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도 '만드는' 시대다. 어느 회사의 배급망을 타느냐, 캐스팅이 어떠한가 등 기본적인 정보만으로도 흥행 수치 또한 얼마간 예상도 가능하게 됐다. 하지만 변수는 언제나 느닷 없이 튀어나오는 법. 2017년 가을 극장가가 그렇게 기록될 법하다. <아이 캔 스피크>, <킹스맨: 골든 서클>, <남한산성>의 3강 구도가 될 것이라는 추석영화 흥행 예측을 무참히 깨고 마동석, 윤계상 주연의 <범죄도시>가 최종 승자로 남았다. 청불영화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재미있다'는 입소문만으로 700만 고지를 목전에 둔 상황이다. 한편 블럼하우스 제작의 호러코미디 <해피 데스데이> 역시 <토르: 라그나로크>의 인기가 시들해진 틈을 타 며칠 간 박스오피스 점령했고, 지금(11월 19일 현재)도 <저스티스 리그>에 이어 2위를 지키고 있다. 두 영화처럼 많은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관객들의 입소문으로 '역주행'에 성공한 사례를 정리했다.


워낭소리

개봉 2009년 1월 15일
관객수 296만

어느 누구도 다큐멘터리, 그것도 독립영화 신에서 제작된 다큐멘터리가 300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끌어모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더군다나 영화가 기록하는 대상은, 저명한 셀러브리티도 아닌, 40살을 넘긴 소와 팔순의 노인 부부였다. 6개 극장, 30번 남짓의 상영횟수로 개봉주를 시작한 <워낭소리>는 순전히 입소문만으로 개봉 33일 차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45일 차인 2월 28일엔 274개의 상영관을 확보하며 200만 관객의 허들을 넘었다. 8년이 지난 지금 봐도 경이로운 사례다.

워낭소리

감독 이충렬

출연 최원균, 이삼순, 최노인의 소

개봉 2008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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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개봉 2014년 3월 20일
관객수 77만

화려한 캐스팅, 시선을 사로잡는 예쁜 비주얼, 탄탄한 구성과 가벼운 톤의 서사 등 웨스 앤더슨은 한국에서도 폭넓은 인기를 구가하는 시네아스트로 이름나 있다. <판타스틱 Mr. 폭스>는 2만, <문라이즈 킹덤>는 3만 관객을 동원하며 '다양성영화'로서 괜찮은 흥행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초장부터 전작의 기록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개봉 3일이 채 되기 전에 <문라이즈 킹덤> 관객수를 넘어서면서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더니만 최종 스코어 77만을 기록하며 다양성영화군의 대박 사례로 남았다. 영화 좀 만든다는 감독들뿐만 아니라 패션/문화계 전반에서 이 아름다운 영화를 격찬했다는 것이 흥행 요인으로 손꼽힌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감독 웨스 앤더슨

출연 시얼샤 로넌, 랄프 파인즈, 틸다 스윈튼, 애드리언 브로디, 윌렘 대포, 토니 레볼로리

개봉 2014 독일,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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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긴 어게인

개봉 2014년 8월 13일
관객수 343만

2014년 여름은 <명량>,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등 대작 한국영화들이 극장가를 점령하던 시기다. 그 틈바구니에서 <비긴 어게인>은 박스오피스 8위로 데뷔했다. 첫 주 180개 이상의 스크린에서 개봉한 영화치곤 소소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2주차부터 점점 치고 올라가기 시작해 한 달간 순위권에 머무르더니만 근 3주 동안 2위를 지키는 진풍경까지 보여줬다. 2007년 <원스>로 이미 음악영화의 저력을 보여준 바 있는 존 카니의 작품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최종 관객 343만을 기록하며 다양성 영화 최고 흥행작(2014년 기준)으로 남...을 뻔했다. 다음에 소개할 이 영화가 등장하기 전까지.

비긴 어게인

감독 존 카니

출연 키이라 나이틀리, 마크 러팔로, 헤일리 스테인펠드, 애덤 리바인

개봉 2013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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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개봉 2014년 11월 27일
관객수 480만

농촌을 배경으로, 노인을 주인공으로 삼은 다큐멘터리라는 점에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여러모로 <워낭소리>와 겹쳐 보인다. 경이로운 흥행을 기록을 했다는 점도 마찬가지. 다만 <워낭소리>와 달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CGV아트하우스의 배급을 타고 200개에 육박하는 극장에서 상영을 시작했다. 개봉 이후 노부부의 절절하고 순수한 사랑을 보여준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3주차부터 차트 선두를 점했다. 다양성 영화 최고 관객수인 '480만 명'은 3년이 지난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감독 진모영

출연 조병만, 강계열

개봉 2014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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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쉬

개봉 2015년 3월 12일
관객수 약 159만

<위플래쉬>는 개봉 한 달째에 접어든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의 흥행가도가 점점 시들어가던 2015년 3월 중순 대중에게 공개됐다. 할리우드 대작도 아닌 데다가 티켓파워가 큰 배우도 없어 첫 주말 4위에 그쳤지만, 순전히 영화가 전하는 광적인 힘만으로 화제를 모으며 2주차에 1위로 껑충 올라섰다. 미국, 영국 다음으로 큰 성공을 거둔 <위플래쉬>에 대해 많은 이들이 플랫처(J.K. 시몬스) 선생의 싸이코 같은 방식이 한국인의 스파르타 교육관에 닿았던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데이미언 셔젤은 다음 작품 <라라랜드>로 다시 한번 한국에서 사랑받는 감독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위플래쉬

감독 데이미언 셔젤

출연 마일즈 텔러, J.K. 시몬스

개봉 2014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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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아웃

개봉 2015년 7월 9일
관객수 약 497만

한국은 유독 애니메이션이 힘을 못 쓰는 시장이다. 현지에서 떠들썩한 인기를 구가한 작품도 한국에선 1위를 놓치는 게 부지기수다. <인사이드 아웃>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연평해전>,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손님>에 밀려 4위로 데뷔했다. 그러나 주말에 극장을 찾는 아이들에게 크게 어필하는 애니메이션답게 금세 2위로 올라섰고, 감정을 의인화한 독특한 설정이 성인 관객의 흥미까지 제대로 자극하면서 2주차가 채 되기 전에 1위 자리를 빼앗았다. 개봉 전부터 천만 돌파를 점치던 <암살>에 밀려 1위를 내준 후에도 꾸준히 상위권을 지키며 500만에 근접한 관객을 만났다. 픽사 애니메이션 중 한국 최고 흥행작으로 등극했다.

인사이드 아웃

감독 피트 닥터

출연 다이안 레인, 에이미 포엘러, 카일 맥라클란, 민디 캘링, 빌 헤이더, 케이틀린 디아스, 루이스 블랙, 필리스 스미스

개봉 2015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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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개봉 2015년 9월 24일
관객수 약 361만

<인턴> 역시 앞서 소개한 영화들과 비슷한 패턴으로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개봉 첫 날 4위에서 출발해 주말 지나 2위, 수일 내로 선두가 되는 리듬 말이다. <인턴>은 2주 넘게 1위를 수성하던 <사도>를 끌어내리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노년 남성이 인턴으로 들어와 손뻘의 CEO와 지혜를 공유하며 그의 성장을 북돋는다는 이야기가 다양한 관객층의 흥미를 두루 자극한 걸로 보인다. 몇 주 후 개봉한 <마션>과 함께 '쌍끌이 흥행'으로 언급되기도.

인턴

감독 낸시 마이어스

출연 로버트 드 니로, 앤 해서웨이

개봉 2015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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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토피아
    
개봉 2016년 2월 17일
관객수 약 470만

<주토피아>의 역주행은 그 양상이 좀 독특했다. 4위로 데뷔해 한 달 가까이 2~4위를 맴돌다가 결국 1위를 차지하는 기현상을 보여줬다. 영화 자체가 재미있다는 것보다 더빙판의 성우들 연기력에 대한 칭찬이 입소문의 힘을 발휘했다. 주디 역의 전해리 성우, 닉 역의 정재헌 성우의 케미스트리가 만든 두 캐릭터 사이의 달달함이 SNS를 통해 널리 퍼졌다. 아이들보다 성인 관객이 더 좋아할 만한 이야기라는 점도 보탬이 됐을 터.

주토피아

감독 바이론 하워드, 리치 무어

출연 지니퍼 굿윈, 제이슨 베이트먼, 샤키라, 알란 터딕, 이드리스 엘바, J.K. 시몬스

개봉 2016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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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개봉 2016년 2월 17일
관객수 117만

<주토피아>가 역주행 러시를 보여주는 사이, 흑백의 한국영화 한 편 역시 조용한 저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윤동주 시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동주>가 바로 그것. 저예산으로 제작됐고 어두운 이야기의 역사물이라는 난점이 있었지만, 강하늘과 박정민의 단정한 연기를 통해 전달된 청년 예술가의 고난이 결국 대중의 마음을 흔들었다. 차트 4위 이상에는 오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 117만이라는 유의미한 성과를 기록했다.

동주

감독 이준익

출연 강하늘, 박정민, 김인우

개봉 2015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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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개봉 2016년 2월 24일
관객수 약 359만

'역주행'은 2016년 2월 극장가를 정리하는 키워드다. <주토피아>, <동주>에 이어 일본군 위안부의 아픈 역사를 조명한 <귀향> 역시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흥행작'이 됐다. 지명도가 거의 전무한 캐스팅, 적은 예산, 중소배급사 등 여러 악조건을 갖췄지만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모금한 12억원을 보태 가까스로 많은 관객들을 맞이할 조건을 갖췄다. 펀딩에 참여한 7만5270명의 바람이 닿았던 걸까. <데드풀>, <주토피아>보다 적은 스크린에 걸렸지만 좌석점유율 42.5%를 기록하며 첫날부터 당당히 박스오피스 1위로 신고식을 마쳤다. 이후 대진운도 좋아서 3주간 상위권을 유지하며 359만 명의 관객에게 우리의 뼈아픈 역사를 알렸다.

귀향

감독 조정래

출연 강하나, 최리, 손숙, 황화순, 정무성, 서미지, 류신, 임성철, 오지혜, 정인기, 김민수, 이승현

개봉 2015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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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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