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개인의 천재성에 기대어 뛰어난 관찰력과 직감으로 사건의 전말을 술술 읊는 모습. 백인 남성에 돈보다는 호기심에 의해 움직이는 전형적인 괴짜 천재 스타일. 하지만 이러한 특징은 아마도, 셜록 홈즈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높다. 탐정의 사전적 정의는 ‘드러나지 않은 사정을 몰래 살펴 알아냄.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으로 셜록뿐만 아니라 수많은 매력적인 탐정 캐릭터가 존재한다. 이번에 탐정계에서 셜록 홈즈와 함께 대표적인 캐릭터로 손꼽히는 필립 말로 영화, <탐정 말로>가 개봉한다. 오랜만의 탐정 영화 개봉을 기념해 대표적인 탐정 캐릭터를 정리해보았다. 당신의 최애 탐정은 누구일까, 댓글로 알려주시길!
셜록 홈즈 - 드라마 <셜록>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는 창조된 캐릭터 중 가장 성공한 캐릭터로, '탐정'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망토 달린 코트와 사냥 모자, 돋보기 모두 셜록 홈즈가 기원이며 특히 돋보기는 ‘찾다'라는 개념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흥미로운 사건에 집착하고 이를 위해서라면 위법도 마다하지 않는 그는 다소 괴팍한 천재로 인식되는데, 일부 그런 모습이 존재하지만 대체적으로는 과묵하고 신사적이었다. 왓슨에게 장난을 친다던가 추리 과정에서 실수를 할 때도 있었기에 완벽한 천재의 인간적인 면모에 모두가 열광했다. 코난 도일은 「셜록 홈즈」 외 소설을 알리고자 「마지막 사건」 편에서 셜록 홈즈를 죽인다. 도일은 전 세계 팬들로부터 항의 편지를 받게 됐는데 그중 일부는 '홈즈를 살려내지 않으면 널 죽이겠다'는 협박까지 적혔고, 심지어는 산책 도중 폭행하기에 이르렀다. 영국 전역에서 추모를 진행했고, 당시 영국 왕세자인 ‘에드워드 7세'까지 셜록 홈즈의 죽음에 반대하자 코난 도일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셜록 홈즈를 부활시켜야 했을 정도.

이렇게 세기의 인기를 누린 셜록 홈즈는 그만의 정체성은 유지한 채 끊임없이 재생산되어 왔는데 그중 현대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BBC 드라마 <셜록>이다. 「셜록 홈즈」 시리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왓슨이 사건 블로그를 운영하며 홍보하기도 하고 사건의 중요한 단서로 iPhone이 등장하기도 한다. 드라마 <셜록>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셜록 홈즈의 성격 묘사다. 원작에서도 다소 괴짜스러운 면모가 있지만 대개는 영국 신사로서 지켜야 할 매너는 지켰는데, 드라마에서는 괴팍하고 공격적인 면모가 강조된다. 말을 아꼈던 원작 셜록과 달리, 드라마 셜록은 자신의 추리를 따라오지 못하는 일반인들에게 ‘멍청하다'고 말하거나 비하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시즌 1의 1화 '분홍색 연구'에서 셜록이 추리를 하는 도중 “이메일을 읽어서 뭐하게?”라며 빈정대는 검시관 앤더슨(조너선 아리스)에게 “속으로만 생각해, 너 때문에 동네 전체 아이큐가 떨어지잖아"라고 응수하는 장면은 그의 낮은 사회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시즌 2의 “난 친구 같은 거 없어" 장면은 한국에서 밈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필립 말로 - 영화 <탐정 말로>

한국에서는 셜록 홈즈보다 덜 알려져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볼 때 필립 말로는 셜록 홈즈와는 또 다른 탐정 이미지의 대표격으로 손꼽힌다.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는 하드보일드 소설의 전설로 불리는데, 그가 창조한 필립 말로 역시 ‘하드보일드 스타일 탐정'이다. 셜록 홈즈가 논리를 기반한 괴짜 천재 스타일 탐정이라면, 필립 말로는 냉소적이면서도 정의감이 살아있는 뒷골목의 하드보일드 탐정으로 중절모에 트렌치코트를 입고, 독한 술을 마시며 때로 감상에 젖어 긴 독백을 읊는다. 특히 시니컬하면서도 감성적인 독백 부분은 후에 탐정 캐릭터의 클리셰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레이먼드 챈들러는 유흥거리였던 추리소설을 문학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는데, 유려한 문장력도 한몫했다. “나는 말쑥하게 차려입은 사립 탐정이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나는 400만 달러짜리를 방문하러 가는 길이었다”라는 독백은 익히 대중이 기대하고 있는 탐정의 비범함보다 직업인으로서 그가 갖고 있는 냉소를 전달한다.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냉소적이었던 그는 나이듦이 주는 시적인 감수성에 젖기도 하는데, 「원점회귀」에 나오는 “거칠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신사답지 않으면 살아갈 자격이 없다.”는 대사는 그야말로 고독한 남자가 내뱉을 수 있는 최고의 대사다.

이번에 개봉하는 <탐정 말로>에서는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재현되는 필립 말로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데, <테이큰> 시리즈의 주인공 리암 니슨이 말로 역을 맡았다. 영화는 필립 말로가 금발의 매력적인 여성 클레어 캐빈디시(다이앤 크루거)로부터 자신의 정부, 니코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으레 탐정 영화가 그렇듯, 사소해 보이는 ‘사람 찾기'에서 시작한 사건은 곧 얼굴이 으깨진 니코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단순한 정부인 줄로만 알았던 니코를 갱단에서도 찾고 있었는데, 그와 함께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세레나'를 찾기 위해서였다. <탐정 말로>는 탐정 필립 말로를 필두로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거칠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39년으로,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한 직후라는 점을 떠올렸을 때 영화는 비참한 세계 속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낼 것인가에 말로의 입을 빌려 이야기한다. 냉소적이고 우울하지만, 그럼에도 정의를 잃지 않았던 필립 말로의 모습은 가장 우울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세대에게 영감을 준다.
에르퀼 푸아로 - 드라마 <명탐정 푸아로>

에르퀼 푸아로는 추리소설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가 창조한 탐정 캐릭터로, 그의 데뷔작인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에서 처음 등장한다. 푸아로는 60대 노인 캐릭터로 그려졌는데 꽤 매력적으로 묘사되었던 이전 탐정 캐릭터와 달리 대머리에 우스꽝스러운 콧수염을 기른 땅딸보 외국인으로 그려진다. 독특한 점은 정리 및 청결에 대한 강박이 있는데 사건에 관련된 것만 아니라면 뭐든 정리하려 든다. 콧수염을 깔끔히 다듬는 것도 그중 하나. 대중적 명성에 크게 연연치 않았던 기존 탐정 캐릭터와 달리 에르퀼 푸아로는 등장할 때 이미 ‘유명한 명탐정'이었는데 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는 회색 뇌세포라는 단어를 자주 썼는데 나중엔 그의 별명이 되었다. 여기서 회색 뇌세포란, 아주 쉽게 말하자면 뇌의 본질로 자신이 매우 똑똑하다는 뜻이다. 그의 추리 스타일은 증거를 수집하고 이를 분석하는 것보다 심리 수사를 통해 자신의 가설을 강화해 나가는 형식이다. 탐문 수사로 증거물을 발견하고 이를 기반해 추리를 시작해나가는 기존의 탐정과는 대조적이다. 「다섯 마리 아기 돼지」편에서 “발자국을 측정하고, 담배 끝을 집어 들고 구부러진 풀잎 따위를 조사할 필요는 없지요. 의자에 앉아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라는 대사를 통해 그의 추리 스타일을 추론할 수 있다.

독특한 외형과 특이한 성격 덕분에 에르퀼 푸아로는 현대에까지도 많은 매체에서 재현하는 캐릭터다. 현재 가장 익숙한 에르퀼 푸아로는 2017년에 개봉한 <오리엔트 특급 살인> 속 케네스 브래너가 연기한 에르퀼 푸아로일 테지만, 역대 최고의 푸아로로 평가받는 건 영국 TV 시리즈 <명탐정 푸아로>의 데이비드 수셰이다. 자신의 캐릭터가 다르게 해석되는 걸 극도로 싫어했던 애거서 크리스티였지만, 애거서 크리스티의 딸이 그에게 “제 어머니는 당신(데이비드 수셰이)의 해석에 기뻐하셨을 거라 생각해요”라며 그의 연기를 극찬했다. 1989년에 방영했지만 여전히 푸아로를 그만큼 잘 표현한 작품이 나오지 않을 정도. 외형뿐만 아니라 런던으로 이주한 프랑스계 벨기에인이라는 캐릭터성도 잘 살렸는데, 특히 프랑스어 특유의 악센트는 완벽하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 실제로 소설을 보고 수셰이의 연기를 보면 상상하던 푸아로 그대로를 구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인 마플 - 드라마 <미스 마플>

애거서 크리스티가 창조한 또 다른 탐정 캐릭터, 제인 마플은 유명한 탐정 캐릭터 중 유일한 여성으로, 온화한 백인 할머니다. 하얗게 샌 머리와 빨간 뺨으로 인상 좋은 이웃집 할머니 같은 외양을 갖고 있지만 연륜에서 오는 통찰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게 특징이다. 가장 인상적인 점은 ‘사건 현장에 가보지도 않고' 사건을 해결한다는 점. 세인트 메리 미드라는 작은 마을 토박이인 그는 오랜 세월 동안 그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을 모두 지켜보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한다. 제인 마플은 그저 의자에 앉아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전달해주는 정보를 수집하고, 과거 사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결론을 도출한다. 셜록 홈즈가 증거와 논리에 기반하여 과학적으로 추리하는 탐정의 전형이라면 제인 마플은 직관과 관계를 통해 맥락을 재구성해내는 탐정이다.

대표적인 미디어로는 영국 드라마 <미스 마플>이 있다. 귀여운 할머니가 탐정이라는 점에서 가볍게 보기 좋은 드라마로, 총 시즌 6까지 나왔다. 시즌 1부터 3까지는 제랄딘 매큐언 배우가, 4부터 6까지는 줄리아 맥켄지 배우가 제인 마플을 연기했는데 두 배우의 캐릭터 표현이 달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제랄딘 매큐언의 마플은 조용하지만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으로 날카로운 감각이 살아있는 반면, 맥켄지의 마플은 보다 친근한 할머니의 행세를 하고 관계자들의 비밀을 파헤친다.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가볍고 밝지만 조금씩 사건이 풀리기보다 한순간에 퍼즐이 완성되는 추리 방식을 따르고 있어 은근히 추리를 따라잡기 버거울 수 있다. (필자는 이해가 안 가 미스 마플의 추리 부분만 돌려보기도 했다.)
브누아 블랑 - 영화 <나이브스 아웃>

마지막으로 소개할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은 유일한 영화 오리지널 캐릭터로 새로운 정통 추리물 영화에 목말라있던 팬들에게 단비 같은 존재였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의 주인공인 브누아 블랑은 이 시대 최후의 사립탐정으로 등장한다. 그는 기존의 명탐정 캐릭터인 셜록 홈즈와 에르퀼 푸아로의 특징을 조금씩 섞은 듯한 캐릭터로 프랑스계 미국인 특유의 영어로 능청스레 자신의 추리 실력을 자랑하는 모습에선 에르퀼 푸아로가, 사건이 없을 땐 엉망진창으로 사는 모습에선 셜록 홈즈의 향이 난다. 그는 ‘이 시대 최후의 사립탐정’으로서의 자부심이 분명한데, <나이브스 아웃>에서 “아무런 편견 없이 사실들을 관찰한 후 포물선의 경로를 밝혀내고 종착점으로 유유히 가보면 진실이 내 발 앞에 떨어집니다”라는 대사로 이를 알 수 있다. 이를 두고 번역가 황석희는 “굉장히 오만한 탐정이다. 어떤 사건이든 100% 진실을 파헤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여준다"며 캐릭터의 매력 포인트를 짚었다.

브누아 블랑이 매력적인 이유는 명탐정인 그가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나이브스 아웃>에서는 피해자 할런의 어머니, 그레이트 나나 와네타를 유일하게 위로해주며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에서는 불가능해보이던 피해자의 복수를 할 수 있는 작은 힌트를 던지기도 한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연기도 캐릭터의 매력을 높이는 요소로, 제임스 본드 이미지가 강했던 그가 이 역을 맡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계 미국인의 영어를 자연스레 구사하며 똑똑하지만 촐싹대는, 하지만 인정 많은 탐정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해내 제임스 본드의 얼굴을 지우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