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호황기를 누리고 있던 OTT 플랫폼 시장에 제동이 걸렸다. 코로나 거리 두기가 완화되며 극장가엔 그동안 개봉을 연기했던 작품들이 하나둘씩 스크린에 걸리고,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관객들이 다시 영화관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동석, 손석구 주연의 <범죄도시 2>는 개봉 25일 만에 팬데믹 이후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영화관 부활에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극장가가 다시 활력을 띄고 있는 반면, OTT 시장의 상황은 정체기를 맞았다. 전세가 뒤바뀌어가고 있는 와중, OTT들은 각자 어떤 생존전략을 취하고 있을까.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는 법

본격적으로 OTT 시대의 서막을 연 넷플릭스는 OTT 계의 왕으로 군림하며 오랜 시간 독주체제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는 법. 디즈니, HBO, 아마존 등 다양한 영화사, 제작사들이 OTT 시장으로 뛰어들며 넷플릭스의 성장세는 주춤하기 시작했다. 위기는 2022년 가시화됐다. 넷플릭스는 올 1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회사 창립 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가입자 수가 줄었다고 발표했다. 작년 분기 대비 20만 명이 줄어들었다고. 여기에 코로나가 감소세에 접어들자 OTT를 해지하는 구독자들이 많아지면서 넷플릭스는 2분기엔 약 200만 명에 달하는 많은 구독자들이 해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발표 이후, 주당 700달러에 웃돌았던 넷플릭스 주가는 현재 179달러로 하락, 71%를 기록하며 기업과 투자자들 모두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오징어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경쟁자들의 등장 외에 또 다른 요인도 있다. 넷플릭스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유로 언급하기도 했다. 전쟁 발발 후 러시아 시장에서 서비스를 중단하며 이용자가 70만 명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넷플릭스는 지난 5, 성명을 통해 본사 직원 150명을 해고한 사실을 발표했다. 전체 직원의 2%에 달하는 숫자다. 넷플릭스는 현재 수익과 성장이 둔화된 상태라며 비용 측면에서 인력을 조정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올 6, 한 달 만에 추가로 전체 직원의 4%에 달하는 300명을 정리해고했다. 추가 감축의 원인 역시 같은 이유에서였다.

콘텐츠 제작 비용에 대한 투자도 줄어들었다. 지난 1년간 매 분기 꾸준히 성장세를 보였던 제작 비용 투자가 올 1월부터 급감하기 시작했다.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부어야 하는 블록버스터 제작을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리스크를 최소한으로 줄이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한편, 아시아 콘텐츠에 대한 투자는 지속적으로 늘려갈 전망이다. <오징어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 등 한국 콘텐츠들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둠에 따라 토니 자메츠카우스키 넷플릭스 아시아태평양 사업개발 부사장은 아시아 지역 영화와 드라마 시리즈 등을 포함한 아시아 투자는 계속 늘려나갈 것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630일에는 넷플릭스의 CEO(최고경영자) 리드 헤이스팅스가 직원 격려 및 비즈니스 차원에서 3년 만에 깜짝 방한했다.

<오징어 게임> 의상을 입고 실적 발표를 하는 리드 헤이스팅스

물론 한계에 부딪힌 넷플릭스도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자구책을 모색하고는 있다. 지난 1분기 실적 발표 직후 리드 헤이스팅스 CEO가 언급한 대로 넷플릭스에 저렴한 광고 요금제가 도입될 것으로 추측된다. 콘텐츠 품질 차별화를 이유로 광고를 시행하지 않았던 넷플릭스의 파격적인 선택이다. 광고가 포함된 저가 요금제는 이르면 올 4분기부터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가입자 간 비밀번호 공유를 통한 계정 공유 문제에도 단호한 입장을 취할 예정이다. 넷플릭스는 계정을 공유하는 회원에게 더 높은 가격을 청구하는 테스트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계정을 공유하려면 기본 이용료에 추가 금액을 내야 하는 것이다. 지난 3월부터 칠레, 코스타리카, 페루에서 시행된 이 제도는 정규 적용 및 타 국가 도입 여부는 현재 정해진바 없지만 1년 안으로 미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두 가지 자구책에 대해 구독자 및 여론들의 반응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넷플릭스의 실질적 대안들이 앞으로 콘텐츠 업계에 어떤 반향을 불러올지, 좀 더 지켜보도록 하자.


글로벌 콘텐츠 공룡, 디즈니+와 애플tv의 부진
 

기대 속에 론칭했으나 가파른 성장세를 겪어보기도 전에 주춤하고 있는  디즈니+와 애플tv. 특히 두 OTT의 경우, 국내에서 그 부진이 더욱 두드러지며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먼저 디즈니+의 경우 디즈니, 픽사, 마블, 스타워즈 등 세계적으로 거대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전통 시리즈물들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에 론칭하기 전, 마블과 연계된 <완다비전>, <로키> 등 다수의 작품으로 기대감을 끌어올렸으나 론칭 후 반응은 미적지근하기만 하다. 아니, 오히려 부정적에 가깝다. <스타워즈> 스핀 오프 시리즈 및 마블 작품들이 해외에서 선공개되고 국내에는 늦게 공개된다는 점과 자막 등 앱의 편의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며 소비자들의 불만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디즈니+ 한국 오리지널 작품들. (왼쪽부터) <그리드>, <너와 나의 경찰수업>, <사운드트랙 #1>

더욱 심각한 것은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들의 화제성 실종이다. <비밀의 숲> 작가가 집필한 SF 대작 <그리드>, 한소희 X 박형식이 주연을 맡은 <사운드트랙 #1> 등 여러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들을 공개했지만 동시기 방영된 넷플릭스 <소년심판>, <파친코>에 묻혀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둬야 했다. 구독자 추이도 글로벌과 다르다. 디즈니가 밝힌 실적 발표에 따르면 2분기 디즈니+의 신규 가입자는 약 800만 명 증가했다. 그러나 한국은 론칭 당시 200만 명에 달했던 구독자들이 현재는 160만을 웃돌고 있다. 40만 명이 불편을 호소하거나 제각기의 이유로 구독을 해지했다는 것이다.

물론 디즈니+도 나름의 돌파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최근엔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는 체험형 팝업 하우스를 번화가에 열어 대중들에게 디즈니+의 콘텐츠를 직접적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체험을 구독으로 유인하겠다는 마케팅 전략이다. 또 하나, 디즈니+에겐 극장이 있다. 극장에서 개봉을 준비 중인 MCU 작품들은 디즈니+에서 공개되는 솔로 시리즈들과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OTT에서의 관람을 유도한다. 개봉 후 디즈니+를 통해 단독으로 공개되기도 한다. 올해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는 <토르: 러브 앤 썬더> <아바타: 물의 길>이 있다. 국내 오리지널 라인업도 기존보다 더욱 화려한 콘텐츠들이 준비 중이다. 강윤성 감독이 연출을 맡고 최민식, 손석구 등이 출연하는 <카지노>, 강풀 작가의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500억 대작 <무빙>이 있다.

애플tv+ 와 <파친코>

한국에서의 사정은  애플tv+도 마찬가지다. 김지운 감독이 연출을 맡은 한국 런칭작 <DR.브레인> 호평에 비해 화제성이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그래도 구세주는 있는 법. 지난 3월 공개된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가 구원 투수가 됐다. 한국계 미국인 이민진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파친코>는 배우들의 연기와 연출, 일제 강점기 민족의 아픈 역사를 인물들을 통해 고스란히 담아내었다는 점에서 호평받았다. 공개와 동시에 SNS 상에서 높은 화제성을 기록, 시즌 1 종영과 동시에 시즌 2 제작이 공식 발표됐다.

글로벌 측면에서도 애플tv+ 전망은 기대해 볼 만하다. 202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코다>가 최우수작품상을 타며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 <파친코>, <우리는 폭망했다>, <포 올 맨카인드> 등 작품성 있는 콘텐츠를 공개하며 구독자를 모으고 있다. OTT들이 새로운 방안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스포츠 중계권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애플tv+2023년부터 2032년까지 미국프로축구(MSL) 전 경기 독점 중계권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금만 총 한화로 3조에 달한다. 3월엔 MLB 야구경기 독점 중계권을 계약해 매주 금요일마다 메이저리그 경기를 독점 중계하기도 했다.


단독 진출? 손잡고 협력의 길로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중 막바지에 OTT 시장에 출범한 파라마운트. OTT와 마찬가지로 단독 진출을 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파라마운트+는 국내 OTT 티빙과 파트너십을 맺고 입점 형식으로 국내에 진출했다. CJ ENM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61, 티빙에는 파라마운트+ 스페셜 페이지가 선공개 되었으며, 16일부터 단독 브랜드관을 론칭해 콘텐츠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파라마운트의 결정에 대해 디즈니+와 애플tv+의 부진 및 현 시장의 침체기가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

파라마운트+ 대표작 <헤일로>

파라마운트+와 티빙의 연합은 각자에게 윈-윈의 결과를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콘텐츠를 납품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시리즈 및 영화 공동 제작까지 아우르는 전략적 파트너십이기 때문이다. 박이범 파라마운트 아시아 사업 및 스트리밍 대표는 향후 2년 안에 오리지널 콘텐츠 7개 정도의 타이틀을 선정할 계획”이라며 “(이준익 감독의) <욘더> 외에도 CJ ENM와 공동 제작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웨이브와 HBO맥스

그간 왓챠, 웨이브와의 콘텐츠 계약을 통해 선보였던 드라마 명가, HBO맥스의 국내 진출은 불투명한 상태다. 국내 론칭에 대해 소문이 무성했던 HBO맥스는 론칭을 전제로 지난해부터 인력들을 채용해왔으나, 전략을 수정하며 채용을 모두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국내 진출이 전면 취소됐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 역시 현 시장의 흐름과 타 OTT들의 상황이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 짐작된다. HBO맥스는 하반기부터 웨이브와의 계약을 연장해 파라마운트+와 같이 협업 형태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HBO맥스의 첫 한국 오리지널 드라마 <멘탈리스트> 또한 웨이브를 통해 선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대체 불가능한 토종 OTT의 길
 

국내에 포진한 대형 OTT들 사이 규모도, 실적도 가장 작은 편에 속하는 한국 토종 OTT 왓챠. 왓챠는 영화 전문 OTT’ 라는 정체성을 고수하며 제 개성을 잃지 않고 위기를 벗어날 방안을 모색 중이다. 왓챠는 왓챠 익스클루시브라는 코너를 통해 주력 콘텐츠들을 소개해왔다. HBO맥스가 웨이브와 손을 잡기 전, HBO 드라마부터 해외에서 주목받은 드라마 및 일본 콘텐츠들을 집중적으로 수입해왔다. 그리고 이제, 왓챠는 ‘BL’ 장르로 예상치 못한 대박을 터트리며 LGBT 코드에 주목하고 있다. 2018년 동명의 리디북스 BL 대상 수상작을 드라마화한 웹드라마 <시맨틱 에러>는 캠퍼스 내에서 티격태격하던 두 소년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을 그린 BL 드라마다. 음지에서 다뤄지던 마이너한 장르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왓챠의 선택은 국내 콘텐츠계에선 꽤나 이례적인 일이었다. 물론, 왓챠에게도 BL 드라마 제작은 도박과도 같았을 것이다. <시맨틱 에러>는 왓챠가 제작한 첫 번째 오리지널 시리즈이기 때문이다.

왓챠 오리지널 <시맨틱 에러>

왓챠를 통해 공개된 <시맨틱 에러>에 대한 반응은 상당히 뜨거웠다. SNS에서 높은 화제성을 보이며 공개 직후 8주간 왓챠 시청 순위 1위를 기록했다. 주인공을 맡은 두 배우들은 무명에 가까웠던 아이돌이었지만 이젠 주목받는 라이징 스타가 됐다. 주목할 만한 점은 왓챠의 행보다. 왓챠는 영화 전문 OTT라는 점을 살려 극장판 개봉을 추진했다. 국내 OTT 드라마로는 최초다. 심지어 오는 7일 개최되는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특별 섹션에 초청됐다. 티켓은 예매 오픈 1분 만에 전석이 매진되며 여전한 인기를 입증했다. 물론 왓챠의 행보를 성공의 길이라고 속단하기엔 이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이정표 삼아 대체 불가능한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김혜정 왓챠 CMO이럴 때일수록 왓챠만의 캐릭터를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왓챠스러움이 담긴 콘텐츠 제작에 집중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보였다. 왓챠는 올해 자체 오리지널 콘텐츠들을 계속 공개하고 제작할 전망이다. 특이한 점은 제작 기준이 AI 데이터 분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시맨틱 에러>도 마찬가지다. 가장 객관적인 지표를 바탕으로 왓챠가 제작해 선보일 콘텐츠들은 어떤 신선함을 가지고 있을 것인지, 그게 정체기를 벗어날 수 있는 돌파구가 될지. 앞으로의 왓챠스러움을 기대해 본다.


씨네플레이 객원기자 루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