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아가는 남자들에게 군대 이야기는 어떤 의미일까.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에게 그 시간은 어떻게 남아 있을까.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6부작 시리즈 <D.P.>는 지워버리고 싶었던 그때 그 순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군대에게 경험한 최악의 시간. <D.P.>는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불편하고 아프고 많이 슬프다. 그렇기에 이 군대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반응할 수밖에 없다. <D.P.>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전에 메모해두고 나중에 보기를 추천하는 군대 소재 영화 5편을 소개한다.
<용서받지 못한 자>(2005)
<D.P.>가 있기 전, 군대라는 곳의 진짜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이 <용서받지 못한 자>다. 윤종빈 감독과 하정우의 역사가 시작된 이 작품은 워낙 유명하기에 리스트에서 제외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국내에서 군대를 소재로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윤종빈 감독이 가짜 시나리오로 대학 졸업작품인 <용서받지 못한 자>의 촬영 협조를 얻었을 때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참고로 육군은 영화 개봉 무렵 윤종빈 감독을 고소하기도 했다. 육군의 ‘노이즈 마케팅’으로 <용서받지 못한 자>는 크게 화제를 모았다. 이듬해에는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부문에 초청되기도 했다. 유튜브에서 편집된 영상만 봤다면 이번 기회에 전편을 보기를 추천해본다.

- 용서받지 못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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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윤종빈
출연 하정우, 서장원
개봉 2005.11.18.
<창>(2012)
<용서받지 못한 자> 이후 현실 군대를 다룬 작품으로 연상호 감독의 중편 애니메이션 <창>이 나왔다. 군대 내 가혹행위, 현실, 부조리 등을 다루는 작품의 계보에 <창>은 분명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용서받지 못한 자>보다는 덜 알려졌고, 러닝타임이 짧지만 담고 있는 이야기의 무게는 그에 못지않다. <창>은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동시에 부식창고를 개조해 창문이 없는 내무반으로 당신을 안내할 것이다. 그만큼 현실적인 이야기라는 뜻이다. 혹시나 <부산행> 이전의 연상호 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을 보지 못했다면 <창>을 비롯해 <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도 함께 보길 추천해본다. 참고로 <창>의 원작 크레딧에 연상호 감독과 함께 만화가 최규석의 이름도 확인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웹툰 <지옥>이라는 작품을 함께 만들었으며, 이 작품 역시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로 제작됐다. 올해 하반기 공개 예정이다.

-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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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연상호
출연 이환, 이수현, 강도하, 김영환, 명승훈, 손책, 연상호, 한성수
개봉 2012.11.01.
<미운 오리새끼>(2012)
<미운 오리 새끼>는 앞서 소개한 두 영화들과는 조금 결이 다른 느낌이다. 기본적으로 코미디 장르로 분류되어 있다. 시대 배경도 1980년대로 그 시절에 대한 약간의 향수가 스며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군대를 사실적으로 그린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볼 만하다. 이 작품은 곽경택 감독의 뉴욕대 졸업작품인 단편 <영창 이야기>(1995)를 장편으로 확장한 것이다. 졸업작품을 군대 이야기로 만든 것으로만 따지면 곽경택 감독은 윤종빈 감독의 선배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교롭게 두 사람 모두 부산 출신이기도 하다. <영창 이야기>는 헌병대 ‘육방’(6개월 방위)이던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헌병대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D.P.>와 유사한 면도 있다. <영창 이야기>는 당시 화제를 모은 작품이었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곽경택 감독은 <영창 이야기>를 통해 학생 아카데미상(Student Academy Awards) 수상도 기대했다고 밝힌 바 있다. <영창 이야기>에 대한 애정은 <미운 오리 새끼>에 고스란히 담겼다. <미운 오리 새끼>는 가볍게 보다가 묵직하게 끝나는 작품이다.

- 미운 오리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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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곽경택, 유재영, 김성식
출연 김준구, 오달수
개봉 2012.08.30.
<1999, 면회>(2013)
입대는 이별의 다른 말이다. 군대에 가게 되면 가족과 친구와 연인과 만나지 못하게 된다. 군인에게는 이동의 자유가 없다. 휴가 혹은 면회를 통해서만 보고 싶은 이들을 만날 수 있다. 김태곤 감독의 <1999, 면회>는 제목처럼 1999년을 배경으로 강원도 철원에서 근무하는 친구에게 면회를 간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고등학교 시절 친한 친구였던 민욱(김창환), 상원(심희섭), 승준(안재홍)은 졸업 이후 각자 다른 길에 접어들었다. 상원은 대학에 진학했고, 승준은 재수생이 됐고, 민욱은 집안 형편 때문에 입대했다. <1999, 면회>는 <D.P.>처럼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소환하지는 않는다. 군대 안의 부조리, 폭력을 다루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군대에 면회를 가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1999, 면회>는 20대 초반의 청춘들이 거쳐온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철없던 그 시절의 부끄러운 기억이 떠오를 수도 있다. 특히 이성에 대한 부분에서.

- 1999, 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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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김태곤
출연 김창환, 심희섭, 안재홍, 김꽃비
개봉 2013.02.21.
<폭력의 씨앗>(2017)
<D.P.>를 본 사람이라면 모두 기억할 수통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1950년대 생산된 수통을 아직 사용하는 군대가 어떻게 바뀌겠냐는 조석봉(조현철) 일병의 말은 어떤 진실에 가깝다. 그래서 요즘 군대 좋아졌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다. 군대는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앞서 소개한 <용서받지 못한 자>와 <창>에 이어 <폭력의 씨앗>까지 비록 그 숫자가 적기는 하지만 꾸준히(!) 군대 내 폭력에 대한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폭력의 씨앗>은 어떻게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해가는지를 주목한다. 관심사병 후임(정재윤)을 둔 주용(이가섭)이 폭력의 씨앗을 품고 있는 인물이다. <폭력의 씨앗>은 주용의 감정 변화에 주목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과감한 시도를 선보였다. 핸드헬드 카메라가 줄곧 주용의 뒤를 쫓는다. 화면비도 좌우로 넓지 않고 4:3 비율이다. 2차 세계 대전 중 유태인 강제 수용소의 참상을 그야말로 체험하게 만든 <사울의 아들>과 유사한 형식이라고 볼 수 있다. <폭력의 씨앗>은 2017년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 대상 및 CGV아트하우스상 수상했다.

- 폭력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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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임태규
출연 이가섭, 정재윤, 김소이, 박성일
개봉 2017.11.02.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