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영화계를 넘어 할리우드로 저변을 넓힌 명배우 양자경의 멀티버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절찬리에 상영 중이다. 온갖 세계관들이 휘몰아치는 영화 속에서도 저마다 개성을 드러낸 배우들의 이력을 살펴보자.


에블린
양자경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양자경, 특히 과거 홍콩 영화를 대표하는 액션배우 양자경을 향한 존경이 물씬하다. 데뷔한 다음해인 1985년 액션영화 <예스 마담>의 성공에 힘입어 스타덤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4편의 시리즈로 이어지고 여성 경찰을 내세운 액션물이 줄지어 제작되는 신드롬까지 일으켰다. <예스 마담 4>를 마지막으로 결혼 후 연예계를 떠난 양자경은 1992년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 3>로 화려하게 복귀했고 <동방삼협>을 비롯한 일련의 무협영화에 출연해 90년대 들어 시들해진 홍콩 액션영화의 명맥을 붙들었다. 

<007 네버 다이>(1997)에 출연해 두 번째 아시안 본드걸로서 전세계의 이목을 끌고 2000년대 이후 <와호장룡>(2000), <게이샤의 추억>(2005), <미이라 3: 황제의 무덤>(2008) 등을 할리우드 배우 '미셸 여'로 활약해오고 있다. 마블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2021)와 <아바타> 시리즈 속편 출연한 그는 60세가 된 올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앤 원스>로 배우로 또 한번의 전성기를 맞이 했다.

<007 네버 다이>

조이
스테파니 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멀티버스'라는 콘셉트만큼이나 중요한 게 있다. 바로 모녀 관계다. 남편과 함께 세탁소를 운영하는 이블린은 여자친구를 만나는 딸 조이를 못마땅해 하는데, 이 두 모녀의 관계가 영화의 서사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현실의 조이는 무채색의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있지만, 갖가지 세계관 속에서 등장하는 조이는 어쩌면 이블린보다 훨씬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조이를 연기한 스테파니 수는 뮤지컬 무대에서 먼저 이름을 알렸다. <비 모어 칠> <스폰지밥 뮤지컬> 등 브로드웨이에서 맹활약한 데 이어, '훌루' 드라마 <더 패스>와 '아마존 프라임' 드라마 <더 마블러스 미세스 메이즐>에 합류해 널리 얼굴을 알렸다. 한국 관객들이 기억할 만한 캐릭터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속 샹치(시무 리우)와 캐티(아콰피나)와 펍에서 대화를 나누는 친구 수. 스테파니 수는 '디즈니 플러스' 드라마 <아메리칸 본 차이니스>에서 양자경과 함께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웨이먼드
키 호이 콴

베트남에서 태어나 홍콩을 거쳐 미국으로 이주한 키 호이 콴은 12살 되던 해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인디아나 존스: 마궁의 사원>(1984)에서 인디아나 존스(해리슨 포드)를 돕는 중국계 소년 쇼티 라운드를 연기한 데 이어, 스필버그가 제작한 <구니스>(1985)에 제임스 본드의 광팬인 데이터 역을 맡았다. 첫 두 작품이 워낙 쟁쟁해 할리우드의 아시안 아역배우의 탄탄대로를 걷는 듯했지만 이후 커리어는 잘 풀리지 않았고, 할리우드 배우로서 한계를 느낀 콴은 연기를 그만두고 영화를 공부해 이연걸 주연의 <더 원>(2001)의 스턴트 코디네이터, 왕가위 감독의 <2046>(2004)의 조감독 등으로 활약했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2018)의 성공을 보면서 배우 복귀를 고려하던 콴은 이블린을 멀티버스의 세계로 초대하는 남편 웨이먼드 역 배우에 고충을 겪고 있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두 감독의 러브콜을 받고 다시 카메라 앞에 섰고, 앞서 언급한 <아메리칸 본 차이니스>와 마블 드라마 <로키> 시즌2에 합류하게 됐다.

<인디아나 존스: 마궁의 사원>

시아버지
제임스 홈

이블린 시아버지를 연기한 제임스 홍 역시 아시아계 미국인 배우로서 상당한 커리어를 자랑한다. 그가 참여한 작품만 TV와 영화 통틀어 600개를 훌쩍 넘는다. 1950년대부터 아시아 영화의 영어 더빙을 참여하면서 연예계 활동을 시작한 홍은 <하와이 파이브 오>, <맨 오브 엉클>, <아이 스파이>, <쿵푸> 등 드라마와 로만 폴란스키의 걸작 <차이나타운>(1974), 불세출의 SF <블레이드 러너>(1982) 등 영화에 출연하며 수십 년간 미국 연예계를 종횡무진 해왔다.

아시아의 색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1998)로 처음 애니메이션 목소리 연기를 시작한 홍은 장예모의 <영웅>(2002) 더빙, <쿵푸 팬더> 시리즈의 미스터 핑, 중국 블록버스터 <신서유기: 몽키킹의 부활>(2015) 더빙 등으로 여전히 멈추지 않는 왕성한 활동력 자랑하고 있다. 

<블레이드 러너>

세무관
제이미 리 커티스

이블린의 집안 사정을 탈탈 터는 세무관은 물론 멀티버스 안에서 온갖 기괴한 모습을 보여준 배우는 바로 제이미 리 커티스다.  전설적인 배우 토니 커티스와 자넷 리의 딸로, 영화 데뷔작인 존 카펜터 감독의 <할로윈>(1978)을 시작으로 '할로윈' 시리즈, <안개>, <프롬 나이트> 등 일련의 공포영화들을 거쳐 7~80년대 호러퀸으로 거듭난 바로 그 배우다.

<대역전>(1983)과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1988)로 영국 아카데미 조연/주연상 후보에 오른 후, 제임스 카메론의 <트루 라이즈>(1994)의 헬렌 역으로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배우는 물론 어린이책 저자, 발명가, 블로거 등 다방면으로 활약하고 있다. 2018년 다시 가동된 '할로윈' 시리즈로 돌아와 얼마 전 3부작의 피날레 <할로윈 엔드>(2022)를 선보이기도 했다. 차기작도 굵직굵직하다. <헌티드 맨션>은 디즈니랜드의 놀이기구를 바탕으로 한 호러/코미디, <보더랜즈>는 동명의 게임을 영화화 한 SF 액션물이다.

<할로윈>

셰프
해리 슘 주니어

셰프는 현실이 아닌 멀티버스에서만 등장하는 캐릭터다. 철판요리집에서 일하는 이블린의 동료이자, 이상하리만큼 능숙한 실력으로 최고의 인기를 자랑한다. 그 비결이 픽사의 모 애니메이션 설정에서 빌려 왔다는 걸 아는 순간은 영화의 폭소 포인트다. 중국계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나 코스타리카에서 자란 해리 슘 주니어는 안무가로 활동하다가 <스텝 업 2>(2008)를 통해 연기를 시작해 인기 드라마 <글리>의 댄서 마이클 창 역으로 활약하며 두루 존재감을 드러냈다. <글리>의 배우답게 춤뿐만 아니라 훌륭한 노래 솜씨까지 뽐냈다. <글리> 종영 이후엔 액션, 호러, 로맨틱코미디 등 TV와 스크린을 오가며 부지런히 활동하고 있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