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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씬드로잉] 선을 위한 파괴는 과연 존재하는가 〈오펜하이머〉

成餐尔记者
〈오펜하이머〉 포스터
〈오펜하이머〉 포스터

핵폭탄은 인류 최고의 두뇌가 동원된 인류 최악의 발명품이라 할 수 있다. 발명된 지 80여 년이 지났건만 특정 국가들에게만 소유권이 인정된다는 점에서 모종의 국가적 거래에 의한 담합 요소이기도 하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이후 한 번도 실제로 쓰이지 않았지만, 그 존재 자체만으로 인류 전체에 강력한 위협으로 작용한다. 핵폭탄은 2차대전 이후부터 인류의 존망을 담보로 하는 거대한 상징이 되었다. 


핵폭탄 제조방식으로 만들어진 영화?

핵폭탄의 원리를 발견해 낸 최초의 인물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핵폭탄 발명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 그 무시무시한 위력이 인류를 존폐 위기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직관이 있었던 것이라 알려지는데, 차후 그는 그로 인한 죄책감에 빠져 미국의 프린스턴에서 고요한 말년을 보낸다. 하지만 뒤를 잇는 과학자들이 그 놀라운 발견의 다음 페이지를 그냥 백지로 내버려 둘 리 없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2023)엔 그러한 사실의 명암을 은근슬쩍 흘리듯 암시하는 장면이 있다.

〈오펜하이머〉
〈오펜하이머〉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맡은 킬리언 머피

영화 초반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는 육군 장교 레슬리 그로브스(맷 데이먼)의 천거를 받아 미국의 핵폭탄 개발위원회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그때 오펜하이머는 해군 제독 출신의 원자력위원회 의장 루이스 스트로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소개로 프린스턴에서 아인슈타인(톰 콘티)과 만나게 되는데, 영화 초반에 잠깐 나오는 이 장면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숨기고 있다는 건 마지막에서야 드러난다. 러닝타임 3시간의 절반은 핵폭탄을 만드는 과정에 할애되고, 절반은 종전 후 매카시즘 선풍에 휘말려 소련의 첩자로 몰린 오펜하이머가 청문회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장면으로 채워진다.

프리스턴의 거대한 정원에서 사업가 출신의 야심가 스트로스는 자신이 없는 사이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이 자신에 대한 험담을 나누었다고 여긴다. 오펜하이머에 대한 열등감의 소산(스트로스도 물리학 전공하려 했다)일 수도,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대한 불안감에 의한 망상일 수도 있다. 오펜하이머와 잠시 대화를 나누던 아인슈타인은 스트로스가 아는 체를 하자 무시하고 자리를 뜨는데, 이 사소한 보이는 장면이 영화의 전체 내용을 지배할 정도로 큰 파문을 일으키는 되는 게 핵폭탄의 원리와도 비슷하다 할 수도 있겠다. 


“우리의 몸은 텅 빈 공간이고, 미세한 파동들로 얽혀있죠.”

크리스토퍼 놀란 특유의 시간 역전, 과거의 여러 시간대가 중첩되고 반복되면서 커다란 그림을 마주하게 되는 기법은 이 영화에서 정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대학 시절의 오펜하이머와 핵폭탄 제작 시기, 초췌한 몰골로 청문회에 나온 오펜하이머의 모습이 수시로 교차하는데, 전개 속도가 숨돌릴 틈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산만하기는커녕 외려 더 명확한 초점이 잡히면서 몰입도가 가중된다. 프랙탈이나 양자역학 등 과학 용어를 들이대 설명할 필요는 못 느끼지만, 각각의 입자와 영화적 원소들이 마구 충돌하면서 거대한 핵을 마주하게 되는 방식이 핵폭탄 제조기술을 그대로 재현한 것 같다는 느낌은 분명하다.

영화가 다루는 주제와 형식이 절묘하게 들어맞는다는 건 주제와 형식에 대한 섬려한 통찰에 의해서나 가능한 일이다. 일부러 꿰어 맞춘다고 주제가 형식 안에 녹아 그 자체의 물리적 작동을 자연스럽게 이뤄낼 수는 없다. <오펜하이머>는 핵폭탄에 대한 실제적 이야기이자, 그것과 연관한 사람들의 다종다양한 욕망, 정치적 계산과 인간의 복합적 모순을 다루는 영화이다. 핵폭탄을 개발한 건 인간이지만, 그래서 인간에게 무시무시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존재지만, 결국 핵폭탄보다 더 위협적이고 난해한 공식은 인간들 속에 있다. 영화 초반부, 나중에 자신의 아내가 되는 키티 해리슨(에밀리 블런트)을 처음 만났을 때 오펜하이머는 이런 대화를 나눈다. 

키티가 묻는다. 

“양자역학에 대해 설명해 주실래요? 굉장히 난해하던데.”

오펜하이머의 대답은 이렇다.

“이 유리잔도, 이 술도, 우리의 몸도 전부 대부분 텅 빈 공간이고, 미세한 에너지의 파동들이 서로 얽혀있는 것이죠.”

키티가 또 묻는다.

“무엇에 의해서죠?”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충분히 강해서 인간들로 하여금 물질이 단단하다고 확신하게 만드는 겁니다.” 

라고 대답하며 오펜하이머가 키티와 손을 맞댄다. 

“제 몸이 당신의 몸을 통과하지 못하고 멈추게 만들지요.”


우주 발생 원리, 지구를 위협하다

〈오펜하이머〉
〈오펜하이머〉

양자역학의 기본 원리에 대한 설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일종의 성애적 작업(?)이랄 수 있는 이 대화가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뇌리에 되새겨진다. 양자역학은 ‘빛의 입자이자 파동’이라는 개념으로 자주 정리된다. 알쏭달쏭한 말이지만, 당시로선 획기적인 발견이었다. ‘단단한 물질’이 사실은 ‘텅 빈 공간’이라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우주는 물질의 연쇄작용으로 발생해 물질이 사라지는 것의 반복이다. 이때 ‘발생’과 ‘사라짐’은 직선적 귀결이 아니라 동시적이다. 나타남 자체가 곧 사라짐이고, 사라짐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폭발인 것이다. 핵폭탄은 그러한 우주 발생 원리를 응용해 물질의 밀도를 극대화한 결과물이다. 결국 그것은 현존하는 인간의 삶과 죽음 모두에 관여한다. 

영화는 양자역학의 그러한 원리를 한 인간의 영고성쇠를 통해 반추한다. 오펜하이머는 물리학뿐 아니라 다양한 예술애호가였다. 영국에서 유학 중인 무렵, 오펜하이머는 다양한 동서양 문학과 스트라빈스키, 피카소 등의 예술 작품에 탐닉했다. 그만큼 광대한 상상력을 가진 인물이었으나 수학엔 약점을 보였다(이 역시 아인슈타인과 유사한 특징이다). 이 영화에서 두 번 나오는, 오펜하이머를 얘기할 때 꼭 등장하는 시구가 있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힌두교 3대 경전 중 하나인 『바가바드기타』에 나오는, 파괴의 신 비슈누의 시구다. 선악 개념을 초월한, 우주의 핵심 원리를 짚은 내용인데, 창조와 파괴를 거듭할 수밖에 없는 인류의 운명을 암시한다고도 할 수 있다. 핵폭탄 개발의 중심기지는 인디언 구역이던 로스 앨러모스의 광활한 황야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그곳에 식당과 학교와 연구원들의 가족이 거주할 수 있는 주택까지 건설한 일종의 계획도시처럼 건설되면서 본격화된다. 키티가 처음 그곳을 방문했을 때 툭 던지는 말이 인상적이다. “서부시대로 돌아온 것 같군.” 그 거대한 개척의 요충지에서 결국 핵폭탄의 시범 폭발이 성공한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화염과 빛과 거대한 침묵의 웅성거림. 이 영화에서 가장 황홀한 장면이자 직면한 비극의 서문을 여는 프롤로그와도 같다. 

〈오펜하이머〉
〈오펜하이머〉

“폭탄은 선한 자와 악한 자를 구별하지 않는다”

양자역학이 고대 불교의 교리와 맞닿아 있다는 건 오래된 논란거리다. 그러한 연구는 아직도 지속적이나, 그것을 어떤 물리적 형태로 제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인간은 결국 현세의 질서와 규율, 그리고 거기 기반한 욕망과 정염에 휘둘리다가 한 생을 마감하기 마련이다. 삶과 죽음이 우주의 기본 원리를 그대로 체현한다는 것은 추상적으론 납득 가능하나 그걸 실제로 체험하는 건 어떤 거대한 파괴에 직면했을 때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핵폭탄은 가장 무시무시한 우주적 진리를 물질화한, 인간의 위대한 각성과 무모한 욕망의 양면이다. 

〈핵폭탄을 만든 자가 인간이라는 개별적 핵에 의해 고립되고 발가벗겨지는 당착과 모순의 연쇄. 핵폭탄을 담보로 유지되는 현재의 계산된 평화가 개별 인간들의 삶에도 언제나 작용한다.〉
〈핵폭탄을 만든 자가 인간이라는 개별적 핵에 의해 고립되고 발가벗겨지는 당착과 모순의 연쇄. 핵폭탄을 담보로 유지되는 현재의 계산된 평화가 개별 인간들의 삶에도 언제나 작용한다.〉

영화 초반에 오펜하이머와 한 동료가 논쟁을 벌이다가 이런 말이 나온다. “폭탄은 선한 자와 악한 자를 구별하지 않는다.” 우주 또한 그러하다. 다만 인간이 인간됨을 사수하고 무고한 이에 대한 폭력을 통제하려는 노력만이 가능할 뿐인데, 그 역시 때론 선악 구분을 스스로 뭉개기도 한다. 영화는 오펜하이머가 자신을 둘러싼 인물들에 의해 몰락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핵폭탄을 만든 자가 인간이라는 개별적 핵에 의해 고립되고 발가벗겨지는 당착과 모순의 연쇄. 핵폭탄을 담보로 유지되는 현재의 계산된 평화가 개별 인간들의 삶에도 언제나 작용한다.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핵이 한 개인의 가장 작은 핵심으로 쪼그라들었다가 다시 팽창하는 이야기. 우리는 모두 죽음이자 죽임이고, 스스로 인간의 파괴자다. 선악은 핵 구름처럼 거대하나, 뿌옇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