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부모님과 얼마나 대화를 나누는지. 독립해서 살고 있다면 하루가 아닌 일주일을 기준으로 잡아도 손에 꼽을지 모른다. “밥은 먹었어?”, “별 일 없고?”라는 애정 어린 질문에도, 어쩐지 “네”라는 대답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께 먼저 거는 법이 없어지고, 통화도 5분을 채 못 넘기고 끊긴다. 부모님이 영원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자식은 부모가 없는 세상을 경험해 본 적 없기에 그들의 부재를 상상하지 못한다. ‘있을 때 잘하자’는 말은 변하지 않는 진리. 오늘은 어버이날을 맞아 부모님 생각이 나는 영화들을 소개한다. 쑥스러워도 부모님께 영화 한 편 같이 보자고 해도 좋고, 떨어져 산다면 전화 한 통 걸어보는 건 어떨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뻔한 영화이다. 하지만 나 또한 뻔한 아들이었기에..”
-r******님의 코멘트
2013년 7월 12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마지막 장면 대본이 지문으로 나왔다. 모의고사를 보던 학생들이 갑자기 눈물을 흘렸고, 간혹 감수성이 풍부했던 친구들은 터져 나오는 감정을 추스르느라 애를 썼다. 출제된 지문에는 암에 걸린 주인공이 사랑하는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숨을 거두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앞뒤 맥락을 파악하기 어려운 굉장히 짧은 지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생각해 본 적 없는 엄마의 죽음을 순식간에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1996년 MBC에서 방송된 노희경 작가 동명의 드라마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세상에서 가장아름다운 이별>은 그런 영화였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엄마의 감정에 순식간에 관객들을 집어 넣는 힘을 가진 영화.
주인공 인희(배종옥)는 며느리이자 아내, 딸, 그리고 어머니. 여러 이름을 갖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이름은 불리지 않는다. 어머니의 이름으로 가족을 위해 희생하던 인희는 50대의 나이에 자궁암 말기 판정을 받고 가족들과의 이별을 준비한다. 희생의 날들 끝에는 자궁암이라는 절망적인 상황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 가혹한가, 싶다가도 마지막까지 가족들 앞에서 웃음 지어 보이려는 인희의 모습은 애틋하기만 하다. 누군가는 ‘뻔한 한국식 신파’라 할지 모르겠으나, 어머니의 사랑이란 게 참으로 뻔하지 않나. 왜 그렇게 당신은 돌보지 않은 채 자식들 입에 뭐라도 하나 더 넣어 주려는 건지. 당신의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들을 생각하는 건지. 미련하고, 또 뻔한 그 모습에 관객들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키지 못했다. 최근 부모님에게 소홀했다고 생각이 되면 꼭 한 번 봐야 하는 영화.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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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민규동
출연 배종옥, 김갑수, 김지영, 유준상, 서영희, 류덕환, 박하선
개봉 2011.04.20.
<도쿄 타워>
“목이 메이도록 눈물을 흘렸다. 주무시고 계시는 엄마를 안아드렸다.”
-h*******님의 코멘트
영화 <도쿄 타워>는 배우 릴리 프랭키의 자전적 소설 <도쿄 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2005년에 출판된 소설은 200만 부가 넘게 팔리며 베스트셀러로 등극했고, 영화 역시 2007년 4월에 일본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차지했다. 영화는 일본 규슈의 시골 동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온 엄마는 철없는 남편과 일찌감치 헤어지고, 억척스럽게 일만 해서 아들을 길러 도쿄의 대학에 보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역시나 철없는 아들은 대학 내내 노느라 졸업도 못하고,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다시 한 번 뒷바라지 한다. “열심히 좀 하지 그랬어” 라는 공허한 말만 내뱉으며. 아들에게는 엄마의 목소리가 닿지 못했고, 아들은 그 돈을 유흥에 써버린다. 그렇게 시간을 죽이며 살아온 아들 앞에 ‘엄마의 죽음’이 선고 되었다.
갑작스레 병에 걸린 엄마에게 뒤늦게라도 열심히 효도를 하는 아들. 사실 그가 죽이고 있었던 건 자신이 아니라 어머니의 시간이었다. ‘그 집 아들 알지? 철 없는 아들, 그 집 엄마가 아프대’처럼, 영화는 몇 집 건너면 있을 법한 이야기에 주목한다. 내 자식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어디든 상관하지 않는 엄마. 왜 유독 엄마에게만 인색해 지는 걸까. 일본의 엄마라고 다르지 않구나, 라는 감상이 들기도 전에 눈물부터 난다. 영화가 끝나고 엄마에게 전화 한 통을 걸었더니, ‘어쩐 일이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기쁜 내색이 역력한 그 목소리가 문득 낯설어 목이 메였다. 이렇게 쉬운 걸, 여지껏 하지 못했다. 남의 엄마를 보며 흘렸던 눈물이 부끄러워지는 나날.

- 도쿄 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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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마츠오카 조지, 니시타니 히로시
출연 오다기리 죠, 키키 키린
개봉 2007.10.25.
<늑대아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치고도 해준게 없다는 엄마의 그 마음.”
-L**님의 코멘트
미야자키 하야오 다음엔 호소다 마모루, 라는 이동진의 말에 동의한다. 호소다 마모루가 그려내는 가족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샌가 관객 역시 한 마디 만큼은 성장해 있다. <늑대아이>는 특히 이러한 호소다 마모루의 장점이 도드라지는 작품이다. 두 시간 남짓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주인공 하나(미야자키 아오이)의 세월을 함께 겪게 된다.
<늑대아이>는 부모님을 잃은 후 홀로 살아가게 된 대학생 하나가 늑대 인간의 아이를 낳고, 홀로 키우는 이야기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남편을 잃은 하나는 대학을 중퇴하고 시골로 내려가 혼자 아이들을 키우게 되는데 안쓰러울 정도로 온갖 고생을 한다. 그럼에도 누구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법을 모르는 하나는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해 나가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렇게 하나는 시골 공동체 생활을 통해 누군가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반인반늑 아이들을 기른다.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 경제 활동도 어려운 상황, 연고도 없는 곳에서 도움 없이 아이들을 기른다는 것. 게다가 본인 역시 경험이 없고 어린 상태라면 막막하고 실수 투성이일 테다. 그럼에도 하나는 아이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쏟는다. 인생을 다 바쳤음에도 “엄만 아직 너한테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 아직 아무것도, 못했는데…”라고 말하는 엄마의 그 마음이란 도대체 무얼까.

- 늑대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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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호소다 마모루
출연 미야자키 아오이, 오오사와 타카오, 쿠로키 하루, 니시이 유키토, 오노 모모카
개봉 2012.07.21. 2012.09.13. 재개봉
<행복 목욕탕>
“난 이런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난 지금 저런 딸인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l******님의 코멘트
<행복 목욕탕>.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의아한 생각이 든다. 도대체 왜 ‘행복’이란 단어가 붙은 거지? 주인공 후타바(미야자와 리에)는 남편 가즈히로(오다기리 죠), 딸 아즈미(스기사키 하나)와 함께 공중 목욕탕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갑작스럽게 사라지고 후타바는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게 된다. 남은 시간은 2~3개월.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지만, 그는 '살 수 있는 날까지 삶의 의미를 저버리지 않기’로 마음 먹는다. 이지메를 당하고 있는 딸에게 자신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도록 강인한 마음을 심어주고, 사라진 남편을 찾아내 혼외자식 아유코(이토 아오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게 만든다.
도무지 후타바의 인생에서는 행복할 구석이 없어 보인다. 남편은 매번 바람을 피우고, 딸은 이지메를 당하고, 혼외 자식도 기르고, 췌장암 말기까지 선고 받았다. 그러니까, 도무지 행복할 구석이 없는 이 영화가 왜 <행복 목욕탕>일까. 사실 원제는 <욕탕을 데울 만큼 뜨거운 사랑湯を沸かすほどの熱い愛>이다. 후타바의 삶은 일반적인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강인해 보이는 그였지만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자신을 부둥켜 안고 울거나,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그는 가족을 사랑했다. 욕탕을 데울 정도로 그의 사랑은 자신을 뗄감 삼아 사랑을 태워나갔다. 그가 다짐했던 ‘삶의 의미’ 덕분에 남겨진 가족들은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갖고 살아가게 된다. <행복 목욕탕>의 나카노 료타 감독은 “어머니와 아버지, 아이들로 구성된 전통적 가족 형태는 이미 무너졌다. 그럼 이제 가족의 의미는 무엇일까, 같이 사는 사람이 가족일까, 피를 나눠야만 가족일까. 이런 생각 끝에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힘든 가족의 초상을 그리려고 했다.”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결국, <행복 목욕탕>은 어머니의 이야기가 아닌, 가족 이야기다. 어머니가 만들고 떠난 새로운 가족의 형태였다.

- 행복 목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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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나카노 료타
출연 미야자와 리에, 스기사키 하나, 오다기리 죠, 이토 아오이
개봉 2017.03.23.
<가족의 탄생>
“오래도록 기억되고 인용될 영화”
이동진 평론가 한 줄 코멘트
마지막은 가족을 한데 아우를 수 있는 영화로 준비했다. 포스터만 보면 그저 그런 가족 영화처럼 보인다. 덕분에 흥행에는 처참하게 실패했지만, 영화를 본 이들은 입을 모아 극찬했다. 관객 평은 물론 평단의 평가도 무척 좋았는데, 이동진 평론가는 별점 9점과 함께 “오래도록 기억되고 인용될 영화”라는 평을 남겼다. <국제시장>(2014), <7번방의 선물>(2013)도 좋지만, 조금은 특별해도 괜찮지 않을까. <가족의 탄생>은 남다른 가족들의 평범한 가족 ‘탄생기’다.
영화는 일반적인 가족의 개념을 뒤흔든다. 홀로 분식집을 운영하는 미라(문소리)에겐 소중한 남동생 형철(엄태웅)이 있다. 자유로웠던 형철은 제대 후 5년 간 소식 없다 갑자기 미라를 찾아온다. 스무 살 연상 연인 무신(고두심)과 함께. 한편, 현실주의자인 선경(공효진)은 로맨티스트 엄마 매자(김혜옥) 때문에 늘 일상이 시끄럽다. 철없이 사랑 타령을 하는 엄마가 짜증나는 선경이지만, 동시에 점점 늙어가는 엄마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힌다. 사랑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은 또 한 번 나온다. 경석(봉태규)의 연인 채현(정유미)은 모든 게 완벽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애정을 쏟고 다녀, 경석은 신경 쓰지 못한다. 대개의 가족은 태어나면서 탄생 된다. 그러나 영화 속 가족들은 인연을 통해 가족이 되어 간다. 인생의 풍파를 맞으면서 혈연이 아닌 인연을 통해 맺어진다. 결국, 가족이란 무엇일까. 감독은 “영화를 통해 가족이라는 일반적인 규정에서 퉁겨져 나온 사람들도 건강한 가족을 꾸리며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고 답했다. 가족은 만들어 가는 것인지도.

- 가족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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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김태용
출연 문소리, 고두심, 엄태웅, 공효진, 김혜옥, 봉태규, 정유미
개봉 2006.05.18.
씨네플레이 객원 기자 김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