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2일 저녁 영화의전당 야외 상영장에서 드디어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했습니다. 에디터는 <유리정원> 기자시사회를 보기 위해 조금 일찍 이곳을 찾았습니다. 막바지 영화제 준비가 한창이던 이곳은 저녁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제법 축제 분위기가 났는데요. 하루 종일 비가 내려 아마 개막작까지 자리를 지킨 관객들은 추위를 불사하고 이 영화를 보셨을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개막작 <유리정원>이 비오는 날씨와 참 잘 어울리는 영화였다는 것이죠.
과학과 소설이 만들어낸 기이한 이야기 이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포인트는 독특한 설정에 있습니다. 영화는 소설가 지훈(김태훈)이 쓰는 소설 속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그녀의 뼈는 단단한 나무, 육체는 부드럽고 하얀 섬유질로 이루어져 있었고 언제부터인가 그녀의 몸속엔 초록의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판타지의 틈새를 비집고, 기형적인 다리 때문에 절뚝거리며 걷는 현실 속 재연(문근영)이 등장합니다. 재인은 엽록체를 이용한 인공혈액을 연구 중인 과학도 연구원입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믿고 사랑했던 정 교수(서태화)에게 배신당하자 충격적인 실험을 시작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주위를 맴돌며 지훈은 소설적 영감을 얻습니다. 과학자와 소설가, 녹색 피와 빨간 피, 지나칠 정도로 작위적으로 주고받는 대사들, 판타지 그 자체인 유리정원과 삭막함뿐인 현실... 영화는 끊임없이 이질적인 요소들을 섞어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대중적 캐릭터를 벗어난 문근영의 변신 아마도 최초로 '국민 여동생'이란 타이틀이 붙었던 배우였을 것입니다. 아역배우 때부터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문근영이었기에 성인 연기자로의 변신은 혹독했는데요. 오랜만에 복귀작으로 선택한 <유리정원> 속 문근영은 이제까지와 조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유리정원>의 재연은 주로 대중적인 TV 드라마, 영화 속에서 친근한 캐릭터와 비슷하면서도 정반대에 있는 캐릭터였습니다. 숲에서 태어났다고 믿는 어린아이이며 몽환적인 소녀이기도 하지만 현실에서 버림받을 땐 순수했기에 오히려 더 극단의 광기에 다다르기도 하죠.
흥미로운 소재 속에 담아낸 상처 입은 여성의 삶 영화가 끝나고 기자회견에서 신수원 감독은 전작 <마돈나>(2014)를 구상하기 전부터 '소설가 주인공이 세상에서 상처 입은 한 여자를 만나고, 그 여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표절하는' 이야기를 구상했다고 밝혔습니다. 잠시 덮어두고, <마돈나>를 만들던 중 식물인간 여성에 대해 쓰다가 인간과 나무의 형상을 연관시키는 아이디어가 떠올라 다시 <유리정원>의 시나리오를 쓰게 된 것이죠. 평소 루저들의 삶에 관심을 두던 신수원 감독은 상처 입어도 신념에 미쳐 꿋꿋한 여성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무자극적 연출, 호 vs 불호?! 굉장히 흥미로운 소재에 비해 무자극적인 연출은 호불호의 요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세게, 그리고 박진감 있게 표현했을 수도 있을 법한데, 이 영화는 느리고, 아름답습니다. 평범하지 않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사건의 긴장감은 그만큼 감소했습니다. 더 돋보일 수 있는 캐릭터들도 아쉽습니다. 이질적인 장르를 섞어 난해한 느낌이 들기도 하죠. 아마 이 부분에서 관객들의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에디터 개인적으로는 영화 보는 내내 이번 영화제의 또 다른 화제작 <마더!>가 떠올랐습니다. 미스터리한 스토리로 시작해 끊임없이 외부로부터 상처받았던 여성이 강한 의지를 갖게 된다는 점, 이를 자연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것까지. 겹치는 지점들이 눈에 띕니다. 혹시 부산에 계시다면 두 영화를 비교해보아도 좋을 것 같네요! 공교롭게 <마더!>는 10월 19일, <유리정원>은 10월 25일 개봉으로, 곧 극장에도 함께 걸릴 예정입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조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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