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은 매해 2~3편 이상의 작품을 선보이는 다작 배우다. 특히 올해는 더욱 다양한 작품에 참여해 그야말로 열일 중이라, 상반기도 다 지나지 않았는데 이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퀸메이커>, <택배기사>와 SBS에서 방영 중인 <낭만닥터 김사부 3>을 통해 시청자들을 찾아왔다. 또한 MBC 드라마 <열녀박씨 계약결혼뎐>에도 출연한다는 소식을 전해 많은 이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이토록 다작에 출연하는데도, 배우 진경은 작품마다 색다른 모습을 보여줘 ‘연기 스펙트럼 한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다’는 평을 받곤 한다. 그가 연기한 직군만 해도 기자, 변호사, 국회의원, 간호사, 경찰 등이 있고 악역과 선역을 자연스럽게 오간다는 점도 그의 강점 중 하나로 여겨진다.
진경이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건 2012년 방영된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민지영 역을 연기하면서부터다. 어떤 상황이든 꼬박꼬박 제 할 말 다 하는 중학교 국어 선생님을 현실적이나 상투적이지 않게 표현해 대중들에게 얼굴을 각인시켰다. 진경은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보여준 연기를 통해 2013년 개봉한 <감시자들> 이실장 역에 캐스팅되며 '이상적인 롤모델' 그 자체인 인물을 그려냈다.
당시 진경의 나이는 마흔이었다. 1998년에 연극으로 데뷔한 뒤 드라마나 영화보다 주로 무대에서 10년간 활동했던 그는 “다 때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진경은 스스로 “20대와 30대 땐 '어두운 완전한 반항아'였다”고 밝힌 바 있는데. 진경은 “그 당시에는 웃는 게 연기보다 힘들었다”며 “예전엔 나 같은 캐릭터나 내가 잘할 수 있는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배역을 찾기가 어려웠는데 최근에는 똑 부러지고 강단 있는 여성이 각광 받는 시대가 되면서 자신이 배우로서 부각되는 때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2013년에 진행한 인터뷰에서 진경은 “연기 외에는 다른 거 안 하고 연기만 하면서 먹고사는 게 꿈이다”라고 말하며 직업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기도. 그때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진경은 꿈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 <구가의 서>, <굿 닥터>, <괜찮아, 사랑이야>, <피노키오>, <낭만닥터 김사부>,<하나뿐인 내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그를 '쌍천만 카메오'로 만들어 준 영화 <암살>, <베테랑>을 비롯해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마스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야차>까지.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작품에서 그의 연기력을 마음껏 펼쳤기 때문이다. 아래는 진경이 2023년 상반기에 출연한 세 가지 작품을 소개한 글이다.
택배기사
동명의 웹툰이 원작인 <택배기사>는 극심한 대기 오염으로 산소호흡기 없이는 살 수 없는 미래의 한반도에서 전설의 택배기사 '5-8'(김우빈)과 난민 '사월'(강유석)이 새로운 세상을 지배하는 천명그룹에 맞서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이다. 영화 <감시자들>, <마스터>, <골든슬럼버>를 연출한 조의석 감독의 첫 드라마 시리즈로 진경과는 세 번째 만남이다. 재밌는 사실은 조의석 감독이 처음 <택배기사>의 각색을 시작할 당시에 진경이 “나 나올 거 있니?”하고 물었을 때는 “없다”라고 답했다는 것. 그러다 원작에는 없던 새로운 캐릭터인 여성 대통령을 만들면서 진경에게 배역을 부탁했고 진경은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진경이 연기한 채진경 대통령은 천명이 지배하는 세상에 안주하지 않고 천명그룹의 대표이사 류석(송승헌)과 새로운 이주 구역에 대한 주도권을 두고 갈등하는 인물이다. 또한 군 정보사 소령인 설아(이솜)라는 캐릭터가 추가되었고 본래 여자였던 사월(강유석)이 남자가 되었다. 캐릭터뿐만 아니라 상황과 캐릭터의 중요도 역시 각색되었다고 하니 원작인 웹툰과의 차이점을 비교하며 보는 게 해당 작품의 관전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전설의 택배기사 5-8 역에는 김우빈, 천명그룹의 유일한 후계자 류석 역에는 송승헌, 5-8을 선망하는 난민 소년 사월 역에는 강유석, 군 정보사 소령인 설아 역에는 이솜이 각각 맡아 연기한다.
낭만닥터 김사부 3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3>는 지방의 초라한 돌담병원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전작인 <낭만닥터 김사부 2> 이후 3년 2개월 만의 후속작으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즌 3까지 제작돼 '시즌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불문율을 깬 작품이다. 그전까지는 시즌 2가 시즌 1의 흥행을 잇지 못하거나 시즌 1, 2가 성공하더라도 시즌 3까지 나온 경우는 없었지만 이번에 방영 중인 <낭만닥터 김사부>는 두터운 팬층을 입증하듯 또다시 새로운 시즌으로 찾아왔다. 시즌 1과 시즌 2 모두 시청률 27%를 넘으며 흥행에 성공했으며 <낭만닥터 김사부 3> 역시 첫 회 시청률 12.7%를 기록하며 상쾌한 시작을 알렸다.
진경은 시즌 1, 시즌 2에 이어 시즌 3에서도 수간호사(일명 '수쌤')인 오명심 역을 맡아 연기한다. 오명심은 돌담병원의 안주인 같은 존재로 때로는 무섭고 엄격하지만, 마음은 사려 깊고 인간적이다. 환자에 대한 무한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환자뿐만 아니라 의사, 간호사 등 돌담병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케어를 도맡아 한다. 김사부의 든든한 지지자이자 병원 내에서 유일하게 김사부에게 호통을 칠 수 있는 ‘돌담의 실세’ 캐릭터이다.

- 낭만닥터 김사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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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유인식, 강보승
출연 한석규, 안효섭, 이성경
방송 2023, SBS
퀸메이커
<퀸메이커>는 이미지 메이킹의 귀재이자 대기업 전략기획실을 쥐락펴락하던 황도희(김희애)가 정의의 코뿔소라 불리며 잡초처럼 살아온 인권 변호사 오경숙(문소리)을 서울 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선거판에 뛰어들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김희애, 문소리, 류수영, 서이숙, 진경, 이경영, 김태훈, 김새벽, 옥자연 등이 출연하며 김희애와 문소리의 조합으로 방영 전부터 화제가 된 작품이다.
진경은 3선 의원인 국민개혁당의 유력한 차기 시장 후보인 서민정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서민정은 스스로 '서민의 종'이라고 칭하는 노련한 달변가이다. 하지만 그의 실체는 은성 일가에 붙은 국회의원들과 마찬가지로 더러운 정치인이다. 철저히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인물로 대중 앞이 아닐 때는 차진 욕설을 하고 연하남과의 불륜을 저지르고 그게 드러날까 무서워하는 세상 치졸한 꼰대이다. 진경은 단단한 목소리와 여유 있는 미소로 자신감을 보여주는 모습과 자신의 약점(돈과 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비굴해지고 신경 날카로워지는 모습을 위화감 없이 유려하게 오가며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다.
씨네플레이 김성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