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2019년 최고 기대작이었다가 얼떨결에 3년간 벤치(?)를 지킨 영화가 12월 21일 개봉한다. 영화 <영웅>은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을 다룬 영화인데,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동명의 국내 창작 뮤지컬을 옮긴 '뮤지컬 영화'란 점이 독특하다. 그 때문에 안중근 의사를 뮤지컬 배우 정성화가 맡았다. 정성화는 뮤지컬에 관심 있는 이들이 그가 <영웅>에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대했을 만큼 현재 뮤지컬계 톱배우 중 하나. 꽤 오랜만의 영화 출연이자 그의 주 무대 뮤지컬로 복귀한 만큼 배우 정성화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보겠다.

영웅

감독 윤제균

출연 정성화, 김고은, 나문희, 조재윤, 배정남, 이현우, 박진주

개봉 2022.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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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드라마 배우→뮤지컬 배우 삼단 변신

<카이스트>에 출연한 정성화

배우 정성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그의 데뷔 이력일 것이다. 뮤지컬 배우로 오랜 시간 활동한 지금도 정성화 관련 콘텐츠에 '개그맨일 때부터 응원했다'는 댓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근래 그를 알았다면 다소 의아할 만한데, 실제로 그는 1994년 SBS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했다. 여러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개그맨 그룹 '틴틴파이브'의 일원이 되는 등 얼굴을 알리다가 드라마 <카이스트> 출연을 계기로 배우로 눈도장을 찍었다. 보통 개그맨들이 연기력 좋기 소문난 것도 있지만, 정성화는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 출신이기에 특히 더 활약했던 것. 정성화는 당시를 떠올리면 갑자기 인기를 끌면서 전 재산을 탕진하는 등 이런저런 고비가 적잖게 있었다고 회상하곤 한다. 그래도 드라마와 무대 활동을 병행하던 중 뮤지컬 <아이 러브 유>의 주역으로 발탁된 것이 뮤지컬계에서의 존재감이 커진 기점이 됐다. 이후 창작 뮤지컬 <컨페션>·<그날들>·<형제는 용감했다>(영화 <브라더>의 원작)·<영웅>·<웃는 남자>, 라이선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레 미제라블>·<킹키부츠>·<레베카> 등등 여러 작품의 주역으로 맹활약하며 지금은 뮤지컬 배우로 완벽하게 자리 잡았다. 

정성화는 '연예인병'에 걸렸었다고 밝히기도 했다(2013년 '이야기쇼 두드림' 방송분)

어쩌면 영웅의 진짜 주인공

<영웅>

물론 <영웅>의 주인공은 안중근 의사다. <명량>을 이순신 영화라고 하듯, <영웅>도 안중근 영화라기에 손색없다. 하지만 '뮤지컬 영웅'의 시각에서는 정성화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뮤지컬 <영웅>은 2009년 초연을 올리고 2022년까지 14년 동안 아홉 차례 공연을 올렸다. 정성화는 2009년 초연부터 9연까지, 2014년 공연(5연)만 제외하고 전부 참여했다. 2019년의 10주년 기념 공연에 양준모와 함께 더블캐스팅됐으니 제작사도 인정한 <영웅>의 얼굴인 셈. 정성화가 주연으로, 그것도 여러 차례 출연한 뮤지컬이 꽤 많은데도 <영웅>이 그의 대표작으로 자주 호명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다. 

그래서 이번 영화를 두고 '극장에서 정성화의 노래 듣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특히 <영웅>은 뮤지컬 넘버의 상당부분에 현장에서 녹음한 분량을 사용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원작 뮤지컬 관람 후 영화화를 결심한 윤제균은 정성화를 대체할 배우가 없다고 생각해 다른 누구도 아닌 그에게 안중근 의사를 부탁했단다. 정성화의 뮤지컬을 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대목이고, 반대로 그의 뮤지컬을 아직 본 적 없다면 호기심이 동할 부분이다. 

안중근 의사의 모습(왼쪽)을 반영한 <영웅> 포스터
리딩 현장(왼쪽)과 최근 모습에서 체중 조절의 효과를 엿볼 수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안중근 역의 '고인물'이라 정성화가 흔쾌히 허락했을 듯하지만, 그 또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뮤지컬과 영화는 확연히 다른 것임을 자신도 알기 때문에. 그래서 그는 <영웅>을 준비하면서 안중근 의사를 다시금 돌아보고 그에 걸맞게 준비했다고. 윤제균 감독의 제안을 받아 체중 14kg 감량해 안중근 의사의 의지와 고민을 드러냈고 라이브 녹음을 한다고 해도 뮤지컬 때와는 소리를 전달하는 거리감이 다르기에 발성법도 바꿨다. 요컨대 정성화표 안중근 ver.2라고 할 수도 있겠다. 처음 주연을 맡은 뮤지컬 <영웅>의 애착, 안중근 의사를 연기한다는 책임감이 정성화를 새롭게 만들어준 것이다. 팬데믹 덕분에 3년이나 개봉이 미뤄졌는데, 덕분에 영화 <영웅> 개봉과 뮤지컬 <영웅> 개막을 12월 21일 동시에 선보이게 된 운명 같은 일이 생겼다. 



영화 BEST 3

정성화의 활동 기간 대비 영화 출연작이 많은 편은 아니다. 그래도 이중 몇몇 작품은 그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한데, 그중 3편을 소개한다.

스플릿

<스플릿>

유지태 주연의 볼링 영화 <스플릿>은 도박볼링판을 배경으로 한다. 과거 선수 출신이었으나 모종의 사건으로 퇴출된 철종(유지태)이 자폐성 장애지만 볼링 실력은 천재적인 영훈(이다윗)을 만나 도박볼링계를 흔든다는 내용. 스포츠 영화이면서 범죄 영화 같은 독특한 영화인데, 정성화는 여기서 철종과 오랜 악연인 두꺼비 역을 맡았다. 기본적으로 유쾌하고 코믹한 이미지가 강한 정성화이지만, 이 작품을 보면 그의 얼굴이 새삼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능글맞게 굴다가도 긴 시간 품고 있는 열등감이 끓어오를 때, 두꺼비란 캐릭터의 서늘함이 관객들을 옥죄온다. 출연진 모두 한연기 하는 배우들이라서 케미스트리가 쌓이는 걸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스플릿

감독 최국희

출연 유지태, 이정현, 이다윗, 정성화

개봉 2016.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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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2019)

'<알라딘>은 할리우드 영화 아냐?' 맞다. 여기 어디에 정성화가 있었겠느냐 할 수 있는데, 한국 더빙판에서 지니의 목소리로 발탁된 것이 정성화다. 보통 뮤지컬 영화의 더빙은 성우가 노래까지 하거나, 성우가 대사를 맡고 노래를 뮤지컬 배우가 맡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알라딘>의 지니는 평소에도 리드미컬한 대사 처리와 유쾌한 성격이 돋보이기에 정성화가 대사와 노래 모두 맡았다. 지니를 연기한 윌 스미스가 워낙 찰떡이어서 더빙이 과연 그 맛을 살릴 수 있을까 싶었는데, 뮤지컬에 일가견이 있는 정성화답게 훌륭하게 지니를 소화했다. <알라딘>을 원어로 관람했는데 정성화표 지니가 궁금하다면 더빙판을 보거나 음원 사이트나 발매 음반에서 '알라딘 O.S.T [한국어 Ver.]'를 찾아보면 만나볼 수 있다. 알라딘과 자스민도 뮤지컬 배우 신재범, 민경아가 맡아 디즈니표 뮤지컬 애니메이션의 고퀄리티 더빙에 힘을 실었다. 

알라딘

감독 가이 리치

출연 메나 마수드, 윌 스미스, 나오미 스콧

개봉 2019.05.23. / 2022.09.07.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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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상견례

<위험한 상견례>

전라도 남자 현준(송새벽)과 경상도 여자 다홍(이시영)이 결혼을 앞두고 서로의 가족에게 인사를 간다는 내용의 <위험한 상견례>. 설정부터 요즘 시대에 보기 어려운 영화인데, 여기에 출연한 정성화의 모습도 정말 귀하다. 정성화가 맡은 다홍의 오빠 운봉은 동생을 위한답시고 남의 짐에도 손대는 막무가내 남자이지만 한편으론 순정만화를 좋아하는 인물이다. 현준이 자신의 최애만화를 그린 작가란 걸 알고 '신앙고백'을 하는 장면은 진지해서 웃긴 코미디의 정수를 보여준다. 극중 가장 충격적인 비주얼을 보여주는 원피스는 이후 한 팬이 경매로 구입했는데 그 팬이 다시 정성화에게 선물로 줬다고.

위험한 상견례

감독 김진영

출연 송새벽, 이시영, 백윤식, 김수미

개봉 201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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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