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 파마 어느 집에서 하셨어요?

영화를 찍으려는 감독, 특히나 엄청난 제작비를 동원해야 하는 영화를 찍는 감독에게 영화는 손익분기를 넘기기 위한 공산품인가, 아니면 자아실현을 위한 예술의 방편인가?

영화 <거미집> (2023)의 주인공 김열(송강호)에게 영화란 철저하게 후자의 입장이다. 그래서 그는 얼마 전 촬영이 끝난 영화 '거미집'(영화의 제목과 영화 속 영화의 제목이 같다)의 엔딩을 바꿔서 이 미완의 영화를 걸작의 반열에 올리고자 한다. 그러나 방해꾼은 스케줄이 늘어진다고 투덜대는 배우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단 돈을 끌어오는 핵심인 제작자, 백회장(장영남)은 새로 쓴 대본을 보려고조차 들지 않는다. 게다가 서슬 퍼런 1970년대에 영화를 찍으려면 대본부터 심의를 거쳐야 했다. 이를 수락할 수 없는 문공부의 공무원들은 촬영 세트에까지 쳐들어와 본격적으로 훼방을 놓는다. 일단 시작한 촬영은 난리에 소란을 부르고, 몰래 촬영을 알아챈 백회장과 문공부 고위직까지 나타나며 본격 야단법석으로 넘어간다.

극 내부 영화인 흑백 버전의 '거미집'은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를 연상시킨다.

여러 사람들이 등장하여 법석을 벌이는 극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록 스톡 앤 투 스모킹 배럴즈>(1998) , <스내치>(2000) 등 가이 리치 감독의 초기작이나 <조용한 가족>(1998)이 연상되고, 영화가 영화를 찍는다는 메타적 요소가 있다는 데서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2017), <브로드웨이를 쏴라>(1994), <헤일, 시저!>(2016) 최근의 <바빌론>(2022)이 떠오르기도 한다.

김지운 감독의 데뷔작이기도 한 <조용한 가족>을 보면 알겠지만, 그에게 소동극의 이야기란 낯설지 않다. <거미집>에서는 소동을 바탕으로 <반칙왕>(2000)의 코미디 한 스푼과 <달콤한 인생>(2005)의 스타일과 <밀정>(2016)의 비정한 맛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찾아볼 수 있다.


극 중에 등장하는 검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대략 70년대로 표현되지만, 아마도 1973년 이후일 것이다. 70년대의 유신체제기에서는 1973년에 개정된 영화법으로 굉장히 엄혹한 심의와 검열이 이루어진 탓이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제도이기에 이런 해프닝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블랙 코미디의 장치가 된다. 실은 한국영화는 탄생했던 순간부터 1996년 사전 심의가 위헌 결정이 되기까지 단 한 번도 검열을 피해 간 적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거미집>을 보기 전에 전후 한국 영화들이 어떻게 검열에 노출됐었는지 알아본다면 관람에 흥미를 더 할 것이다.

50년대

<자유부인>(1956)은 대학교수의 아내가 양품점의 점원으로 일하며 젊은 남자와 춤바람이 난다는, 당시로써는 충격적인 내용을 선보이며 검열을 당했다. 그리고 극 중에서의 키스와 포옹 장면이 문제가 되어 상영 전날까지도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결국 네 장면이 삭제된 채 개봉하게 됐다.

<피아골>(1955)은 빨치산을 인간적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검열을 피해 가지 못했다. 반공법에 위반이 됐기 때문에 그 내용을 바꾸고서야 개봉이 가능해졌다.

<태백산맥>(1994)의 모태가 이미 40여 년 전에 있었던 것이다.

60년대

625 전쟁이 한 가족의 삶을 어떻게 짓밟았는지 표현했던 <오발탄>(1961)은 빈부의 차를 강하게 표현하여 사회에 대한 적개심을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상영 보류 결정이 내려졌다. 극 중에서 미군이 명숙(서애지)을 희롱하는 장면은 우방인 미국을 희화화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어머니가 반복해서 "가자!"라고 외치는 장면은 현실도피를 자극한다는 이유로 검열됐고, 아기 엄마가 아이를 등에 업은 채 목을 맨 장면이 잘려 나갔다.

당시 유현목 감독의 에너지는 어마어마했다.

70년대

서슬 퍼런 군사독재를 살아갔던 청년들의 그늘과 반항을 그린 <바보들의 행진> (1975) 은 그 유명한 대사 한마디가 문제가 되어 잘려 나가기도 했다.

"야 이 세상에 믿을게 어디 있니. 이 세상 모든 것은 가짜야"

뿐만 아니라 자전거를 타고 바다 절벽으로 돌진해 자살하는 장면, 여학생이 교수에게 교태를 부리며 학점을 올려달라고 애걸하는 장면 등이 문제가 됐다.

80년대

이어진 군사 독재는 영화 속에서 절망과 좌절의 표현을 아예 금지시킨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1981) 은 당시에 가장 많은 가위질을 당한 것으로 유명하다. 연출자였던 이원세 감독은 밝은 분위기의 계몽영화로 만들겠다는 각서를 쓰고서야 제작이 진행이 됐다.

서울 구로공단의 공장에서 일하는 봉제 노동자들의 아픔을 그린 <구로 아리랑>(1989)은 노동자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장면장면마다 잘려나가 약 20개의 씬이 삭제된 채 개봉했다.

바로 다음 해에 개봉한 <부활의 노래>(1990)는 극영화 최초로 518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했다. 그러나 교도관들이 수감자의 입을 억지로 벌려 밥을 퍼 넣는 장면, 분노한 시민들이 횃불을 들고 모인 장면, 시민군이 계엄군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장면 등이 잘려나가며 무려 40분이 넘는 분량이 삭제됐다.

간수들이 밥을 먹이는 씬은 지금 봐도 충격적이다.

검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기 검열이었다. 그것을 의식하다보니 거기에 무뎌진 영화인들은 제작 초기 단계부터 걸릴만한 장르 자체를 제외했고, 심기를 건드리는 장면은 알아서 삭제했다. 창작자들에겐 최악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 할까

영화 <거미집>과 그 극 중 속의 영화 '거미집'은 공통점이 몇 있다. 제목이 동일하다는 것, 그리고 '거미집'의 기괴한 계단과 세트장의 계단, 이야기 속 캐릭터가 불륜을 저지르는데 그걸 연기하는 배우 또한 불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거미집>에서는 백회장을 비롯한 미도(전여빈) 등 여성이 실권을 쥐고 있는 현실이 있고, '거미집'에서 재촬영된 분량에서는 여성이 삶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새로운 엔딩이 제시된다. 이렇게 <거미집>과 '거미집'은 서로 맞물리며 감응하는 지점을 만들어 낸다. 영화와 현실이 만나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실제하고 있는 세상의 모습과 김열 감독이 담아낸 세상의 모습이 유사하다는 면에서 영화가 세상을 닮아가거나 혹은 세상이 영화로 변모하는 지점을 잡아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가 세상과 닮아간다? 이것은 분명 착각이지만 영화쟁이들에겐 피해갈 수 없는 유혹과 같다. 그 현혹이 영화판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자 김지운 감독에겐 일종의 마지노선처럼 보이기도 한다.

두 분, 닮아가시더니 결국 혼연일체가 되셨네요.

검열이 심하던 시절에도 영화는 만들어졌다. 영화인들은 절망했지만 굴하지 않고 당시대의 정신을 담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젊었던 임권택, 하길종 등의 감독들은 자신의 연출혼을 불태우며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의 연출자들은 무엇과 싸워야 할까?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자본,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오죽하면 영화는 투자자가 도장을 찍기 전 그 순간까지만 딱 예술이라는 농담이 있을까. 끝없는 설득의 과정을 거치고 관객을 만나기 위해 투구하는 연출자가 있는 한, 아직까진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 믿고 싶다. 우직한 김열 감독과 김지운 감독처럼.


프리랜서 막노동꾼 이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