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관련한 우스갯소리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말은 '밥에 환장한 민족'이다. 언제 한 번 보자라는 말 대신, 언제 밥 한 번 먹자라고 하고 잘 지냈어 묻는 대신 밥은 먹고 다니냐 묻는 그런 사람들. 하여튼 필자도 밥을 참 좋아하는 한국사람인지라, 영국에서 건너온 한 영화를 보면서도 '함께 밥을 먹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최근 개봉한 <나의 올드 오크>를 비롯해 함께 밥 먹는 장면으로 정서를 빚어낸 영화 속 장면을 모았다.
<나의 올드 오크>
먹으며 나누는 슬픔, 그리고 힘
켄 로치 감독의 신작 <나의 올드 오크>는 먹을 것을 무척 중요하게 다룬다. 다만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 '함께 먹는 것'의 중요성을 그린다. 영국 폐광촌에 갑자기 (정부에서 보낸) 시리아 난민들이 정착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함께 먹을 때, 우리는 더 강해진다”라는 표어를 내세운다. 이 표어는 폐광을 막기 위해 광부 노조가 파업할 당시,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밥을 먹으며 의지를 다졌을 때 한 말이다.

표어처럼 '다 같이 모여 밥을 먹는다'는 것도 영화에서 주요하게 다뤄지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은 장면은 TJ(데이브 터너)가 반려견 마라를 잃은 직후 장면이다. 폐광 후 점점 낙후돼가는 마을의 철없는 젊은이들은 도사견을 키운다. TJ가 마라를 데리고 산책하던 중 도사견이 마라를 공격해 죽게 한다. TJ에게 마라는 무척 특별한 반려견이었기에(이 사정은 영화로 직접 만나보자) 마라가 죽고 집에서 몇 날 며칠을 슬픔에 빠져보낸다.
이때 누군가 TJ의 집에 온다. 마음을 가다듬고 문을 연 TJ 앞에 그의 도움을 받았던 야라(에블라 마리)와 야라의 엄마가 있다. 요리를 담은 냄비를 들고 와서는, “먹는 거 볼 때까지 안 간다”고 걱정 섞인 으름장까지 낸다. TJ는 호의를 거절하지 못하고 한 입 한 입 음식을 먹는다. 이제, 조금은 슬픔을 덜어낼 수 있다.
사람이 극단적인 상황에 놓이면 마음이 선행하기 쉽다. 마음이 앞서다 보면 어느새 육체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채 주저앉고 만다. 마음은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가고, 저 멀리 갔을 적엔 육체에게 필요한 걸 챙기는 것도 잊은 채 제멋대로 굴기 십상이다. 야라와 엄마는 밥으로 TJ의 마음을 불러 세웠다. 식사를 한 입씩 밀어 넣으며 육체는 다시 마음의 뒤를 따라갔고, 멈춰 선 마음에게까지 도달했다. <나의 올드 오크>에서 함께 밥을 먹는다는 건, 그렇게 나를 돌아보고 주변 사람을 챙긴다는 '온정'의 기운이 가득하다.

<모가디슈>
한민족의 밥심

근래 한국영화 중 다 같이 밥 먹는 걸 가장 활용한 영화는 단연 <모가디슈>일 것이다. 서로 험악하게 굴던 소말리아 주재 남-북한 공관원들이 내전이 발발한 모가디슈를 탈출한다는 내용의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아무리 실화가 있다고 해도, 90년대 초 남한과 북한 공관원들이 협조한다? 이걸 관객에게 납득시키는 건 “진짜 있었던 일이라니까요?”라고 거듭 주장하는 것 이상의 장치가 필요하다.(특히 이제는 남북한이 한민족이니 통일하자는 의견도 점차 줄고 있는 추세니까)
영화에서 그 설득력을 실은 건 두 대사관 일행이 처음으로 한 끼 식사를 같이 하는 장면이다. 북한 대사관 일행은 안전한 곳을 찾아 남한 대사관으로 왔고, 남한 대사관은 받지 않아도 될 북한 대사관 일행을 받아들인다. 몸수색까지 한 사이가 한 식탁에서 밥을 먹자니 마음 편할 리 없다. 음식에 뭐라도 탔을까 봐, 혹은 남한 측에서 제공한 밥을 먹는 것조차 이적행위일까 봐 북한 일행은 수저를 들지 못한다. 이런 분위기는 한신성(김윤석)이 림용수(허준호)와 밥을 바꿔 먹으면서 풀어진다. 이 잠깐의 시간, 서로 말도 없이 묵묵히 밥을 먹지만 그 사이에 양측 사람들은 문득 깨닫고 있다. 이 사람들도, 사람이구나. 떨어지지 않는 깻잎을 잡아주는 사이처럼 서로 도와야만 해낼 수 있구나.

분위기만 보면 무척 불편한 장면인데도, 가슴 한켠이 먹먹하다. 서로 그렇게 으르렁거렸지만 따지고 보면 조국을 떠나 타지에서 고생하는 건 똑같은데. 서로 책임져야 할 가정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사는 건 피차일반인데. 시끌벅적한 분위기나 유쾌한 대화가 오가는 장면은 아니지만, <모가디슈>의 식사 장면은 침묵 속에 이해와 교류가 담겨있다. 서로 눈치를 보고 감시하는 와중에도 반찬을 내주고, 양보하고, 돕는 이 장면은 휴전이란 위태로운 '공존'이 71년째 지속 중인 한반도 정세가 정말이지 잘 녹아들었다.
<괴물>
잊을 수 없는 마음
밥 먹는 장면하면 빼놓을 수 없는 <괴물>의 명장면. 괴물에게 끌려간 현서(고아성)가 살아있다는 걸 안 강두(송강호) 가족은 한강변에 숨어든다. 수색을 하던 도중 매점에서 끼니를 챙기는 강두 가족 사이로, 현서가 슬그머니 나타난다. 강두 가족은 놀란 기색 하나 없이 현서에서 이것저것 먹이면서 식사를 한다.


환상이라던가 회상이라던가 현재에서 벗어난 장면은 '이건 현실이 아니에요'라고 표시하는 포인트를 넣는 것이 일반적인 영화 문법이다. <괴물>에서의 이 장면은 그래서 인상적이다. 상영 당시 극장에서도 '쟤가 갑자기 왜 나와'라는 분위기가 흐르곤 했는데, 그 뜬금없는 뻔뻔함 덕분에 함께 밥을 먹는다는 일상적인 행위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지금 이 순간, 현서를 걱정하고 어떻게든 되찾고 싶은 가족의 마음이 어떤 특별한 연출 효과를 거치지 않고 고스란히 형상화된다. 감히 말하자면 <괴물>에서 간결하면서 효과적인 연출이지 않을까 싶다.
<시민 케인>
밥이 답은 아니다

이렇게만 보면 꼭 같이 밥 먹는 것이 감정적 해소의 모범답안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다. 이미 80년 전 어떤 천재는 식사 장면을 정반대로 활용한다. 영화 <시민 케인>의 한 장면을 보자.
'로즈버드'라는 유언의 의미를 찾기 위해 찰스 케인의 인생을 되짚는 영화에서 찰스와 에밀리의 관계는 식사 장면 하나로 함축된다. 에밀리에게 호감을 느꼈을 때, 찰스는 에밀리의 식기를 챙겨주며 그 옆에 앉고 에밀리 또한 케인의 건강을 걱정한다. 눈조차 깜빡이지 않을 정도로 서로에게 빠져있는 두 사람,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날카로운 대화가 오가고 나중에는 무심해진다. 이윽고 카메라가 트랙 아웃을 하면 처음과 달리 두 사람의 거리는 테이블만큼 멀어져있다.

영화에서 두 사람의 관계 변화를 보여주는 연출인데, 앞서 말한 '함께 밥을 먹는다'는 맥락에서 보면 새로운 시선을 읽을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건 함께 하는 것도, 식사를 나누는 것도 아니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는 상대에게 어떤 마음을 기울이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처음에는 죽고 못 살 것 같은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두 사람도 마음이 멀어지면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해도 그 분위기는 냉랭할 뿐이다. 서로를 적으로 규정한 사이어도 같은 테이블에서 마음을 쓰면 함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혼밥의 시대가 도래한지 오래 되었지만, 영화 속 한 장면들처럼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하며 나를, 상대를 바라보는 시간을 누릴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