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릭터 의상을 소화하는 능력으로 볼 때 류준열의 능력치는 월등하다. 같은 사극의 외피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가 앞서 <올빼미>(2022)의 인상적인 맹인 침술사 경수를 연기할 때 스릴러 장르 안에서의 주름 하나 없이 날 서고 정돈되어 긴장감을 주던 옷매무새와는 사뭇 다르게, <외계+인> 시리즈에서 와이어에 매달려 활약하는 무륵의 흩날리는 도포는 구김에도 개의치 않은 듯 편안해서 친근함을 더해준다. 최동훈 감독의 세계 안에서 찾자면, <전우치>(2009)의 강동원의 전우치와 일정 부분 톤을 나눠 갖는 것 같은 캐릭터 같지만, 멋진 매무새로 둔갑술을 부리던 전우치와 꿍꿍이라고는 모르는 얼치기 무륵은 태생부터 역시 달라 보인다.
어느 날 갑자기 몸속에 들어온 ‘요괴’ 탓에 신체적 능력이 월등해지고, 그 탓에 혼란은 가중되어, 자신도 자신을 제어하거나 정의하지 못하는 변화무쌍한 캐릭터. 무륵은 위험에 빠진 지구를 지켜 줄 ‘신검’ 쟁탈전으로 혈안이 된 이안(김태리), 두 신선 흑설(염정아), 청운(조우진), 능파(진선규), 자장(김의성) 같은 이 영화의 시공간을 오가는 여러 캐릭터 중에서 어쩌면 가장 ‘의도가 없는’ 혹은 ‘무해한’ 인물인데, 실상 극이 전개될 때는 어디서든 얽혀서 눈에 밟히는 인물이다. 특히나, 미래에서 온 이안을 보면 저도 모르는 애틋함에 부탁하지도 않은 도움을 주려 스스로를 위기에 빠트리는 로맨티시스트기도 하다.1부의 플롯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2부에서 이안이 단단하게 중심을 잡고 앞장선다면, 무륵은 그 옆에서, ‘알짱거리며’ 코믹과 액션, 멜로 모두를 능수능란하게 수행해 극에 활력을 더해 주는 파트너다. 얼치기인 척하면서 실은, 상당한 재주를 부려야 살아남을 수 있는 이 복합적인 과제를 류준열은 한치 주저함 없이 수행해 낸다. <외계+인 2부>는 배우 류준열의 연기 재능이 증폭되고 입증되는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 낸다.

이제 2부까지 공개가 됐는데요. 최동훈 감독이 얼마 전 기자간담회에서 울컥할 때, 마침 옆에서 어깨를 토닥여 주셨어요. 배우들의 감정도 뭔가 특별했을 것 같아요.
저는 눈물을 모르는 차가운 도시 남자의 이미지를 고수하는 입장이라서 엉뚱한 표정을 지었는데요.(웃음) 감독님은 조금 더 긴장도, 걱정도 많이 하셨던 것 같아요. 그동안 계속 배우들한테 전화해서 녹음해달라 부탁하시고 추가 촬영도 하고 그런 것들이 마음이 쓰이셨을 거예요. 정작 배우들은 괜찮았는데도. 그 시간이 지나고, 배우들이 너무 잘 봤다고 하고 그 마음이 전해지니까 거기에 울컥하셨던 게 아닐까 싶어요. 저에게도 <외계+인> 시리즈는 그 어떤 영화보다도 되게 애정이 많이 가요. ‘387일간의 대장정’이라고 하지만, 그건 촬영 기간일 뿐이고 이미 촬영 1년 전부터 감독님과 작품 이야기하고, 감독님은 그보다 더 먼저 글을 쓰신 거고요. 제가 준비한 작품 중에 가장 오랜 시간을 쓰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애정이 남다르기는 해요.
2부에서 이른바 ‘떡밥’이 회수되고, 비로소 최동훈 감독 영화의 재미가 펼쳐진다는 평이 많은데요. 준열 배우의 소회도 궁금합니다.
우리가 아는 최동훈의 영화는, 앞에 우리가 재밌는 것들을 쫙 펼쳐놓고 궁금증을 자아내는 거잖아요. 이걸 어떻게 수습하려고 하나 궁금한 가운데, 결국 이게 하나로 이야기가 모이면서 결론을 낸단 말이죠. 그런데 이 영화는 시리즈로 나뉘어 있다 보니, 전 오히려 1부, 2부를 같이 개봉하면 어땠을까 싶었어요. 결국에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2부에 다 있는데 이거를 빨리 보여드리지 못하는 거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는데 지금이라도 보여드릴 수 있는 거에 대한 어떤 기쁨이 컸어요. 만감이 교차했던 것 같아요.

스타 배우들의 멀티캐스팅이 구조가 되고, 그 안에서 배우들의 매력을 최대치로 끌어내는 최동훈 방식의 인물 구성은 영화의 활력을 더하고, 관객을 끌어들이는 최동훈표 브랜드로 자리 잡았는데요. 그 ’최동훈 사단’의 일원이 되는 즐거움을 배우로서는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2부까지 완성되고 나서 뿌듯함도 더 커질 것 같은데요.
참 영광스럽다는 말이 웃길 수도 있는 그런 감정이었던 것 같아요. ‘상 받았을 때 어땠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저는 그 상 받았을 때보다도 후보에 올랐을 때 되게 기뻤거든요. 정말 수많은 영화가 나오고 그중에서 수천, 수만 명의 배우가 있는데 그중에서 5명을 뽑은 거잖아요. 그렇다면 이미 저는 뽑힌 거예요. 그 기쁨과 좀 비슷했던 것 같아요. 그 수많은 사람 중에 제게 프러포즈가 온 거잖아요.
아마도 그 자부심은 영화에 대한 고민과 영화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감독과의 작업을 같이 하면서 만들어 갈 때 더 배가될 것 같은데요. 실제 같이 작업을 하면서 보태진 즐거움은 어떤 것이었나요.
감독님이 대본을 쓸 때 작가님하고 당구 치면서 쓴다고 해요. 작품을 쓰자고 할 때 앉아서 같이 고민하는 순간도 있겠지만 감독님은 조금 다른 방법을 쓰는 거죠. 당구는 치면서도 당구에만 열중하지 않고 중간중간 좀 대화도 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으시는 것 같아요. 저도 감독님과 함께 했던 시간을 돌이켜 보면, 보통 미팅이나 리딩 이런 말로 모이는 게 아니라, 그냥 ‘저녁 함께하지’ 하면서 만나서 대화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게 다 영화를 만드는 일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같이 대화한 것들이 반영되었어요. 그런 과정이 재미있었던 지점이었어요.

무륵의 활약도 2부에 들어서 본격화되는데요. 배우 류준열이 발휘할 수 있는 엉뚱한 지점을 가장 극대화한 캐릭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우님에게는 이런 무륵은 어떻게 해석되는 캐릭터였나요.
이 이야기가 나의 어떤 부분과 궤를 같이 할까,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저는 아직도 연기하면서 재능과 노력에 대해서 계속 고민을 하는데요, 개인적으로 재능이 중요하다고 보는 쪽이에요. 재능이라는 것이 노력보다는 낭만이 더 있어 보여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뭔가 하늘이 주신 어떤 것이잖아요. 재능을 믿고 일을 하다가 마주치는 어려움에서 노력을 통해서 극복했을 때, 그리고 막 노력을 했는데 잘 안되다가 어느 순간 번쩍 무언가 떠올라서 됐을 때 이런 순간들이 막 교차하는 게 무륵이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싶어요. 무륵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보자면, 자고 일어났더니 알 수 없는 힘이 몸 안으로 들어왔단 말이죠. 이건 마치 재능과도 같아요. 그런데 이후 스포일러지만 여러 우여곡절 끝에, 재능과 노력이 무륵 안에서 교차하게 되죠. 그렇게 무륵의 성장, 변화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돼요. 저도 지금 해답을 찾고 있어요. 늘 그렇잖아요. 어떨 때는 재능이 많은 것 같으면서도 어떨 때는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요즘 이런 마음으로 많이 싸우고 있어요. 무륵의 매력도 이런 마음에 있는 것 같아요.
2부에서는 이안(김태리)와 무륵의 로맨스도 심화하는데요. 고려시대와 현재를 오가는 두 캐릭터의 관계성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하셨나요.
가장 걱정됐던 게 뭐냐 하면 내가 왜 이안을 만나러 가야 되는지, 신검이 분명히 내 목표였는지, 나 자신을 알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막 고민을 하잖아요. 그런데 사실 그게 그냥 막연한 끌림일 수도 있는 거예요. 결국 운명이라는 점이 중요한데요. 이 운명의 어떤 실타래에 얽힌 것들이 끝에 다다랐을 때는 우리에게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 이 영화는 세상을 구하는 영화고 그렇다면 우리 관객들의 삶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 낭만이 중요했어요. 태리랑 만났을 때도 이런 부분을 많이 이야기 나눴어요. 가령 대사 중에 ‘뜰 앞에 잣나무’ 같은 것을 영화 보면 듣게 되는데요. 그냥 뜰 앞에 잣나무가 있는 거예요. 이게 나의 운명이고 인연이라는 거죠. 어떤 커다란 이유 없이.

그런 끌림, 운명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무륵의 대사 톤도 돋보이는데요. 사극의 말투가 낭만을 배가시킬 재료로 제대로 역할을 하는데요. 어떻게 톤을 잡고 연기했나요.
’뜰 앞의 잣나무’라든가, ‘개울가의 물안개를 잡아보신 적 있소’ 같은 무륵의 대사가 좀 뜬구름 잡는 얘기잖아요. 그런데 이런 것들이 쌓였을 때 오는 낭만이 우리 삶에 꽉 채워졌을 때 오는 기쁨이 있잖아요. 우리가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성취하는 것보다 그냥 문득 산책할 때 오는 낭만이나 이런 것들이 오히려 더 크게 다가오고, 내가 이 맛에 산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 더 많단 말이죠. 이 영화는 좀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정서를 표현하려고 좀 애를 썼어요.
최동훈 감독의 영화들을 보면 할리우드, 홍콩 영화들에서 본 장르적 재미가 충만한데요. 대본 말고도 감독님과 같이 본 작품들, 아이디어를 나누며 대화의 소재로 쓴 영화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확실히 고전 영화들을 많이 봤어요. 이제 패러디냐 오마주냐가 이제 크게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온 것 같아요. 감독님이 영화를 워낙 많이 보시고 추천해 주시니까요. 요즘에 그래서 더 많이 고전 영화를 보고 있어요. 고전에 늘 답이 있죠.

혹시 그 과정에서 무륵의 설정 중 먼저 감독님께 제안하신 부분도 있었나요
제안했다가 반납된 게 너무 많긴 하지만,(웃음) 그래도 감독님이 정말 잘 들어주세요. 여러 의견을 많이 주고받으면서 작업해서 그 부분이 굉장히 마음에 들어요. 그런 호흡이 굉장히 좋았던 현장 같아요.
무륵의 액션은 와이어 액션 분량이 상당히 많았는데요. 현장에서 고충도 컸을 것 같아요.
저는 현장에 출근하면 일단 와이어부터 차요.(웃음) 그렇게 계속하다 보니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수염을 붙이면 촬영 안 할 때는 떼고 그러기도 하는데, 저는 붙인 채로 밥도 먹고 수염이랑 밥 말아서 같이 먹기도 하고.(웃음) 현장에서 이렇게 하는 게 자랑이 되고 이제 추억이 되니까 너무 재밌었던 것 같아요. 남들이 많이 안 해본 거 해본 거라서 너무 좋기는 해요. 가령 ‘블루 스크린에서 연기했을 때 어땠어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요. 사실 저는 큰 차이는 없거든요. 배우들은 상상하는 직업이잖아요. 카페에서 찍어도 촬영 스태프들이나 카메라가 다 있어도 없다고 생각하고 연기하는 것처럼, 다 있다고 생각하고 연기하면 결국 다 똑같거든요. 다만 신뢰의 문제는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하는데 내가 생각한 대로 나올까’, ‘나 혼자 헛수고하고 있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잖아요. 결과가 되게 우스워질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영화를 봤을 때는 제 기대 이상으로 나오면서 기술적인 부분이 정말 많이 발전했다고 느꼈어요. 1부 때와도 전혀 다른 퀄리티가 나왔다 이거죠. 특히 마지막 열차씬은 콘티로 보고 대본으로 봤을 때 이상의 감동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음악까지 더해지니, 정말 대단한 볼거리가 있는 장면이구나 그 생각이 더 커진 것 같아요.

2024년 새해 영화로 관객과 만나는데요. 배우 류준열의 작품이 한국 영화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데 대해 부담과 뿌듯함이 교차할 것 같아요. 30대 후반의 배우 류준열, 지금 위치를 스스로 점검해 본다면요.
최동훈 감독님이 제가 알기로 30살에 데뷔를 하셨고 저도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거든요. 최동훈 감독님이 지금도 작품을 계속하시고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가, 계속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점 같아요. 감독님은 어떤 청개구리 같은 에너지가 있어요. 모두가 영화 주연 배우는 두 명이어야 한다고 했을 때 그럼 ‘난 주인공 5명으로 하겠다’고 해서 만든 게 <범죄의 재구성>(2004)이잖아요. <도둑들>(2012)도 그 정도의 멀티캐스팅을 내세워서 만든 작품은 처음이고요. 거의 10명을 주연으로 내세운 시도였잖아요. 그렇게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해오셨단 말이죠. <외계+인> 시리즈도 그 시도 가운데 하나였던 것 같아요. 한 이야기를 쪼개서 1부, 2부로 개봉하는 시도는 흔히 우리가 얘기하는 도전이랑은 좀 다른 느낌인 것 같아요. 자신의 평판을 고려하지 않고 그런 도전을 할 수 있는 용기는 좀 다른 것 같아요. 그렇게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단 말이죠. 저 역시 이제 꾸준히, 새로운 뭔가를 하자 그런 책임감이 조금씩 들더라고요. 그렇게 해야 관객들도 계속 한국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볼 수 있겠구나. 아직 구체적으로 방법은 찾지 못했지만, 그런 부분에 소명은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아요.
2부를 기다려온 분들에게 관람의 팁을 주신다면요.
감독님이 애쓰신 부분이, 1부를 보지 않고도 2부를 보는 게 가능하도록 작품을 만드셨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보는지는 성격 차이기도 한 것 같은데요. 저 같은 경우는 중간부터 보는 걸 싫어하는 성격인데, 또 누군가는 결론만 알고 싶어 하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2부만으로도 한 편의 영화를 본 것처럼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보셔도 되고, 뭔가 더 내밀하게 느끼고 싶어 그러신 분들은 1부를 먼저 보고 오셔도 될 것 같아요. 분명한 건 “나는 그동안 최동훈 감독 영화를 재밌게 봤어. 그럼, 이 영화도 같은 영화야”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