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이해 보이는 코미디와 영화의 세계는 사실 참 닮아있다. 개그 코너의 각본, 연기, 연출을 도맡아 하는 코미디언들의 창작 환경은 영화감독의 본질과 맞닿아 있고, 코미디의 본령인 풍자와 패러디는 영화 연출에 필수적 요소다.

그래서인지 코미디언 출신 영화감독들이 종종 눈에 띈다. 최근에는 <웅남이>를 극장에 선보이며 '심형래'와 '이경규'로 대표되는 1세대 '개감독(개그맨·개그우먼+영화감독)'들의 행보를 잇고 있는 박성광이 가장 도드라진다.
오늘은 번뜩이는 기지와 위트, 패러디로 무장한 코미디언 출신 감독들을 모아봤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 일본의 감독들도 소개한다.


박성광
<웅남이> <욕> <슬프지 않아서 슬픈>
박성광 감독 / 웅남이문화산업전문회사·CJ CGV

박성광이 감독으로 나선 첫 상업 영화 <웅남이>가 박스오피스 2위를 기록하며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다. <웅남이>는 인간을 초월하는 짐승 같은 능력으로 국제 범죄 조직에 맞서는 웅남이(박성웅)의 좌충우돌 코미디 영화. 최근 한 평론가가 '여기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을까'라는 한줄평과 함께 평점 1.5점을 남겨 누리꾼들 사이에서 ‘대중문화 급 나누기’ ‘개그맨 폄하’라는 비난 여론이 일기도 했다. 박성광의 감독 도전이 꽤 오래전에 시작됐다는 것을 고려할 때 문제의 평론, 조금은 성급해 보인다.

박성광은 2011년 초단편영화 <욕>을 시작으로, 단편 <슬프지 않아서 슬픈>(2017), <끈>(2020)을 차례로 연출한다. 특히 <슬프지 않아서 슬픈>으로 미추홀 필름 페스티벌에서 연출상, 한중국제영화제 신인 감독상, 서울세계단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는 등 영화감독으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하기도 했다. 코미디언 출신이지만, 연예인 악성 댓글에 대한 비판(영화 <욕>), 가족과 돌봄 노동에 대한 단상(영화 <슬프지 않아서 슬픈>, <끈>) 등 그가 다뤄 온 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언젠가 개그맨으로 자리를 잡으면 영화를 연출하겠다고 다짐했었다”라고 밝혔다. 영화 연출에 대한 열정으로 영화예술학과 3학년에 편입해 꿈을 키운 20대의 박성광은 마침내 <웅남이>에 도달했다. 이 영화, 분명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은 작품이긴 하지만, 감독 박성광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출신 배경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그리는 박성광 감독의 앞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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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남이

감독 박성광

출연 박성웅, 이이경, 염혜란, 최민수, 오달수

개봉 2023.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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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준비중
슬프지 않아서 슬픈

감독 박성광

출연 성현, 서우승, 김용주

개봉 미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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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필 (a.k.a. 조동필)
<어스> <겟 아웃> <놉>

2017년, 조던 필은 <겟 아웃>으로 평단과 대중 모두의 호평을 받으며 감독 데뷔한다. 조던 필이 영화감독 이전에 유명 코미디언이었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사실. 젊어서부터 영화를 찍고 싶어 했고, 감독으로 데뷔하기 위한 커리어 과정으로 카메라 앞에 서는 직업 개그맨을 택했다고 전해진다. 

<키 앤 필>의 조던 필(상)과 키건 마이클 키(하)

세컨 시티 코미디 극단 출신 조던 필은 <매드 tv>에 출연하며 그의 단짝 키건 마이클 키를 만난다. 두 사람은 2012년부터 코미디 프로그램 <키 앤 필>(Key & Peele)에서 공동 주연, 작가, 총괄 제작자로 활약하며 이름을 알린다. 조던 필은 이후 각본, 연출, 제작, 정극 연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보여주며 현재 미국에서 가장 '핫'한 영화감독 중 하나가 됐다.

미국 흑인으로서 사는 삶에서 느끼는 아이러니와 상투화된 차별, 흑인 간의 내부 차별을 표현해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겟 아웃>, 도플갱어를 소재로 미국이 가진 모순과 문제를 꼬집어 낸 호러 영화 <어스>, 전작들부터 이어져 온 인종차별에 대한 풍자에 영화·미디어에 대한 풍자까지 담은 <놉>. 센스 넘치는 풍자와 패러디, 인종차별을 은유하는 소재를 영화에 녹인 그의 영화적 성과는 이전에 스케치 코미디, 스탠딩 코미디를 하며 쌓은 내공에 기댄다. <키 앤 필> 에피소드의 상당수가 유튜브에 올라가 있으니, 꼭 찾아보길 권한다. ‘조동필’의 매력에 푹 빠질 것이다. 

겟 아웃

감독 조던 필

출연 브래드리 휘트포드, 앨리슨 윌리암스, 캐서린 키너, 다니엘 칼루야

개봉 2017.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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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

감독 조던 필

출연 엘리자베스 모스, 루피타 뇽, 야히아 압둘 마틴 2세, 애나 디옵, 윈스턴 듀크, 팀 헤이덱커

개봉 2019.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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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 다케시
<하나비> <소나티네> <기쿠지로의 여름>
<아웃레이지 파이널> 속 기타노 다케시

이웃 나라 일본에는 거장으로 자리 잡은 이가 있다. 구로사와 아키라, 미조구치 겐지, 오시마 나기사의 뒤를 잇는 세계적인 일본의 영화감독이자, 인기 코미디언 '비트 다케시'로도 알려진 기타노 다케시다. 대학시절, 학생운동 이력으로 제적당한 기타노는 1972년 개그 스승 후카미 센자부로를 만나면서 희극인의 길로 들어선다. 이후 선배 비트 기요시와 결성한 개그 콤비 '투 비트'로 1975년부터 본격적으로 TV 활동을 시작하는데, '비트'라는 말의 어감 그대로 가차 없는 독설로 인기몰이를 한다. 상식과 관습을 조롱하고 공격하는 기타노의 만담 스타일은 추후 그의 영화에도 고스란히 투영된다. "골 때리게 웃기는 천재 개그맨"으로 1970년대와 80년대를 풍미한 기타노는 일명 '다케시 군단'이라고 불리는 후배 코미디언들을 양성하며 일본 코미디계의 대부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영화배우로 스크린에 얼굴을 간간이 비추던 기타노 다케시는 <그 남자 흉포하다>(1989)를 처음으로 배우와 영화감독을 겸하게 된다. 첫 영화의 성공을 발판으로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1991), <소나티네>(1993),  <키즈 리턴>(1996), <하나-비>(1997), <기쿠지로의 여름>(1997), <자토이치>(2003), <아웃레이지 파이널>(2017) 등을 연출하며 기타노는 칸 영화제 등 유수의 국제 영화제의 사랑을 받는 세계적 거장이 되었다. 

코미디언 '비트 다케시'와 달리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의 작품세계는 진지하고 비장하며 화법은 차갑기 그지없다. 하지만 폭력과 신랄한 독설 속에도 유머의 순간은 피어난다. 부조리한 삶을 냉소하는 그의 화법에 웃어야 할지, 표정을 가다듬어야 할지 헷갈리는 순간의 연속이지만 말이다.
 

<소나티네>의 결정적 장면은 기타노의 영화 세계를 설명해 준다.
하나-비

감독 기타노 다케시

출연 기타노 다케시, 키시모토 가요코, 오스기 렌

개봉 1998.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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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티네

감독 기타노 다케시

출연 기타노 다케시, 와타나베 테츠, 카츠무라 마사노부

개봉 2000.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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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안상태, 감독 김영희
안상태. 스페이스 피넛 제공

'안어벙', '안상태 기자' 등 한국 코미디 역사의 독보적인 캐릭터로 사랑받은 안상태 또한 영화감독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2017년 단편영화 <모자>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한 안상태는 감독, 각본, 편집뿐만 아니라 동료 코미디언 안일권과 함께 주연을 맡아 연기까지 해냈다. 최근에는 자신이 연출한 단편영화 <커버>, <봉>, <적구>, <수토커>, <싱크로맨> 등 5편을 묶어 2020년 '안상태 첫번째 단편선'을 선보이기도 했다. 안상태는 <적구>로 2020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괴담 단편 제작 지원 공모전'에서 시나리오로 영상 부문 본상을 받고, 같은 해 <봉>으로 '5·18 3분 영화제' 본선 경쟁작에 선정되는 등 차근차근,  그만의 페이스로 감독의 길을 걷는 중이다. 

안상태 첫번째 단편선

감독 안상태

출연 안상태, 안일권, 정윤호, 이창호, 홍성현, 이호원, 최정화, 최성애

개봉 미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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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감독의 데뷔작 '기생춘'

대학 시절 입체영상미디어를 전공한 코미디언 김영희는 '성인물'로 영화 연출에 도전했다. 2020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패러디한 성인영화 <기생춘>으로 감독 데뷔한 그는 이후 코미디 성인영화 <특이점이 온 사랑>과 <무릎팍 보살: 성교부적삼행>을 연달아 연출한다. "성인영화를 통해 인정과 사랑, 시대상을 담고 싶다"라 말하며 "관객들이 에로물을 좀 더 자연스럽게 즐기는 분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진지하게 임했다"라고 밝힌 감독 김영희의 최근작은 OTT 플랫폼 비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기생춘

감독 김영희

출연

개봉 미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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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획자 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