 변하는 지중해 물결을 진짜보다 더 진짜같이 담았다. 바닷물의 질감도 훌륭하지만, <루카>의 스태프들이 입을 모아 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로 꼽는 건 색(色)이다. 제작진은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에서 갖가지 색상을 조합하는 대신, 파랑과 초록의 깊이에 집중해 바닷물을 구현하는 쪽을 선택했다고 한다. 바다 괴물의 모습을 한 루카와 알베르토도, 초록과 파랑으로 이뤄진 컬러 팔레트 안에서 표현되었다.

<루카>(왼쪽), <토이 스토리 4>의 디테일
<루카>(왼쪽), <소울> 속 입모양

카사로사 감독은 CG로 만들어진 완벽한 형상보다 손으로 직접 그린듯한 질감을 선호해왔다. 물론 이번 작품에도 질감 표현 장인 스튜디오 픽사답게 CG 디테일을 담아내기는 했지만, 카사로사는 <루카>도 그림처럼 표현하고 싶어했다. 타이틀과 엔딩 크레딧의 서체만 봐도 알 수 있다. 등장인물의 입 모양에도 그의 정체성이 반영됐는데. 입꼬리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뭉툭한 동그라미 형태로 단순화해, 아이 관객까지 즐길만한 그림체를 고안해냈다.

이러한 그의 제작 스타일에 영향을 미친 사람은 미야자키 하야오. 그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오랜 팬이다. 특히 <루카>는 이탈리아 해변으로 배경을 같이하는 <붉은 돼지>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컨셉 아트 사진을 몇 장만 찾아봐도, 그가 지브리 영화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게 느껴진다. <붉은 돼지>의 원제는 같은 뜻의 이탈리아어 <Porco Rosso>다. 루카의 이름은 원래 루카 포르토로쏘(Portorosso). 마지막에 루카의 성을, 알베르토의 성과 맞춰 파구로로 바꾸면서 포르토로쏘는 이들이 모험하는 마을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여담으로 파구로는 소라게를, 알베르토의 성 스코르파노는 쏠배감펭을 뜻하는데, 내성적인 루카의 성격과 호전적인 알베르토의 성격이 담긴 작명이라고.


이스터 에그를 찾는 재미!
알고 보니 <라 루나> 감독 장편 데뷔작

<라 루나>

데뷔작으로 바로 아카데미에 입성한 감독이 있다? <루카>는 데뷔작 <라 루나>로 제84회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 애니메이션상 부문 후보에 올랐던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픽사의 단편을 사랑하는 팬들이라면 한 번쯤 봤을 이 7분짜리 영화. <메리다와 마법의 숲>의 오프닝 단편으로 상영됐던 <라 루나>는, 이탈리아의 한 3대 가족의 이야기다. 소년 밤비노와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는 나룻배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 떠 있다가 달이 뜨면 달로 올라가 달에 떨어진 별을 청소한다.

<루카>(왼쪽), <라 루나>

<루카>에는 <라 루나>가 떠오르는 장면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첫 장면부터 <라 루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연상되는 두 낚시꾼이 나룻배를 타고 항해하는 모습이 나온다. <라 루나>의 배경이 밤이고 <루카>의 배경이 낮일뿐, 같은 사람이 만든 영화라는 게 쉬이 예상가는데. 이를 알아챈 것에 괜히 뿌듯해질 것이다. <루카>에는 루카의 상상 속 세상을 그린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상상 속 루카와 알베르토가 베스파를 타고 달까지 내달리는 장면에서도 그의 전작이 떠오른다. 수채화 물감의 색상 그러데이션을 활용해 달과 별을 표현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이외에도 두 작품이 겹쳐 보이는 지점이 몇 있지만, 무엇보다도 반가웠던 건 줄리아의 아버지 마시모(마르코 바리첼리)다. 결정적인 순간에 큰 감동을 안기는 마시모. 그의 콧수염부터, 덩치, 팔꿈치 걷어 올린 옷소매까지, 밤비노의 아버지와 똑 닮았다. 이렇듯 감독이 여기저기 심어둔 선물, 이스터 에그를 찾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배가될 것. 앞서 말했듯 감독은 주인공의 이름으로 자신의 이름 대신 루카를 썼다. 그렇다고 엔리코라는 이름을 아예 빼버린 건 아니다. 극 초반 루카가 기르는 물고기의 이름으로 넣어뒀으니, 이것도 놓치지 말자.

라 루나

감독 엔리코 카사로사

출연 크리스타 쉐플러

개봉 미개봉

상세보기

목소리 연기는 누가? 루카=엘리오?
루카와 알베르토

이름에 반영됐듯, 캐릭터 디자인에도 루카와 알베르토의 성격이 담겼다. 제작진은 장난기가 가득한 것을 표현하려, 동글동글한 루카에 비해 알베르토를 날렵하게 그렸다. 목소리로 캐릭터에 생기를 불어넣은 배우들에게서도 두 캐릭터의 성격 대비가 드러났다. 루카의 목소리는, <룸> <원더> 등에서 천진난만함과 내면의 깊은 혼란이 공존하는 어린아이의 얼굴을 표현하던 제이콥 트렘블레이가 연기했다. 알베르토는, <그것> <샤잠!>으로 얼굴을 알리고, 지금도 <샤잠!: 신들의 분노> 촬영으로 바쁜 날을 보내고 있는 잭 딜런 그레이저가 맡았다. 특히 <위 아 후 위 아> 속 프레이저(잭 딜런 그레이저)의 모습이나, 그레이저의 인스타그램 스토리 속 평소 모습에서 보이는 배우 특유의 자유롭고 여유로운 바이브를 알베르토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루카>(왼쪽),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영화 내용과 관련이 적은 여담으로. <루카>가 아직 개발 단계, 제작 초기 단계에 있어 세부 정보가 알려지지 않았을 때,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고 두 소년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루카>를 두고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연상하기도 했는데. 언뜻 크루아상 모양을 한 루카의 앞머리와 그의 마른 체형을 보고, 루카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엘리오(티모시 샬라메)와 닮았다는 의견도 꽤 있다.  


오프닝 단편 & 쿠키 영상 유무

<소울>의 <토끼굴>, <인사이드 아웃>의 <라바>, <토이 스토리 3> <낮과 밤>. 극장에서 픽사 영화를 보는 게 일거양득인 이유는, 한 번에 명작 두 편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인데. 픽사의 영화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오프닝 단편, 아쉽게도 <루카> 앞에는 없다. 그렇다고 상심하긴 이르다. 쿠키 영상은 있다! 본편에서 카메오처럼 잠깐 등장한 한 캐릭터의 해저 생활이 궁금하다면. 자리를 끝까지 지키고 쿠키 영상을 만나보자. <루카>는 6월 17일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씨네플레이 이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