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정은이 사투리 연기하는 것을 보면 문득 그녀의 출신지가 궁금해진다. 최근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제주 사투리를 네이티브처럼 자연스레 툭툭 뱉는 것을 보곤, 혹시 그녀가 제주 태생이 아닌가 의심했을 정도. 하지만 이정은은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다. 그럼에도 맡은 역할에 따라 시(市)와 도(道)를 넘나들며 여러 방언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것이 신기할 따름. 그간 배우 이정은이 출연한 영화와 드라마들 중 사투리 연기를 볼 수 있었던 작품들을 모아보았다.


경상도 사투리

<전국노래자랑>(2013) 동수 이모
“예쁜 한복에다 이게 뭔 짓이고, 아깝구로”

영화 <전국노래자랑>은 연극배우로 데뷔한 이정은이 카메라 울렁증을 극복(!)하게 된 작품이다. 영화는 국내 최장수 프로그램인 <전국노래자랑>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김해시에서 열리는 ‘전국노래자랑’ 무대에 서기 위해 도전하는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정은은 극중 건강보조식품을 만드는 회사에 다니는 동수(유연석)의 이모로 출연했다. 동수와 그의 직장동료 현자(이초희)가 회사의 제품을 홍보할 수 있도록 그들이 입을 무대 의상인 한복에 제품 이름을 새겨주며 아주 짧게 등장하는데, 연신 김해 사투리로 이야기하는 것이 꽤나 자연스럽다.

전국노래자랑

감독 이종필

출연 김인권, 류현경, 김수미, 오광록, 유연석, 이초희, 오현경, 김중기

개봉 2013.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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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2013) 옛집주인
“아이고 저 뭐 쥬씨라도 드실랍니까?”

<전국노래자랑>과 같은 해 개봉한 영화 <변호인>에서는 부산 사람으로 분했다. 한쪽만 완성된 눈 화장으로 강렬하게 등장해 범상치 않은 존재감을 뽐낸 그녀는 극중 송우석(송강호)의 아파트 옛 주인 역할을 맡아 연기했다. 용건이 끝난 후 그녀는 우석에게 주스를 권하는데, 당시 송강호 배우는 이정은이 ‘쥬씨’라는 단어를 쓴 것에 짐짓 놀랐다고. 이정은은 후에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사투리를 준비한 과정을 공개했는데, 아는 영화 PD가 마산 출신이라 양해를 구하고 사투리를 녹음해 한 달 반 동안 매일같이 연습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피나는 연습으로 부산 사투리 패치를 제대로 붙인 그녀는 후에 송강호에게 “고향이 부산이야?”라는 질문을 듣기도 했다고. 참고로 송강호의 고향은 김해다.

변호인

감독 양우석

출연 송강호, 김영애, 오달수, 곽도원, 임시완

개봉 201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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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션샤인>(2018) 함안댁
“애기씨가 무슨 꼬부랑 말을 알아요, 글을 알아요, 입도 쩍 못 떼고 일자무식잉께..”

영화 <변호인>과 드라마 <미스터션샤인> 사이 5년간 이정은은 충무로를 대표하는 신스틸러로 떠올랐고, <미스터션샤인>에서는 함안댁을 연기하며 모두의 ‘함블리’가 되었다. 그녀가 연기한 함안댁은 고씨 가문의 노비로, 애기씨 고애신(김태리)을 엄마처럼 돌봐주는 인물이자 그녀의 든든한 오른팔이다. 함악댁의 사랑스러움이 배가될 수 있었던 데는 분명 그녀의 구수한 사투리가 한몫했다. 그녀는 사투리 연기에 대해 “경남 진주 출신의 보조 작가들이 대본을 잘 바꿔주었고, 그걸 연기로 옮겨오는 과정에는 연극하는 후배를 사투리 선생님으로 두고 매주 연습했다. 그 친구 공이 크다”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미스터 션샤인

연출 이응복

출연 이병헌, 김태리, 유연석, 변요한, 조우진, 김병철, 배정남, 최진호, 최무성, 박아인, 김용지, 윤경호, 오아연, 지승현, 김시은, 윤병희, 이승준, 김민정

방송 2018,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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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사투리

<택시운전사>(2017) 황태술 처
“막내 도련님하고 영~판 닮았구마이”

2016년 영화 <곡성>에서 이정은은 덕기(전배수)의 아내 역할을 맡아 벼락 맞은 덕기를 보고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를 내뱉는다. 하지만 아주 찰나 같은 순간이었고, 이듬해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제대로 광주 사투리 연기를 해낸다. 1980년 5월의 광주를 그린 이 작품에서 그녀는 택시운전사 황태술의 아내로 분해, 서울에서 온 택시 기사 만섭(송강호)과 독일 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 대학생 재식(류준열)에게 푸짐한 상차림을 대접한다. 그녀는 사투리를 익히기 위해 광주에 갔을 때 운동이 일어났던 당시의 상황을 전해 들었고, 단순히 흉내 내는 것으로 그 감정을 담아낼 수 없다고 생각해 광주 사람들의 대화를 녹음기가 아닌 마음에 새기고 왔다고. 덕분에 길지 않은 시간 출연했지만, 어떤 영화에서보다 진심 어린 그녀의 얼굴을 포착할 수 있었다. 

택시운전사

감독 장훈

출연 송강호, 토마스 크레취만, 유해진, 류준열

개봉 2017.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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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2021) 가거댁
“아이고, 아녀라. 잘생겼어라.”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설경구)과 청년 어부 창대(변요한)가 서로의 스승이자 벗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자산어보>에서 이정은은 가거댁을 연기했다. 조선의 서쪽 끝에 있는 섬 가거도에서 와, 가거댁으로 불리는 인물. 그녀는 정약전을 살뜰히 생기며 은근한 로맨스 기류를 형성하기도 하는데, 정약전이 가거댁에게 자신이 사학죄인이라 불편하냐 묻는 장면에서 “잘생겼어라”고 대답해 관객들의 웃음을 터뜨리며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또 다만 웃음만 주는 역할로 소비되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당대의 성차별적 관념에 따끔한 일침을 가하며 주체적인 여성의 면모를 보이기도. 캐릭터의 이 모든 면면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 데는 단연 이정은의 연기 내공과 완벽한 사투리가 큰 역할을 했다.

자산어보

감독 이준익

출연 설경구, 변요한

개봉 202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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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사투리

<미성년>(2019) 방파제 아줌마
“어뜨케 여기 왔대, 여 동네도 쪼깐한데”

사실 <미성년> 속 이정은이 연기한 방파제 아줌마는 사투리가 돋보이는 역할은 아니다. 극중 이정은은 대원(김윤석)이 가족의 눈을 피해 도망친 태안 방파제에서 만난 무명의 아줌마를 연기한다. 그녀는 어디선가 불현듯 나타나 대원 옆에 앉아 주차비를 달라며 억지를 부리고, 기어이 만 원을 받아내 영웅이 된 양 무리들에게 돈을 흔들며 소리치고 돌아간다. 카메라 포커스 바깥 저 먼 발치서 걸어오는 것부터가 시선 강탈인데, 단 2분 남짓한 이 장면을 그녀는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관객들의 시선을 붙들어 놓는다. 여담으로 그녀는 어떤 영화의 어떤 역할보다 이 캐릭터를 위해 많은 고심을 했고, 방파제를 수시로 찾아가며 연구했다고.

미성년

감독 김윤석

출연 염정아, 김소진, 김혜준, 박세진, 김윤석

개봉 2019.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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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사투리

<말모이>(2019) 제주도 교사
“아이고, 잘 있었수과? 내가 학교 관둬 해실 일이 뭐 있수과게.”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제주 토박이 은희로 분하기 이전 이정은의 제주 사투리를 먼저 들을 수 있는 작품은 <말모이>였다. 1940년대 일제의 감시를 피해 전국의 말을 모아 사전을 편찬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 <말모이>에서 그녀는 제주도 교사로 출연해 서너 마디 정도를 제주도 사투리로 내뱉는다. 아주 짧은 분량이지만 낯선 제주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며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말모이

감독 엄유나

출연 유해진, 윤계상

개봉 2019.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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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블루스>(2022) 정은희
“에헤이! 그거 주물딱거리지 맙서. 몬딱 살 거 아니면예.”

<우리들의 블루스>는 이정은의 제주말 포텐이 제대로 터진 작품이다. 극중 그녀는 제주 푸릉에서 나고 자라 자수성가한 은희를 연기하며, 대사의 거의 대부분을 제주 방언으로 연기한다. 그녀는 역할을 위해 대본을 일찍 받고 제주도에 내려가 현지 주민들에게 사투리를 배웠다고 밝혔다. 덕분에 사투리를 그저 흉내 내는 것이 아닌 완벽하게 구사하는 제주 토박이 정은희가 탄생했고, 등장하는 장면마다 시청자들의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우리들의 블루스

연출 김규태, 김양희, 이정묵

출연 이병헌, 신민아, 차승원, 이정은, 한지민, 김우빈, 김혜자, 고두심, 엄정화, 박지환, 최영준, 배현성, 노윤서, 기소유

방송 2022,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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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무비 에디터 박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