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고를 위장한 살인. 섬뜩한 진실을 알고 있는 당사자에게 '사고'가 연이어 일어난다면, 그는 자신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5월 29일 개봉하는 <설계자>는 심플하되 깊다. 모순된 표현 같지만 사실이다. 의도적 살인을 사고로 위장하는 설계자는 평생 그렇게 살아왔기에 자신 주변에 벌어지는 사고들은 결코 사고로만 보일 수 없다. 영일(강동원)은 이 모든 일이 또 다른 설계자 '청소부'가 자신을 노리고 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청소부의 흔적을 쫓는다.
2009년 홍콩영화 <엑시던트>를 원작으로 한 <설계자>는 사고사를 위장한 살인이란 토대를 두고 모든 걸 의심하기 시작하며 흔들리는 이를 그린다. 서서히 빠져들기에 정신 차리지 않으면 잠기고 마는 늪처럼, 영일은 서서히 의심에 잠식되며 주변 사람들까지 모조리 믿을 수 없게 된다. 강동원, 이무생, 이미숙, 이현욱, 탕준상, 정은채가 뛰어든 이 의심게임은 <범죄의 여왕>으로 데뷔한 이요섭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의심의 암막 뒤에 있는 <설계자>는 과연 어떤 영화일까. 5월 23일 진행한 언론배급시사회에서 만난 <설계자>와 주역들이 전한 비하인드를 전한다.
강동원의 눈빛

<설계자>는 영일을 연기하는 강동원의 존재감이 가장 중요하다. 영일의 설계를 실행하는 팀원 재키(이미숙), 월천(이현욱), 점만(탕준상)의 케미스트리도 영화의 볼거리 중 하나지만 청소부를 쫓는 영일 혼자만의 싸움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동원의 존재감, 연기력이 영화의 흡입력과 직결될 수밖에 없는데 그 부분은 충분히 성공적이다. 근래 출연작 <브로커>나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에서의 모습과 정반대의, <반도> 이후 오랜만에 돌아온 과묵하고 의뭉스러운 강동원의 모습은 영화를 견인하는 원동력이 된다.
특히 청소부를 향한 영일의 집념을 강동원은 매 장면 눈빛에 담아냈다. 그는 영일에게 청소부는 "외계인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단다. 외계인처럼 실제로 그 존재를 목격한 사람은 없지만, 과학적으로는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는 추론은 마주한 적 없지만 사고의 피해자들을 통해 청소부의 존재를 확신하는 영일의 행동에 설득력을 보탰다. 동시에 강동원은 "팀원들은 각자의 결핍이 있는데 영일이 그 결핍으로 이들을 컨트롤한다는 마인드"로 영일의 우수한 지능을 부각시켰다.


물론 앞서 말한 배우들의 앙상블도 심상치 않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의심'에 귀결되는 만큼 배우들은 캐릭터의 미묘한 변화들을 스크린에서 보여준다. 분명 든든한 동료였지만 점점 믿을 수 없게 되는 재키, 월천, 점만은 물론이고 의뢰인 영선(정은채), 그리고 영선과 관련된 보험 매니저 치현(이무생) 모두 영일의 시선에서 포착되는 의심스러운 요소들을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로 담아내 관객을 혼란에 빠뜨린다.
의심과 진실의 공방전

원작 <엑시던트>(2009)의 리메이크 <설계자>는 다른 무엇보다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홍콩 배경의 <엑시던트>가 이국의 풍경에서 오는 거리감을 장르적으로 활용했다면, <설계자>는 관객에게 익숙한 풍경에서 우리가 모르게 일어나는 사건들에 초점을 맞춰 친숙함과 낯섦의 불균형을 영화 내에 녹였다.
그리고 각색 과정에서 다양한 요소들을 추가해 이야기를 풍성하게 한다. 정치적 암투, 이른바 '렉카 유튜버' 등이 등장하는 영화는 '사고사 청부 살인'이란 낯선 소재를 보다 현실에 안착하도록 돕는다. "진실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남을 의심할 수도 있고, 믿음이 사라질 수도 있다. 이건 우리가 모두 겪는 일이기도 하다"는 이요섭 감독의 말처럼 관객들은 청소부라는 진실에 다가서는 영일의 행적에 동행하며 진짜 진실은 무엇인지 점점 알 수 없게 된 우리의 모습까지 비춰보게 된다.

다만 이 부분은 일장일단이다. 한국이라서 친숙하게 느끼는 관객이 있다면, 오히려 한국이기에 이질감을 느끼는 관객도 분명 있을 것이다. <설계자>는 독자적인 설정을 더해 세계관을 구축하는 데 보는 이에 따라 이를 과잉이라고 여길 수도. 또한 다양한 요소를 추가하는 과정에서 모호함을 유발하고자 넣은 대사들이나 캐릭터들이 현실의 사실을 떠올리게 해 몰입을 방해하는 부분도 있다.
놓치면 아쉬운 <설계자> 만의 서프라이즈

아무래도 <설계자>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사고 설계'라는 스릴러적인 부분과 강동원을 비롯한 믿고보는 배우들의 열연일 것이다. 그러나 미리 본 관객으로서 이외에도 추천하고 싶은 요소가 몇 가지 더 있다. 일단 모 배우의 우정출연이다(이미 언론 보도로 공개됐지만 서프라이즈를 기대하는 독자를 위해 본문에선 언급하지 않겠다). 주연급 인기 배우가 <설계자>에서 상징적인 역할을 맡는데, 특히 '여성 관객들이 이 영화를 꼭 봐야 할 포인트'로 뽑아도 될 정도다. 이요섭 감독 말에 따르면 "강동원 배우가 어두운 매력이 있는, 흑미남이라면 이에 대비되는 백미남이 필요해 이 배우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그 배우가 출연을 승낙하며 <설계자>엔 미남 배우 두 사람이 채우는 '영상미' 가득한 장면이 등장하게 됐다.
또한 영화의 긴장감과 모호함을 배가하는 요소는 음악이다. 김태성, 정지훈이 담당한 <설계자>의 음악은 전자음악에 가까운 사운드를 내는데, 이 소리들이 영일의 의심을 고스란히 형상화한다. 때때로 신경질적인 사운드로 장면 전체를 장악하는가 하면, 때때로 화면 저 아래에서 화면의 무드와 배우들의 연기를 떠받치며 이 영화의 테마를 풍성하게 한다.
관객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다만 이렇게 화려한 출연진과 쫄깃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연출력에도 <설계자>가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최근 흥행작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부분 나와 너, 우리팀과 상대팀, 선과 악 등 구분이 뚜렷한 편이다. 물론 <밀수>처럼 그 모호한 경계를 전면으로 내세우고도 성공한 영화가 있지만, 그런 사례가 소수란 것이 문제. 그래서 <설계자>의 테마, 누구인지 모를 상대를 추적하는 전개가 관객들의 흥미를 돋울 수 있을지,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이지는 먼저 본 입장에서도 확신하기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