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영화로만 볼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요즘은 그렇기도 힘들다. 다 찍고 났더니 배우가 사고를 친다던가, 촬영 현장에 문제가 있었다던가 하는 사례가 적잖다. SNS나 인터뷰에서 괜한 사견을 밝혀 팬들 사이에 논란을 낳기도 한다. 배우, 감독, 아니면 각본가 등 영화 관계자가 개인적 의견을 밝혔다가 괜히 반발을 산 사례들을 모았다.
라이언 존슨
"브누아 블랑은 게이"
이제는 공개 전부터 영화의 설정을 밝히며 구설수에 오른 감독이 있다. 라이언 존슨은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로 전 세계 스타워즈 팬들에게 욕을 먹다가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 <나이브스 아웃>으로 대역전을 해냈다. 명탐정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린 <나이브스 아웃>은 호평과 흥행, 모두 성공했고, 넷플릭스의 러브콜을 받아 현재 2편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공개를 앞두고 있다. 넷플릭스가 2~3편 동시 계약을 하고 라이언 존슨과 다니엘 크레이그가 복귀하면서 기대를 많이 받고 있는데, 어김없이 라이언 존슨이 먼저 선제공격(?)을 걸었다.
라이언 존슨은 블랑이 남자와 살고 있는 것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브누아 블랑은 게이가 맞다"고 대답했는데, 이게 팬들 사이에서 여러 반응을 낳은 것. 영화와 관련 없는 걸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냐 같은 부정적인 반응부터 <나이브스 아웃> 봤을 때부터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 더불어 라이언 존슨이니까 이럴 줄 알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괜한 인터뷰가 아닌가 싶다가도 그동안 라이언 존슨의 연출을 생각하면 이게 힌트인가 싶기도. 참고로 라이언 존슨은 "애플은 영화 속 악역들이 아이폰 쓰는 걸 금지한다"는 조항을 언급하면서 "이제 범죄 영화 구상하는 영화감독들이 날 죽이려 들 것이다"라고 수위 높은 농담을 남기기도 했다.

-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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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라이언 존슨
출연 다니엘 크레이그, 에드워드 노튼, 자넬 모네, 캐서린 한, 레슬리 오덤 주니어, 제시카 헨윅, 케이트 허드슨, 데이브 바티스타, 매들린 클라인
개봉 미개봉
패티 젠킨슨
"다 돌아간 거 맞음^^"
2020년 12월 개봉한 <원더 우먼 1984>는 DC 확장 유니버스의 희망 같은 존재였다. 연초 개봉한 <버즈 오브 프레이(할리 퀸의 황홀한 해방)>가 극장 흥행에서 실패했으나(그나마 스트리밍으로 수익을 냈다) <원더 우먼>의 속편 <원더 우먼 1984>가 코로나19를 이겨내고 상영 수익을 챙겨주지 않을까 한 것. 하지만 영화는 관객들에게 실망을 안겨줬는데, 여러 단점 중에서도 스티브 트레버(크리스 파인)가 다시 돌아온다는 설정이 특히 괴상하게 느껴졌기 때문. 극중 스티브 트레버는 다이애나 프린스/원더 우먼(갤 가돗)의 소원대로 돌아오긴 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빙의'한 형태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잠자리를 갖은 듯한 연출이 있었기에 일부 관객들은 이 괴상한 재회에 불만을 표했다.
이런 반응에 한 팟캐스트 진행자가 "소원이 취소되면서 모든 것이 돌아간다는 암시가 있다"며 "이 문제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면 80년대 보디 스와프 장르(몸이 바뀌는 스토리의 영화) <빅> 또한 다르게 봐야 한다"고(몸만 큰 12살 남자아이와 성인 여성이 동침하는 부분을 지적했다) <원더 우먼 1984>를 옹호했다. 여기에 패티 젠킨슨 본인이 "하하하, 정확해요"라고 답변을 남겼는데, 이 부분이 또 관객마다 다른 반응을 유발했다. 대다수의 팬은 "그게 영화 안에서 납득되지 않는 게 문제 아니냐"는 지적을 했다.

- 원더 우먼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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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패티 젠킨스
출연 갤 가돗, 크리스틴 위그, 페드로 파스칼, 크리스 파인
개봉 2020.12.23.
쿠엔틴 타란티노
"이소룡, 할리우드 스턴트맨들 무시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데뷔 이래 늘 '악동'이었다. 그의 영화는 재기발랄한 방법으로 기존 문법을 파괴하며 현대적인 영화의 '매운맛'을 정립하는 데 기여했다. 가상의 인물을 중심으로 실제 사건 '찰스 맨슨 패밀리 사건'을 재구성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또한 타란티노 특유의 톡 쏘는 맛을 확장시킨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이 영화에는 큰 오점이 하나 남았는데, 극중 이소룡(마이크 모)이 스턴트맨 클리프 부스(브래드 피트)를 깔보며 대결하는 장면이 문제였다. 여기서 이소룡은 스턴트맨을 비하하고 직접 싸워보자고 으름장을 내는 등 오만한 인물로 나온다.
이소룡의 딸 섀넌 리는 "아버지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관객들이 웃는 소리를 들으며 괴로웠다. (영화에서) 아버지는 오만한 샌드백으로 전락했다"고 불만을 표했다. 사실 여기서 타란티노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은 픽션이다'라고 대응했으면 달랐겠지만, 그는 이소룡이 촬영 당시 스턴트맨들을 진짜로 때렸고 '겁쟁이들'이라고 불렀다고 반박했다. 이런 묘사는 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는데, 대체로 "백인투성이 할리우드에서 이소룡이 그랬을 수 있겠냐"는 의견이 우세였다. <킬 빌> 시리즈에서 이소룡의 복장을 오마주한 타란티노였기에 그의 이소룡 묘사는 특히 많은 관객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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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브래드 피트, 마고 로비
개봉 2019.09.25.
<이터널스> 각본팀
"히로시마 원폭 장면, 집단 학살 다룬 것"
아시아권, 특히 한국에서 가장 논란이 된 제작진의 인터뷰는 <이터널스>일 것이다. <이터널스>는 고대부터 인류를 수호한 집단 '이터널스'가 주인공으로, 극중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이후 과학자 파스토스(브라이언 타이리 헨리)가 "인간들에게 기술을 전수하지 말았어야 했다"며 절망하는 장면이 담겼다. 영화가 개봉하자 전범국 일본에 원폭을 가한 상황을 비극으로 묘사했다는 것에 반발이 있었다. 초기에는 원폭으로 희생된 사람들이 있으니 비극이 맞지 않냐는 반응도 있었다.
그러나 <이터널스> 각본을 맡은 4인 중 라이언, 카즈 피르포의 인터뷰가 공개되자, 그런 일부의 의견조차 완전히 사라졌다. 카즈 피르포의 "(이번 영화는) 집단 학살을 그린 최초의 디즈니 영화"라는 발언은 일본이 세계2차대전을 일으킨 주범 중 하나였다는 것을 쏙 뺀 채 '집단 학살'이란 말로 피해자 행세를 하는 것으로 보였다. 거기에 그가 "일본계 미국인"이라고 밝히면서 이 장면이 일본 중심적 시각이 깃든 것에 쐐기를 박았다. 결국 인류 상잔의 비극으로 읽힐 수도 있었던 히로시마 원폭 장면은 이 인터뷰 하나로 일본계 미국인의 피해자 행세로 확정됐고, <이터널스>는 한국에서 특히 비호감 영화로 낙인찍혔다.

- 이터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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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클로이 자오
출연 안젤리나 졸리, 마동석, 리차드 매든, 쿠마일 난지아니, 셀마 헤이엑, 젬마 찬, 로런 리들로프,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배리 케오간, 리아 맥휴
개봉 2021.11.03.
※ 아래 내용은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대한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한다.
루소 형제, 각본가들 등등…
<어벤져스: 엔드게임>
좋은 작품을 만나면 이 영화를 더 알고 싶은 마음에 인터뷰를 읽고 설정을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파면 팔수록 김이 빠지는 부분이 의외로 많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인피니티 사가'의 종장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그동안의 여정을 종합하는 영화다보니 제작진마다 영화에 대한 생각이 다르기 때문. 대표적인 부분이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가 묠니르를 들고 번개를 사용하는 장면이다. 그동안의 영화에서 토르의 묠니르는 고귀한 자만 들 수 있는 것이며, 묠니르를 든다면 토르의 힘을 쓸 수 있다고 묘사됐다.
그래서 이 장면은 캡틴 아메리카의 고결함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인데, 각본가들은 "사실은 설정 오류인데 그냥 썼다"고 언급했다.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토르 자신이 '천둥의 신'이라서 번개를 쓸 수 있는 거지, 묠니르의 능력이 아님을 보여줬기 때문. 그래서 캡틴이 묠니르를 들었다고 번개를 쓰는 건 모순이란 것이다. 그 말이 맞긴 한데, 팬들이 들기엔 다소 김빠지는 'TMI'인 것. 일부 팬들은 <토르: 천둥의 신>에서 오딘이 '자격 있는 자가 묠니르를 든다면 토르의 권능을 공유할 것이다'라고 말했으니 설정 오류가 아니라며 각본가들의 말을 부정했을 정도였다.
또 결말에서 캡틴이 노인이 돼 등장한 것도 각본가와 감독의 생각이 달랐다. 루소 형제는 "시간 여행은 대체 현실을 만들기에 캡틴은 다른 타임라인(멀티버스)에서 여생을 보내고 메인 유니버스로 돌아온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각본가들은 "에인션트 원이 인피니티 스톤을 가져다놓으면 타임라인이 갈라지지 않는다고 했으니, 캡틴이 과거 현실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타임라인이 갈라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의견을 밝혔다. 양측 다 일리있는 말이지만, 제작진조차도 마블 유니버스의 멀티버스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건가 의심이 들 만한 의견차. 본편의 여운에 빠져, 혹은 정답을 찾기 위해 인터뷰를 읽던 관객이라면 다소 멋쩍게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이외에도 타노스와 맞설 수 있는 히어로 또한 각본가와 감독, 심지어 케빈 파이기마저 의견이 갈리기도 했다.

- 어벤져스: 엔드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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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앤서니 루소, 조 루소
출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크리스 에반스, 크리스 헴스워스, 마크 러팔로, 스칼릿 조핸슨, 제레미 레너, 돈 치들, 폴 러드, 브리 라슨, 카렌 길런, 브래들리 쿠퍼, 조슈 브롤린
개봉 2019.04.24.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