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두툼해지는 겨울이 오면 생각나는 정주행 시리즈들이 있다. 전 세계를 사로잡은 마법 판타지의 시작, 해리 포터 시리즈도 그중 하나다. 2001년 12월 14일 개봉한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부터 지난 21년 간 우리의 겨울과 크리스마스를 책임져 준 해리 포터. 오랜 시간이 지난 만큼 이제는 더 이상 스크린에서 만날 수 없는 배우들도 있다. 애도하는 마음을 담아 해리 포터 시리즈의 주요 캐릭터를 연기한, 별이 된 스타들을 모았다. 


리처드 해리스 │알버스 덤블도어 역
Richard Harris1930~2002

호흡이 긴 시리즈물에선 다수의 이유로 맡은 배역의 배우가 바뀌기도 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덤블도어도 그중 하나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호그와트의 인자한 교장 선생님 덤블도어 역을 맡은 리처드 해리스는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 촬영을 마치고 몇 달 뒤 런던의 한 병원에서 호지킨병(악성육아종증)으로 사망했다. 덤블도어 역을 수락하지 않으면 대화도 하지 않겠다는 손녀딸의 발언에 출연을 결심한 그는 투병 중에도 속편 <비밀의 방>에 출연할 정도로 연기 열정을 보였다고.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배우 이안 맥켈런과 크리스토퍼 리가 후보에 올랐으나, 결국 마이클 갬본에게 배역이 돌아갔다. 그가 맡은 덤블도어는 리처드 해리스의 덤블도어와 달리 활력 있고 감정적이면서도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 팬들에게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기도 하다. 

리처드 해리스는 1963년 <욕망의 끝>(This Sporting Life)에서 프로 럭비 선수가 된 요크셔의 광부 프랭크 역을 맡아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 그해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카인의 반항>(1990) 황소 역으로 다시 한번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됐으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 자>에 비열한 총잡이 잉글리시 봅으로 출연해 국내 팬들에게 인지도를 다졌다. 리들리 스콧의 <글래디에이터>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역으로 익숙한 배우이기도 하다. 


리차드 그리피스 │버논 더즐리 역
Richard Griffiths1947~2013

심술궂은 얼굴과 뚱뚱한 몸집으로 해리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를 드러내며 아동학대를 일삼았던 해리 포터의 이모부 버논 더즐리. 그야말로 못된 어른의 정석이었던 버논을 연기한 리차드 그리피스는 심장 수술 후 합병증으로 인해 2013년 65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부>로 시리즈가 완결난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리차드 그리피스는 주로 연극 무대에서 활동한 배우로, <더 히스토리 보이즈>를 통해 토니상과 로런스 올리비에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다니엘 래드클리프와는 해리 포터 외에도 연극 '에쿠우스'를 통해 호흡을 맞췄다. 다니엘 래드 클리프는 "리차드는 내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두 순간에 내 옆에 있어줬다. (<해리 포터> 첫 촬영 당시) 긴장하고 있었는데 리차드가 나를 편하게 해줬었다" 라며 "7년 후 에쿠우스를 통해 연극을 처음 하게 되어 겁이 났는데 그의 격려와 지도, 유머러스함이 나를 기쁘게 만들어줬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그가 들어가는 방이 두 배는 더 재밌었다. 그를 안다고 말할 수 있어 자랑스럽다"라고 말했다.   


로저 로이드 팩  │바티 크라우치 역
Roger Lloyd Pack1944~2014

사법부 장관으로, 볼드모트와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강경한 태도로 응했던 바티 크라우치. <해리 포터와 불의 잔>에 등장했던 그는 폴리 주스를 마시고 무디 교수로 해리 포터에게 접근했던 자신의 아들 바티미어스 크라우치 2세가 죽음을 먹는 자들로 체포되자 충격을 받는다. 원작에서는 아들에게 비참하게 살해당하며 비극적인 결말을 맺기도. 바티 크라우치 역을 연기한 로저 로이드 팩은 <온니 풀스 앤 홀스>(Only Fools and Horses), <디블리의 신부>(The Vicar of Dibley) 등 영국 BBC 시트콤에서 주요 역할을 맡아 활약했다. 그는 췌장암 투병 끝에 자신의 집에서 2014년 1월 6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앨런 릭먼 │스네이프 교수 역
Alan Rickman1946~2016

누군가는 말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진정한 주인공은 스네이프였다고. 웃는 얼굴을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누구보다 엄한 호그와트의 교수 스네이프는 릴리를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시리즈 내 가장 반전 어린 입체적 인물로 남았다. 팬들에게도 아픈 손가락과 같은 스네이프는 유명 영국 배우 앨런 릭먼이 연기했다. 그는 무대와 스크린을 오가며 연극, 영화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다 췌장암 투병 끝에 2016년 향년 69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났다. 앨런 릭먼은 2005년부터 전립선암 투병을 해왔으며, 전립선 절제술을 받고 회복했으나 2015년 경미한 뇌졸중과 함께 췌장암 말기 선고를 받았다. 

앨런 릭먼의 사망 소식에 다니엘 래드클리프는 SNS에 장문의 글을 게재해 그를 향한 애도의 물결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다니엘은 "앨런 릭먼은 의심할 여지 없이 내가 함께 작업한 위대한 배우들 중 한 명이다. 그는 촬영장에서나 <해리 포터> 이후 몇 년 동안 나를 꾸준히 격려해 주었다"라며 "배우로서 그는 나를 어린애라기보다는 또래로 취급한 최초의 어른들 중 한 명이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경험이었고, 그가 내게 가르쳐준 교훈을 평생 동안 간직할 것"이라며 고인에게 감사를 전했다. 네빌 역의 매튜 루이스 역시 "그는 그가 아는 것보다 나의 경력에 더 많은 영감을 주었고, 나는 그를 그리워할 것"이라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존 허트 │ 올리밴더 역
John Hurt1940~2017

영국의 국민 배우 존 허트는 1978년 영화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에서 맥스 역으로 첫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며 주목 받았다. 이후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이리언>(1979)에서 외계 생명체의 숙주가 되어 사망하게 되는 케인 역으로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었으며, 데이빗 린치 감독의 <엘리펀트 맨>(1980)을 통해 희귀병인 다발성 신경섬유 종증을 앓고 있는 주인공 존 메릭을 연기,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본격적인 주연 자리에 올라서게 됐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는 다이애건 앨리에 위치한 지팡이 가게 주인 올리밴더 역으로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1, 2부> 총 3편에 출연했다. 국내 작품으로는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설국열차> 속 꼬리칸의 현명한 노인이자 과거의 비밀을 안고 있는 길리엄 역을 맡은 바 있다. 

존 허트는 2015년 6월 초기 췌장암 진단을 받고 연극 <더 엔터테이너> 공연을 중단하는 등 치료에 전념하여 완치됐다는 소식을 들려줬으나, 2017년 재발로 인해 투병 끝에 향년 7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J.K. 롤링 작가는 "정말 재능 있고 관객들에게 깊이 사랑받았던 존 허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매우 슬프다" 라는 말로 추도문을 올렸으며, 미국 올랜도에 위치한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는 해리 포터 의상을 입고 지팡이를 든 팬들의 추모 퍼포먼스가 이어지기도 했다. 

미국 올랜도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열렸던 추모 행사

헬렌 맥크로리 │나시사 말포이 역
Helen McCrory1968~2021

해리 포터의 숙적이 볼드모트라지만, 말포이를 빼놓고 해리 포터의 빌런을 논할 수 없다. 슬리데린 소속으로 머글 태생을 천하게 여기며 해리 포터와 삼총사를 무시하고 괴롭혔던 말포이. 그를 낳고 키운 나르시사 말포이는 <해리 포터와 불의 잔>부터 마지막 편까지 등장하며, 해리 포터의 생존을 숨겨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소화하였다. 나르시사 말포이 역의 헬렌 멕크로리는 2021년 4월 유방암 투병 끝에 향년 5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자신의 투병 사실에 대해서는 남편 데미안 루이스 외에 아는 지인이 거의 없었다고. 말포이 역을 연기한 톰 펠튼은 개인 SNS를 통해 "갑자기 작별을 고하는 것은 너무 슬프다"라며 "(헬렌 멕크로리는) 화면 안팎으로 내가 사람이 되는 것을 도와준 사람이다.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밝혀주고 내가 필요할 때 내 손을 잡아주어 감사하다"고 애도의 글을 올렸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집필한 J.K. 롤링 작가 또한 SNS를 통해 "비보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대단한 배우이자 훌륭한 여성이었다. 우리의 곁을 너무나 일찍 떠나버렸다"라며 추모했다. 


로비 콜트레인 │해그리드 역
Robbie Coltrane1950~2022

최근 우리 곁을 떠나간 또 하나의 주인공. 해리 포터에게 생일 케이크와 함께 마법사의 존재를 일깨워주고, 삼총사의 아버지 같았던 인물 해그리드를 연기한 로비 콜트레인이다. 1979년 영국 드라마 <플레이 포 투데이>로 데뷔한 그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로 영국 BAFTA 시상식 남우조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로비 콜트레인은 비만과 제2형 당뇨병을 진단받아 앓고 있었으며, 2022년 10월 스코틀랜드의 한 병원에서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망 원인은 패혈증 및 하기도 감염, 심장마비로 인한 다발성 장기 부전이라고.

로비 콜트레인의 사망 소식에 온라인 상에서 해리 포터 출연 배우 및 팬들의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다니엘 래드클리프는 "(로비 콜트레인은) 내가 어렸을 때 촬영장에서 우리를 계속 웃게 해줬던 가장 재미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이라며 "특히 <해리 포터와 아스카반의 죄수>에서 몇 시간 동안 비를 피해 해그리드의 오두막에서 숨어 있을 때, 그가 우리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이야기하며 농담을 주고받았던 기억을 좋아한다. 그를 만나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 그는 놀라운 배우이자 사랑스러운 남자였다"라고 말했다. 론 위즐리 역을 연기한 루퍼트 그린트는 자신의 SNS를 통해 "지구상의 누구도 해그리드를 연기할 수 없다. 오직 로비만 할 수 있었다"라는 글을 남겼으며, 말포이 역의 톰 펠튼은 "해리 포터를 찍으면서 가장 좋았던 기억 중 하나는 금지된 숲에서 첫 번째 영화를 찍은 것이다. 나는 12살이었고, 로비는 주변 모든 사람들을 힘들이지 않고 돌보며 그들을 웃게 했다"고 로비와의 추억을 회고했다. 작가 J.K. 롤링은 "로비 같은 사람을 다신 만나지 못할 것 같다"라며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씨네플레이 객원기자 루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