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리카 트렘블레이 감독이 작가이자 감독, 그리고 제작자로 <팬시 댄스>를 보여주고 알리고자 한 데는 영화를 만드는 창작자로서 관객과 만나고자 하는 욕심뿐만 아니라, 본인이 품고 있었던 이 세상의 모순과 차별이 무엇인지 이 세계에 알리려는 바램도 컸다. 그 배경에는 자신 역시 세네카 카유가 원주민 출신이자, 퀴어로, 또 성노동자로 일한 경험에서 오는 편견에 맞서 온 경험에서 오는 진짜의 문제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이 사회를 살아가는 한 일원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을 바로잡고 싶었다"라는 감독의 의도가 이 영화의 바탕에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이미 오클라호마 원주민 보호구역을 배경으로 원주민 여성과 9살 어린아이의 삶을 그린 단편 <작은 부족장>(Litte Chief)으로 릴리 글래드스톤과 함께 한 그녀는 이 영화로 선댄스영화제에서 크나큰 주목을 받았다. <팬시 댄스>는 단편이 던진 문제의식과 감독의 역량을 배우 릴리 글래드스톤이라는 좋은 파트너와 함께 한 층 발전시킨 결과물이다. 릴리 글래드스톤 배우 인터뷰에 이어 에리카 감독과 함께 이 영화의 출발점과 의미를 나누었다.

각본, 연출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 제작으로도 참여했습니다. 미국 원주민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배급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는데요. 애플TV+를 통해 전 세계 관객과 만나게 된 의미가 더해지는 것 같습니다.
네, 영화가 그토록 폭넓게 도달할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기쁘고 감사해요. 세네카 카유가 여성과 그녀의 이야기를 이렇게 많은 이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정말 꿈이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바로 영화를 통해서 아름다움과 인간성을 보여주자는 것이었습니다. 두 여성의 자연스러운 친족관계와 더불어, 우리가 이 커뮤니티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널리 공유될 것이라는 사실에 매우 기쁩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이 미국 사회 안에서 직면하는 문제와 불의는 전 세계의 많은 원주민들이 공유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식민지화는 전 세계적으로 끔찍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전 세계의 다른 원주민 공동체에 다양한 방법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세계 어디에 있든 원주민 이웃과의 새로운 이해,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될 사람들에게도 이 내용이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실제 감독님 본인이 세네카 카유가 원주민 출신이자, 퀴어라는 점도 영화 속 주요 캐릭터들, 특히 잭스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는 지점인데요. 영화에서 세네카 카유가 원주민의 삶을 생생하게 표현하기까지, 감독님 본인의 경험도 많이 반영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물론입니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만들려고 영화를 시작한 건 아니지만, 확실히 제 경험이 많이 반영되어 있어요. 제 어머니가 원주민이고 아버지가 백인이라는 점도 캐릭터 형성과 관계에 반영이 됐고요. 저 역시 실종된 여성 타위처럼 클럽에서 일한 경험이 있고, 성노동자로 일하면서도 훌륭한 엄마가 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확실히 등장인물들은 우리 자신과 우리가 아는 사람들, 우리가 목격한 것들을 기반으로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결합하고 이를 모아서 지금의 캐릭터를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35년간 교사로 일했던 제 어머니를 통해 원주민 공동체 여성들이 어떻게 회복력을 구축해 왔는지, 고통이 힘으로 바뀔 수 있었는지 많이 듣고 알게 됐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이 영화의 공동작가이자, 같은 원주민 여성 작가인 미시아나 알리스와 함께 이런 부분들을 반영해서 대본 작업을 했습니다.

타위의 실종 이후, 잭스만이 그녀의 존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요. 백인 사회에서 사라진 원주민 여성의 존재는 어떤 가치도 없다는 게 충격적입니다. 특히 그녀의 직업이 주는 편견과 차별의 시선은 이 실종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데요. 이 부분을 매우 사실적으로, 가감 없이 보여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정말 끔찍하고, 사기를 저하시키고, 실망스러운 일이죠. 지금도 원주민들이 실종되고 매우 높은 비율로 살해되고 있습니다. 폭력의 대부분은 원주민이 아닌 사람들에 의해 자행됩니다. 이 사회에는 폭력이 기소되지 않고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을 받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관할권의 허점이 있습니다. 지금도 소셜 미디어에 들어가면 실종자를 찾는 포스터를 보지 않는 날이 단 하루도 없습니다. 원주민 공동체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사안입니다. 영화를 통해 그 지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단, 처음부터 시체를 보여줄 수는 없다는 선택을 했습니다. 우리는 폭력의 묘사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폭력을 미화하는 대신, 우리는 폭력의 여파로 남겨진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그 사람들이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더 집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잭스와 로키, 즉 이모와 조카라는 아름다운 모계친족 관계에 집중해 이 영화의 이야기를 풀어나간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보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게 될 부분이기도 한데요. 영화는 차별과 폭력이 지배하는 사회 안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는 여성의 연대를 따뜻한 시선으로 견지하고 있는데요. 아픈 가운데도 기쁨의 순간, 공동체의 결속 같은 인간적인 면모를 놓치지 않고 부각시킴으로써 보여주고 싶었던 부분은 어떤 것이었나요.
제 생각에는 이것이 바로 더 많은 원주민들이 자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고 자신의 경험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 필요한 진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시리즈 <레저베이션 독스>(Reservation Dogs)-오클라호마 마을에 사는 4명의 원주민 청소년들이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저지른 범죄행위를 통해, 원주민 청소년들의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어려움을 다룬다. 아메리카 원주민 작가, 제작진 뿐 아니라, 출연진 모두가 원주민인 최초의 시리즈다-에 작가로 참여를 했는데, 작가실에서 우리가 항상 이야기했던 것 중 하나가 아주 심각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 상황에 인간적인 면모를 잃지 않고 불러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공동체에 살았고 지금도 선조들이 일군 땅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유머를 잃지 않고 사용하고 결속을 맺고 하루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팬시 댄스>를 쓰는 동안에도, 이 영화를 볼 모든 사람들이 크게 웃을 수 있는 순간을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 많이 웃고, 즐겁게 함께 하는 것이야말로 생존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영화 속 인물들이 세네카 카유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담아내는데요. 거의 사라진 원주민의 언어를 잃지 않고 포착해 살리는 일은 이 영화가 가진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이기도 한데요. 카유가 언어의 사용을 고수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맞습니다. 처음으로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 저는 언어 몰입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풀타임으로 진행했는데, 하루 8시간씩 카유가 어로 말하고 밤에 집에 들어와 대본을 쓰곤 했습니다. 현재 카유가 어는 기본적으로 멸종된 것으로 간주되며 사용자는 20명 미만에 불과합니다. 식민지화에 의해 거의 성공적으로 근절된 언어를 다시 활성화하려는 강력한 운동이 많은 원주민 언어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움직임의 중요성을 알고 자원과 에너지를 사용하여 카유가 언어를 다시 살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통해서 카유가 어를 전 세계에서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저에게는 가장 큰 의미입니다. 제가 언어를 배우고 있던 공동체에서 80세, 90세 정도의 어르신들과 이 영화를 공유했습니다. 그분들은 생애 처음으로 그들의 언어를 화면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이 전 세계적으로 모국어 활성화에 대한 인식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사실에 매우 기쁩니다. 사람들이 우리 언어를 듣게 된다는 것은 가장 놀라운 일입니다.
사실 이 영화의 단추가 된 릴리 글래드스톤과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요. 감독님과는 단편 <작은 부족장>(Litte Chief) 때부터 함께 해 온 배우이자, 이 영화의 취지를 알고 <플라워 킬링 문> 촬영의 잠깐 휴식 동안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는데요. 원주민의 이야기를 하는데 릴리 같은 훌륭한 원주민 출신 배우의 성장이 불러오는 효과는 엄청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작업을 함께 하기 이전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어떤 여자들>(Certain Women, 2016)을 보면서 이미 그녀의 팬이 되었는데요. 함께 단편 작업 이후 항상 그녀와 다시 작업하고 싶었어요. 릴리 역시 잭스 역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고 함께 이 작품을 협력해 개발해 왔어요. 릴리는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관대하고 재능이 있는 배우예요. 그런 배우와 두 번째 작품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감독으로서 특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녀의 팬이기도 하지만, 지금 그녀의 스타성과 영향력은 엄청나게 상승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 작품을, 이야기를 생생하게 구현하기 위해 촬영장에 와서 매일 자신의 재능을 아낌없이 보여준 배우에게 정말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원주민들의 축제에 참여한 잭스와 로키의 댄스 장면에서 <델마와 루이스>의 마지막 같은, 여성 주도 버디영화의 느낌을 받았는데요. 희망과 비극 사이 어느 쪽의 판단도 내리지 않는 엔딩의 의도를 설명해 주신다면요.
정확히 그걸 원했어요. 우리는 크레딧이 나온 후에도 이 세상은 부패한 정의의 수레바퀴가 계속 돌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영화에서라도 우리는 두 여성이 함께 춤추고 이야기를 나누는 연결의 순간과 아름다움의 순간에 집중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의 자매이자, 엄마, 사라진 여성 타위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거죠. 그리고 우리는 관객들이 그 순간을 보고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괜찮을 것이라는 점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로키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잭스에게는 분명히 어떤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과 그 기쁨의 순간에서 저는 그것이 우리가 그 두 캐릭터를 떠난 곳이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이렇게 아름답고 멜랑꼴리한 기쁨을 안고 이 영화를 떠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화정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