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콘텐츠의 홍수 속, ‘퀴어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 국내의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드물게 소재로 등장했었던 퀴어 콘텐츠가 몇 년 사이 대세로 올라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올해 초, 온라인상에서 화제를 일으켰던 왓챠의 드라마 <시맨틱 에러>가 있다. <시맨틱 에러>는 대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캠퍼스 로맨스 물이다. 특이점은 두 주인공이 남자라는 것이다. 메가 히트급 성공을 거둔 저수리 작가의 동명 웹소설,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올 초 OTT 플랫폼 왓챠를 통해 공개됐다. 그리고 약 반년이 흐른 8. 흥행에 힘입은 <시맨틱 에러>가 영화로 재탄생해 스크린을 찾을 예정이다. <시맨틱 에러: 더 무비>8부작으로 공개됐던 시리즈를 극장판으로 재편집한 버전이다.

<시맨틱 에러: 더 무비>

시리즈가 성공을 거둔 만큼 주연을 맡은 두 배우 역시 라이징 스타로 주목받고 있는 상황. 이쯤에서 생각나는 충무로의 공식(?)이 있으니. 바로 퀴어 영화에 주연을 맡은 배우는 스타가 된다는 것이다. <시맨틱 에러: 더 무비> 이전, 국내 퀴어 영화에 출연한 유명 배우들과 작품을 짚어 봤다.


<로드 무비>
<로드 무비>

<로드 무비>
감독│김인식
출연│황정민, 정찬, 서린
등급│청소년 관람불가

남자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신을 버린 채 거리에서 살아가는 남자 대식(황정민). 어느 날, 술에 길에 취해 쓰러진 석원(정찬)을 본다. 유능한 펀드매니저에서 주가 폭락으로 인해 노숙자로 전락해버린 석원은 거리를 헤매다 자살 시도를 하고, 이를 발견한 대식이 석원을 보살피기 시작한다. 갑작스레 바닷가 마을로 여행을 갈 만큼 대식에게 마음을 연 석원은 대식이 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를 멀리하려 한다. 그런 그들 사이에 의문의 여자 일주(서린) 끼어들고 세 사람의 감정은 서로 엇갈린 채 흘러만 간다.

<로드 무비> 속 황정민

황정민의 영화 단독 주연작 <로드 무비>는 꽤 충격적이다. 장발의 떡진 머리를 한 황정민의 마초스러운 모습과 날 것 그대로 적나라한 그의 동성애 연기가 놀라움을 자아낸다. 영화의 첫 신이 동성 베드신인 만큼 전반적인 영화의 수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로드 무비>는 영화의 오프닝부터 대식과 석원의 관계, 떠도는 인물들로 하여금 왕가위 감독의 <해피투게더>(1997)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황정민은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후유증으로 힘들었던 작품으로 <로드 무비>를 뽑으면서 남자를 보고 사랑하라고 하니 힘들었다. 나중에는 스트레스가 심해져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기까지 했다라며 출연에 대한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로드 무비

감독 김인식

출연 황정민, 정찬, 서린

개봉 2002.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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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지 않아>
<후회하지 않아>

<후회하지 않아>
감독│이송희일
출연│
김남길, 이영훈, 김동욱
등급│청소년 관람불가


한국 퀴어 영화의 계보에서 2000년대 초기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후회하지 않아>. <언제나 일요일 같이>, <슈가>, <굿 로맨스> 등 독립 영화계에서 떠오르던 신예 감독 이송희일의 장편 데뷔작이다. 영화는 기업 부사장의 아들인 재벌 2세 재민(김남길)과 일자리를 찾아 헤매다 결국 게이 호스트바에서 일을 하게 된 수민(이영훈)의 이야기를 다룬다. 우연한 만남에서 서로를 탐하고 원하는 욕망으로 번지기까지. 영화는 두 사람의 보편적인 사랑을 보여줌과 동시에 현실적인 삶과 자신의 정체성 사이 혼란과 갈등을 겪는 동성애자들의 고민을 가감 없이 담아내었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 만하다. 포스터에서 이한이라는 이름을 찾을 수 있는데 이는 당시 김남길의 활동 예명으로, <후회하지 않아>는 김남길의 첫 주연작이자 첫 베드신을 찍은 작품이기도 하다. 11회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초청 및 제57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후회하지 않아

감독 이송희일

출연 김남길, 이영훈

개봉 2006.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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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사이?>
<친구 사이?>

<친구 사이?>
감독│김조광수
출연│
이제훈, 연우진
등급│청소년 관람불가


입대한 애인 민수(연우진)의 면회를 간 석(이제훈). 오붓한 하루를 위해 설레는 마음을 안고 향한 철원에서 우연히 면회 온 민수의 어머니를 만나게 된다. 서로를 친구 사이라 소개한 둘은 예상하지 못하게 어머니를 사이에 두고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어머니가 잠시 외출한 사이 뜨거운 시간을 보내던 민수와 석이는 갑작스레 돌아온 어머니를 마주하게 된다.

<친구 사이?> 속 이제훈

2009년 개봉한 김조광수의 퀴어 영화 <친구 사이?>1시간 남짓한 러닝타임의 단편 영화로 개봉 당시 익숙하지 않았던 퀴어 소재와 더불어 다소 파격적인 키스신, 베드신이 주목받았다. 놀랍게도 두 남자의 연애담을 발칙하게 연기해낸 배우는 바로 이제훈과 연우진이었다. 연우진은 이 작품이 데뷔작이었으며, 이제훈은 단편 영화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던 무명에 가까운 신인 배우였다. 본래 석이 역엔 이제훈이 아닌 다른 배우가 캐스팅됐으나 촬영 중 개인 사정으로 하차하면서 이제훈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고. 두 신인 배우에게 동성애 연기는 꽤나 큰 부담이었을 테지만 두 사람은 풋풋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연인으로서 호흡을 선보였다. 이제훈은 약 2년 후 <파수꾼>을 통해 라이징 스타에 등극, 황정민과 김남길에 이어 충무로 공식을 입증해낸 장본인 중 하나가 됐다. 발랄하다 못해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한 엔딩 크레디트까지 꼭 관람할 것.

친구 사이?

감독 김조광수

출연 연우진, 이제훈

개봉 200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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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화점>
<쌍화점>

<쌍화점>
감독│유하
출연│
조인성, 주진모, 송지효
등급│청소년 관람불가


파격적인 수위와 자극적인 베드신으로 흥행과 비판이 교차했던 논란의 화제작 <쌍화점>. 고려가요 쌍화점을 소재로 고려 말, 양성애자인 고려 왕과 왕의 호위무사 홍림, 그리고 왕후 세 사람의 얽혀버린 욕망에 관한 이야기를 그렸다. <왕의 남자>에 이어 동성애를 직접적으로 다룬 사극 영화로 주진모와 조인성이 각 왕과 홍림 역으로 출연했다. 조인성의 경우 <비열한 거리>에 이어 유하 감독과 두 번째 호흡이었다. 어릴 적부터 성적 유희를 즐겼던 왕과 홍림의 서사와 감정선을 쌓기 위해 주진모와 조인성은 농도 짙은 키스신을 촬영했어야 했는데, 친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어색하고 긴장된 분위기에 위스키 반 병을 나눠 마신 후에야 촬영할 수 있었다는 비하인드도 있다. 여담으로, 배우 송중기의 영화 데뷔작이기도 하다.

맨 오른쪽, <쌍화점>에 출연한 송중기
쌍화점

감독 유하

출연 조인성, 주진모, 송지효

개봉 2008.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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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감독│변성현
출연│설경구, 임시완
등급│청소년 관람불가

변성현 감독의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은 언더커버로 교도소에 들어간 신참 현수(임시완)과 마약을 유통하는 거대 조직의 2인자 재호(설경구)의 이야기를 그린 범죄 액션물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사실 <불한당>은 범죄의 탈을 쓴 퀴어 영화다. 변성현 감독은 이 영화를 계속해서 멜로 영화라고 이야기했다”라며 실제 영화의 레퍼런스를 위해 누아르보다 멜로 영화를 더 많이 봤다고백하기도 했다. <불한당>이 멜로 영화, 그것도 퀴어 영화라는 사실은 임시완을 제외한 설경구, 김희원 배우만 알고 있었다고. 실제로 제작보고회 당시 설경구 배우가 이 영화는 사랑 이야기다라고 언급하자 임시완 배우가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이 찍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설경구에게만 멜로 영화임을 밝힌 감독의 디렉팅은 성공적이었다. 재호와 현수 사이 아슬아슬한 텐션을 끌어내는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 영화를 유심히 살펴보면 재호의 대사, 눈빛들에서만 느껴지는 성적 긴장감이 도리어 묘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 덕분이었을까. 설경구는 한재호 캐릭터를 통해 젊은 층의 인기를 얻으며 지천명아이돌이란 별칭을 얻는 등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불한당>은 흥행에 실패했지만 국내 영화계에 유례없는 불한당원 팬덤을 형성하여 N 관람, 릴레이 상영회 등 식지 않는 팬덤의 열기를 보여주었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감독 변성현

출연 설경구, 임시완

개봉 2017.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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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드>
<메소드>

<메소드>
감독│방은진
출연│
박성웅, 윤승아, 오승훈
등급│15세 관람가


살려는 드릴게”. <신세계>에서 골드문 상무 이사로 출연해 황정민, 이정재와 더불어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던 배우 박성웅. 영화 <메소드> 그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 작품 중 하나다. <용의자X>, <집으로 가는 길> 방은진 감독이 연출한 <메소드> 안하무인 아이돌 스타 영우(오승훈)와 연극 무대를 위해 살아가는 메소드 배우 재하(박성웅)의 만남을 그린 퀴어 영화다. 서사 속 두 사람의 감정선과 개연성은 꽤나 급진적인 편이지만 이 간극을 박성웅과 오승훈의 연기로 채워가며 설득력을 부여했다. 보기 드문 박성웅의 멜로 연기를, 그것도 동성 멜로 연기를 볼 수 있다. 오승훈과 박성웅의 키스신으로 개봉 후 소소하게 주목받기도 했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

메소드

감독 방은진

출연 박성웅, 윤승아, 오승훈

개봉 2017.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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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아가씨>

<아가씨>
감독│박찬욱
출연│
김민희, 김태리, 하정우, 조진웅
등급│청소년 관람불가


<1987>, <승리호>, <미스터 션샤인>, <스물다섯 스물하나>까지. 찍는 작품마다 화제에 오르는 김태리의 출발선은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였다. <아가씨>는 세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를 각색한 작품으로,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됐지만 이모부에 의해 갇혀 지내야 하는 아가씨(김민희)와 아가씨를 속이기 위해 집에 들어오게 된 하녀 숙희(김태리)의 이야기를 그린 퀴어 영화다. 김태리는 강도 높은 노출 연기, 수위 타협 불가라는 오디션 조건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강단으로 1500: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주연의 자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조건에서 알 수 있듯 <아가씨>의 수위는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한다. 일부 관객들을 불편함을 호소할 만큼 동성애 코드가 짙게 묻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420만 명을 동원하며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다. 신예였음에도 놀라울만한 연기력을 보여준 김태리와 더불어 호연을 펼친 김민희까지, 두 사람은 평단의 호평 속에  제37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김민희)과 신인여우상(김태리)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을 수 있었다.

아가씨

감독 박찬욱

출연 김민희, 김태리, 하정우, 조진웅

개봉 201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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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에게>
<윤희에게>

<윤희에게>
감독│임대형
출연│김희애, 나카무라 유코, 김소혜, 성유빈
등급│12세 관람가

남편과 이혼하고 딸 새봄(김소혜)을 홀로 키워오던 윤희(김희애) 앞으로 도착한 한 통의 편지. 새봄은 엄마의 편지를 몰래 읽어보고, 윤희에게 발신인 (나카무라 유코)’이 살고 있는 일본의 오타루로 여행 갈 것을 제안한다. 새봄의 의도를 모른 채 윤희는 묻어두었던 자신의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오타루로 향한다.

<윤희에게>는 이성과의 결혼이라는 사회 제도를 겪어야 했던 중년의 성소수자를 주인공으로 한 퀴어 영화다. 사회적으로 동성애가 허락되지 않았던 부모 세대, 온전한 나로 살 수 없어 결국 사랑하는 이에게 이별을 고하고 남은 여분의 생을 벌로 생각하고 살아야 했던 이의 회환과 고백이 담긴 한 통의 편지다. <윤희에게>는 절절한 감정의 파동이나 격정적인 장면 없이 과거 충만했던 그 시절의 기억을 상기시키기는 윤희의 표정만으로 짙은 애절함을 선사한다. 이와 같은 감정을 관객에게 오롯이 전달함에 있어선 윤희 역을 맡은 김희애의 공이 가장 컸다. 김희애는 <윤희에게>에 택하게 된 이유에 대해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부터 욕심나서 놓치고 싶지 않았다라며 배우로서 끝없이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흡입력 있는 연기로 대중과 평단의 극찬을 받은 김희애는 이 작품으로 제41회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를 수 있었다.

윤희에게

감독 임대형

출연 김희애, 김소혜, 성유빈, 나카무라 유코, 키노 하나

개봉 201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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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객원기자 루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