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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리가 영원히 사는 이유는 가족이 있고, 기억이 있기 때문인 거 같아요” 〈3일의 휴가〉 육상효 감독

씨네플레이
〈3일의 휴가〉 (사진 제공=(주)쇼박스)
〈3일의 휴가〉 (사진 제공=(주)쇼박스)

 

죽은 지 3년째 되는 날, ‘복자’(김해숙)는 하늘에서 3일간의 휴가를 받아 지상에 내려온다. 천사 가이드(강기영)가 말하는 규칙은 하나. ‘터치는 절대 금지’. 딸은 엄마를 보거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 미국 명문대 교수인 자랑스러운 딸을 볼 생각에 설레던 마음도 잠시, 돌연 자신이 살던 시골집으로 돌아와 백반 장사를 시작한 딸 ‘진주’(신민아)의 모습에 당황한다. 도대체 딸은 왜 미국 교수직을 뒤로한 채 시골 백반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일까? 왜 딸은 밤에 잠 못 이루고 뛰쳐나가 “엄마, 제발 나 좀 살려줘”라고 외치는 걸까? 단짝 ‘미진’(황보라)이 진주를 찾아오며 엄마와 딸의 전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시작된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사이는 가족, 그중에서도 엄마와 딸의 관계는 더욱 특별하다. 하늘에서 휴가 온 엄마와 엄마의 레시피로 백반집을 운영하는 딸의 이야기를 다룬 <3일의 휴가>는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엄마와 딸 사이의 이야기에 기발한 판타지적 상상력을 결합하는 영리함을 보인다. 어쩌면 한없는 ‘신파’로 흐를 수도 있었던 영화는 <나의 특별한 형제>(2019)로 호평받았던 육상효 감독 특유의 섬세한 연출로 담백해졌다.​

여기에 <7번방의 선물>(각색), <82년생 김지영>(각본) 등 장르를 넘나들며 특유의 따뜻한 시선이 녹아든 작품으로 대중과 소통해온 유영아 작가가 합류해 특별함을 더했다. 유영아 작가는 “내가 죽고 나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을까,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는 나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어 할까를 상상하다가 시나리오를 구상하게 되었다”라며 영화의 출발점을 귀띔했다.​

육상효 감독은 “사람은 모두 태어나면서 누군가의 자식이 된다. 그렇기에 <3일의 휴가>는 자식이라면 누구에게나 다 있었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다룬다”라고 전했다. “올겨울 극장은 대작 3파전인데, <서울의 봄>과 <노량> 그리고 <3일의 휴가>다. 제작비 차이는 조금 나지만, 치열한 각축전을 펼치고 있다!”라며 웃는 육상효 감독을 상암동에 있는 제작사 글뫼 사무실에서 만났다.


〈3일의 휴가〉 육상효 감독. (사진 제공=(주)쇼박스)
〈3일의 휴가〉 육상효 감독. (사진 제공=(주)쇼박스)

세고 자극적인 영화가 넘쳐나는 와중에 오랜만에 관객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줄 영화 <3일의 휴가>를 들고 오셨습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도 오랜만에 개봉을 해서 관객 반응이 궁금하더라고요. 시사회 때 몰래 가거나 극장에 가봤죠. 감독은 자기가 만든 영화에 관객들이 많이 반응해주면 그게 즐겁고 보람인데, 이번에는 울음으로 반응을 많이 해 주시더군요. 지금까지 저는 웃는 반응을 주로 접했는데, <3일의 휴가>로 우시는 관객들이 많다는 걸 확인하고는 아, 감정이 이렇게나 크게 움직이는구나, 큰 감정의 움직임을 만들어냈구나 하는 기분이 들어 보람이 있습니다.​

<3일의 휴가>는 유영아 작가와의 협업으로 화제가 되었는데요. 영화의 출발은 어디였나요?

영화 제작사 글뫼 대표가 유영아 작가 남편입니다. 유 작가가 글뫼의 메인 작가인 셈이죠(웃음). 당시 저는 다른 제작사와 영화를 준비 중이었는데, 유 작가가 시나리오를 보냈어요. 연출 제안이었죠. 감독들에게 가끔 시나리오가 들어옵니다. 아주 유명한 감독에게는 많이 보낼 테고, 정말 좋은 시나리오라면 감독이 직접 하니, 사실 이번 시나리오를 받고 그렇게 큰 기대는 하지 않았어요(웃음).

 그런데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많이 울었 어요. 아내에게도 읽어보라고 했더니 역시나 많이 울더라고요. 코로나 직전이었던 거 같아요. 왜 이 시나리오가 나에게 이렇게 많이 다가왔을까를 생각해 보니, 당시 어머니가 편찮으셨고 또 늦둥이 딸을 낳은 개인적인 사정도 있었던 거 같아요. 늙은 아비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 마음들이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많이 투영되었나 봅니다. 그래서 많이 울었고요. 집사람 역시 같은 마음이었던 거 같아요.

 감독이라면 관객의 마음을 흐드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잖아요. 그것이 웃음이든 눈물이든 스릴러의 긴장이든요. 관객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영화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큰데,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그런 영화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작업을 준비 중이던 다른 회사에서 한 소리 듣긴 했지만, 금방 찍고 오겠다고 말했죠(웃음).

〈3일의 휴가〉  (사진 제공=(주)쇼박스)
〈3일의 휴가〉 (사진 제공=(주)쇼박스)

영화 개봉이 많이 미뤄졌는데, 실제 촬영부터 편집까지 어떻게 진행하셨어요?

​2019년 12월이 촬영 들어가기 직전이라 엄청 바빴어요. 그런데 그달에 어머니께서 큰 수술을 하셔야 했고요. 다행히 수술이 잘 되어서, 12월 말쯤 회복하시는 걸 보고서 이듬해 1월에 정선으로 본격 촬영에 들어갔습니다. 2월에 정선 분량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메밀묵을 사와서 어머니랑 함께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서울은 도토리묵인데 강원도는 메밀묵이 유명하거든요.(웃음)

​봄에는 서울 근교에서 세트촬영을 했고, 또 잔여 분량 촬영도 했죠. 사실 미국 촬영도 계획에 있었어요. 코로나로 모든 대학이 셧다운되면서 결국 못 갔지만요. 글뫼 대표와 촬영하고 어디 놀러 갈지 꿈에 부풀었는데(웃음). 대체지를 물색해서 송도에서 촬영했습니다. 4월에 크랭크업했는데, 이미 극장 상황이 안 좋아서 개봉이 미뤄졌어요. 감정선을 놓치면 안 되니까 얼기설기로라도 후반작업을 마쳤죠. 그러다 이번 겨울에 개봉하게 된 겁니다. 전혀 예상을 못했어요. 사실 어머니가 지난 7월에 돌아가셨어요. 마치 어머니가 주신 마지막 선물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여러 번 울면서 후반작업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개인적인 사정이 겹쳐 <3일의 휴가>에 더욱 애틋함이 크실 것 같네요. 본격적으로 영화 관련 질문을 드려볼게요. 제목에서 드러나듯, 세상을 떠난 엄마가 지상의 딸을 만나는 데 허락된 시간은 단 3일입니다. 엄마와 딸 사이에 수십 년 동안 켜켜이 쌓인 묵은 감정을 떨쳐버리기에 3일은 좀 짧은 시간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더라고요. 3일로 설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좀 늘려볼까 하는 생각도 했죠. 그런데 3일이 그 어떤 경우에도 가장 적합한 시간인 거 같아요. 예수님도 3일 만에 부활하셨고, 장례식도 보통 3일장으로 치르잖아요. 제가 임권택 감독님의 <축제> 각본을 맡았는데, 그때도 3일 동안 일어나는 이야기예요. 추억을 집약시켜서 산 자들이 그 기간 동안 나누는 거죠. 개인적으로는 코로나 기간 동안 끄적이던 시나리오를 책으로 냈는데, 거기에 ‘3장의 구조’라는 부분도 연구해서 넣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3일이란 무언가 기억하고 풀어내기 좋은 시간인 거 같아요. 4일 하면 좋을 거 같지만 좀 늘어져요. <4일의 휴가>라고 하면 좀 이상하잖아요?(웃음)​

그렇게 들리긴 합니다.(웃음)

제가 임권택 감독님을 워낙 존경하는데요. 1년에 한 번씩 인사도 드리러 찾아뵙기도 하고요. 이번에는 건강 문제로 시사회 초대를 못 했어요. 댁으로 가서 이번에 <3일의 휴가> 만들었다고 말씀드렸더니 대뜸 하시는 말씀이 “제목이 좋네”였어요. 너무 좋더라고요. <나의 특별한 형제>를 보셨을 때는 “영화 좋네”라고 아침부터 전화를 주시기도 하셨거든요.​

〈3일의 휴가〉 (사진 제공=(주)쇼박스)
〈3일의 휴가〉 (사진 제공=(주)쇼박스)

딸 진주 역을 맡은 신민아 배우가 새롭게 보일 정도로 배역에 녹아들었더라고요. 어떤 이유로 캐스팅하셨는지, ‘원픽’이셨는지 궁금합니다.

시나리오를 수정할 때는 거의 바뀐 부분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전에 컴퓨터에서 중간 작업할 때 시나리오를 봤어요. 디테일한 부분에서 많이 바뀌었더라고요. 그런 작업을 유 작가와 스태프들과 함께 몇 개월간 한 거니까. 그 과정에서 캐스팅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신민아 배우가 이 영화 이미지에 가장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함께 작업해 본 적도 없는데 말이죠.​

<3일의 휴가>는 시골이 배경입니다. 시골에 서 있는 도시적인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이미지를 신민아 배우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겨울 들판에 툭 서 있을 때 두드러져 보이는 훤칠한 키라는 것도 이미지적으로 제게 중요했고요. 그렇게 캐스팅 제안을 드렸습니다. 하루는 사무실에 들어가는데, 아주 우아한 중년 여성분이 앉아계시더라고요. 인사드렸더니 신민아 배우 회사 대표님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대표가 직접 왔다는 건 한다는 의미니까 엄청 기분이 좋았죠. 그리고 며칠 뒤에 신민아 배우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신민아 배우와의 첫 만남은 어떠셨어요?

​말을 굉장히 조곤조곤하게 하던 게 인상적이었어요. 어쩌면 저한테는 떨리기도 한순간이었던 것이 한 사람의 팬으로서 또 함께 영화 작업할 사람으로서 어렵기도 했고요, 또 남자들이 본능적으로 가지는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공포감도 있었으니까요.(웃음)​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점점 편해지더라고요.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어요. 아, 드디어 신민아 배우와 영화를 찍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촬영하면서는 목소리가 참 좋다고 느꼈어요. <3일의 휴가> 톤에 잘 맞는다는 생각을 했고요. 신민아 배우가 연기를 못한다는 생각은 물론 안 했지만,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연기력이 평가절하되었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연기력이 있는 배우인데도 광고 활동을 많이 하고, 누구나 그를 보면 ‘예쁘다’라는 말을 먼저 하니 연기력 측면이 가려져 있던 거죠. 저는 그 부분을 영화에서 자꾸 드러내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요. 물론 이쁘게도 찍어야 했지만요.(웃음)

〈3일의 휴가〉 (사진 제공=(주)쇼박스)
〈3일의 휴가〉 (사진 제공=(주)쇼박스)

​다 예쁘게 찍혔겠지만, 그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다면요?

​일단 완성된 영화를 기술시사로 보면서 ‘밉지 않게 나와서 신민아 배우에게 혼나지는 않겠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웃음). 제가 일부러 그렇게 찍은 장면이 몇 개 있긴 해요. 커피콩을 볶으면서 냄새를 맡는 장면은 화장품 광고처럼 찍자고 했죠. 배우의 아름다움도 영화의 큰 재산 중 하나니까요. 또 하나는, 엄마의 일기를 혼자 읽는 장면에서 감정에 젖어 천정을 올려다보는 장면이 있는데요. 눈물이 그렁그렁한데 조명을 아래쪽으로 쳐서 눈 부분이 그늘진 거예요. 제가 현장에서 그런 이야기를 잘 안 하는 편인데, 그때는 촬영감독님과 조명감독님께 눈에 조명이 들어가야 한다고 이야기해서 조정해서 다시 찍었습니다. 굉장히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엄마 역을 맡은 김해숙 배우 연기도 과하지 않고 절제된 느낌이더라고요.

​김해숙 선생님이야 원래 연기에 대한 신뢰감이 있는 배우죠. 저의 숙제는 과연 그 신뢰감 있는 연기를 <3일의 휴가>에서는 어떻게 다르게 표현해야 할까였습니다. 도전이었죠. 제가 연기 디렉팅을 할 입장도 아니잖아요. 40년 연기를 하셨으니 저보다 더 잘 아시고요. 이 실력 있는 배우를 이 영화에서 어떻게 사용하고 보여줘야 할까, 이런 측면에서 김해숙 선생님과 대화를 많이 했습니다.

​약간 의견이 달랐던 부분은 코미디 강약조절이었어요. 김해숙 선생님은 대본을 읽고 코미디가 이 영화의 슬픔 밸런스를 잡을 거란 생각을 저보다 강하게 했던 거 같아요. 좀 더 센 걸 해도 되지 않겠냐고 물으시면서 촬영을 굉장히 신나게 하셨죠. 그간 어머니뿐 아니라 많은 역할을 소화했던 공력이 코미디에서는 확실한 코미디로, 진중한 연기에서는 또 확실하게 잡아주니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다만 마당 아궁이에서 24시간 불을 때다 보니 연기 때문에 눈물을 좀 흘리셨어요. 불은 화면에 안 담기니까 연기로 표현해야 했거든요. 눈 따갑다고 하시다가도 카메라만 돌아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확실하게 연기하셨고요.

〈3일의 휴가〉 (사진 제공=(주)쇼박스)
〈3일의 휴가〉 (사진 제공=(주)쇼박스)

보고 나면 눈물을 펑펑 쏟을 것 같은 영화였는데, 실제 그렇게 ‘신파조’를 띄지 않더라고요. 감정선의 기준을 정해두시고 그걸 넘지 않으려 연출에서 굉장히 공을 들이신 것 같은데, 감독님이 생각한 감정선의 표현은 어디까지였는지 궁금합니다.

​유령은 안 보이니까 서로 시선을 교환하는 씬이 없잖아요. 진주는 도도하고 고고한 차가운 여자고, 엄마는 약간 코미디 기조로 갔어요. 영화 후반부의 극적인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렇게 포커스를 맞췄죠. 더 말씀드리면 스포일러가 되니까 여기까지만요. 많은 사람들이 우는 영화를 처음 만들어 봤는데요.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신파일 줄 알았는데 절제했다는 의견도 있고, 아니다 이 영화 완전 신파다 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래서 저도 많이 생각해봤습니다. 대체 신파라는 건 무엇인가부터요.

​감독님께서 연구한 신파란 무엇인가요?

​신파는 한자로는 신파(新派)죠. 새로운 물결이에요. 영어로는 뉴웨이브(New Wave)고 불어로는 누벨바그(Nouvelle Vague)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익숙하던 판소리나 봉산탈춤이 아니라 일본인이 가져온 신기한 연극이 바로 신파극이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신파극은 사라졌지만, 사람들의 감정을 쥐어짜야 하는 것들이 남은 겁니다.

​두 가지 요소가 있어요. 개연성이 없는 슬픈 사건을 넣거나, 과장된 연기를 하는 겁니다. 갑자기 누가 죽어요, 또는 가난한 사람이 갑자기 부자에게 맞아요. 넘어져서 빵이 땅바닥에 굴러요. ‘이거 엄마 갖다 드려야 하는 빵인데’ 라면서요. 그렇게 개연성이 없는 비극적인 사건을 나열하는 게 신파의 첫 요소에요.

​둘째는 배우가 엄청나게 울고 부르짖고, 목소리를 떨어요. 과장된 연기를 하는 거죠. <이수일과 심순애>나 ‘홍도야 우지마라’라는 주제곡으로 유명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같은 영화들이 다 그런 맥락이죠. 과장된 연기와 억지스러운 사건, 이 두 가지가 붙으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신파’라고 규정하는 것 같아요. 미국에서는 ‘눈물을 쥐어짜는 영화’라는 의미에서 ‘tearjerker movie’라고 합니다.

​다시 돌아가서 말씀드리면, 어떤 관객은 절제했다고 하고, 어떤 관객은 신파라고 하는데 신파라고 하는 분들은 많이 우신 분들인 거죠. 그런데 어떻게 울리느냐의 방법에서 신파와 신파가 아닌 영화가 구분되는데, <3일의 휴가>에서는 배우가 과장된 연기를 한 것도 아니고, 개연성 없는 사건이 나오지도 않아요. 그러니 엄밀한 의미에서 신파 영화는 아니죠.

〈3일의 휴가〉 (사진 제공=(주)쇼박스)
〈3일의 휴가〉 (사진 제공=(주)쇼박스)

대단히 논리적으로 연구를 하신 것 같습니다. 이해가 쏙쏙 되네요.

​모든 감독의 꿈은 관객의 마음을 흔드는 겁니다. 그것이 눈물이든 웃음이든 스릴러든요. 그게 없으면 관객이 안 봐요. 감동이란 말도 느낄 감에 움직일 동자를 써서 마음을 움직이는 거잖아요. 영어로도 moving이라고 하듯이요. moving film은 말 그대로 마음을 흔들었다는 거잖아요. 제가 억지스럽게 또는 과장된 방식으로 관객의 마음을 흔들었다고 보지는 않아요. 눈물은 나쁜 게 아니죠. 오히려 제가 제일 무서운 건 관객 아무도 웃지 않고 울지 않는 거예요. 마음을 못 흔든 거니까요.

​현재 한국 사회가 많이 복잡해졌어요. 자기 안에서 일어난 감정을 자신의 삶으로만 소화를 못할 지경이죠. 그게 쌓여서 스트레스나 우울증이 됩니다. 그런데 영화나 소설을 보고 울거나 웃으면서 소화가 되는 겁니다. 관객이 울고 정화되고 개운해져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거죠. 그것이 바로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겠죠. 웃음과 울음 둘 다 좋은 겁니다. 분리할 필요가 없어요. <3일의 휴가>를 본 관객이 많이 울고 정화되고 개운해져서 돌아간다면 그만큼 큰 보람이 감독에게 또 있을까요?

​플래시백이 많다는 반응도 있더라고요.

​시나리오에는 훨씬 많았어요. 덜어낸 것도 있지만 그럼에도 <3일의 휴가>라는 영화는 플래시백을 피할 수 없는 영화죠. 그렇다면 어떻게 더 재미있고 새로운 방식을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그중에 하나가 가이드라는 저승사자였고요. 아이패드를 가지고 다니면서, 자신이 관리하는 인물의 모든 기억을 그 안에 넣어 두고, 필요할 때 꺼내서 보여줄 수도, 지울 수도 있다는 설정이었죠. 이렇게 플래시백을 <3일의 휴가>에서 합법화한 겁니다. 딸의 모습을 보고 답답한 엄마가 이렇게 외치잖아요. “가이드야, 기억 좀 플레이해 봐라”라고요. 오히려 즐기면서 했습니다.​

〈3일의 휴가〉 (사진 제공=(주)쇼박스)
〈3일의 휴가〉 (사진 제공=(주)쇼박스)

감독님은 코미디에 강하신데요, 이번 영화에서는 천사 가이드를 맡은 강기영 배우와 단짝 친구 미진 역을 맡은 황보라 배우가 코미디 부분을 맡아주는 것 같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웃음 포인트를 살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좀 들더라고요. 앞서 말씀하신 김해숙 배우 이야기와 맥이 닿기도 하고요.

​황보라 배우는 코미디에 특화한 배우죠. 평소 생활도 코미디고요. 제가 세상에서 만난 여자 중에 가장 웃긴 사람입니다. 말할 때마다 위태위태해요. 무슨 말을 할지 전혀 예측이 안 되니까, 제 약점을 절대 알려주면 안 될 거 같더라고요. 언제 어디 가서 아무런 제약 없이 이야기할 거 같아서요. 내가 뭐 못 할 말했나 이러면서요.(웃음)

​그런데 아쉬움은 크게 없어요. 일종의 복합적인 드라마라 생각해요. 복합은 일종의 슬픔과 웃음이 공존하는 드라마죠. 저는 그것이 가장 어렵지만, 잘 결합했을 때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방가? 방가!>나 <나의 특별한 형제> 같은 영화를 보면 코미디의 흐름 속에 조금씩 슬픔을 가져옵니다. 둘이 공존해야 시너지가 나고 감정의 전달도 강력해지죠.​

<3일의 휴가>는 슬픔 베이스에 코미디가 끼어들어요. 이럴 때 단점일 수 있는 건 한 감정이 영화를 지배하면 다른 감정이 다칠 수 있다는 거죠. 저는 코미디 요소가 지금보다 더 세면 영화의 톤앤매너가 깨져서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코미디 수위를 너무 세지 않게 넣었던 거죠. 웃긴 플래시백 장면 바로 다음이 빈소라면, 그 밸런스를 조절하는 것이 저에게는 큰 숙제였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 중 하나가 ‘K-집밥’입니다. 스팸 김치찌개와 수제 두부, 잔치국수 등 정성이 가득 담긴 익숙한 요리들이 영화 곳곳에 등장해요. 음식이 나오는 장면은 마치 K-예능의 장면들처럼 보일 정도로 ‘때깔’도 좋고요. 음식 장면을 찍을 때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으신지, 또 현장 분위기는 어땠는지 설명해주세요.

​<기생충> 음식 스태프들이 함께 했어요. 필요한 음식도 만들어주고, 배우에게 요리 방법을 코치하기도 했죠. 음식에 김이 나야 하는 장면을 찍어야 하면 그렇게 만들어주고요. 촬영장에 30% 정도는 있었던 거 같아요. 밥상이 안 예쁘게 나오면 다시 차리기도 했어요.​

예능 화면 같다고 표현하셨지만, 저는 예능처럼 인위적인 조명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음식이 좋게, 맛있게 돋보이도록 음식을 놓는 방식에 신경을 썼고요, 또 친구 집에 가서 먹는 집밥처럼 보이게 하자고 미술 스태프들과 논의를 많이 했습니다. 부감으로 찍는다거나, 극도로 가깝게 들어가는 클로즈업도 지양했고, 국수를 뜰 때 고속촬영을 한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웃음)

〈3일의 휴가〉 (사진 제공=(주)쇼박스)
〈3일의 휴가〉 (사진 제공=(주)쇼박스)

음식이 많이 나오는 영화라, 촬영 현장에서도 맛있게 드셨을 거 같아요

​현장은 힘들지만, 음식 냄새가 나니까 분위기가 좋았죠. 저한테 무만두를 먹어봤냐고 물어보는 분이 있었는데, 안 먹었어요. 저는 현장에서는 1초의 시간도 아끼려고 노력해요. 조금이라도 더 나은 영화를 만들려면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요. 얼마 전 친한 기자가 무만두를 만들어왔길래 그때 먹어봤습니다(웃음).

​강원도 정선에서 촬영하셨는데, 특별히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눈 생각이 제일 먼저 나네요. 눈이 오면 풍경이 이쁠 거라 생각은 했는데, 막상 눈이 올까 하는 걱정도 좀 했거든요. 그런데 카메라 위치에 따라 눈이 있는 곳이 있고, 없는 곳이 있잖아요. 정말 신기했던 게 미술팀이 마치 조정을 하는 것처럼 회상씬을 찍을 때 눈이 내렸고, 현재로 돌아오는 씬에서는 눈이 싹 녹는 겁니다. 화면 구분도 잘 되고, 눈이 알맞게 내리기도 해서 날씨의 신이 우리를 도와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 그리고 비행기 날아가는 장면을 찍은 것도 정말 우연이었어요. 시나리오에는 그냥 하늘을 찍는 씬으로 되어 있었거든요. 찍고 보니 그냥 스틸 사진 같았어요. 하늘의 움직임이 없으니까요. 영화의 다른 장면들과 붙이면 너무 튀는 거예요. 어떡하지 하면서 화장실을 가는데, 갑자기 비행기가 날아가고 있었어요. 얼른 무전기에 대고 빨리 찍으라고 했어요. 다행히 비행기가 좀 오래 날아가 줬어요. 20초쯤?(웃음) 그래서 잘 찍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 또 신민아 배우가 전 스태프에게 털부츠를 선물해줬던 기억도 나네요. 더 추워지면 신어야죠.

​<달마야 서울 가자>(2004), <방가? 방가!>(2010),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2012) 등 초중기 작품들을 보면 ‘코미디’에 능하고 강한 감독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화장>(감독 임권택, 2015)를 각색하시기도 했고, 이후 <나의 특별한 형제>부터는 코미디적 요소가 적어져요. 이번 <3일의 휴가>에서도 코미디적 요소가 조연들에게서 묻어 나오긴 하지만 드라마적 요소가 강해집니다. 뭔가 심경의 변화가 있으셨던 건가요?

여전히 코미디를 좋아해요. 앞으로 코미디 작품 계획도 있고요. 다만 <3일의 휴가> 시나리오를 봤을 때, 코미디가 아니어도 굉장히 시나리오가 좋아서 하게 된 케이스입니다. <나의 특별한 형제> 때도 그랬는데, 이제는 코미디보다는 휴먼드라마로 영역이 조금 넓어졌다고 할까요? 가족드라마, 휴먼드라마로 제 세계가 확장된다고 할 수도 있겠고, 보편적으로 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3일의 휴가〉 (사진 제공=(주)쇼박스)
〈3일의 휴가〉 (사진 제공=(주)쇼박스)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가족’이라는 소재도 감독님께 중요해 보입니다. <나의 특별한 형제>에서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형제의 우애를 이야기하셨다면, 이번 <3일의 휴가>에서는 세상을 떠난 엄마와 그런 엄마를 원망하면서도 그리워하는 딸의 이야기를 하셨어요. ‘가족’이 감독님의 마음을 붙잡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 건지요. 또 감독님께서 생각하는 가족의 의미도 궁금합니다.

​제가 더 이상 젊지 않은 감독이 되면서(웃음), 친구들과의 관계가 엷어지고 가족과의 관계가 강화되는 거 같아요. 특별한 일이 없을 때 전 거의 집에 있어요. 제 주변 또래들을 보면 집에 있기 싫어서 사무실 얻어 나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해가 안 되죠. 집에 내 방이 있는데, 24시간 동안 거기서 술도 마시고 잠도 자도 되고요. 동네도 산책하고 새로 생긴 카페도 가고요. 일산 밤리단길에 젊은 친구들 가는 카페가 많거든요. 도대체 저 아저씨는 뭐 하는 사람인가 궁금해하는 동네사람들도 있고, 경비아저씨도 저한테 물어보지는 못하지만 궁금해했겠죠.

​<3일의 휴가>를 찍고 현관 바깥문에 포스터를 붙였더니, 경비아저씨가 떼고 아파트 게시판에 붙이자고 하시더라고요. 그제야 제가 누군지 아신 겁니다.(웃음) 같은 층에 사는 홍대 교수 출신 화가분은 “영화 잘 봤습니다. 마음으로 보는 영화더군요”라고 인사를 해주셨고요. 고맙더라고요.​

3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지난 7월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저는 확실히 그런 생각을 하는데요. 우리가 태어난 것도 부모님 덕분이고, 죽을 때도 가족뿐이라는 것, 또 죽음 이후에도 가족에게 남아있는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가족과 제주도에서 한 달을 머물렀어요. 작은 콘도를 빌려서요. 그때 삶은 가족의 기억 속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딸과 기억을 많이 만들어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가 떠나시고는 아직 시간이 없어서 여행을 못 갔는데, 영화 홍보 일정이 마무리되면 아들, 딸이랑 어디라도 다녀오려고요. 우리가 영원히 사는 이유는 가족이 있고 기억이 있기 때문인 거 같아요.​

만약 감독님 부모님께서 ‘3일의 휴가’를 나오신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세요? 또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으세요?

글쎄요. 뭐 어머니가 오시면 이 영화 이야기를 할 거 같아요. 개봉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봤다 이런 이야기들…. 부모님 이야기를 하면 감정이 아직 그래서…. 지금 제 주변인에게 금지어가 ‘어머니’거든요. 듣고 싶은 이야기는 뭐 잘했다. 재밌더라. 이렇게 말씀하시겠죠? 영화가 마음에 안 드셔도 칭찬하시겠죠. 재밌다고 하시면서요.

​차기작으로는 무얼 준비 중이신가요?

​아직 구체화한 건 없고요. 요새 감독들은 저뿐 아니라 다들 그럴 거 같은데요. 예전에는 작품 하나를 오랜 기간 준비해 촬영에 들어갔다면, 코로나 이후에는 투자 상황이 좋지 않으니 몇 개를 동시에 준비하는 편이에요. 지난 3년간 써둔 시나리오도 물론 있고요. 같이 이야기하고 있는 영화사들이 있지만, 확실하게 공개하긴 좀 이르네요. 그래도 당연히 200억 짜리 블록버스터는 아니죠(웃음). 중급 규모의 휴먼드라마가 될 텐데 어던 건 코미디가 강하고 어떤 건 드라마가 강할 테고요. 사실 제가 <나의 특별한 형제>를 만든 후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3일의 휴가〉 포스터. (사진 제공=(주)쇼박스)
〈3일의 휴가〉 포스터. (사진 제공=(주)쇼박스)

무엇인가요?

​내가 왜 영화감독을 했는가를 깨달았어요. 처음엔 그냥 재미있을 것 같고, 총각 때니 예쁜 여배우도 많이 볼 수 있을 거 같아서 시작했죠. 저는 그걸 ‘잘못된 욕망’ 또는 ‘헛된 욕망’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는 욕망이죠. 시나리오 쓰기 싫어서 감독이 되었다는 사람도 있는데, 팬대 굴리는 게 싫어서 감독을 하면 안 되거든요. 잘못된 욕망으로 수십 년 영화를 만들었는데, <나의 특별한 형제>를 만들고서 ‘아, 내가 이런 영화를 하려고 감독이 되었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약한 사람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재미있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서 관객에게 전달하는 거죠. 관객 역시 육상효라는 감독에게 그걸 원하고 있고, 그러면 저는 그런 영화를 만들면 되는 감독이란 걸 그때 깨달았어요. <3일의 휴가>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액션이나 스릴러,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감독이 아닌 거죠. 휴먼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그 자리가 제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닌가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3일의 휴가>를 볼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실컷 울고 정화된 마음으로 돌아가서 부모님께 전화 잘 드리고 전화 잘 받으세요! 지인 10명이서 영화를 보고 저를 불러냈어요. 관객 열 명이 어디야 하면서 나갔는데, 이번에는 유난히 부부가 많더라고요. 관객 중에도 부부나 모녀, 가족 단위로 보는 이들이 많고요.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어머니가 요양원에 일주일 전에 들어가셨대요. 영화 보고 많이 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힐링, 위로가 되었다고요. 어머니가 요양원에서 쇠약해져서 자신을 못 알아보더라도 슬퍼하고만 있으면 안 되겠구나, 어머니 속 뜻은 내가 더 즐겁게 웃으며 사는 것이었구나 하는 걸 <3일의 휴가>를 보고 알게 되었다고요. 슬픔에 짓눌리지 마시고요. 부모님은 늘 자식이 행복하게 사는 걸 원하시니까, <3일의 휴가>를 보시고 그런 위안과 위로를 받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