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영화팬들 사이에서 가장 큰 이슈는 무엇일까. 하반기 개봉작? 할리우드 파업 소식? 연예계 스타들의 차기작 소식? 전부 아니다. 요즘 영화 좀 좋아하다는 사람들이 자주 꺼내는 이슈는, 극장의 몰락이다. 한국영화계는, 한국 극장가는 그야말로 곡소리 나는 일의 연속이다. 코로나19만 지나면, 사회적 거리두기만 해제되면 다시 복구될 거란 믿음과 달리 산업은 호황기였던 2019년의 수치에 한참 못 미친다. 그래도 몇 개월마다 흥행작 하나씩 나오던 작년보다도 더 악화됐다. 최고 대목인 추석 연휴는 개봉작들의 비참한 결과만 남았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원인을 분석한다거나 혹은 잘잘못을 따지려는 게 아니다(특히 가격 상승을 도모한 멀티플렉스를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우습게도 극장의 소중함을 절감하고 있는 필자의 심정을 옮겨보고 싶을 뿐이다.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지”라는 당연했던 문장에 “굳이 왜?”라는 반문이 오히려 당연한 지금이지만, 여전히 필자는 전자에 힘을 주고 싶다. 인문학적 관점이나 사명감 같은 것 아니다. 그저 영화를 극장에서 봐서 좋았던 순간들을 최근에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 비싼 돈 들여가며 누가 극장 가, 라는 말에 의무적으로도, 몇 안 되는 취미 생활로도 극장을 향하는 필자의 소소한 이야기를 시작해보겠다.

※아래 본문은 영화 <거미집>의 엔딩을 묘사하는 스포일러가 있다.


영화의 완성은 극장, 거미집

관객만 극장에서 멀어진 것은 아니다. 산업 전체가 극장에서 멀어지고 있다. 어떤 영화인의 말마따나 “우리도 놀고만 있을 수 없어서” OTT 플랫폼의 문을 두드리는 베테랑, 신예 영화인들이 점점 늘고 있다. 온 나라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그림자에 놓였는데, 아무리 예술이라고 딱지 붙은 영화판도 돈이 있어야 굴러간다.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런 과정에서 극장 개봉을 선택해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해보려는 영화들은 어쩐지 눈이 갈 수밖에 없다. 특히 영화를 다루는 영화라면, 그리고 그 영화가 썩 괜찮다면 괜히 두고두고 기억이 난다. 9월 27알 개봉한 <거미집>이 딱 그랬다. 무엇보다 그 엔딩 장면은, 극장에서만 여운이 오롯이 살아남았으니까.

바로 이 장면

<거미집>의 엔딩 장면은 이렇다. 김열 감독이 그렇게 바꾸려고 한 영화 속 영화 '거미집'의 결말이 상영되고, 갑자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그리고 이어지는 박수 소리. '거미집'의 시사회로 보이는 현장에서 모두가 박수를 친다. 극장에 앉아 박수 치던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나 김열에게 기립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김열은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영화는 끝이 난다.

이야기의 전체를 살펴보면, 여기서 오는 감흥은 그렇게 크지 않다. 오히려 이 직전, '거미집'을 촬영하는 마지막 순간과 거기서 이어지는 장면이 이야기의 정점에 가깝다. 그럼에도 이 장면은 영화 <거미집>이 품은 '영화'를 가장 잘 보여준다. 그 극장에 걸리는 한 편의 영화를 위한 고군분투와 감독의 집요함, 보는 사람이 있어 성립하는 관람, 영화인들의 전우애까지. 그 장면의 진심은 바로 극장에서 이 영화를 관람하고 있는 관객에게 쏘아져 하나의 느낌표를 남긴다.

극장에서 상영하며 끝나는 <거미집>을 영화는 극장에서 생명을 얻는다는 의미라고 해석하면 과대해석일까.

김지운 감독은 말한다. <거미집> 또한 OTT의 유혹이 있었다고. 심지어 투자가 어려워서 본인에게 온 작품이었으니, 아마 그 유혹은 이전 작품들보다 더 강했으리라. 그러나 “영화를 소재로 한 이야기”인 <거미집>을 OTT로 공개하는 것은 그 자체에도 어폐가 있었고, 결국 극장 개봉을 선택했다.

그리고 <거미집>은 안타깝게도 '망했다'. 김지운 감독 필모그래피 중 가장 낮은 성적을 기록하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로서의 덕목을 지키고자 한 것이, 상업영화로서의 패배로 이어졌다. 동시에 영화를 사랑하는 마니아들의 자기고백을 듬뿍 받고 있다. 패배임과 동시에 승리인 걸까. 어떤 쪽에 강조점을 찍는지는 각자의 사정이겠으나, 적어도 이 영화의 결말을 극장에서 만난 순간의 감흥은 감히 승리였노라 말하고 싶다.


극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기술, 빔 벤더스의 안젤름 3D

<빔 벤더스의 안젤름 3D>

필자는 신기술을 무척 좋아한다. 요컨대 3D의 등장은 수많은 영화 마니아들에게 '영화의 근간을 흔드는' 뜨거운 감자였던 것과 달리, 필자에겐 흥미로운 장난감이 하나 더 생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마음은 여전해서, 뭔가 특이한 기술이 첨가된 영화라면 꼭 극장에서 보려고 하는 편이다. 그리고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출장 당시 그런 마음으로 선택한 영화가 <빔 벤더스의 안젤름 3D>였다.

<빔 벤더스의 안젤름 3D>는 독일의 화가 안젤름 키퍼의 작품과 그의 인생, 작업 환경 등을 총망라한 다큐멘터리다(사실 다큐라기보다 영상 에세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당연히 필자는 몰랐다. 그냥 '빔 벤더스'라는 이름과 그 뒤에 따라붙는 '3D'라는 것에 바로 예매했다. 영화제 상영작이 개봉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드문데, 3D? 개봉할 리가 없을 것 같아 꼭 영화제에서 봐야겠노라 다짐한 것이다.

영화의 오프닝 장면에서부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거지, 이게 극장에서 보는 재미지. 숲에 설치된 안젤름 키퍼의 설치미술을 볼 때. 폐공장을 개조한 넓디넓은 작업장을 보여줄 때. 불을 붙여 녹이고 태우고 뭔가를 붙이는 등 레이어가 강조된 안젤름 키퍼의 작품이 화면 가득 찰 때. (물론 영화의 완성도와 안젤름 키퍼의 작품도 훌륭했던 것도 있으나) 스크린이란 평면에서 느낄 수 없는 감흥을 느끼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3D 영상이 한참 주목받을 당시(특히 <아바타> 개봉 전후로) 3D TV나 모니터 등 가정에서도 3D를 보급화하려는 움직임은 있었다. 다만 실패했을 뿐. 안경을 쓴다는 번거로움, 집에서 즐기기에 마땅한 것이 없는 한정적인 콘텐츠, 상대적으로 비싼 제품 가격 등 걸림돌이 많아 3D붐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제작하는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카메라를 2대 써야 하니 제작비는 올라가고, 프로덕션은 번거로워지고, 상영 시 어두워지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영화계도 3D 영화 제작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그렇게 모두가 포기했으니, 3D는 극장의 전유물로 남았다. 평단에선 기존 영화 문법을 거스른다는 이유로, 산업에선 번거로운 지점이 많다는 이유로, 가정에선 걸림돌이 많다는 이유로 버림받은 3D 기술의 쉼터는 극장만 남고 말았다. 그리고 (필자 같은) 일부 팬들에게 3D는 오직 극장에서만 할 수 있는 '체험'으로 남아 '관람'과는 또 다른 추억을 안겨주고 있다.


극장이 좋다. 최근 그 마음을 상기시킨 두 영화를 빼고도 개인적인 추억은 더 많지만, 구태여 꺼내지 않겠다. 이 글을 (여기까지) 읽었다면, 분명 지금 마음 속에 본인이 느꼈던 극장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으리라 생각하니까. 극장의 위대함은 필자보다 더 영화를 사랑하는, 더 저명한, 더 전문적인 사람들이 이미 여러 차례 추앙한 바 있다(크리스토퍼 놀란이라던가 마틴 스코세이지라던가). 그러므로 이 글은 여기서 마칠까 한다. 대신 지금 마음에 극장이 떠올랐다면, 잠깐의 시간을 내어 보고 싶은 영화 상영관을 찾아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남기겠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