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공식 OST는 아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머릿속에 유난히 영화의 한 장면이 그려지는 노래가 있다. 예컨대 세븐틴의 ‘지금 널 찾아가고 있어’는 애니메이션 주제곡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곡으로, 이 노래와 영화 <너의 이름은.>을 재구성한 팬메이드 뮤직비디오는 유튜브에서 조회수 86만 회를 기록했다.
팬메이드 뮤비를 넘어, 영화와 K팝의 ‘공식’ 콜라보레이션이 성사된 사례를 모아봤다. 영화를 위해 만든 OST가 아닌, 기존 노래와 영화가 만나 마치 원래 의도되었던 것처럼, 완성도 높은 뮤직비디오를 탄생시킨 케이스.
RM X 헤어질 결심
I get a feelin' sometimes
That I can't get close enough to you
(난 너와 가까워질 수 없다고 종종 생각해)
I feel it most in the nighttime
Even though that's when I'm closest to you
(너와 가장 가까워진 밤중에도 말이야)
- RM, ‘Closer (with Paul Blanco, Mahalia)’ 가사 중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은 소위 ‘헤친자(영화 <헤어질 결심>에 미쳐있는 사람)’로 유명하다. RM은 <헤어질 결심>을 무려 8번이나 관람했다고. 또한 메가박스 성수점에서 열린 <헤어질 결심> 와인 페어링 행사도 치열한 티켓팅을 뚫고 참석했다.
BTS RM은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 잡학사전-알쓸인잡>에 출연해 자신이 영화 <헤어질 결심>을 좋아하는 이유를 평론가 못지않게 조목조목 짚어내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는 “(<헤어질 결심>은) 결론이 없고, 강요가 없다. 영화의 메타포가 나에게 와닿았다”라며 “나를 투영해 볼 수 있는 지점들이 많았다. '내가 해준이라면 어땠을까?', '내가 서래라면 어땠을까?'(라고.) 그런데 결론적으로는 나 나름의 결말을 만들 수 있어서 더 좋았다”라고 감상을 전했다.
RM은 마침내, <헤어질 결심> 성덕이 됐다. 그의 솔로 앨범 수록곡 ‘Closer’(클로저)와 <헤어질 결심>이 콜라보레이션한 것.
재구성된 <헤어질 결심>의 장면들 위에 RM의 ‘Closer’가 입혀져 새로운 뮤직비디오가 탄생했다. RM은 ‘Closer’를 보다 영화와 잘 어울리게 만들기 위해, 로파이(Lo-Fi, 정제되지 않은 사운드가 특징인 음악 장르) 편곡을 했다. 콜라보레이션 뮤비에서 영화의 결말로 치닫는 부분은 곡의 하이라이트와 맞물려 응축된 감정이 그제야 터지듯, 폭발력을 극대화한다.

- 헤어질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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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박찬욱
출연 박해일, 탕웨이, 이정현
개봉 2022.06.29.
새소년 X 미나리
이제 나 무얼 노래하려나
너무 많은 후렴
밖은 다 지난 계절의 외투
다들 몸을 떤다
나는 알아 내가 찾은 별로 가자
finally i found
- 새소년, ‘자유’ 가사 중
지금 무슨 노래 들으세요? 뉴진스의 하입… 아니 새소년이요. 요즘 힙한 사람들은 새소년의 노래를 귀에 꽂고 다닌다. 새소년의 콘서트는 티켓 오픈 1초만에 2000석이 매진될 정도다. 새소년은 한국 인디 밴드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환호를 받는 밴드가 되었다.
새소년이 2021년에 발매한 싱글 ‘자유’는 세상 속에서 두려움과 직면할 용기를 보여주는 곡이다. 한국인 이민자 가족의 미국살이를 그린 영화, <미나리>. 새소년의 ‘자유’가 담은 메시지가 <미나리>와 닮아 있던 덕에, 두 작품의 특별한 콜라보레이션 뮤직비디오가 탄생했다.
새소년은 "관객으로 영화 <미나리>를 만났을 때는 어려운 시대의 보편적 가족 공동체, 그 속에서 개척과 통찰을 찾아가는 아주 현실적인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며 "그리고 재밌게도 비슷한 시기에 발매한 '자유'가 떠올랐다"고 전했다.
<미나리>는 골든글로브 영화제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으며, 조연으로 활약한 윤여정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의 영예를 안았다.

- 미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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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정이삭
출연 윌 패튼, 스티븐 연, 한예리, 윤여정, 앨런 김, 노엘 조
개봉 2021.03.03.
존박 X 늑대소년
굳게 닫힌 문 앞에
한참 서 있다가
발걸음을 돌리고 걸어갑니다
입술을 깨물며 몇 번이고 다짐하지만
흐르는 눈물까진 잡지 못합니다
그댈 사랑하려 했던 것이 잘못입니다
나는 내 주제를 모르는 바보랍니다
이리 높은 벽에 둘러싸인 그대에 비해
난 아무것도 못 가진 철부집니다
-존박, ‘철부지’ 가사 중
이적이 작사, 작곡을 해 화제가 된 존박의 ‘철부지’는 담담한 듯하지만 슬픈 노랫말이 인상적인 곡이다. 2012년에 발매된 이 곡은 지금까지도 노래 좀 하는 사람들이 커버곡으로 자주 선택하는 단골 노래이기도 하다.
원래 존박의 솔로 앨범에 수록될 예정이었던 이 곡은 존박의 정규 1집 ‘Inner Child’(이너 차일드)의 선공개 곡으로 예정보다 빨리 공개하게 된다. 영화 <늑대소년>과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뮤직비디오 콜라보레이션이 성사된 배경으로는 "<늑대소년> 측에서 '철부지'를 모니터하고 뮤직비디오 콜라보레이션을 제안했고, 존박은 노래와 영상이 잘 어우러진다며 수락했다"라는 후문.
송중기, 박보영이 주연을 맡은 영화 <늑대소년>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짐승처럼 살아가는 ‘늑대소년’과 한 소녀가 만나 동화 같은 사랑을 하는 이야기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노래하는 존박의 ‘철부지’와 ‘찰떡’같은 이유가 바로 그것.

- 늑대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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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조성희
출연 송중기, 박보영
개봉 2012.10.31. 2012.12.06. 재개봉
에피톤 프로젝트 X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한숨 자고 일어나면
있을 줄 알았지
나쁜 꿈은 아니라서
마음 놓였는데
내 곁에 잠들었던
너는 사라져버렸네
뒤척이며 울다가
억지라도 웃다가
정신없이 먹다가
애써 잠에 들다가
하루가 지났네
- 에피톤 프로젝트, ‘낮잠’ 가사 중
많은 이들의 ‘인생 영화’로 꼽히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 영화가 에피톤 프로젝트의 ‘낮잠’과 만났다. ‘낮잠’의 몽롱한 듯, 나른한 듯 정적이고 감미로운 분위기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장면 위에 씌워져 여운을 배가시킨다.
에피톤 프로젝트는 콜라보레이션에 대해 “’낮잠’은 상실과 무력에 대한 감정을 노래한다”라면서 “일상이 텅 비어버린 느낌, 그 시간들을 아무렇지 않게 천천히 견뎌내야 하는 느낌을 담았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또 “마치 어떤 하루의 ‘조제’처럼”이라며 곡에 대한 설명을 보탰다.
이 뮤직비디오 장면들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남녀 주인공 각자의 시선에서 본 사랑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사랑을 떠난 이유를 담담하게 설명하는 츠네오의 독백으로 시작되는 뮤직비디오는 유모차 안에 타고 있던 조제와의 강렬한 첫 만남부터 츠네오가 개조한 유모차를 타고 세상을 구경하는 조제, 추운 겨울날 바다로 여행을 떠난 두 사람의 모습 등을 담았다.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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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누도 잇신
출연 츠마부키 사토시, 이케와키 치즈루, 아라이 히로후미, 우에노 주리
개봉 2004.10.29. 2016.03.17. 재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