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대표하는 음악 시상식 그래미 어워드가 현지 시각으로 지난 일요일 열렸다. 그래미 어워드는 음악 시상식임에도 뮤지션에게만 상을 주지 않는다. 영화계 인사들이 수상의 영예를 안은 적이 꽤 많다. 그래미상을 수상한 영화배우와 감독은 누구일까? 그 기록들을 모았다. (음악계에서 먼저 경력을 시작한 이들은 제외)
잭 니콜슨 <The Elephant's Child> 1988년 최우수 어린이 앨범
훌륭한 연기와 목소리를 가진 배우들은 낭독의 솜씨를 뽐낸 작업으로 그래미를 수상한 경우가 많다. 얼굴만 봐도 무서운 잭 니콜슨은 아직 <배트맨>(1989)의 조커 역을 선보이기 전인 1988년 무려 최우수 어린이 앨범 상을 받았다. <정글북>으로 잘 알려진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의 그림책 <아기 코끼리 코는 왜 길어졌을까?>(The Elephant's Child)를 니콜슨이 낭독한 앨범을 통해서다. 음악은 바비 맥퍼린이 맡았는데, 그는 이듬해 그래미 시상식에서 'Don't Worry, Be Happy'로 올해의 레코드상과 올해의 노래상을 석권하는 쾌거를 이뤘다.
데이비드 핀처 The Rolling Stones "Love Is Strong" 1995년 최우수 뮤직비디오 Justin Timberlake "Suit & Tie" (feat. Jay-Z) 2014년 최우수 뮤직비디오
The Rolling Stones "Love Is Strong"
80년대 중반부터 뮤직비디오/CF 감독으로 활동한 데이비드 핀처는 마돈나의 'Vogue', 조지 마이클의 'Freedom '90'등을 통해 업계 최고의 실력자로 발돋움 했다. <에이리언 3>(1992)를 발표해 영화감독 신고식도 성공적으로 마친 그는 영화 작업 틈틈이 뮤직비디오/CF 작업을 계속해왔다. 1990년 마돈나의 'Oh Father'로 그래미 최우수 뮤직비디오 후보에 오른 핀처는 가을에 <세븐>이 개봉할 1995년 최우수 뮤직비디오 상을 받았다. 명실공히 미국을 대표하는 감독이 된 핀처는 <소셜 네트워크>(2010)에서 션 파커 역을 맡은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Suit & Tie'로 19년 만에 같은 부문에서 수상했다.
Justin Timberlake "Suit & Tie" (feat. Jay-Z)
패트릭 스튜어트 <Prokofiev: Peter and the Wolf> 1996년 최우수 어린이 스포큰 워드 앨범
스크린, TV, 무대를 종횡무진 하는 배우 패트릭 스튜어트는 <이집트 왕자>, <천재소년 지미 뉴트론>, <치킨 리틀>, <아이스 에이지 4: 대륙 이동설>, <19곰 테드>에서 근사한 목소리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1993년 찰스 디킨슨의 <크리스마스 캐롤>로 최우수 스포큰 워드 앨범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던 그는 3년 후 작곡가 프로코피예프의 음악 동화 <피터와 늑대>로 최우수 어린이 스포큰 워드 앨범상을 받았다. 2001년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전편을 녹음한 음반으로도 스포큰 워드 앨범 후보에 오른 바 있다.
마틴 스콜세지 <노 디렉션 홈: 밥 딜런> 2006년 최우수 음악 영화
감독 데뷔 전, 전설적인 록 페스티벌 '우드스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우드스탁>(1970)의 편집을 맡아 이름을 알린 마틴 스콜세지는 이후에도 더 밴드의 공연 실황을 담은 <라스트 왈츠>(1978)와 다큐멘터리 시리즈 <더 블루스>의 중 하나인 <필 라이크 고잉 홈>(2003) 등을 연출했다. 로버트 드니로를 잇는 페르소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한 <갱스 오브 뉴욕>과 <에비에이터>를 연달아 성공시킨 그는 2005년, 데뷔 시절부터 오토바이 사고를 당한 1966년 7월까지 밥 딜런의 활동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노 디렉션 홈: 밥 딜런>을 발표해, 이듬해 그래미에서 최우수 음악 영화상을 받았다.
호아킨 피닉스 <앙코르> OST 2007년 최우수 컴필레이션 사운드트랙
<앙코르>(2005)는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 경력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작품이다. 2003년 세상을 떠난 싱어송라이터 자니 캐쉬의 삶을 그린 영화에서 피닉스는 첫사랑 준 카터(리즈 위더스푼)를 향해 오랜 세월 구애하는 캐쉬에 초점을 맞춘 연기로 명배우의 반열에 올라선다. 두 주연배우 모두 6개월에 걸친 보컬 트레이닝을 거쳐 영화 속 모든 노래와 연주를 직접 소화했고, <앙코르> OST가 2007년 최우수 컴필레이션 사운드트랙 부문 상을 받아, 피닉스 역시 그래미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됐다.
제이미 폭스 "Blame It" (feat. T-Pain) 2010년 최우수 듀오/그룹 R&B 퍼포먼스
90년대 초 배우로 데뷔한 제이미 폭스는 1994년 모든 트랙을 자작곡으로 채운 R&B 앨범 <Peep This>를 내놓은 바 있다. 소울 뮤지션 레이 찰스가 죽고 몇 달 뒤 개봉한 그의 전기영화 <레이>(2004)에서 레이 찰스를 연기한 제이미 폭스는 그 시즌 오스카를 비롯한 수많은 남우주연상을 휩쓸며 전성기를 맞았다. 여세를 몰아 11년 만의 새 앨범 <Unpredictable>로 빌보드 차트 1위, 200만 장의 판매를 기록한 제이미 폭스는 3년 뒤 세 번째 앨범 <Intuition>까지 발표해 배우와 뮤지션 활동을 병행했다. 2005년부터 간간이 그래미의 후보에 오른 그는 티페인과 함께 한 'Blame It'으로 최우수 듀오/그룹 R&B 퍼포먼스를 수상했다.
돈 치들 <마일스> OST 2016년 최우수 컴필레이션 사운드트랙 <Carry On: Reflections for a New Generation from John Lewis> 2022년 최우수 스포큰 워드 앨범
<마일스> OST
돈 치들의 필모그래피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있다. 2015년 작 <마일스>다. 치들은 불세출의 재즈 뮤지션 마일스 데이브스의 전기영화 <마일스>를 10년 동안 준비해 감독, 각본, 프로듀서, 배우 역할을 아우른 결과물로서 완성해냈다. 재즈 뮤지션 로버트 글래스퍼가 담당한 OST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과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누르고 그래미 최우수 컴필레이션 사운드트랙 상을 받았다. 2003년 월터 모슬리의 범죄 소설 <피어 잇셀프>로 최우수 스포큰 워드 후보에 올랐던 치들은 60년대 이후 흑인 민권운동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온 정치인 존 루이스의 책 <캐리 온: 리플렉션스 오브 어 뉴 제너레이션 프롬 존 루이스>의 오디오북으로, 올해 그래미에서 최우수 스포큰 워드까지 차지했다.
<Carry On: Reflections for a New Generation from John Lewis>
론 하워드 <비틀스: 에잇 데이즈 어 위크> 2017년 최우수 음악 영화
배우로 처음 영화계에 입성한 론 하워드는 <대도둑 오토>(1977)로 감독 데뷔한 이래 <분노의 역류>, <아폴로 13>, <뷰티풀 마인드>, <다빈치 코드> 등 장르에 구애 받지 않는 작품들을 만들어 오랫동안 현역으로서 폼을 유지하고 있다. 종종 여러 다큐멘터리에 관여해온 그는 2003년 제이지가 주최한 음악 페스티벌을 기록한 <메이드 인 아메리카>(2004)를 연출한 데 이어, 영국 밴드 비틀즈가 1962년부터 1966년까지 진행한 라이브를 모은 <비틀즈: 에잇 데이즈 어 위크>(2016)의 감독까지 맡아, 이듬해 그래미 최우수 음악 영화상을 받았다.
도널드 글로버 "Redbone" 2018년 최우수 트래디셔널 R&B 퍼포먼스 "This Is America" 2019년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최우수 랩/노래 퍼포먼스, 최우수 뮤직비디오
"Redbone"이 수록된 앨범 <"Awaken, My Love!">
TV 시리즈 <애틀란타>를 이끄는 도널드 글로버 역시 다방면에 걸쳐 재능을 발산하고 있는 아티스트다. TV에서 주로 활동하던 2000년대 중반부터 '차일디쉬 갬비노'라는 이름의 뮤지션으로도 활동해온 그는 도널드 글로버와 차일디쉬 갬비노의 활동을 부지런히 병행하며 모든 분야에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오랜 음악 파트너 루드비그 예란손과 함께 만든 앨범 <"Awaken, My Love!">와 수록곡 'Redbone'이 2018년 그래미의 여러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지만 'Redbone'만 최우수 트래디셔널 R&B 퍼포먼스를 수상하는 데에 그쳤다. 하지만 바로 이듬해 파격적인 뮤직비디오와 함께 선보인 싱글 'This is America'로 올해의 레코드와 올해의 노래 등 총 4개 부문을 쓸어담으며 2019년 그래미의 주인공이 됐다.
"This is America" 비디오
브래들리 쿠퍼 "Shallow" 2019년 최우수 듀오/그룹 팝 퍼포먼스 <스타 이즈 본> OST 2020년 최우수 컴필레이션 사운드트랙
'워 머신' 돈 치들에게 <마일스>가 있다면, '로켓' 브래들리 쿠퍼에겐 <스타 이즈 본>이 있다. 1954년과 1976년 영화로 제작된 <스타 이즈 본>은 2011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하고 브래들리 쿠퍼와 비욘세가 주연을 맡는 버전으로 제작될 예정이었으나 수차례 미뤄졌고, 결국 브래들리 쿠퍼가 감독 각본 주연을 겸하고 레이디 가가가 주인공 앨리 역을 맡은 결과물로 완성됐다. 쿠퍼와 레이디 가가가 부른 주제가 'Shallow'는 2019년 오스카 주제가상에 이어 그래미 최우수 듀오/그룹 팝 퍼포먼스를 수상했고, 그 다음해엔 영화 OST가 그래미 최우수 컴필레이션 사운드트랙 상까지 받았다.
휴 잭맨 <위대한 쇼맨> OST 2019년 최우수 컴필레이션 사운드트랙
휴 잭맨은 2005년 <오즈에서 온 소년>으로 토니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이후 꾸준히 후보에 오르고,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2012)에서 활약하면서 훌륭한 노래 실력까지 증명했다. 2017년 말에 개봉한 뮤지컬 영화 <위대한 쇼맨>은 그의 출중한 노래를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는 작품이었다. <라라랜드>의 주제가 'City of Stars' 노랫말을 쓴 듀오 벤즈 파섹/저스틴 폴 듀오가 노래 대부분을 만든 <위대한 쇼맨> 역시 큰 사랑을 받았고, 휴 잭맨이 참여한 OST는 전년도의 <라라랜드>에 이어 2019년 그래미 최우수 컴필레이션 사운드트랙 부문에서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