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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영화를 본 뒤 당신도 최면에 걸릴 수 있음 〈악마와의 토크쇼〉

씨네플레이

 

오랜만에 만나는 파운드 푸티지 영화!

 

오랜만에 잘 만든 파운드 푸티지 영화, <악마와의 토크쇼>가 관객을 찾았다. '발견된 영상'이라는 뜻의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는 우연히 손에 넣은 출처 불명의 영상을 내세워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혼란스럽게 넘나들며 긴장감을 부여하는 영화 연출 기법. 캠코더로 촬영한 듯한 거친 화면이 특징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가 ‘마치 실제 있었던 일인 것처럼’ 느껴지게 해 페이크 다큐멘터리나 공포 영화에 주로 쓰인다. 대표적인 '파운드 푸티지' 영화로는 제작비보다 월등히 높은 수익률로 개봉 당시 기네스북에 등재된 <파라노말 액티비티>(2010)와 국내에서 흥행한 <곤지암>(2018), <마루이 비디오>(2023) 등이 있다.

 


47년 전, 그날의 끔찍한 사건

 

 

<악마와의 토크쇼>는 미 전역을 충격에 빠뜨린 끔찍한 사건이 담긴 생방송 테이프가 47년 만에 발견됐다는 설정의 파운드 푸티지 영화다. 영화 초반부는 1970년대 유명 TV 쇼 진행자인 잭 델로이의 성공과 몰락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나머지 중후반부는 관객에게 잭의 마지막 쇼가 녹화된 테이프를 틀어주는 것처럼 구성했다.

영화의 배경은 1970년대. 이때 미국은 베트남 전쟁의 후유증과 정치적 혼란 한가운데 있었다. 사회적 의심과 불신은 커져만 갔으며, 이에 대한 반동으로 심령술사, 점쟁이, 퇴마사 등 오컬트가 부흥했다. 방송국 놈들은 극적인 흥행과 자극을 위해 일명 '사탄 공황'을 이용한다. 유튜브도 인스타그램도 없던 이 시절, TV에게만 시선이 고정된 대중에게 방송은 최면술처럼 틈입한다.

 

데일리 심야 TV토크쇼인 '올빼미 쇼'를 진행하는 잭 델로이(데이빗 다스트말치안)는 그 자장 안에서 혼돈을 경험하는 인물이다. 한때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노릴 만큼 잘나가기도 했지만 매번 라이벌인 자니 카슨(30년 동안 ‘더 투나잇 쇼’를 진행한 전설적인 MC로 영화는 그를 '잭'과 경쟁관계로 가정한다)의 아성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든든한 지원군이자 사랑하는 아내 매들린(조지나 헤이그)마저 폐암으로 사망하자 잭의 슬럼프는 깊어진다.

토크쇼 시청률이 곤두박질치자 잭은 무대 위에서 이런저런 무리수를 둔다. 하지만 한 번 떨어진 신뢰는 좀체 회복되지 않고, 방송국과의 계약 연장은 불투명해져만 갔다. 벼랑 끝에 몰린 잭은 1977년 10월 31일, 핼러윈 당일 자정이자 주간 TV 시청률 집계 주간이 시작되는 날 회심의 방송을 기획한다. 이날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으면 잭도, ‘올빼미 쇼’도 이제 퇴출이다.

 

잭의 야심만만한 계획은 토크쇼의 게스트로 생방송 스튜디오에 악령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당시 유행했던 오컬트 특집을 기획해 다양한 오컬트 전문가를 초대한다. 죽은 자들과 대화할 수 있다 주장하는 영매 크리스투(페이샬 바지), 회의론자이자 귀신 잡는 사냥꾼 카마이클 헤이그(이안 블리스), 사이비 종교 집단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았지만 악마에 빙의되었다는 소녀 릴리(잉그리트 토렐리)와 그 소녀를 돕는 박사 준 로스 미첼(로라 고든)까지. 초자연 현상에 대한 증명과 의심, 설득과 반박이 오가며 쇼는 꽤 성공적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멀쩡하던 영매 출연자가 갑자기 토를 하며 죽음에 이르고, 악마에 빙의된 소녀가 의미심장한 미소로 잭을 쳐다보기 시작하며 쇼는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다.

 


※스포일러 주의

영화 속 '이스터에그'

 

 

소녀의 몸에 들어온 악마는 잭에게 오랜만이라며 인사를 건넨다. 사실 둘은 초면이 아니다. 잭은 각계를 이끄는 권력자와 유명인만 가입해 서로를 밀고 끌어준다는 남성 전용 소셜클럽 '그로브'의 회원이다. 그곳에서 올빼미 가면을 쓴 채 잭은 악마 '아브락사스'를 섬기는 교주와 제의 의식을 통해 악마와 거래를 한다. 성공을 위해 아내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약속이다. 비흡연자였던 잭의 아내가 갑자기 폐암으로 사망한 이유다.

 

클럽 '그로브'의 상징인 올빼미는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한다. '올빼미'를 앞세운 쇼의 이름, 잭이 속한 UBC 방송국의 사장 집무실, 빙의된 소녀를 돕는 박사의 목걸이, 언뜻 스쳐가는 그림자까지. 광범위하게 뻗어나간 '그로브'의 네트워크는 악마를 현실 세계로 불러들이기 위한 촘촘한 쇼를 기획한 것이다.

소녀 릴리의 죽음으로 악마는 세상에 나오고 잭의 소원은 이뤄진다. 쇼는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한다. 하지만 잭은 곧 무언가를 깨닫고 시청자들을 향해 TV를 끄라고 절규한다. 화면 속 빙글빙글 돌아가는 시계는 화면 밖 불특정 다수에게 속절없이 노출된다. 시청자들은 곧 최면에 빠지게 될 것이다. 최면에 걸린 그들이 악마를 숭배하게 될 것인가. 숭배받는 건 미디어로 이식되는 자본주의와 성과주의, 뉴미디어로 증폭되는 가짜 뉴스일지도 모른다고 영화는 촌극을 통해 은유한다.

 

 


영화에 영감을 준 사건들

 

 

영화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캐머런 & 콜린 카이네스 형제 감독은 어릴 때 즐겨 봤던 70년대 호주의 유명 토크쇼인 ‘돈 레인 쇼’에서 영감을 받았다. 염력으로 고장 난 시계를 고치고 스푼을 휘게 하는 초능력자 콘셉트로 유명했던 문제적 마술사 유리 겔러와 “누구라도 초능력을 입증하면 백만 달러를 주겠다”라며 현상금을 내걸었던 제임스 랜디의 영매 대 초자연현상 회의론자의 대결 일화가 주요 소재다. 영화는 미국 고위층 남성들의 비공개 모임 '그로브'와 초자연 현상을 조사하는 '국제과학수사연맹' 등 실제 사례를 가져왔다. 영화 속 릴리가 속했던 악마를 숭배하는 사탄교회 또한 196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실제 세워진 조직이다.

레트로한 분위기와 색감을 잘 살린 미국 토크쇼 세트장, 추임새를 넣는 악단, 과장된 방청객의 반응을 포착하는 카메라는 착실히 1970년대 텔레비전의 문법을 따랐다. 특히 박수를 받으며 스튜디오에 등장하는 당시 토크쇼의 전형적인 진행자의 모습을 완벽하게 구현한 잭 델로이 역의 배우 데이빗 다스트말치안의 열연이 돋보인다.

한 번 봐서는 이 거대한 음모론이 잘 파악되지 않는다. N차 관람을 추천하는 이유다.

 

문화기획자 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