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고민하는 현대영화 경향과 조응하는 빼어난 프로그램으로 한국의 영화 애호가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올해 영화제를 통해 방문한 감독들 중 가운데, 당대 다큐멘터리 감독들 가운데 확고한 영화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인류의 상승 3> 에두아르도 윌리엄스, <앙헬 69> 테오 몬토야, 그리고 올해 국제경쟁 대상 수상작 <어두운 밤: 어디에도 없는> 실뱅 조지 감독을 만났다.


<인류의 상승 3>

The Human Surge 3

에두아르도 윌리엄스

에두아르도 윌리엄스 감독

많은 이들이 그랬을 테지만 저 역시 이 질문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2016년에 발표한 <인류의 상승>의 속편임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상승 2’가 아닌 ‘인류의 상승 3’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이디어나 촬영 등 영화를 만든 방식은 비슷하게 보일 수 있지만, 완전한 연속성을 갖고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2를 스킵 하고 3으로 넘어가도록 했습니다. 1에서 3으로 바로 넘어가면 재미있어 보일 거라고 생각했고, 2가 텅 비어 있기 때문에 그것 자체로 무엇이 일어났을지 모르는 것도 흥미로운 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류의 상승>을 만들고 난 후 속편에 보완해야겠다고 느꼈던 점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작품을 내놓고 나면 깨닫는 바가 한 가지씩은 있기 마련입니다. 지금까지 7개의 단편을 만든 경험이 있는데요. 좋아하는 부분도 있고 싫어하는 부분도 있는 건 일반적인 것이고, 앞으로 영화를 만들면서도 계속해서 보완해야 할 점은 계속 발견되겠죠.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오히려 아이디어로 발현돼서 새로운 촬영을 하는 데에 좋은 촉발점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류의 상승 3>에서는 서로 연결성이 없어 보이는 국가들이 하나로서 연결하고, 그럼 어떻게 변할지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인류의 상승>의 무대가 아르헨티나 모잠비크 필리핀이었다면, <인류의 상승 3>는 스리랑카 페루 대만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전에는 혼자 가서 찍었다면 이번엔 최대한 많은 배우들과 함께 가려고 했기 때문에 다른 접근이 필요했습니다. 스리랑카인이 마치 페루에 있는 것처럼 보이고, 누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게 혼란스러운 장면을 관객분들에게 많이 보여드리고자 노력했습니다. 촬영할 때마다 가능한 다른 도구를 사용하려고 하는데, 이번에도 다른 카메라를 사용함으로써 제 아이디어를 새롭게 공유하는 데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360도 카메라의 활용은 <인류의 상승 3>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입니다.

이전에 다른 단편을 찍으면서 비슷한 360도 카메라인 렌즈가 둘인 고프로를 사용했습니다. <인류의 상승 3>은 렌즈가 8개 달린 둥근 공 같은 모양에 무게가 12kg에 달하는 카메라로 찍었습니다. 지난 작품을 편집하면서 다음엔 VR을 사용해봐도 되겠다 깨닫고, <인류의 상승 3>을 다 찍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VR 헤드셋으로 본 이동 장면을 프레임화해서, 카메라 안에 담긴 프레임을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프레임을 형성할 수 있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카메라 바로 앞에 있는 것뿐만 아니라 360도로 돌아다니면서 내가 어떤 걸 볼 수 있는지 다양하게 보여드릴 수 있었죠. 그리고 360도 카메라로 인해 이미지에 에러가 노출되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얼굴이 잘 안 보이는 장면은, 물리적인 현실 세계가 디지털의 가상 세계와 융합된 채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지 않나 하는 이 영화의 주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 같아 넣게 됐습니다. 사람이 계속해서 걸어가는 모습이 로봇이 따라다니는 듯한 걸로도 보이는 것도 동시에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구글 맵을 사용한다든가 비디오 게임의 화면 등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보여드려 보는 사람마다 자기의 일상에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연결시키려고 했습니다.

360도 카메라의 효용이 잘 드러나는 대목 하나를 꼽자면.

특정한 부분을 말하긴 어렵겠지만 굳이 하나 택한다면, 10분 동안 원숭이를 보는 장면입니다. 카메라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자연을 보고 들으면서 저기 원숭이도 있구나 생각하게 되는데, 갑자기 카메라가 빠르게 올라가게 되면서 여기에 기술이 개입됐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 그 두 가지를 한 장면에 보여드릴 수 있다는 게ㅇ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사실 자연과 기술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연도 계속해서 발전하기 때문이죠. 360도 카메라를 사용하면서 제가 촬영하면서 미처 보지 못한 것, 예를 들어 자연을 찍으면서도 그 주변부에 굉장히 독특한 것들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게 됐습니다.

이 신에서 저 신, 이 나라와 저 나라를 편집하는 방침 같은 게 있었을까요?

처음에 영화를 찍을 때부터 스리랑카의 한마을에서 시작하겠다는 건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평범한 집처럼 보이면서도 모양이나 컬러는 아주 독특합니다. 이렇게 대비되는 걸 보여주면서, 일반적인 현실과 기이한 것을 한 번에 담겠다는 걸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마지막 산 장면에서는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도 미리 정했지만, 그 중간엔 어떤 순서로 갈지 전혀 정하지 않았습니다. 스리랑카 먼저 촬영하고 페루에서 대만으로 가는 순서였는데, 스리랑카에서 찍고 나서 시간이 조금 남았지만, 끝까지 촬영하고 나서 편집해야 될 때에 그 순서를 정할 수 있게 됐습니다. 구조적으로는, 일반적인 장면을 보여주고 그다음에 환상적이고 기이한 장면을 보여주는 방식을 택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관객마다 몰입하는 장면이 저마다 다를 텐데 여유로운 대목도 넣으려고 했습니다. 물론 빠르게 돌아가는 장면은 그 자체로 기이하기 때문에 모든 관객들이 몰입했을 것 같기는 하지만, 그저 사람들이 걸어다니기만 하는 여유로운 장면도 영화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해당 국가마다 다르게 찍고 있고 공간마다 언어가 달랐다는 점을 언젠가 깨달았으면 하는 한편,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지 혼란스럽게 느꼈으면 좋겠다고도 기대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디를 촬영한다기보다, 어둠 속에서 시작해서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혼란스럽고 불만이 많은 상태를 보여주고,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다른 곳으로 찾아가는 여정의 구조는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이미지만큼 사운드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피사체가 멀리 떨어져 있거나 프레임 안에 들어오지 않을 때에도 그 소리는 바로 옆에서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편집 과정에서 소리를 따로 입힌 건가요?

후시 작업은 따로 하지 않았습니다. 보이는 그대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가깝게 들리는 것입니다. 공간이나 인물들이 놓인 환경이 하나의 캐릭터로서 보여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단순히 사람을 비추는 것보다 공간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이 소리가 들리는데 내가 어디를 봐야 하지 하고 찾는 노력을 하는 과정도 중요하다고 판단해서 그런 방식을 취했습니다. 멀리 보이는데 사운드는 가깝게 들리고, 이걸 누가 말하고 있는지 궁금하게끔 하는 것도 넣고 싶었습니다. 저는 현실과 판타지를 융합해서 보여드리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사운드가 현실적이면서도 가짜처럼 느껴지는 모습을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입뿐만 아니라 우리 신체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파편화된 형태로 담고 싶었고요.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소리들이 하나하나 다른 리듬과 특성을 갖고 있다는 걸 매일매일 느끼지 못하지만 그걸 모아서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없는 공간에서는 어떤 소리가 들려올까 늘 궁금했는데, 페루의 정글에 갔을 때 그걸 강력하게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카메라의 시점을 사람을 살짝 내려다보는 위치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사실 시선을 최대한 낮게 하려고 했었는데, 물리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360도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백팩 위에 카메라를 올려야 해서 카메라맨도 최대한 키가 작은 분에게 맡기려고 했습니다. 360도 촬영을 할 땐 내가 최종 단계에서 어떤 이미지를 사용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분량을 찍어 놓자 라고 생각해서 영화에서 보이는 위치로 정하게 됐습니다.

“부끄러운 건 억만장자다”처럼 부유층을 조준하는 대사들이 종종 보입니다. 생경한 이미지가 계속되는 가운데에 그 대사가 들려서 새삼 현실을 환기하게 됩니다. 심지어 낯선 풍경이 계속되는 것조차 바로 그 “부끄러운 건 억만장자다”라는 메시지가 더 확연하게 들릴 수 있게 하려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어요.

대화나 사운드, 그리고 이미지를 통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나타내고 싶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어떤 대화들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경우가 있죠. 그렇게 제 목소리를 내면서도, 어떤 장면들에서는 꿈같이 추상적인 대사도 있습니다. “부끄러운 억만장자다” 같은 대사는 현실적이면서도 판타지적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여기는, 저 같은 경우는 돈이 많은 사람들은 돈이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아졌기 때문에 그들을 보면 나쁜 현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빈부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고 자원의 재분배는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억만장자가 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라는 대사를 스리랑카에서는 나이 든 여성이, 페루에서는 젊은 여성이 말하면서 전 세계 모두가 아는 사실인 것마냥 친구들한테 이야기하고 그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인류의 상승>(왼쪽) <인류의 상승 3> 포스터

시리즈 제목이 하필 인류의 ‘상승’인 이유가 있을까요?

이 제목을 생각해낸 지는 오래됐습니다. 인류가 현재 피크에 있다는 걸 나타내는 제목입니다. 단순히 인구의 숫자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발전에 있어서도 피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커 보이지만 일상생활에서 들여다보면 작은 존재이기도 하다는 대비도 담았습니다. 인류의 일부분을 보여주고, 나라들도 우리가 좀처럼 언급하지 않는 곳을 비추려고 했습니다. <인류의 상승>이 나왔을 땐 이게 유일하기 때문에 작품에 담긴 것이 중요한 순간이나 공간처럼 보였겠지만, 3편이 나오고 회차를 거듭하면서 특정한 국가가 더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시사하고 싶었습니다.


<어두운 밤: 어디에도 없는>

(Nuit obscure - Au revoir ici, n'importe où)

실뱅 조지

실뱅 조지 감독

초기작부터 올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를 통해 선보이는 최신작 <어두운 밤: 어디에도 없는>까지, 프랑스의 다큐멘터리 감독 실뱅 조지의 카메라는 대부분의 이민자/난민 문제에 천착해왔다. 짧게는 80분 남짓, 길게는 4시간이 훌쩍 넘는 러닝타임 동안 새로운 터전에 정착하고자 열망하는 이들의 생활상을 흑백 이미지로 담아낸 일련의 다큐멘터리들은 눈밝은 소수의 평자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13년 전, 많은 중동 사람들이 영국으로 가기 위해 모여 있는 프랑스 북부 지역 칼레에 관심을 갖고, 이민자 정책을 문서나 법률로 설명하는 방식이 아닌 이 정책의 수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들의 공간과 육체 그리고 이야기로 보여주는 형식을 구상했습니다.” 그렇게 만든 초기작 <불가능 - 찢어진 페이지>, <반란을 일으켜 쉬게 하라 (전쟁의 인물들 1)>, <파편들 (나의 얼굴, 나의 반란, 나의 이름)>이 2009년부터 2012년 사이에 발표됐다.

<어두운 밤: 들풀> / <어두운 밤: 어디에도 없는> 포스터

파리의 ‘밤샘 시위’를 소재로 한 <파리는 축제다>(2017) 이후 5년 만에 발표한 새 연작 <어두운 밤>의 시선은 여전히 이민자를 향하고 있지만, 공간은 프랑스에서 모로코에 위치한 스페인의 자치 도시 멜리야로 바뀌었다. “유럽 국가들은 각각의 아프리카 국가들과 이민 정책에 대한 합의를 합니다. 이탈리아와 리비아, 스페인과 모로코처럼요. 멜리야는 세우타와 함께 모로코에 남아 있는 스페인의 마지막 식민지입니다. 아프리카와 유럽의 경계가 되는 지역이라 할 수 있죠.” 각각 작년과 올해 8월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처음 선보인 <어두운 밤: 들풀>과 <어두운 밤: 어디에도 없는>은 멜리야에서 유럽으로 가는 국경을 넘으려는 이민자들을 따라간다.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내전을 통해 침입한 최초 거점이었던 멜리야는 여전히 프랑코의 동상과 기념관이 남아 있는 “이상한” 마을이다. 실뱅 조지가 연작의 공간을 멜리야로 특정한 이유는 따로 있다. “아프리카인이나 중동인이 유럽에 어떻게 유입되는지 따라가는 게 거의 불가능합니다. 스페인 갔다가 스웨덴 갔다가 프랑스 갔다가 독일 갔다가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오고… 마치 유럽 대륙이 거대한 난민 캠프와도 같죠. 전체를 조망할 수 없기 때문에 멜리야라는 특정한 지역에 집중해야만 했고, 2005년 아프리카에서 멜리야로 넘어온 일곱 사람을 모로코 경찰이 죽인 사건을 보고 충격받아 그곳을 찍기로 결정했습니다.” 2006년에 처음 멜리야에 도착해 2023년에야 <어두운 밤> 연작을 완성했으니, 무려 17년을 멜리야에 매진하고 있었던 셈이다.

‘아라가’(harraga). 아프리카와 유럽의 국경을 넘으려는 이민자들을 칭하는 말이다. 태우는 걸 의미하는 모로코어에서 나온 말로, 유럽으로 이민 오기 위해 신분을 증명할 만한 서류와 타고 온 배를 모두 태워버린 사람이라는 뜻. 한편, 연작 제목 ‘어두운 밤’은 16세기 시인 후안 크루즈가 쓴 책 「영혼의 어두운 밤」에서 따왔다. “이 책 속에서 ‘어두운 밤’은 과연 신이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의심과 자기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광기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사실 이 문학 작품은 귀족적인 이야기인데, 아라가라 불리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최하층민에게 이 제목을 마치 농담처럼 집어넣었죠. 요즘 모로코에서 산다는 건 마치 느린 죽음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미래를 꿈꾸는 이들의 모습을 담은 영화에 이 타이틀을 부여한 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실뱅 조지는 오랜 세월 멜리야에서 촬영한 분량을 단 한 편으로 만들 수 없겠다고 판단해 첫 번째 <어두운 밤: 들풀>은 멜리야의 지정학적 관점과 청년들의 상황으로, 두 번째 <어두운 밤: 어디에도 없는>을 9살에서 14살 사이의 미성년자들의 생활을 아주 가깝게 관찰하는 방향으로 채워졌다.

<어두운 밤: 어디에도 없는>의 카메라는 역동적이다. 대개의 다큐멘터리가 카메라의 존재를 가능한 감춘 채 대상을 기록한다면, <어두운 밤: 어디에도 없는>은 위험천만한 세상에서 목숨 걸듯 살아가는 멜리야 이민자 아이들의 거침없는 움직임을 그에 걸맞은 에너지로 바짝 따라붙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카메라를 경계하긴커녕 의식조차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비결은 간단하다. 함께 보내는 시간. “통제 불가능한 아이들이에요. 무턱대고 카메라를 들이대면 부숴버려요. 한 3년 정도 같은 공간에 있으니 멀리서 찍고 있어도 제가 누군지 알아요. 고작 며칠 머무르고 뭔가 찍어가려고 하는 기자들과는 다른 거죠. 카메라를 보지 말아 달라 부탁하고, 아주 많은 분량을 찍은 다음, 편집하면서 카메라를 안 보는 순간을 잡아낼 수밖에 없어요.” 아이들만큼이나 실뱅 조지의 시선이 오랜 시간 머무르는 건 멜리야의 황량한 풍경이다. 비단 인서트 차원이 아니라, 사람이 없는 멜리야 거리를 구석구석 담은 푸티지로만 이뤄진 시퀀스도 있다. “이민자 아이들이 배를 타고 떠나고 나면 흔적들이 남아요. 거리 여기저기에 옷들이 떨어져 있고, 바위 뒤에 침대가 숨겨져 있고. 아이들이 있었을 때와 있지 않았을 때 다를 수밖에 없죠. 이 작품의 의도 자체가 이민 정책이 사람뿐만 아니라 공간과 풍경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 아이들이 유입되고 떠나는 과정을 통해 공간이 어떻게 재구성되는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어요.” 257분과 184분 러닝타임의 두 작품과 달리, <어두운 밤> 시리즈의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세 번째 편은 훨씬 짧은 길이로, 멜리야에서 파리로 간 아이들이 생활하는 모습이 담긴다고 한다.


<앙헬 69>

Anhell69

테오 몬토야

테오 몬토야 감독

<앙헬 69> 작업의 시작점은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다른 영화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유령에 대한, 정확히는 유령과 육체적인 관계하는 스펙트로필리아(spectrophilia)에 대한 작품이었습니다. 어제 강연(테오 몬토야는 영화제 기간 '트랜스 시네마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에서 카오스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를 했는데, 어떻게 보면 <앙헬 69>는 카오스의 영혼에 대한 영화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관 속 남자의 독백, 클럽 주변과 내부의 청춘들, 영화 캐스팅을 위한 오디션 등 여러 레이어가 뒤섞이면서 진행합니다.

우선 관 속에 있는 남자는 저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앙헬 69> 안에 많은 레이어들이 있는 가운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알레한드로 호도로프스키 감독의 ’싸이코매직’이라는 콘셉트가 있습니다. 그걸 관객들에게 전하기 위해서는 제 스스로가 죽어야 했고, 관도 필요하겠다고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죽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부활하는 것도 실제가 아닌 영화에서만 가능한 것이기에, 영화를 통해 그걸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물론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의 <오데트>(1955)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영화 시작과 동시에 관 속 남자의 “내가 태어난 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라는 내레이션이 나옵니다. 삶에 관한 절대적인 명제 중 하나라는 생각합니다. 삶과 죽음에 대해 파고드는 영화 <앙헬 69>를 만들고 난 후 감독님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그 내레이션은 에밀 시오랑의 문장에 대한 오마주입니다. <앙헬 69>을 만들면서 삶과 죽음은 함께 가는 것이고 그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기존의 믿음을 되새겼습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이 살아 있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고, 죽은 사람들도 죽은 게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삶과 죽음뿐만 아니라, 현실이란 과연 무엇인지 또 한 번 생각해봤습니다.

<앙헬 69>의 공간인 콜롬비아의 메데인은 어떤 도시인가요?

오히려 가보면 개방적이라는 인상은 받으실 거예요. 요즘 메데인은 레게 뮤지션 말로마(Maluma)의 성지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레게의 가사는 주로 섹스와 마약에 관련된 것이고, 파티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노는 모습들이 많이 보이긴 하지만, 사실 사람들의 사고방식 자체는 매우 보수적입니다. 과거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죠. 종교로 가톨릭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고, 학교에서도 가톨릭 교육을 받아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도시는 낮과 밤이 다르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차이가 큽니다. 파블로 에스코바도 마약 상인이었지만, 사고방식은 보수적이었습니다. 가족 중심적이고, 공산주의와 호모섹슈얼리티에 반대했죠. 새로운 일들이 계속해서 바뀌어 나가고 있는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측면도 있다는 면에서 대비되고, 어찌 보면 미친 사람들이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인터뷰 대목들은 <앙헬 69>을 만들기 위해 찍은 건가요? 단순 아카이빙 용도였나요?

마지막 부분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아닌지 우리가 구분할 수 없는 것이 좋다고 말씀드렸기 때문에 상상에 맡기고 싶습니다. 사실 평소 친구들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담는 건 쉬우면서도 까다로웠습니다. 친구라서 섭외하긴 편했지만 다들 주로 계획을 하고 사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일정 잡는 것부터가 일이었죠. 언제 어디로 와라 해도 나타나지 않는 건 예삿일이고. 한편 재미있었던 건 오히려 친구들이 감독처럼 저한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지시했다는 겁니다. 저는 단순히 카메라를 들고 있었을 뿐, 그들이 카오스적인 상황을 만들어 놓고는 저에게 그걸 작품으로 만들라고 지시하는 식이었죠.

여러 친구들이 등장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이는 단연 카밀로 나자르입니다. 영화 제목 ‘Anhell69’도 생전에 그가 썼던 인스타그램 아이디 ‘an.hell69’에서 비롯됐죠. 카밀로는 여러 사람들이 먼저 등장한 후에야 모습을 드러내고 다른 이들에 비해 전혀 특별하게 찍히지도 않았지만, 등장하자마자 저 사람은 뭔가 다르다는 인상을 안겨줍니다.

캐스팅을 위해 카밀로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강력한 끌림이 있었고, 그 역시 그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카밀로가 저를 갖고 논다고 생각했거든요. 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서 하는 얘기인지, 연기하고 있는 건지 전혀 파악할 수 없었죠. 카밀로가 죽은 후에도 의문은 풀리지 않았고요. 그러나 어느 순간에 다다르니 그의 말이 진실인지 연기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구나, 이것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0년에 발표한 <소돔의 아들>은 카밀로를 기리고자 만든 단편입니다. 카밀로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평생 동안 카밀로가 어떤 사람인지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하겠다는 결론에 이르는 작품입니다.

카밀로 나자르

보통 아버지를 떠올릴 때 폭압적인 사람으로 떠올리는 경우는 있어도 "얼굴도 본 적 없다"고 말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은데, 인터뷰 파트에서 나오는 대부분이 아버지를 애초에 부재한 존재로 말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아버지가 없기 때문에 아주 흥미로운 질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콜롬비아는 전쟁 때문에 남성들이 참전하고 사망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건지 정확히 답을 드리기는 어렵겠지만, 주로 남아메리카 지역에서 이런 경향이 많이 나타나긴 합니다.

빨간 눈을 한 존재가 계속 등장합니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엉클 분미>(2010)의 원숭이 귀신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형상이죠.

말씀하신 것처럼 빨간 눈은 <엉클 분미>의 오마주입니다. <앙헬 69>는 여러 가지 출처에서 얻은 것들의 혼합이라고 생각합니다. 리무진 운전자를 연기한 빅토르 가비리아는 콜롬비아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인 중 하나입니다. 하모니 코린 감독은 어떤 영화를 볼 때 그걸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장면들만 보고 있으니 DJ셋처럼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 <구모>(1997)를 연출했다고 말했는데, <앙헬 69> 역시 그것과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극영화든 다큐멘터리든 클럽에서 찍은 장면이 어색하지 않은 경우는 정말 드문데, <앙헬 69> 속 클럽 신은 '진짜' 같습니다

그 클럽은 실제로 제가 친구들을 만나는 곳입니다. 영화를 위한 장면이 아니라 실제로 파티하고 있는 모습이고, 제가 파티를 주최하는 일들도 맡았기 때문에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 같습니다. 평소 아주 중요하게 기억하고자 하는, 클러빙의 역사가 보일 수 있는 공간을 <앙헬 69>에 담기도 했습니다. 거기 있는 친구들이 카메라로 촬영되는 데에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에 더 자연스러울 겁니다.

후반작업하면서 마지막까지 고심했던 건 무엇인가요?

베니스 영화제에 출품해야 하기 때문에 프로듀서가 이제 그만 완성됐다고 말했을 때에도 저는 아직 더 작업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한 6개월은 완성되지 못한 걸 내놓았다는 생각이 계속 따라다녔습니다. 지금 와서 봤을 땐 이것도 어느 정도 완성된 작품이라고 생각하게 됐지만요. 편집 과정이 특히 어려웠습니다. 누군가는 영화를 랜덤으로 편집한 게 아니냐고 할 텐데, 저는 편집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저를 비롯한 두 명의 편집자까지 모두 세 사람이 마지막까지 고심해서 완성한 것입니다. 원래 도시 장면을 더 많이 찍었습니다. 도시를 많이 보여주고 싶었는데, 제가 관 안에 있는 모습을 많이 비춰야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거라고 깨닫고, 도시 장면을 덜어내 제가 지금 관 속에 있다는 걸 최대한 많이 주는 방향으로 편집했습니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