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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선 꽃놀이 어때요? 봄맞이 꽃놀이 영화

씨네플레이

강원도 속초시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벚꽃 축제 공지가 화제다. 유독 오락가락한 날씨 때문에 벚꽃 축제 기간에 벚꽃이 피지 않자, “하늘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라는 말과 2차 벚꽃 축제를 개최하게 된 것. 예년보다 심한 꽃샘추위와 일조량 부족으로 만개했어야 할 꽃들이 여전히 몽우리 정도에 머물러 있어 여전히 앙상한 3월이다. 꽃구경을 위해 나들이를 떠나도 내비게이션 안에서만 꽃잎이 흩날리고, ‘오늘은 따뜻한가' 싶어 날씨를 검색해봐도 네이버 안에서만 벚꽃이 만개하는 요즘, 진짜 꽃을 어떻게든 보고 싶어졌다. 자그만 개나리가 피기 시작한 지금, 따뜻한 햇살을 즐기며 봄날에 보기 좋은 랜선 꽃놀이 영화를 추천한다. 새로운 기분을 내기 위해 <빅 피쉬>와 같이 흔한 영화는 일부러 제외했으니, 설레는 마음으로 랜선 꽃놀이를 즐겨보자.

 


<플라워 쇼> - 야생화 내음을 맡으며 느끼는 '자연'스러움

<플라워 쇼>는 25세에 최연소로 첼시 플라워쇼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정원  디자이너 메리 레이놀즈의 자서전, 「데어 투 비 와일드」(Dare To Be Wild)를 원작으로 한 영화로, 아일랜드 시골 마을 출신인 메리(에마 그린웰)가 세계 최고의 정원 디자인 박람회 ‘첼시 플라워 쇼’에서 금메달을 수상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낸다. 어쩌면 다소 뻔할 수 있는 시골 소녀의 성공기를 ‘자연’과 ‘자연스러움’이라는 키워드로 색다르게 풀어갔다. 아일랜드 시골 마을에 살던 메리는 어린 시절, 자신이 뛰어놀던 드넓은 자연을 정원에 구현해 자연 그대로를 보존하는 것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겠다는 꿈이 있다. 하지만 인맥도, 학벌도 없던 그는 무작정 유명한 디자이너에게 찾아가 자신을 고용해달라고 하지만, 꿈이 아닌, ‘사업’의 세계에서 정원은 낭만적이지 않았다. 회사에서 이용만 당한 메리는 포트폴리오까지 도둑맞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꿈, ‘플라워 쇼’를 향해 나아간다. 

 

<플라워 쇼>는 자연 고유의 아름다움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옮겼는데, 그 때문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어쩐지 야생화, 들풀 내음이 나는 듯하다. 후원자가 있어야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던 메리는 후원을 요청하기 위해 “요즘 정원은 자연과 동떨어져 있어요. 자연을 보려고 온 세상을 돌아다니면서도 정작 정원은 그렇게 꾸미지 않죠. (중략) 그래서 생명력으로 빛나지 않아요. 어릴 때 뛰어놀며 힘을 얻었던 자연을 사람들은 잊고 있어요”라고 미래의 숲 소속 회원들 앞에서 말한다. 메리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관을 지켜내기 위해 어린 시절 그가 가장 아끼던 산사나무와 야생화로 정원을 디자인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색색의 조명으로 감싸진 인공 정원이 아닌, 야생화 군락과 200년 된 산사나무들로 감싸진 메리의 정원이 드디어 완성된 순간, 스크린은 자연으로 가득 차며 잊고 있던 자연의 편안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베르네 부인의 장미정원> - 영화 내내 펼쳐지는 장미와 인생의 아름다움

대를 이어 장미정원을 운영하는 프랑스 최고의 원예사 에브 베르네(카트린 프로)는 장미에 대한 열정으로 장미 품종 개발부터 원예까지 모두 그의 손으로 일궈내지만 장미 ‘사업가’ 라마르젤(뱅상 드디엔)에 밀려 장미정원까지 잃을 위기에 처한다. 전속직원인 베라(올리비아 코테)와 둘이서 일궈내기엔 더 이상 무리인 상황에서, 베라는 새로운 신입 원예사 3명을 베르네 부인의 장미 정원에 데려온다. 보호관찰 프로그램을 받고 있어 임금이 저렴한 3명은 장미 정원을 보며 ‘마리화나 재배’ 이야기나 하는, 원예에 조금도 관심 없는 인물들이었다. 영화는 사고나 안 치면 다행인 3명을 데리고, 다가올 장미 콩쿠르를 준비하는 베르네 부인의 이야기다. 

 

프랑스 영화라 다소 어렵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코미디 장르답게 쉽고 담백하고 우아하다. 정직하게 장미를 가꿔나가는 과정에서 난해함이 비집고 들어올 틈은 없다. 줄거리는 흔하지만, 결코 흔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지닌 작품으로, 베르네 부인은 꽃이든, 사람이든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는 엄마에게 버려져 범죄의 길을 가게 된 보호관찰 신입 프레드(마넬 풀고)에게서 후각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에게 조향사의 길을 권유한다. 장미들의 결혼이라 불리는 ‘접붙이기’를 통해 새로운 장미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장미의 형태는 예측할 수 없지만 장미의 아름다움만큼은 변하지 않기에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그 장미는, 곧 프레드이기도 하다. 그가 어떤 형태로 자라날지는 모르지만 사람은 그 자체로 아름답기에 자신의 인생에 최선을 다한다. 실제 보드라운 장미에 얼굴을 묻고 향기를 들이켜본 적이 있는지. 화려하고 날카로울 거라 예상했던 장미향은 생각보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햇살을 닮아있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등장하는 풍성한 장미정원을 배경으로, 영화는 ‘아름다운 인생’에 대해 따뜻한 시선으로 이야기한다. 

 


<사랑해도 괜찮아> - 프로방스의 초원 위로 펼쳐지는 무해한 두 남녀의 사랑

프로방스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 이야기만 들어도 어쩐지 가슴이 설렌다. 영화 <사랑해도 괜찮아>는 꽃들이 만개한 프로방스를 주 무대로 두 남녀의 밀고 당기는 이야기를 하나의 명화처럼 그려낸다. 배 과수원을 하며 직접 만든 케이크를 시장에 팔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주인공 루이즈(비르지니 에피라)는 스카이다이빙 사고로 갑작스레 남편이 죽은 이후, 홀로 대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대금 지급을 미루는 조합원과 막대한 빚으로 인해 농장을 처분해야 할 위기에 처한다. 자신의 터전이자 아이들의 보금자리기도 한 농장을 팔고 싶지 않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루이즈는 실수로 피에르(뱅자맹 라베른)를 차로 치게 되고, 그를 집에 들여 간병한다. 

 

따뜻하고 무해하지만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루이즈와 달리, 피에르는 직설적이고 에두르지 못한다. 자폐성 공황장애 환자인 그는 해킹 천재로, 국가기밀을 해킹했다는 혐의로 보호관찰 중인 사람이다. 사랑에 빠진 피에르는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에서 나오는 의미심장한 대사 대신, 해석의 여지없는 직선적인 말을 내뱉는다. 애매한 말이 아닌, 가장 일상적인 언어로 자신의 뜻을 명확히 전하는 피에르의 모습에서, 그리고 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루이즈의 모습에서 관객은 자연스러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일상이 위태롭던 루이즈에게 어떤 말이든 진실되고 안심할 수 있는 피에르가 얼마나 큰 위안으로 다가왔을지 짐작할 수 있다. 프로방스의 드넓은 자연 위로, 관계를 쌓아가는 두 남녀의 소박한 이야기라니. 꽃망이 진 3월(4월이지만 마음만은 3월이라 생각하며)에 봐야 하는 영화다.  

 


<인생 후르츠> - 자연과 함께 영그는 노부부의 일상, 삶

<인생 후르츠>는 87세 히데코 할머니와 90세 슈이치 할아버지의 하루하루를 담은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다. 일본 영화 특유의 느리고 고즈넉한 무드가 살아있는 <인생 후르츠>는 아름다운 노부부의 삶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인생을 대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50년을 함께 살아온 두 사람은 텃밭에서 과일 70종과 채소 50종을 키우며 일상을 착실히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건축 설계 일을 하던 슈이치 할아버지는 ‘고지대의 뉴타운’ 설계 요청을 받고, 자연과 공존하는 마을을 구상하게 된다. 자연의 지형을 살리고, 그 안에서 서로가 연결되어 살아가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90세 할아버지가 다시 못을 집었다. 

 

영화는 여타 슬로 무비와 달리, 두 노부부의 평범한 일상을 느리게 보여주는 것을 넘어 우리가 그저 ‘노인'으로만 바라보고 있던 그들이 갖고 있던 생각과 꿈, 그리고 서로를 존중하는 두 인물의 관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매 순간을 진지하고 충실하게 살아가는 두 사람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이 갖춰야 할 태도를 보여준다. 자연을 존중하는 건축을 꿈꾸는 할아버지와 그의 삶과 가치관을 존중하는 할머니. 두 사람의 하루하루가 모여 인생이 되고, ‘가치관'이라는 건 말로 공표하는 것이 아닌 삶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증명한다. 키키 키린의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리는 내레이션은 영글은 노부부의 인생과 소박한 자연주의를 표현한다.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나뭇잎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여문다. 차근차근 천천히. 인생 후르츠.” 영화의 문을 여는 첫 문장에서 노부부의 일상을 읽는다.

 


<미드소마> - 햇볕 아래 꽃으로도 감춰지지 않는 잔인함

순수하고 푸르른 영상미를 자랑한다. 하지만 이후엔...
순수하고 푸르른 영상미를 자랑한다. 하지만 이후엔...

‘영상미가 아름다운 영화.gif’라는 이름으로 순진한 사람들을 낚는 <미드소마>. 하지만 ‘영상미가 아름답다’는 말이 완전히 거짓이라고 보긴 어렵다. 실제로 <미드소마>의 클립을 보면 스웨덴의 백야 시즌, 드넓은 초원과 새파란 하늘, 맑은 날씨와 화관을 쓰고 흰 옷을 입고 사람들이 춤을 추는 장면이 등장한다. 마치 천국의 단편을 보는 듯한 연출로 아름다운 영상미를 자랑한다. 줄거리도 (매우 거칠게) 요약하자면, 내면의 아픔을 여행으로 극복하고 마지막엔 ‘웃게 되는’ 이야기다. 자연으로 치유하는 힐링 영화의 표본이 아닐 수 없다. 그 과정이 매우 잔혹할 뿐.

 

어떠한 장면이든, 똑같이 밝고 꽃이 만발했다
어떠한 장면이든, 똑같이 밝고 꽃이 만발했다

<미드소마>가 다른 고어 영화보다 유독 잔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앞서 말한 아름다운 영상미 탓이 크다. 일반적인 고어 영화는 어둠이 감춰주는 잔혹함이 있다. 어두운 곳에서 튀기는 피는 어둠에 얼버무려져 자연스럽게 배경에 녹아든다. ‘자, 긴장해’라는 분위기를 풍기면 관객은 자연스레 다음 장면을 예상하고, 방어 태세를 취한다. 그런데 <미드소마>에서는 관객이 대비를 할 틈을 주지 않는다. 잔혹함은 어둠에 숨지 못하고 밝은 햇볕 아래 온전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일반적인 장면과 고어한 장면에 차이를 두지 않고 연출한 덕분에 관객은 감춰지지 못한 잔혹함에 오롯이 노출된다. “낮도 공포처럼 만들고 싶었다”는 아리 애스터 감독의 말처럼, 1년 중 낮이 가장 길다는 스웨덴의 하지 축제를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으로 바꿔, 영화를 보고 난 후 햇볕을 보면 이전처럼 마냥 온화하게 느껴지지 않으니 정신건강을 지키고 싶다면 주의해서 시청하길 권한다. 

 

씨네플레이 객원기자 김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