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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주〉 등 7월 첫째 주 개봉작 전문가 별점

씨네플레이

탈주

감독 이종필

출연 이제훈, 구교환, 홍사빈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뉴 타입 전력질주의 미덕

★★★☆

더는 기대되지 않는 소재라도 관점을 바꿔 바라보면 이렇게 새로운 결과물이 나온다. ‘탈주'라는 명령어 하나만 정확하게 장착한 주인공이 마치 게임 퀘스트를 깨듯 질주하는 에너지를 보여주는 분단 소재 영화를 상상해 본 적이 있나. 여기에서 둘로 나뉜 한반도의 상황, 서로 다른 사회 체제는 ‘실패할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이 맞닥뜨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장애물이자 최종 빌런이다. 여백을 허락하지 않는 편집과 전력질주로 내달리는 캐릭터 플레이는 영화의 RPM을 내내 최고치로 출력한다. 이제훈의 펄떡이는 육체성, 구교환의 차가운 심장박동이 맞부딪히는 대결 구도가 매력적. 에필로그가 조금은 감상적인 사족처럼 느껴지는 구석이 있지만, 그것 역시 누군가가 목숨을 걸며 갈망하는 무언가라고 생각하면 결국 수긍이 가고 만다.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갈라진 건 남과 북이 아니라, ‘두 개의 자아

★★★☆

이 영화에서 갈라진 건 ‘남과 북’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분열된 ‘두 개의 자아’ 같다. 남한으로의 탈출을 꿈꾸는 북한 병사 규남(이제훈)은 현상(구교환)이 ‘잊고 있었던 과거의 꿈’이고, 엘리트 장교 현상은 규남이 ‘순응하고 싶지 않은 미래’다. 남북을 소재로 한 영화가 무엇을 더 보여줄 수 있을까,라는 의심을 <탈주>는 ‘이데올로기’가 아닌 ‘자유의지’로 포커스를 옮겨 보편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그만의 차별성을 확보해 낸다. 치밀하게 짜인 초반의 박력에 비해 중반부로 갈수록 느슨해지는 서사, 마감이 덜 된 캐릭터(유랑민 단원들) 등 지뢰가 없지는 않지만, 목표를 향한 질주의 에너지만큼은 식지 않는다. 상황 속으로 온몸을 던지는 이제훈의 뚝심,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서 솟구치는 구교환의 야심. 두 배우가 만들어내는 리듬도 좋다. 덧. <화란>에서 보여준 홍사빈의 연기는 우연이 아니었구나. 미래가 밝은 배우들의 영화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꿈꾸는 이들을 위한 속력전 

★★★

이종필 감독의 신작. 남한으로 탈주하려는 북한 병사와 그를 쫓는 보위부 장교가 주인공이다. 북한을 다룬 기존의 한국 영화가 한국전이나 남북 대립, 남북 군인의 우정을 다룬 데 반해 이 영화는 북한군에게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것도 대중 상업 영화 안에서! 실패조차 해볼 기회가 없는 북한군(이제훈)과 꿈을 접고 체제에 적응하려는 장교(구교환)의 이야기는 배경만 다를 뿐, 결국 청년 세대의 이야기로 읽힌다. 여러 시도와 엔딩을 좀 더 과감하게 밀어붙이고 마무리했다면 좋았겠지만 탈주극과 추적극의 묘미, 이제훈과 구교환의 진가만큼은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신인 홍사빈이 매서운 연기력으로 두 배우를 뒤쫓는다. 

 


퍼펙트 데이즈

감독 빔 벤더스

출연 야쿠쇼 코지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일상찬가: 삶은 아름답다

★★★★

아끼는 도시(도쿄)를 향한 애정, 타국의 예술가 오즈 야스지로를 향한 예우, 일상을 찬미하는 철학이 더해진 빔 벤더스 버전의 ‘최선의 현재'. 내게 필요하고 나를 단정히 하는 최소한의 것들을 남기기까지 무수한 뺄셈을 거듭해 완성한 주인공 히라야마의 루틴. 그것은 언뜻 지루한 반복 같지만 조금씩 달라지고 매번 다르게 아름다운, 일상이라는 소박한 기적의 다른 이름이다. 여기, 지금 이 순간, ‘코모레비(こもれび)’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기까지 한 사람의 여정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만드는 힘을 발휘하는 영화. 나뭇잎 사이의 은밀하고 작은 햇빛을 좇으며 기쁨을 찾던 히라야마에게 햇빛이 가득 쏟아지는 마지막 장면의 여운은 모든 언어를 무력하게 만드는 감동에 가깝다. 야쿠쇼 코지가 왜 동시대의 위대한 배우 중 한 명인지를 여실히 증명하는 그 장면은, 삶이 그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뛰어넘어 분명 아름다운 것이라 말하고 있다.

 

이지혜 영화 저널리스트

웃기로 결심한 자의 충만한 삶

★★★★

매일 똑같은 일상을 정성스레 청소하고, 기록하는 히라야마(야쿠쇼 코지)는 충만한 삶을 사는 자의 얼굴이 어떤지 보여준다. 그는 화장실 청소를 하다가도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을 감상하고, 출근길에 들을 카세트테이프를 신중하게 고른다. 아픔을 지녔지만 웃기로 결심했기에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아내는 히라야마의 감각은 지금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생에 켜켜이 쌓인 슬픔과 기쁨을 단 한순간에 포착해낸 야쿠쇼 코지의 마지막 얼굴이 놀랍다.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인생의 모든 순간을 압축해 낸 야쿠쇼 코지의 얼굴

★★★★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에 주목한다. 같은 날의 반복 같지만, 매일이 다른 날들.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가는 듯하지만, 조용히 스며들어 내 일상의 그림자가 된 관계들. 빔 벤더스가 이 영화에서 진짜 포착한 건, 소소한 일상이 아니다. 그건, 일상이 지닌 것들을 존중하는 자세다. 야구쇼 코지는 라스트 신에서 자신의 얼굴 안에 지나온 인생의 모든 순간과 다가올 날들을 압축해 낸다. 아, 저런 풍경이 가능하구나. 사람이 풍경이구나. 경탄하고 숨죽이다가 끝내 눈에 물기가 고여버렸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의 새로운 대표작 

★★★★

거장 감독과 거장 배우의 완벽한 만남이다. 영화는 도쿄에서 공중화장실 청소 노동자로 살아가는 중년 남자의 반복되는 일상을 비춘다. 루틴에 따라 움직이는 그의 일상이 지루하지 않은 건 소소한 행복을 스스로 일궈가기 때문이다. 주변 인물들이 그의 생활패턴을 흔들어 놓아도 의연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삶을 통달한 자의 태도랄까. 마지막 장면에서 야쿠쇼 코지의 복잡다단한 표정 연기가 압권이다. 하루하루 완벽한 날들을 보내기 위해 부단히 애써온 자의 얼굴에선 숭고미마저 느껴진다. 일본 영화와 일본에 대한 빔 벤더스 감독의 애정 어린 헌정 영화이기도 하다. 

 


만천과해

감독 주오 첸

출연 허광한, 장균녕, 혜영홍, 윤정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중국으로 건너가 탱자가 된 <인비저블 게스트>

★★☆

소지섭 김윤진 주연의 <자백>(2022)이 그랬듯, 스페인 영화 <인비저블 게스트>(2017)를 리메이크한 작품. 치밀한 플롯으로 눈도장을 받은 작품이 원작인 만큼, 큰 줄기는 그대로 이식하고 중국 정서에 맞게 관계성 등을 변주했다. 그렇다면 관건은 변주한 부분이 얼마나 힘을 내줄 것인가인데, 전반적인 세공력이 떨어지는 터라 연이어 터지는 반전에도 긴장이 잘 살지 않는다. <상견니> 등의 멜로로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허광한의 새로운 얼굴을 만날 수 있는 건 확실한 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