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축구 봤어? 유로 2016 준결승전 독일과 프랑스 시합 말이야. 프랑스 스트라이커 앙투안 그리즈만이 ‘축구는 독일이 우승하는 스포츠’라는 정설(?)을 가볍게 뒤집을 줄은 몰랐어. 결국 ‘우리형’ 호날두가 이끄는 포르투갈과 개최국 프랑스가 이번 대회 우승컵을 놓고 격돌하게 됐어. 7월11일 월요일 새벽4시에 열리는 결승전을 보기 전에 주말 동안 감상할만한 축구영화를 소개할까해. 사실 축구영화는 다른 장르에 비해 숫자가 턱없이 적어. 여러 이유가 있겠지. 배우들이 선수들의 움직임을 재현하는데 한계가 있을 테고, 카메라가 빠른 시합 전개를 따라가기도 벅찰 거야. 무엇보다 축구영화를 아무리 잘 만들어봐야 실제 축구가 전하는 감동을 따라잡기는 불가능해. 축구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일 거야. 어쨌거나 잘 만든 축구영화 6편을 추천할게. 그밖에 볼만한 축구영화들을 해시태그로 달았으니 참고해줘.
17대의 카메라가
지단의 일거수일투족만 담아낸
<지단 : 21세기의 초상>
<지단 : 21세기의 초상>은 레블뢰(Les Bleu, 파란색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프랑스 축구대표팀을 일컫는 말-편집자)군단과 갈라티코(Galactico, 스페인으로 ‘은하’을 뜻하는 단어로,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을 영입해 구단 마케팅을 최대화하는 레알 마드리드의 정책을 말한다. 한때 지단, 피구, 베컴, 호나우두(크리스티아노 호날두가 아님. 브라질의 스트라이커) 등 모두 뛴 레알 마드리드를 두고 갈라티코라고 불렀다-편집자) 시절의 레알 마드리드의 영원한 마에스트로, 지네딘 지단을 다룬 다큐멘터리야.
재미있는 건, 이 영화가 지단의 화려한 골을 모은 하이라이트 영상도, 지단의 일대기를 시간 순으로 펼쳐낸 자전적인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이야. 다리우스 콘지 촬영감독이 총17대의 35밀리, HD 카메라를 동원해 2005년 4월23일 레알 마드리와 비아레알의 프리메라리가 시합에 출전한 지단만 따라다니며 담아냈어. 다리우스 콘지가 누군지 알지? <세븐>, <패닉룸> 등 많은 영화들을 찍었고, 현재 봉준호 감독의 <옥자>를 촬영하고 있는 거장 촬영감독이잖아. 마르세이유턴 같은 화려한 개인기도, 상대 수비수들을 일격에 무너뜨리는 키패스도 이 영화에 등장하지 않아. 우리는 오로지 끈질기게 자신을 따라다니는 상대 선수를 귀찮아하고, 원하는 곳에 패스가 들어갔을 때 미소를 짓고, 결국 퇴장당하며 씁쓸하게 경기장 밖을 걸어 나가는 지단만 볼 수 있을 뿐이야(약속된 것도 아닌데 지단은 이 시합에서 퇴장을 당했지 뭐야).
지단의 화려한 모습을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하품만 나올 수 있는 작품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라운드 위에 선 지단의 희노애락을 이렇게 생생하게 담아낸 작품을 본 적이 없어. 특히, 퇴장 당할 때 지단의 뒷모습은 서부극의 쓸쓸한 영웅의 그것을 떠올리게 하더라고.
지단 : 21세기의 초상과 비슷한 축구영화는 #축구의신마라도나 #바르샤드림스 #룩킹포에릭
거침없는 인간
마라도나를 그린
<축구의 신 : 마라도나>
<축구의 신 : 마라도나>는 에미르 쿠스투리차 감독이 뚱뚱한 마라도나와 함께 부에노스아이레스, 베오그라드, 나폴리 등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인간’ 마라도나를 담아낸 다큐멘터리야. 지금은 메시나 호날두가 축구의 신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한때는 마라도나가 짱이었지. 특히, 1986년 멕시코월드컵 앙숙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마라도나가 넣은 두 골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을 정도야. 그 유명한 신의 손 골과 중앙선 부근에서 60m를 홀로 드리블해 잉글랜드 수비수 6명을 따돌린 뒤 넣은 골 말이야.
하지만 이 영화는 현역 시절의 마라도나가 넣은 골을 보여주는데 관심이 없어. ‘STOP BUSH’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 같은 남미 좌파정권의 수장이 미국과의 FTA 협상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석한 모습이나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단은 총과 무기를 파는 놈들이다”라고 발언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인간 마라도나야. 거침없는 그의 발언들은 꽤 재미있고, 마라도나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야.
축구의 신 마라도나와 비슷한 축구영화는 #지단:21세기의초상 #바르샤드림스 #룩킹포에릭
티키타카의 탄생 비화
<바르샤 드림스>
‘티키타카’ FC바르셀로나(이하 바르샤)의 역사를 그려낸 다큐멘터리야. 로마가 하루아침에 세워지지 않은 것처럼 바르샤가 처음부터 전세계 팬들과 선수들이 선망하는 꿈의 클럽이었던 건 아니야. 클럽 창립자 조안 감페르부터 헝가리에서 망명한 스타 라디슬라오 쿠발라,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네덜란드 토털 축구의 선구자 요한 크라위프, 요한 크라위프의 제자이자 패스 중심의 공격적인 경기 방식인 티키타카의 선구자인 호셉 과르디올라 등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바르샤가 존재할 수 있었어. 바르샤의 역사를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는 까닭에 바르샤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쿠레(스페인어로 엉덩이라는 뜻으로, 바르샤 팬을 일컫는 말)에 입문할 좋은 교과서가 될 작품이야.
바르샤 드림스와 비슷한 축구영화는 #아내가결혼했다 #피버피치 #훌리건스 #티켓 #유나이티드
아스날 '빠돌이'의
‘덕질’ 애환을 그린
<피버피치>
참, <피버피치>가 미국에서는 <날 미치게 하는 남자>(2005)로 리메이크됐어. 미국 최고의 야구구단 보스턴 레드삭스의 열혈 팬의 이야기로 바뀌었더라고. 미국에선 축구보다는 야구니까.
피버치피와 비슷한 축구영화는 #아내가결혼했다 #훌리건스 #티켓
에릭 칸토나가 배우로 출연한
<룩킹 포 에릭>
베컴, 지단, 라울 같은 축구 스타들이 카메오 출연한 축구영화는 수두룩해. 반면 축구 스타가 중요한 배역을 맡아 연기했던 영화는 드물어.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켄 로치 감독의 2009년작 <룩킹 포 에릭>은 제목대로 에릭 칸토나가 배우로 출연해 화제가 된 바 있어. 대체 에릭 칸토나가 누구냐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선수였어. 영국인이 사랑했던 프랑스 선수라는 말이 나돌았을 정도지. 그라운드 안팎에서 카리스마가 매우 넘쳤어. 골 넣은 게 당연하다는 듯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유니폼 깃대를 바짝 세운 골 세레머니도 유명했지. 시합 도중 자신에게 욕한 팬에게 달려가 쿵푸 킥을 날린 죄로 오랫동안 게임을 못 뛰기도 했어.
<룩킹 포 에릭>은 아내와 이혼한 뒤 의붓아들 둘을 키우며 살아가는 우체부 에릭(스티브 이벳츠)이 에릭 칸토나를 만나면서 성장하는 이야기야. 에릭 칸토나가 삶에 자신감을 잃은 에릭에게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피하지 말고 당당하게 마주해라”고 조언을 해줘.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하게 얘기해줄 순 없지만, 영화의 후반부 에릭과 그의 친구들이 에릭 칸토나 가면을 쓰고 갱들을 혼내주는 장면은 꽤 통쾌해. 이런저런 고민이 많아 사는 게 재미없는 사람들이 보면 좋을 영화야.
룩 킹 포 에릭과 비슷한 축구영화는 #슈팅라이크베컴 #골시리즈 #킥오프 #비상 #누구에게나찬란한 #승리의탈출 #베른의기적
축구감독이 주인공인
<댐드 유나이티드>
축구 선수나 축구팬을 소재로 한 보통 축구영화와 달리 <댐드 유나이티드>는 브라이언 클러프 축구감독과 그를 보좌했던 수석코치 피터 테일러의 관계를 그린 드라마야. 잉글랜드의 전설적인 스타 감독이자 명장 브라이언 클러프는 2부 리그 중위권 팀이었던 노팅엄 포레스트를 1977년 1부 리그로 승격시킨 뒤, 1977/1978 시즌에는 유럽 최강팀 리버풀을 승점 7점차로 제치고 리그 우승을 차지했어. 그 다음 시즌인 1978/1979와 1979/1980시즌 2년 연속으로 유러피언컵 우승컵(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을 들어 올렸지.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를 재패했던 레스터 시티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보다 더 동화 같은 스토리를 쓴 셈이지. 선수보다 더 고독하고 복잡한 존재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브라이언 클러프의 인간적 고뇌와 모순을 잘 묘사했어. 야구구단 단장이 주인공인 <머니볼>이나 에이전트 세계를 그린 <제리 맥과이어> 같은 영화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거야.
댐드 유나이티드와 비슷한 축구영화는 #비상 #베른의기적 #공간과압박 #승리의탈출
씨네플레이 에디터 펩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