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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할리우드 배우 전성시대, 떠오르는 혜성 같은 저스틴 민의 필모그래피

김지연기자
사진=저스틴 민 인스타그램 @justinmin
사진=저스틴 민 인스타그램 @justinmin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이주해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님.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이름있는 대학에 간, 그러나 돌연 자신만의 길을 찾겠다며 새로운 분야에 뛰어든 자녀.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핫한 한국계 할리우드 배우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저스틴 민은 캘리포니아 세리토스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던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저스틴 H. 민의 미들네임 ‘H’는 ‘홍기’를 뜻하는데, 그의 한국 이름은 (김저민이 아닌) ‘민홍기’다.

 

전주국제영화제에 참석했을 당시의 저스틴 민. 사진=저스틴 민 인스타그램 @justinmin
전주국제영화제에 참석했을 당시의 저스틴 민. 사진=저스틴 민 인스타그램 @justinmin

저스틴 민은 2012년, 미국의 단편영화 <마이 파더>(My Father)를 찍으며 본격적으로 연기의 길에 들어선다. 그 후 미국 드라마 <CSI: 사이버> 등에서 단역과 조연을 오가며 활동하다 현재 그는 영화의 주연을 맡을 정도로 높은 인지도를 얻으며 활발한 연기를 펼치고 있다. 2020년에는 다니엘 헤니, 노상현 등이 소속된 국내 기획사 에코글로벌그룹과 계약해, 한국 활동에 대한 가능성도 열려있는 상태다. 저스틴 민의 ‘붐’을 맞아, 그의 필모그래피를 정리했다.

 


<엄브렐러 아카데미>(The Umbrella Academy, 2019~2024)

 

〈엄브렐러 아카데미〉
〈엄브렐러 아카데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저스틴 민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작품이다.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초능력을 가진 ‘엄브렐러 아카데미’의 멤버들이 모여 종말을 막기 위해 합심하는 스토리로, 저스틴 민은 엄브렐러 아카데미의 멤버 넘버 6 ‘벤 하그리브스’ 역할을 맡았다.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각 등장인물들의 매력도가 시리즈를 단숨에 정주행하게 만드는 주요한 요소이기도 한데, 저스틴 민이 연기한 벤은 몸에서 촉수가 나오는 능력을 지닌 인물로, 클라우스(로버트 시한)와의 케미가 돋보인다.

 

〈엄브렐러 아카데미〉
〈엄브렐러 아카데미〉

 

벤은 극중 서울에서 태어난 인물이라는 설정으로, 시즌 3에서 저스틴 민은 한국어로 “닥쳐”라는 대사를 뱉기도 했다. 상대역인 라틴계 배우 데이비드 카스타녜다(넘버 2 디에고 역)가 스페인어로 애드리브를 해서, 한국어로 된 욕을 해야 했다고.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올 8월 파이널 시즌인 ‘시즌 4’ 공개를 앞두고 있다. 참고로, 엄브렐러 아카데미의 멤버들은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기도 한데, 정작 <엄브렐러 아카데미> 시즌 1,2에 참여한 스태프들의 90% 이상이 백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에 저스틴 민은 <엄브렐러 아카데미>의 제작진에게 인종의 다양성에 관한 제안 메일을 보냈고, 시즌 3부터는 보다 많은 유색인종이 제작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애프터 양>(After Yang, 2021)

 

〈애프터 양〉
〈애프터 양〉

 

저스틴 민의 첫 장편영화이자, 첫 주연작인 <애프터 양>은 평단의 호평을 받아 단숨에 저스틴 민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작품은 칸영화제의 비경쟁 부문에 초청되기도 하고,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상영되어 저스틴 민이 전주를 찾기도 했다. <애프터 양>은 애플tv+ 시리즈 <파친코>, 영화 <콜롬버스>의 코고나다 감독이 연출과 각본, 편집 모두를 맡은 작품인데, 코고나다 감독 역시 한국계 미국인이기도 하다.

<애프터 양>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SF로, 사람의 모습을 한 안드로이드 로봇 ‘양’이 작동을 멈추자, 그와 함께 살던 가족이 ‘양’의 기억 장치를 발견하고 양의 기억을 탐험하기 시작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 작품은 다양한 맥락에서 읽힐 수 있는데, 영화는 인간성과 인공적인 것에 대한 질문이거나 혹은 인종, 디아스포라에 대한 필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애프터 양〉
〈애프터 양〉

 

이 작품에서 저스틴 민은 안드로이드 ‘양’을 연기했는데, 양은 중국계 인간의 얼굴을 한 ‘문화 테크노’(극 중에서 문화를 알려주는 로봇을 일컫는 말)다. 가족이 양을 구입한 이유는, 그들의 입양아이자 중국계인 딸의 ‘오빠’로 기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사실 양은 중국계로 기능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을 뿐이지 그에게는 뿌리에 관한 진짜 기억이 없다. 예컨대 양은 문화 테크노지만, ‘차’(茶)에 대한 진짜 감정을 느낄 수는 없다. ‘차’ 문화가 중국에서부터 비롯되었고, 그 역사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차에 대한 진실한 감정을 느낄 수는 없는 아이러니. 그것은 저스틴 민 배우 본인의 정체성과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그는 외형적으로는 한국인, 이론적으로는 한국의 역사와 말을 조금은 배운 사람이지만 일생을 미국에서 보낸 인물이다. 그것이 양이라는 중국계 안드로이드가 겪는 혼란과 유사하기에, 저스틴 민은 대사나 행동보다는 침묵으로 양이 겪는 조용한 파고를 표현해낼 수 있었다.

 


<성난 사람들(비프)>(BEEF, 2023)

 

〈성난 사람들〉
〈성난 사람들〉

 

작년 최고의 화제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성난 사람들>(BEEF)은 이성진 감독을 비롯해 스티븐 연(대니 역), 조셉 리(조지 역), 애슐리 박(나오미 역) 등 다수의 한국계 인물이 참여한 작품이다.

<성난 사람들>에서도 저스틴 민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저스틴 민은 소위 ‘샌님’이라고 불리는 ‘에드윈’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그는 (표면적으로는) 모난 곳 하나 없는 선하고 성실한 한국계 미국인 청년이다. 그는 신실한 기독교 신자로 한인과 결혼해서 살고, 찬양팀의 리더를 맡아 남들에게 본보기가 되며, 한인 커뮤니티 내에서 두루두루 호감을 사는 인물이다. 그는 누구에게도 악의는 없지만, 그렇다고 속이 투명하지는 않아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미지수인, 묘한 캐릭터를 연기해냈다.

참고로, 같은 작품에 출연한 애슐리 박과 저스틴 민은 육촌 관계다. 다만, 그들도 이 사실을 알게 된 지는 몇 년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만약 자신들이 연인으로 캐스팅된다면 ‘악몽’같을 것이라고 농담하기도.

 


<완벽하지 않아>(Shortcomings, 2023)

 

〈완벽하지 않아〉
〈완벽하지 않아〉

 

유난히 이 영화를 수치스러워하면서 본 이유는 저스틴 민이 연기하는 ‘다나카 벤’의 모습에서 내 지난 행동들이 겹쳐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완벽하지 않아>는 국내 개봉 대신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는데, 이 작품은 우리에게 배우로 잘 알려진 한국계 미국인 랜들 박의 장편 연출 데뷔작이다.

재밌는 것은, 이 영화에서는 저스틴 민이 일본계 미국인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영화 속, 그가 하는 “나를 다들 한국인으로 알아”라는 대사는 그래서 더욱 재밌는 포인트다. 저스틴 민은 극중 뼛속 깊은 냉소주의자이자 독립영화관 매니저로 일하는 ‘벤’ 역을 맡았는데, 그는 찌질한 듯 평범한 우리 안의 보편적인 자격지심과 패배의식을 현실감 넘치게 그려냈다.

〈완벽하지 않아〉
〈완벽하지 않아〉

 

<완벽하지 않아>의 벤은 영화를 공부하다가 교육이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그만두고, 상업 영화는 자본주의 환상을 정당화하고 미화한다고 보며, 동양인 여성과 데이트하는 백인 남성은 모두 아시안 페티시가 있다고 가정하며, 전 여자친구를 그리워 않는 척하다가 결국에는 그가 사는 곳으로까지 찾아가는, 단지 ‘악한 사람’이라고는 규정할 수 없는 사소하고 평범한 추태를 일삼는 인물이다. 저스틴 민이 선하고 호감이 가는 얼굴로 결점이 있는 인물을 연기할 때, 캐릭터의 매력도는 더욱 배가 된다.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