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로 알모도바르와 페넬로페 크루즈

스페인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 페넬로페 크루즈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신작 <패러렐 마더스>가 개봉했다. 1997년 작 <라이브 플래쉬>부터 <패러렐 마더스>까지, 크루즈와 알모도바르가 함께 작업한 흔적들을 모았다.


라이브 플래쉬
Live Flesh
Carne trémula, 1997

페넬로페 크루즈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인연은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크루즈를 전세계에 알린 <바닐라 스카이>(2001)의 원작 영화 <오픈 유어 아이즈>가 나온 1997년 작품 <라이브 플래쉬>다. 30대 부부와 40대 부부 그리고 20대 청년, 다섯 인물을 둘러싼 복수와 애욕을 그린 <라이브 플래쉬>는 20대 청년 빅토르가 태어난 날에서 시작한다. 1970년 마드리드, 아이를 가진 매춘부 이자벨은 통증을 느껴 아무도 없는 마드리드 거리로 나와 달리는 버스 안에서 아이를 낳는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원인이 될 주인공 빅토르를 낳는 이 젊은 어머니를 페넬로페 크루즈가 연기했다. 앞으로 알모도바르 영화에서 여러 어머니 역할을 맡게 될 크루즈는 그 첫 협업부터 어머니 역할을 맡았던 셈. 크루즈는 영화 초반 10분 남짓한 분량에만 얼굴을 비추지만 주연 배우들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라이브 플래쉬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출연 하비에르 바르뎀, 프란체스카 네리, 리베르토 리발, 안젤라 몰리나

개봉 1999.10.09. / 2018.11.05.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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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의 모든 것
All About My Mother
Todo sobre mi madre, 1999

홀로 아들을 키우는 마누엘라는 공연 보고 돌아오는 길에 사고로 아들 에스테반을 잃는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아들을 위해 남편을 찾아나선 마누엘라는 남편이 성전환 수술을 받고 롤라라 불린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롤라의 아이를 키우는 수녀 로사를 만난다. 흔히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최고작이라 불리는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서 크루즈는 로사 수녀를 연기했다. 분명 일반적인 수녀는 아니다. 성소수자들을 돌보며 살아가는 로사는 마누엘라의 남편 롤라의 아이를 품고 있고 제 존재를 부정하는 가족이 아닌 마누엘라에게 의지한다. "...연기하는 모든 여자 배우들. 여자를 연기하는 남자 배우들, 여자가 된 남자들, 어머니가 되고자 하는 모든 여자들, 그리고 내 어머니께 이 영화를 바칩니다" 라는 문구로 맺는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은 2000년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고, 시상을 위해 알모도바르의 또 다른 페르소나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함께 무대에 선 크루즈는 영화 제목보다 먼저 "페드로!!"를 외치며 환희를 드러냈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출연 세실라 로스, 마리사 파레데스, 캔델라 페나, 안토니아 산 후안, 페넬로페 크루즈, 로사 마리아 사르다

개봉 2000.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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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Volver, 2006

<내 어머니의 모든 것> 이후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남성 캐릭터 중심의 영화 <그녀에게>(2002)와 <나쁜 교육>(2004)을 거쳐, 다시 여자들의 이야기 <귀향>을 발표했다. 그동안 알모도바르 영화에서 주연만큼이나 중요한 조연으로 참여해온 페넬로페 크루즈는 <귀향>에서 할머니 어머니 딸 3대에 걸친 여성들의 중심인 라이문다 역을 맡았다. 화재로 인해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언니 솔레와 함께 고향을 떠나 마드리드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라이문다는 계부에게 폭행당한 딸이 그를 죽인 걸 알게 되고, 고향을 방문한 솔레는 죽은 줄만 알았던 어머니의 흔적을 발견한다. 위험에 빠진 딸을 보호하는 어머니이자 오랜 세월 어머니를 마음에 품고 살아온 딸을 아우르는 크루즈의 원숙한 연기가 돋보인다. 알모도바르가 사랑하는 또 다른 배우 카르멘 마우라, 추스 람프레아베 등도 출연한 <귀향>은 2006년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크루즈를 비롯한 여섯 배우들이 여우주연상을 공동수상했다. 

귀향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출연 페넬로페 크루즈, 카르멘 마우라

개봉 2006.09.21. / 2018.11.05.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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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큰 임브레이스
Broken Embraces
Los abrazos rotos, 2009

페넬로페 크루즈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네 번째 협업 <브로큰 임브레이스>에선 크루즈가 유일하게 어머니로 나오지 않는다. 전적으로 '로맨스'에 집중한 이야기이기 때문일 터. 크루즈가 연기한 레나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백만장자 어니스토의 연인으로 살아가면서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놓지 않는다. 오디션을 통해 감독 마테오를 만난 레나는 그의 영화 속 주인공에 캐스팅 되고, 레나의 변화를 눈치챈 어니스토는 그를 감시한다. <라이브 플래쉬> 즈음부터 한껏 정제되고 성숙한 이야기를 이어오던 알모도바르는 섹스, 질투, 살인 등이 뒤엉킨 과거의 색깔이 물씬한 터치로 치정극 <브로큰 임브레이스>를 만들었다. 모성이 아닌 온전히 사랑과 욕망을 향해 내달리는 여자로 분한 크루즈를 알모도바르의 눈부신 비주얼로 만날 수 있는 드문 사례다. 

브로큰 임브레이스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출연 페넬로페 크루즈, 안젤라 몰리나, 루벤 오칸디아노, 로라 두에나스

개봉 2009.11.19. / 2018.11.05.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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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 소 익사이티드
I'm So Excited!
Los amantes pasajeros, 2013

2013년 작 <아임 소 익사이티드>는 가볍디가벼운 유머로 가득한,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소품 같은 영화다. 알모도바르 하면 떠오르는 배우들은 중심이 아닌 카메오로서 영화 곳곳에 얼굴을 비추면서, 이 이례적인 소품이 알모도바르의 영화라는 걸 확인시킨다. 영화 대부분을 비행기 안에서 진행하는 <아임 소 익사이티드>에서 페넬로페 크루즈는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함께 오프닝에 등장한다. 이륙하기 전 활주로, 수하물을 태우고 운전하던 여자는 멀리서 일하는 남편을 보다가 다른 직원과 부딪히고 남편에게 아이를 가졌다고 고백한다. 카메오 출연조차도 크루즈에게 어머니의 역할을 주는 고집을 드러내다니. 

아임 소 익사이티드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출연 하비에 카마라, 로라 두에나스

개봉 미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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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 앤 글로리
Pain and Glory
Dolor y gloria, 2019

(카메오 출연한 <아임 소 익사이티드>를 제외하고) 10년 만에 다시 페드로 알모도바르와 만난 <페인 앤 글로리>는 알모도바르의 자전적인 영화다. 왕성하게 활동하다가 건강이 나빠져 창작을 멈춘 감독 살바도르는 과거 작품을 32년 만에 다시 보고, 그 작품의 주연 배우였던 알베르토를 만나 과거에 써온 글을 바탕으로 한 연극을 준비한다.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연기한 살바도르의 현재와 과거를 자유롭게 오가는 능수능란한 흐름이 인상적인 <페인 앤 글로리>에서 어린 시절 기억은 크게, 동네 형을 보면서 깨닫게 된 남성에 대한 욕망과 홀로 가정을 이끈 어머니에 대한 것으로 나뉜다. 물론 페넬로페 크루즈가 기억 속 어머니다. 이전까지 크루즈가 연기한 어머니는 고통 끝에 아이를 낳거나 가정사의 격랑을 헤치느라 바빴다면, <페인 앤 글로리>의 어머니는 많은 이들이 기억에 품고 있을 지극히 평범히 일상을 영위하는 존재다. 그래서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페인 앤 글로리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출연 페넬로페 크루즈, 안토니오 반데라스

개봉 20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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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렐 마더스
Parallel Mothers
Madres paralelas, 2021

<패러렐 마더스>는 제목부터 노골적으로 어머니가 주인공임을 드러내고 있지만, 이야기는 모성의 차원을 가볍게 넘어선다. 같은 병원에서 만나 한날한시 아이를 낳은 야니스와 아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짧지만 깊은 우정을 나눈 두 사람은 한동안 아이와 함께 각자의 삶을 살다가, 야니스는 자기와 아나의 아이가 서로 바뀌었음을 알게 된다. 탄생의 비밀이라니, 스포일러 아니냐고?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뒤바뀐 아이를 둘러싼 두 여자의 만남은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지만, 알모도바르의 솜씨는 이 막장과도 같은 이야기를 충분히 설득할 뿐만 아니라, 개인을 넘어 스페인의 뼈아픈 역사를 끄집어내는 데에 이른다. 페넬로페 크루즈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사건을 경험하며 차곡차곡 쌓이는 수많은 감정을 온전히 포착하는 연기를 선보이며 작년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패러렐 마더스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출연 페넬로페 크루즈, 밀레나 스밋, 로시 드 팔마

개봉 2022.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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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