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2019)로 명실공히 우리 시대 최고의 배우로 자리매김 한 호아킨 피닉스의 신작이 한국 관객을 만난다. 현재 상영 중인 <컴온 컴온>은 주연 배우로, 7월 14일 개봉 예정인 <군다>는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한 작품이다. 이 두 작품 외에, <조커> 이후 피닉스의 행보들을 정리했다.


군다
Gunda

2016년부터 간간이 육식/동물권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온 채식주의자 호아킨 피닉스는 2020년 오스카 남우주연상 수상 연설 중에 동물권을 언급해 화제를 모았고, 그로부터 2주 뒤 베를린 영화제를 통해 총괄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 장편 다큐멘터리 <군다>를 공개했다. 러시아 다큐멘터리 감독 빅토르 코사코프스키가 연출한 <군다>는 지극히 단순하다.노르웨이, 스페인, 영국의 시골 마을에서 엄마 돼지와 아기 돼지, 다리가 하나인 닭, 소 두 마리의 일상을 담았다.

흑백으로 촬영된 이미지들은 그 어떤 내레이션도 없이 그저 동물들이 살아가는 모습만 따라다닐 뿐이다. 노르웨이의 암퇘지 이름 '군다'를 제목으로 삼은 작품인 만큼 군다가 새끼들을 돌보고, 사랑하고, 중요한 결단을 내리고, 비극을 감당하는 걸 지켜보는 동안 동물의 삶에 대한 존중이 절로 고양된다. 피닉스와 <마스터>(2012) <인히어런트 바이스>(2014) 등을 만든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이미지와 소리가 최상의 앙상블을 이룬, 영화 그 이상의 묘약같은 작품"이라고 <군다>를 극찬했다.


가디언즈 오브 라이프
Guardians of Life

호아킨 피닉스가 <조커> 이후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서 선 작품은 단편영화 <가디언즈 오브 라이프>다. 환경운동 단체 '멸종 저항'(Extinction Rebellion)과 '아마존 워치'가 합작해 만든 3분 남짓한 단편은, 한 달 사이에도 수천 건이 발생하는 아마존의 화재 사고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제작됐다. 피닉스를 비롯해 <기묘한 이야기>의 마틴 브래너 역의 매튜 모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캐릭터 클레어 템플 역의 로사리오 도슨, 밴드 스트록스(Strokes)의 기타리스트 앨버트 해몬드 주니어 등이 출연한 <가디언즈 오브 라이프>는 수술실에서 7명의 의사들이 환자를 살리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그린다. 모두가 포기하고 돌아가려는 사이 한 의사만 행동을 멈추지 않고 곧 이 환자가 바로 불타는 아마존이었음을 보여주면서, 지극히 노골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컴온 컴온
C'mon C'mon

<가디언즈 오브 라이프>가 소품 격의 단편이라면, <컴온 컴온>은 <조커>로 배우 커리어의 정점을 찍은 피닉스의 본격적인 차기작이라 할 만하다. 어린이의 삶과 미래에 대해 인터뷰 하는 라디오 저널리스트 조니(호아킨 피닉스)는 어머니가 치매로 세상을 떠난 이후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고 지내던 동생 비브의 부탁을 받고 9살 난 조카 제시(우디 노먼)과 시간을 보내게 된다.

피닉스가 <컴온 컴온>에 캐스팅 됐다는 소식은 <조커>가 베니스 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돼 황금사자상까지 차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해졌다. 여러 인물의 앙상블이 돋보이는 가족영화 <비기너스>(2010) <우리의 20세기>(2016)를 발표한 마이크 밀스 감독의 신작 <컴온 컴온>은 피닉스와 제시 역의 우디 노먼, 두 배우의 호흡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거의 모든 순간 에너지로 들끓었던 <조커>와는 정반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담백한 모습의 피닉스를 만날 수 있다. 


디스어포인트먼트 블러바드
Disappointment Blvd.

<디스어포인트먼트 블러바드> 촬영 현장

<유전>(2018)과 <미드소마>(2019) 두 편으로 당대 가장 실력 있는 호러영화 감독으로 올라선 아리 애스터의 신작 <디스어포인트먼트 블러바드>에도 호아킨 피닉스가 출연한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사업가 중 한 사람에 대한 내밀한 초상"이라는 묘사 외엔 어떤 이야기인지 전혀 알려진 바가 없지만, 피닉스가 그 사업가를 연기할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아리 애스터는 예전부터 이 작품을 "4시간에 달하는 악몽 코미디"라 밝힌 바 있고, 얼마 전에는 배급사 A24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3시간 30분 분량으로 완성해 러닝타임을 고집하고 있다는 뉴스가 전해지기도 했다. <유전>의 토니 콜레트, <미드소마>의 플로렌스 퓨가 그랬던 것처럼 <디스어포인트먼트 블러바드>가 피닉스 필모그래피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기대부터 앞선다. 작년에 촬영을 마쳤지만 아직도 편집 과정 중에 있어 아직도 이렇다 할 개봉 예정일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나폴레옹
Napoleon

<나폴레옹> 촬영 현장

80대가 훌쩍 넘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지런히 필모그래피를 확장하고 있는 명장 리들리 스콧은 평생 매료됐던 실존인물 나폴레옹의 삶을 영화로 옮긴 작품을 작업 중이다. 22년 전 개봉한 작품 <글래디에이터>(2000)에서 코모두스를 연기했던 호아킨 피닉스를 나폴레옹 역에 캐스팅 했다.

<올 더 머니>(2017)에 이어 다시 한번 스콧과 작업한 시나리오 작가 데이비드 스카르파가 각본을 쓴 <나폴레옹>은 조제핀 드 보아르네에게 사랑에 빠져 권력을 확장하던 시절 나폴레옹에 초점을 맞췄다. 본래 조제핀 역에 스콧의 전작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2021)에서 열연했던 조디 코머가 예정돼 있었으나 올해 초 하차하고, 그 자리에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바네사 커비가 캐스팅 됐다. 지난 2월 촬영을 시작한 <나폴레옹>은 애플 스튜디오가 제작을 맡고 애플 TV+가 배급을 맡아, 스콧의 영화로선 처음 스트리밍 서비스로 최초 공개될 예정이다. 


폴라리스
Polaris

<너는 여기에 없었다>

호아킨 피닉스는 한국에선 <케빈에 대하여>(2011)로 잘 알려진 감독 린 램지의 <너는 여기에 없었다>(2017)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피닉스를 두고 "내가 만난 최고의 배우이고, 그가 현장에서 행하는 모든 것엔 이유가 있다"며 추켜세운 램지는 신작 <폴라리스> 역시 피닉스와 함께 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욱 반가운 건 피닉스가 피앙세인 배우 루니 마라와 호흡을 맞춘다는 점이다.

두 배우는 이미 <그녀>(2013), <막달라 마리아: 부활의 증인>(2018), <돈 워리>(2018)에 함께 출연한 바 있다. 칸 주연상을 거머쥔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한 작품에서 만난다는 것만으로 기대치가 치솟는 캐스팅. <폴라리스>는 본래 스티븐 킹의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를 원작 삼아 좀비 영화의 거목 조지 로메로가 연출을 맡으려던 프로젝트였지만, 결국 린 램지가 감독을 맡게 됐다.


조커: 폴리 아 듀스
Joker: Folie à Deux

<조커>

지난 6월 <조커> 감독 토드 필립스는 인스타그램에 '조커: 폴리 아 듀스'라는 제목의 시나리오와 이를 호아킨 피닉스가 읽고 있는 모습을 게시하면서 <조커>의 속편 제작이 본격적으로 착수되었음을 알렸다. 그리고 며칠 뒤 <스타 이즈 본>(2018)과 <하우스 오브 구찌>(2021) 등 배우로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는 레이디 가가가 할리 퀸 역에 논의 중에 있고, 뮤지컬 영화의 형식을 띌 거라는 뉴스가 전해지기도 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필립스와 스콧 실버가 시나리오를 함께 쓴 <조커: 폴리 아 듀스>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아직 알려진 바가 없지만, '두 사람의 광기'라는 프랑스어 부제가 달린 만큼 전편 못지 않은 에너지로 가득한 작품이 될 전망이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