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기사 카테고리

Movie & Entertainment Magazine from KOREA
>영화

〈플랜 75〉〈소풍〉〈살인자ㅇ난감〉이 던지는 안락사, 살인, 죽음의 경계에 관한 질문

김지연기자

*영화 <소풍> <플랜 75> <살인자ㅇ난감>의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안락사와 존엄사, 그리고 죽음에 대한 화두가 유난히도 잦은 요즘이다. 최근, 네덜란드의 전 총리 부부가 동반 안락사를 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02년, 네덜란드는 전 세계 최초로 ‘적극적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적극적 안락사(능동적 안락사)’는 약물 투여 등으로 생명을 중단시키는 방법을 말하며, ‘소극적 안락사(수동적 안락사)’는 환자의 생명 연장 행위를 중단하는 것을 말한다. 소극적 안락사라는 말은 흔히 ‘존엄사’와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는데, 소극적 안락사는 우리나라에서도 연명의료중단(연명치료중단)으로 가능하다.

2002년 네덜란드에서 적극적 안락사가 합법화된 이후 안락사를 택한 사망자는 대부분 암 투병 중인 고령자이지만, 자폐증이나 경계선 인격 장애 등을 가진 20대·30대 정신질환자 역시 포함됐다.

 


설 연휴에 개봉한 영화 <소풍>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생의 마지막까지 함께 하고픈 두 노인의 버디 무비다. 다만 <소풍>은 따뜻한 힐링 영화의 외피에 차가운 노년의 현실을 담아냈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영화의 결말은 두 노인이 스스로 죽음을 택했음을 암시한다. 파킨슨병을 앓는 은심(나문희), 기본적인 생리 현상조차 혼자 해결하지 못하는 금순(김영옥). 그들은 배우자를 잃었고, 이념을 달리하는 자녀들과도 소원해진 상태고, 그들의 고향 마을은 철거되기 직전. 그들에게 서로는 유일하게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존재였기에, 둘은 그들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오르게 하는 곳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와 함께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들의 죽음은 안락사의 형태를 띠지는 않았지만, 은심과 금순은 스스로 안락사를 택한 셈이다.

 


 

<플랜 75>은 노년의 죽음을 보다 거시적인 눈으로 조명한다. 영화가 그리는 근미래 일본에서는 75세가 넘은 사람들이 스스로 안락사를 택할 수 있는 ‘플랜 75’라는 정책을 시행한다. ‘플랜 75’는 많은 노인들에게 환영을 받아 성공적으로 사회에 안착하고, 곧이어 정부는 ‘플랜 65’까지 준비하기에 이른다.

‘플랜 75’에 가입한 노인들은 “언제든지 원하면 절차를 중단할 수 있습니다”라는 상냥한 콜센터 직원의 안내를 받는다. 그들은 10만 엔(약 88만 원)이라는 준비금을 받아 죽기 전까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번거로운 유품 정리 절차나 장례 절차는 국가가 도맡아서 무려 “무료로” 해준다.

 


<살인자ㅇ난감>에 이르면 살인과 안락사는 종이 한 장 차이조차 나지 않는다.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 ‘상대방이 해방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사람의 목숨을 거뒀다고 해서 살인이 정당성을 가질 수 있을까? 과연 ’이타성’과 ‘살인’은 양립 가능한 말일까?

 

최근 공개된 <살인자ㅇ난감>은 ‘정의로운 살인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넷플릭스 시리즈다. 시리즈의 어젠다는 송촌(이희준)과 이탕(최우식)의 대립에서 보다 명확히 드러나는데, 송촌은 이른바 ‘정의로운 살인’을 일삼는 이탕과 그저 연쇄살인마인 자신이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송촌은 연명치료를 받던 장난감(손석구)의 아버지의 호흡기를 떼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데, 송촌이 “고마워해야지, 이놈아. 네 아버지, 살아도 산 게 아닌데. 내가 알아서 편하게 보내준 거지. 어차피 너희도 언제 죽일까 고민했잖아”라고 말하자 장난감은 수긍한다. 평생을 공무원 신분으로 살아가며,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살인을 악한 것으로 규정짓던 장 형사. 사실은 허상에 지나지 않던 선과 악의 경계에서 놀아나던 그의 이름이 ‘장난감’인 이유다.

 


<플랜 75>의 ‘플랜 75’처럼, 신사적인 루트를 따르고 ‘언제든지 중단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75세 이상 노인들의 죽음이 온전히 개인의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개인이 안락사를 당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고 해서 노인들이 죽음으로 내몰리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표면적으로 안락사를 지원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책은 사실 ‘생산성이 떨어지는 사람은 존재 가치가 낮다’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것임을 <플랜 75>는 분명히 한다. 노인들이 살기에 더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보다, 그들을 제거하는 비용이 더욱 싸게, 쉽게 먹힌다는 뜻이다.

<플랜 75>에서 그려지는 사회처럼, 근미래에 정착한 안락사 권장 제도는 (노인들이 죽을 결심을 스스로 했건, 혹은 떠밀려서 했건 간에) 결국 사회가 강요하는 죽음에 지나지 않는다. 표면적으로는 동등해 보이는 두 가지의 선택지가 사실은 한 쪽에 추를 달고 있어 기울어져 있다면?

그도 그럴 것이, ‘플랜 75’를 신청하는 노인들은 히로무(이소무라 하야토)의 삼촌처럼 홀로 근근이 생계를 겨우 이어나가는 사람이거나, 주인공 미치(바이쇼 치에코)처럼 일자리와 삶의 터전을 잃기 직전인 노인이기 때문이다. <소풍>에서 죽음을 택한 두 노인 역시 (경제적 상황은 다소 다를지언정) 사실은 그들의 우정 이외에는 기댈 곳도, 사람도 없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말이다.

 

우리나라의 노인 자살률은 단연 OECD 1등이다(노인뿐만 아니라 많은 연령층이 1등이다). "자식들에게 폐가 될까 봐"라며 자살을 택한 노인들의 소식을 종종 접하곤 한다. 영화건 현실이건, 일부 노인들이 죽음을 택하는 이유는 정말 그만 살고 싶어져서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살 수가 없음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플랜 75’에서 생명을 중단하는 일을 돕는 <플랜 75> 속 이주 여성 마리아(스테파니 아리안)의 상황은 그래서 아이러니하다. 더 살아갈 가치가 있는 존재와 아닌 존재는 누가 구분하는가? 단순히 누군가가 삶을 더 오래 살았다고 해서, 그가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죽음 대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권리는 왜 주어지지 않을까? 안락사를 진정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는 네덜란드 전 총리 부부의 사례와는 달리, 현실에 발을 붙이게 될 안락사 제도는 양면적이라기보다는 암이 더욱 클 것이다. 제도의 폐단에 내몰리는 존재는 대개 벼랑 끝에 선 약자이기 때문이다.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