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첫 앨범 <빌린 입>과 영화, 연극, 무용, 미술 등 여러 분야의 음악 작업을 발표한 뮤지션 이민휘가 작년 11월 걸출한 새 앨범 <미래의 고향>을 내놓고 여러 공연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싱어송라이터와 음악감독 두 역할로서 단단한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이민휘를 만났다.
요즘 워낙 바쁘시죠? 작년엔 두 번째 솔로 앨범 <미래의 고향>을 비롯해 본인 이름을 내건 작품이 유독 많이 발표된 해라 그런 행보에 의지가 느껴져요.
작업도 하고, 미팅도 계속 있고, 이번 앨범 관련해서도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요. 이렇게 열심히 살 생각이 없는데 연말 연초에 더 그렇게 됐어요. 의지는 사실 제 2집 앨범에 대해서만 있었던 것 같고, 작년에 나온 나머지 앨범들은 전에 했던 작업을 정리해서 낸 것에 가까워요. 앨범 작업하느라 4-5개월은 다른 작업을 쉬어서 영화만 놓고 보면 다른 해보다 오히려 아웃풋이 적어요.
‘만수청'이라는 이름으로 창작 외적인 업무까지 직접 담당하시죠. 회사와 계약하지 않고, 혼자 일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영화나 드라마 음악 제작을 맡을 때 개인사업자가 있는 경우가 흔해요. 다만 제 개인 작업을 할 때는 레이블 없이 하는 게 좋을까, 있는 게 나을까는 아직도 고민 중이긴 해요. 레이블의 콜을 거절하고 혼자 한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아직 콜이 없기도 했어요. 제가 좀 마이크로매니징 하는 게 있어서, 제 작업에 있어서 모든 걸 다 체크하고 컨트롤해야 마음이 편한데, 하다보니 너무 힘들 때가 있어서 레이블이 있어도 좋겠구나 싶기는 했어요. 이번 앨범에 참여한 19명의 현악 주자를 구할 때 특히. 레이블이 아니더라도 올해는 만수청 일을 도와줄 사람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휘이잉> 음악 같은 경우는 홈페이지엔 2021년 12월 작업으로 기재돼 있는데, 하필 2023년 6월에 나왔어요.
OST를 따로 발매하는 게 굉장히 귀찮은 일일 수 있어요. 영화나 드라마가 이미 공개된 후에 마스터링을 다시 하고 앨범의 형태를 갖추도록 다듬어야 하는데, 또 다른 급한 일들을 하다보면 OST를 앨범으로 발매하는 것에 신경을 쓰기는 쉽지 않죠. <박하경 여행기>는 이종필 감독님이 제안을 주셔서 진행하게 되었는데, 이왕 OST 내는 김에 이전 작업들도 정리해서 내보자 해서 같은 시기에 나오게 됐어요. <박하경 여행기>에 비해 <휘이잉>이나 <12월 70일>은 무용 음악이기 때문에 그림 없이 들었을 때 장르적인 허들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런 음악들도 비교적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과 함께 릴리즈 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말씀처럼 <박하경 여행기>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담겼는데, 이 작업을 하면서 느낀 특별한 쾌감 같은 게 있었을까요?
음악감독은 후반 작업자라 현장에 갈 일이 별로 없어요. <박하경 여행기>의 부산 편은 부산국제영화제가 배경인데, 제가 그때 부산국제영화제의 ‘시네마투게더’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돼서 현장에 구경 갔다가 이종필 감독님의 갑작스러운 제안으로 잠깐 출연도 하게 됐어요. 제가 대사를 하고 연기할 때 거기 모인 스태프들이 순간 일시정지하고 조용하게 집중하는 게 음악 녹음할 때랑 비슷하더라고요. 이 많은 사람들이 작업을 잘하겠다고 노력하는 그 순간을 경험하면서 후반 작업자인 저는 화면으로만 보다가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들을 다 보니까 그동안 일할 때 이 사람들을 많이 생각하지는 않았구나 싶었어요. 그 뒤로는 계속 현장의 사람들을 생각하게 돼서 신기했어요. 제가 다른 회차에는 현장에 간 게 아닌데도 모든 작업이 이 촬영팀이 같이 여행을 다니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면서, 크게는 <박하경 여행기> 뿐만 아니라 영화 작업이라는 게 팀 작업이고 이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여행을 가는 거구나 생각했어요.
새 앨범 <미래의 고향>은 오케스트라 편곡 때문에 연주자들이 확 늘어났는데, 녹음할 때도 방금 말씀하신 다수의 사람들이 여기서 함께 무언가를 만든다는 감각이 떠올랐을 것 같아요.
완전히 비슷해요. 디렉션을 주고받는 것도 그렇고. 영화감독님들이 녹음실에 놀러오실 때가 있는데 다들 프로세스가 너무 비슷하다면서 신기해하시더라고요.
홈페이지에 세세하게 정리돼 있는 작업 리스트를 보면 새삼 그간의 근면함에 놀라게 돼요. 솔로 앨범이나 영화음악 작업만 생각했던 것보다 작업이 훨씬 많더라고요. 이런 다작은 ‘창작’과 ‘생활’ 중 어떤 의지가 더 커서일까요? 다른 분들 작업 리스트를 보면 종종 “왜 이런 걸 했지?” 의구심이 드는 경우도 있는데, 이민휘 님 작업엔 작품 하나하나가 의지처럼 느껴졌어요.
“하기 싫은데 돈 벌어야 되니까 일해야지”는 없어요. 오히려 돈이 안 될 것 같은 게 되게 많이 보였죠. (웃음) 서현우 배우님도 같은 얘기를 하더라고요. 제 필모에서 어떤 의지가 느껴진다고. 정신을 놓으면 뭘 했는지 까먹어서 정리를 해놔요.
영화, 연극, 무용, 미술 영상의 음악을 만드는 것은 각자 어떻게 다를까요?
일단 연극은 디벨롭 하는 과정을 봐야 해요. 최근에 정진새 연출의 <신파의 세기>를 작업했는데, 연극이나 무용은 공연이 올라가기 직전까지 연습하면서 발전시키고 변화되기 때문에 다 정리가 된 걸 보고 음악을 만드는 게 시간상 불가능하죠. 음악도 후반 작업이 아닌 작업의 전반적인 과정 안으로 들어가서 변화시킬 수 있어 재미있어요. 연극음악이 현장성을 가지고 디벨롭 된다면, 영화음악은 확실히 후반 작업이고 연출과 시간을 갖고 작업에 대한 해석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에요. 저도 계속 전체적으로 보면서 작업에 대한 해석을 정리할 수 있고요. 미술 영상은 때에 따라 너무 다른 접근법이 가능하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대부분의 미술 작업에서 음악 사용은 굉장히 전략적으로, 특정한 목적을 위해 이루어졌는데요. 때문에 오히려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열어둔 채 작업이 가능하기도 합니다.
대개 영화음악은 완성본을 보고 만들기 때문에 작업 시간이 촉박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혹시 넉넉한 기간에 작업한 작품도 있을까요? 작업 기한의 여유 정도가 만족도에 영향을 많이 미치나요? 공들이는 시간이 긴 만큼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다는 막연한 예상이 들긴 하지만, 정신 없이 만드는 과정이 주는 기묘한 에너지도 무시 못할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대로 공들이는 시간이 길어서 좋은 작업도 있고, 마감이 주는 압박감이 작업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도 합니다. 작업 시간이 아주 넉넉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연출들이 거의 끝의 끝까지 편집을 잡고 있더라고요. 저도 제 작업할 때 그렇기 때문에 이해합니다.
“약은 약사에게, 영화음악은 음악감독에게” 같은 말씀을 하셨는데, 일반적으로 영화음악을 만들지 않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지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음악감독에게 오래 여러 번 요구하면 할수록 좋은 음악이 나온다고 생각하실 때가 있는데 가끔 연출들이 입봉작일 때 혹시 미련이 남을까봐 불안한 마음에 그럴 때가 있습니다.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연출이 못 보는 지점을 음악감독이 볼 때가 있고, 또 계속 보다보면 흐려지고 헷갈릴 때가 있는데 음악감독이 처음 봤을 때의 감이 맞을 때가 있기도 하더라고요. 잘 모르겠을 때는 음악에 관해서는 음악감독의 해석에 기대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물론 연출의 의도와 부합하지 않으면 맞는 지점을 함께 찾아가면서 수정을 해야겠지요.
음악이 장면과 붙는다, 안 붙는다를 판단하는 건 ‘감각’의 영역인가요?
분명히 학습의 영역이 있는데, 축적된 학습에서 알게 되는 게 감각의 영역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여러 작업을 해보고, 음악과 그림이 어떻게 붙는지 10년 넘게 신경 쓰면서 영화를 봐왔으니 벼려진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화 작업 의뢰를 수락하고 거절하는 기준 같은 게 있다면.
당연히 너무 구리면 마음이 동하지 않고요. 아주 잘 맞을 것 같은데 아쉽게 스케줄이 안 맞으면 솔직하게 거절 메일을 쓰는 편입니다. 연출이 하고자 하는 말과 그림이 명확할 때 힘이 생기는데 거기서 감정이 동할 때, 좋은 작업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냥 취향도 있겠죠.
단편 영화와 장편 영화의 스코어 작업은 단순히 곡이 많고 적고의 차이일까요?
호흡이 다르고, 그 호흡을 어떻게 작업에서 녹이는지가 다릅니다. 이 음악이 여기 나오고, 이 주제가 다시 반복되었을 때, 이 톤이 뒤에서, 바로 옆에서 붙을 때 다 다르니 호흡을 잘 생각하면서 작업해야겠지요.
스코어를 만들 때 수월하거나 까다로운 장르나 이야기가 따로 있을까요?
아무래도 제가 영화를 애니메이션보다 가깝게 느끼고 많이 봐서 그런지, 애니메이션이 더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제가 좀 관심이 없는 주제가 나올 때 작업이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박하경 여행기>에서는 감독님께도 솔직히 말씀드렸는데, 제가 빵에 관심이 없어서, 어린 친구가 맛있는 빵을 찾아 떠나는 마음에 동화되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저희 집 식구가 빵을 좋아해서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보면서 도움을 받았어요.
영화음악 중 가사와 보컬이 있는 노래는 솔로 작업과 어떻게 차별점을 두나요?
솔로 작업은 제가 이야기를 만들어서 진행하는 작업이고, 영화음악에서 보컬이 들어가는 음악은 영화의 이야기나 인물의 목소리를 따라가기 때문에 다릅니다. 영화음악에서는 극 중 인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식으로 많이 썼던 것 같아요. 둘 다 목소리가 들어가는 점 외에는 접근 방식이 완전히 다릅니다.
감독님에 따라서 작업하는 데에 차이가 있을까요?
완전 그렇죠. 연출 의도나 캐릭터의 마음 같은 걸 집요하게 얘기를 해야 이해가 가는 작업이 있고, 별말 안 했는데도 서로 잘 알 것 같은 작업도 있어요. 감독이 저에 대해서 얼마나 신뢰가 있는가도 중요하고. 지난 12월 23일 인디스페이스에서 제가 음악을 담당했던 영화/영상 작업들을 상영하는 ‘만수의 모험’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그중 <마음이 가는 길_시 모음>은 최윤 작가가 제게 사운드와 음악을 그냥 알아서 하라고 했던 특이한 작업이었어요. 물론 꼭 들어가야 하는 소리나 구성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톤이나 접근 방식의 자유도는 최대치인 작업이었습니다.

인디스페이스의 프로그램 ‘만수의 모험’의 작품들을 고른 기준은 무엇인가요?
단편부터 보면 송주원 감독의 <12월 70일>은 무용 음악을 처음 해봤던 거니까 무용에 음악을 붙이는 재미를 알게 해준 작업이라 골랐어요. 최윤 작가의 <마음이 가는 길_시 모음>은 마음대로 해보라는 특이한 작업이어서 골랐고. 차재민 작가는 같이 여러 번 작업을 했어요. 사실 감독들이 음악감독이랑 어떻게 소통하는지 되게 어려워하거든요. 음악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해야 되는지 몰라서. 차재민 작가는 그런 이야기를 너무나 정확하게,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해주는 연출이라서 골랐고. 장건재 감독의 <달이 지는 밤>은 음악을 어느 스팟에 놓을지 오랫동안 얘기를 했던 게 재미있어서 골랐어요. <최선의 삶>은 음악 톤도 이전 작업들이랑 다르게 작업한 거 같고, <박하경 여행기>는 음악이 워낙 많이 들어가고 다양하게 들어가서 고른 거죠.
영향을 미친 영화음악으로는 송일곤 감독의 <꽃섬>과 알랭 레네 감독의 <히로시마 내 사랑>을 꼽았어요.
<꽃섬>은 영화 자체도 대학 때 보고 너무 좋아했어요. 영화음악이 그림이랑 붙어서 이런 감동을 주는군, 나도 빨리 커서 송일곤 감독님이랑 작업하고 싶다 생각했는데, 바로 일주일 뒤에 정말 송일곤 감독님의 <오직 그대만> 작업 콜이 온 거예요. 방준석 선생님이 전화하셔서 도와달라고. 아~ 내 인생 잘 풀리려나? 했죠. 그로부터 정확히 10년이 지난 재작년에 송일곤 감독님이 또 연락하셔서 이번엔 광고음악을 같이 하자고 하셨어요. 그때가 제 이삿날이었거든요. 그래서 아 여기 터가 좋나보다, 하고 무슨 작업인지 제대로 물어보지도 않고 한다고 했었어요. (웃음) ‘만수의 모험’ 때 다시 봐도 너무 좋더라고요. 음악도 아주 유려하고. 대사도 요즘 영화들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문학적인 표현이 많고요. 극 중에 현실적이지 않은 부분이 종종 들어가는데, 다시 보니 그런 부분들이 현실과 초현실의 미묘한 경계 사이에서 부담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들어가있는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그런 현실과 조금 떨어져있는 부분들이 오히려 작품에서 나왔을 때 현실에 대한 이해를 넓혀준다는 생각도 들고요.
<히로시마 내 사랑>은 음악이 엄청 좋은데 다시 봐도 또 너무 좋길래 “같이 봅시다” 하게 된 거죠. 곡을 세련되게 썼고, 그 당시의 영화음악들이랑 접근이 달라요. 음악을 그림이랑 이질적으로 쓰거든요. 되게 심각한 장면이라 암울한 음악이 나와야 될 것 같은데, 밝게 쓰고. 그런데 그게 또 이상하진 않고. 라이트모티프(leitmotiv) 역할을 하는 음악들이 있고. 영화음악에 귀를 기울이면 훨씬 재미있게 볼 수 있어요. 볼 때마다 공부가 되는 영화예요.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한 무키무키만만수가 첫 작업일 줄 알았는데 홈페이지를 보면 이전에도 여러 작업이 있더라고요. 한예종 재학 당시에도 어떤 음악을 만들어야겠다는 계획이 있었나요?
제가 뭔가를 계획하고 그대로 움직이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음악학에 나름대로 큰 뜻을 품고 음악 이론을 공부해서 음악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학교에 갔는데 공부 자체는 매우 재미있었지만, 제가 생각했던 것과 학계 분위기가 달라서 이 공부는 학부까지만 해야지 생각했어요. 그 생각이 들자마자 석관동으로 매일 출근하듯이 술 마시러 놀러갔죠. 거기서 신문사도 하고, 동아리도 하고, 영화과 애들이랑 술 마시고, 수업도 듣고 재미있게 지냈어요. 그러면서 영화과 애들이 부탁하는 음악을 만들어주면서 포트폴리오가 쌓였고 그러다보니 지금까지 같은 일을 하게 됐습니다. 사실 저는 고3 때 한예종 음악학과에 가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한예종 같은 곳에 가면 영화 하는 애들이랑 몰려다니면서 술만 마실 것이 뻔하니 작곡 공부를 해서 종합대학에 가라고 하셔서 기대에 맞춰드리고자 종합대학 작곡과 준비도 했거든요. 물론 음악학과에 붙자마자 바로 어머니 죄송합니다, 저는 입시 끝입니다 하고 놀러다녔죠. 근데 되돌아보면 그때 입시 준비하면서 조금 했던 작곡 공부로 용기를 갖고 영화 하는 친구들 작업에 음악을 만들 수 있었던 것, 한예종 가면 어떻게 지낼지 어머니가 정확히 예언하신 것도 좀 신기하기는 해요.
학부에서 그렇게 지내면서 조금씩 포트폴리오가 쌓였고, 어쩌다 만난 달파란 선생님께서 “너 좀 잘하니?” 물어보셔서 “네, 잘합니다!” 약간 뻥튀기로 대답한 뒤에 포트폴리오를 다듬고 가져가서 <고지전>(2011) 팀에 합류하게 되었어요. 장편 경험이 없는 상태에 너무 큰 영화에 들어가서 많이 힘들었죠. 영화음악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일을 처음에 시작할 때 가장 힘든 점은 자기가 어느 정도 양의 일을 어느 정도 기간을 들여서 할 수 있지 가늠할 수가 없다는 점일 거예요. 거기서 오는 두려움이 커요. 이번 주말까지 곡 4개 써봐, 하시면 너무 두렵죠. 그 기간에 그렇게 해 본 적이 없으니 내가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니까. 그런데 이런 큰 기회가 갑자기 찾아왔는데 이걸 충족하지 못하면 난 바보다, 이런 생각과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면서 하게 됐죠. 그런데 초반에 그런 빡센 경험을 하고 나니까 다음이 좀 수월했어요.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조금은 아니까. 그리고 제가 어느 정도 잠을 안 자고 일할 수 있는 사람인지도 경험을 해봤고요. (웃음)
무키무키만만수 앨범의 프로듀서를 맡기도 했던 달파란 음악감독과의 작업 중에 얻었던 영향이나 지혜 같은 게 있을까요?
“항상 모든 걸 다 보여주면 안 된다”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까도까도 깔 게 있는 양파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아닐까 싶어요. 그렇게 해야 오래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알쏭달쏭한 말씀 외에도 작업을 대하시는 태도, 접근 방식 같은 것을 보고 많이 배웠습니다.

무키무키만만수의 앨범 <2012>가 나온 지 햇수로 12년이 됐어요. 그때의 경험이 무엇을 남겼나요?
음악학을 공부하면서 무키무키만만수를 같이 했던 게 많은 도움이 됐어요. 사람들 반응이 즉각적으로 “이것도 음악이냐?” 하고 오면 저는 이론적으로 생각을 다듬을 수가 있었어요. 필드워크 하듯이. 음악에 대한 생각을 다듬기 좋은 경험과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나는 이 음악이 좋은데 왜 좋다고 생각하지, 사람들은 왜 이런 음악을 싫어하지, 그런 음악 일반에 대한 생각도 정리할 수 있었고요.
2015년에 개봉한 <한여름의 판타지아>(장건재 감독)와 <파스카>(안선경 감독)로 본인의 이름을 내걸기 시작했는데, 혼자 하는 작업은 어떤가요?
팀원으로 일하는 것보다 당연히 훨씬 힘들어요. 모든 프로세스가 몇 배의 노력을 들여야 되더라고요. 이 감독이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전체적으로도 파악을 해야 되고 인물에 대해서도 연구를 해야 하고. 그림이 인물이랑 전체적으로 어떻게 붙을지는 팀원으로 일할 때는 깊게 생각 안 했던 것 같은데, 작업을 전체적으로 관장하면서는 호흡을 길게 가져가게 되는 면이 있어요. 당연히 책임감도 커지지만 이 편이 훨씬 재미있어요.

자신의 색깔과 영화의 느낌은 어떻게 밸런스를 맞추세요?
영화음악은 영화가 다 같이 만드는 거란 걸 받아들이지 못하면 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음악 하던 친구들이 영화음악 작업을 시작할 때 가장 힘들어하는 게 자기 색깔대로 만들었는데 수정 요청이 올 때, 그리고 그 요청이 자기가 생각하는 방향이랑 다를 때더라고요. 그 어려움은 영화 작업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오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저도 초반에는 수정 요청이 오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나의 해석과 주장을 관철시키는 데 쓸데없는 힘을 좀 썼던 것 같은데, 점점 말하기보다 듣기를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접근 방식이 이해가 안 되면 계속 물어보고 연출과 합을 맞춰나가게 된 것 같고, 거기서 느끼는 재미도 큽니다.
뉴욕에서 유학하던 2016년 11월에 첫 솔로 앨범 <빌린 입>을 발표하셨죠. 뉴욕 생활이 결과물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나요?
전혀 없어요. 사실 <빌린 입>은 학부 때의 경험으로 만든 거예요. 엄청 묵혔던 걸 정리해서 낸 거죠. 뉴욕에서 되게 힘들었거든요. 학교도 마음에 안 들고, 마음에 맞는 친구들도 별로 없었고. 아, 학교를 싫어하는 친구들이랑은 잘 놀았어요.(웃음) 어쨌든 너무 힘들어서 이럴 거면 아웃풋이라도 있어야겠다 싶었는데, 브루클린 집 뒤에 LP 공장이 있길래 거기서 냈죠.

<빌린 입> 커버 속 남자는 혹시 아버지인가요?
아닙니다. 제가 학부 때 사진 찍는 친구를 만났는데, 그때 저는 누구를 만나면 그 사람을 이기고 싶었거든요. 이기는 게 뭔지도 사실 모르겠고 지금은 안 그런데. (웃음) 어쨌든 그 친구가 사진을 찍으니 사진도 제가 더 잘 찍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카메라도 많이 사고 현상하는 것도 배우고 수업도 듣고 그러다가, 마장동에 가서 사진 과제를 하면서 열심히 찍은 것 중에 주제와 연관해서 쓸 만한 게 있길래 그걸 커버로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다시 그분을 찾아가서 써도 되냐고 여쭸죠. <빌린 입>의 주제가 어떤 관계의 힘듦에서 기인한 게 있는데, 그때 언어적인 것이 힘들었어요. 제가 그 시절에 말을 한 마디도 안 했거든요. 그 사진이 그 주제랑 연관 지어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솔로 앨범 <빌린 입>과 <미래의 고향> 모두 앨범의 제목이 수록곡의 것을 그대로 가져왔어요. 앨범 제목과 노래 제목 중 무엇이 먼저인가요?
작업할 때 큰 질문을 정하고 거기에 대한 답변을 찾는 과정 중에 리서치를 많이 해요. 그다음에 글을 쓰고 그걸 또 어떤 이야기로 엮기 위해서 분류하고, 그렇게 분류한 글들 중에 이 주제와 가장 닿아 있는 덩어리를 타이틀곡으로 만드는 거죠. 보통 곡을 이렇게 저렇게 만들다가 묶어서 앨범 내고 그중에 좋은 걸 타이틀로 정하고 그러잖아요. 저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장편 시나리오 쓰듯이 작업하기 때문에 너무 오래 걸리고 힘들어요.
하필 지금 “우리 세대에게 고향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정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생각나는 사람들의 이야기 같은 게 계속 꽂힐 때가 있잖아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도 그렇고, 영화를 봐도 그렇고, 책을 읽어도 기억에 남는 게 있는데, 저는 그게 ‘고향' 더 정확히는 ‘고향의 부재’라는 주제로 모이더라고요. 외국에서는 계속 불안하던 마음이 외국이라서 그런가보다, 한국에 가면 좀 해소되겠구나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제 친구들도 다 불안해하고.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없어서, 이게 어떤 공통의 정서인가? 돌아갈 곳에 온 건데 이게 돌아갈 곳이 아니었던 거면 우리는 어디로 돌아가야 하나?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김영글 작가가 찍은 커버 사진은 어떻게 고르게 됐나요?
작가가 제 친구예요. 인스타그램에 여행 사진을 올린 게 마음에 들길래 제가 앨범에 써도 되냐고 물어봤어요. 그걸 받아놓은 건 4-5년 된 것 같아요. 외국에 있을 때부터 고향에 대한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때부터 계속 소스를 모은 거죠. 종교도 고향처럼 돌아가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갈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는 곳인데 쓰레기 더미처럼 현실적인 이미지가 같이 있으니 앨범 주제와 결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빌린 입>은 멜로트론과 플루트 사운드가 인상적인 애시드 포크처럼 들렸다면, <미래의 고향>은 오케스트레이션이 두드러지는 재즈 같다는 인상이었어요. 재즈적인 무언가를 만들어야겠다는 뜻이 있었나요?
그런 생각은 전혀 안 했어요. 저는 이야기 중심이기 때문에, 특히 솔로 앨범은. 이야기가 잘 붙을 것 같아서 하다보면 ‘장르가 이렇게 되어버렸네?’ 해요. 중간에 제가 재즈 밴드를 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오케스트라는 이번 앨범의 주제랑 잘 맞을 것 같아서 계속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편성 같은 건 좀 설명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긴 한데… 지금 생각해보면 클래시컬한 접근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보편적인 이야기로 다가가기 쉬운 툴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앨범에 담긴 메시지는 무겁지만 듣기에는 편안하게 느껴져요.
그래서 오히려 더 그렇게 했던 것 같아요. 워낙 암울한 이야기라 따뜻하게 해봐야 하는 걸까? 만들 때 생각을 했던 건 아닌데, 나중에 만들고 들어보니까 제가 그래서 그랬나 싶더라고요.
지난 몇 년 사이 세상은 더 나빠졌다고 생각하세요?
네. 체감하는 ‘안 좋아졌다’도 너무 있고, ‘그래도 좀 좋아질 줄 알았는데?’ 이런 기대가 있었는데 항상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나 그 기대를 와장창 배반하고. 뉴스들 보면 항상 놀랍죠. 계속 후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이 2024년인데? 아직도 장애인들이 저상버스, 지하철 자유롭게 타게 해달라고 외치고 있잖아요. 말이 안 되는 거죠.
<미래의 고향>은 곡마다 세션들이 조금씩 달라요. ‘푸른 꽃’과 ‘무대륙’은 대부분 악기를 혼자 직접 연주했죠.
너무 현실적인 얘기인데… ‘푸른 꽃’은 사실 한승목 씨와 베이스 녹음을 했는데, 그 뒤에 오케스트레이션을 하다보니까 곡이 약간 바뀌었고, 그 사이 승목씨가 군 입대를 해서 제가 베이스를 아예 다시 쳤어요. <빌린 입>에도 ‘깨진 거울’처럼 밴드셋이 훅 나올 때가 있는데, 이번에도 4번 트랙 정도에 (B면으로) 판 뒤집기 전에 환기하는 느낌으로 ‘더티 비치스’(Dirty Beaches) 같은 걸 넣고 싶었거든요. '무대륙'은 '까데호'의 피처링으로 가사가 없는 버전으로 녹음했는데 다 만들고 들어보니까 그 한 곡만 너무 튀는 거예요. 원래 ‘무대륙’이 가사가 있던 곡이라 가사를 다시 살리고 아예 다시 쓰자 해서, 마스터링을 맡길 데드라인이 일주일 정도 남았을 때라 세션 부르고 악보 주고 그럴 시간도 없을 것 같아서 제가 다 했죠. 드럼도 스네어 빌려다가 제 방에서 치고.
한편 ‘정거장’과 ‘감화원’은 베테랑 연주자들이 참여했는데, 그 두 곡도 서로 세션이 달라요.
‘감화원’의 드럼은 손경호 선배님이고, ‘정거장’은 재즈 드러머 송준영 님과 했어요. ‘감화원’은 제가 원하는 드러밍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뭔지는 모르는 채로 송준영 님이랑 녹음을 했다가 재즈 드러밍을 원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 거죠. 팝적인 뉘앙스가 있되 정말 욕심이 하나도 없는 연주를 원했거든요. 요새 어린 친구들은 내가 제일 친다는 걸 보여주는 플레이를 많이 하더라고요. 사실 그러지 않으면 드러머의 존재가 드러나기 어렵기 때문에 그런 것도 이해는 가는데, 그래서 욕심 없는 연주를 하는 드러머를 찾기가 어렵죠. 밴드 ‘얄개들’과 ‘파라솔’의 정원진 씨가 그런 욕심 없는, 팝적인 톤이 있었는데 음악을 쉬고 있어서 못했고. 생각해보니까 손경호 선배님이 계시더라고요. 녹음할 때도 연주할 때도 전체적인 톤을 꼼꼼하게 신경 써주셔서 함께 해서 너무 좋았죠.
‘미래의 고향’ 뮤직비디오는 <절해고도>의 김미영 감독에게 연출을 의뢰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마침 영화 속에서도 절이 나오죠.
작년에 본 가장 인상 깊은 영화가 <절해고도>였어요. 볼 때마다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라서 본 다음에 계속 또 보고 싶더라고요. 사석에서 뵌 적이 있었는데, 언젠가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 기회에 연락드렸는데 흔쾌히 수락해주셨어요. 절은 처음부터 생각했던 곳은 아니었고, 로케이션 과정에서 결정되었습니다.
서로 말 없이 힘들게 산을 올라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어쩌면 클라이맥스 같은 모습이 꽤나 일찍 나옵니다. 그리고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이어집니다. 뮤직비디오의 구성은 온전히 김미영 감독의 아이디어인가요? 이민휘 님의 의견이 반영된 부분은 무엇인가요?
김미영 감독님과 조영천 촬영감독님과 처음부터 함께 논의했어요. ‘미래의 고향’이라는 곡을 쓰게 된 과정과 앨범의 주제를 말씀드리고, 이것들이 너무 직접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영상과 연결되어 있었으면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과 연대를 느낄 수 있되, 수행하는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으면 했는데 잘 반영해주신 것 같아요. 그런 큰 주제나 꼭 들어갔으면 하는 이미지에 대해서는 말씀드렸지만 구체적인 이야기나 공간은 김미영 감독님을 따라갔습니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연출의 생각과 그림에 대한 굳은 믿음이 있다면 시나리오에 대해 의미를 묻지 않고 동선과 대사를 그대로 수행하면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장선 배우님과 이완민 감독님 배우 캐스팅, 조영천 감독님의 촬영, 제가 가지고 있는 슈퍼8 카메라로 8mm 필름 작업하는 것 등은 제가 제안 드렸습니다. 1집의 ‘침묵의 빛' 뮤직비디오도 같은 카메라로 찍었답니다! 모든 크루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빠듯한 일정과 상황 속에서 제가 부탁드리는 것 이상으로 작업을 잘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즐거운 작업이었어요.
이민휘 님과 더불어 장선 배우와 <사랑의 고고학>을 함께 작업했던 이완민 감독이 출연했어요.
이완민 감독님은 종종 영화에 배우로 출연하시기도 하고, 직접 뵈었을 때도 선하신 인상이 기억에 남았었어요. 장선 배우님은 <소통과 거짓말>이라는 영화에서 인상 깊게 본 기억이 있고, 이번에 제가 들어가게 된 작업에서의 연기도 너무 좋아서 부탁드리게 되었는데 정말 바쁘신 와중에 흔쾌히 참여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답니다.
올해 계획에 대해 이야기 해주세요.
중순에는 <미래의 고향> 바이닐이 나올 예정이고요. 극영화, 다큐멘터리, 미술, 드라마 등의 작업에 제 개인 공연들도 여기저기에서 잡혀있습니다. 올해도 후딱 지나가지 않을까 싶어요. 시간 되실 때 천천히 귀 기울여 따라와주시길 바라요. 모두 건강하세요!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