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의 정소민은 어떤 얼굴인가. MBC 드라마 <장난스런 키스>의 엉뚱한 여고생, 영화 <스물>의 무심한 여자친구, KBS 드라마 <마음의 소리>의 독보적인 캐릭터 최애봉... 당신에게 어떤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든 늘 정소민은 유연하게 흘러왔다. 데뷔 14년 차, 꾸준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배우 정소민은 오랜 시간 지켜본 '엄친딸'처럼 우아하면서도 친근한 느낌을 자아낸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tvN <엄마친구아들>에서 여전히 정소민표 로코가 통한다는 것을 증명한 그의 필모그래피를 훑어보았다.
<엄마친구아들>

지난 17일 첫 방송한 tvN 드라마 <엄마친구아들>이 심상치 않다. 1회 시청률 평균 4.9%, 2회 시청률 평균 6.0%(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하며 상쾌한 스타트를 끊은 <엄마친구아들>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주요 국가들을 포함한 전 세계 75개국에서 TOP10에 이름을 올리며(플릭스 패트롤 기준)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인기몰이가 시작되고 있음을 실감케했다.
<엄마친구아들>을 통해 로코 신인 정해인과 로코 장인 정소민이 만났다.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등 멜로 장르에서 애절한 연기를 선보였던 정해인과 달리 정소민은 영화 <30일>, JTBC <월간 집> 등 여러 로맨틱 코미디에서 통통 튀는 매력을 뽐냈다.

<엄마친구아들>은 학창 시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소꿉친구로 지냈던 최승효(정해인)와 배석류(정소민)의 이야기이다. 성인이 되고 각자의 길에서 열심히 살아가던 그들은 십여 년 후 삼십 대가 되어 다시 만나게 된다. 승효와 석류는 어엿한 어른이 되었음에도 서로만 보면 5살 아이처럼 유치하게 투닥거린다.
<엄마친구아들>에서 정소민은 인생 모범생으로 살다 파혼과 퇴사를 동시에 겪고 한국으로 돌아온 여자 배석류 역을 맡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처참한 결과를 얻은 채 귀국한 석류의 공허함을 정소민은 털털한 웃음으로 치환해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환혼>

2022년 방영한 tvN 드라마 <환혼>은 무협 시대극이라는 다소 낯선 장르와 파트 1·파트 2로 나눌 정도의 방대한 세계관을 다루었음에도 최고 시청률 약 10%를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환혼>은 스타 작가 홍자매의 작품으로 <쾌도 홍길동>, <화유기> 등 그간의 무협 활극 중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배우 정소민은 2022년 6월 방영을 시작한 <환혼>(파트 1)에서 장욱(이재욱)의 몸종이자 낙수의 혼이 들어오는 인물 무덕을 맡았다. 낙수는 지나는 사람마다 목을 떨군다는 잔인무도한 살수. 무덕의 나약한 몸에 카리스마 넘치는 혼이 들어왔다는 설정이 웃음을 자아낸다. 한편, 출생의 비밀로 기문을 열기 위해 애쓰는 장욱은 무덕을 스승으로 받들고 장욱과 무덕은 자신들도 모르게 애정을 쌓게 된다.

무덕 역의 정소민은 장르가 주는 극의 무게감을 덜어주는 능글맞은 연기로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극이 진행될수록 얽히고설키는 관계성 속에서 정소민의 무덕은 늘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자칫 설득력이 부족할 수 있는 서사에 힘을 더했다. 사실 <환혼>은 파트 1과 파트 2의 주인공이 정소민에서 고윤정으로 바뀌는 설정에 크고 작은 논란이 있었다. 그럼에도 두 파트 모두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는 파트 1에서 낙수에 환혼된 무덕의 서사를 탄탄히 구축한 정소민의 역할이 크다. 이로써 정소민은 <환혼>으로 자신의 커리어에 ‘무덕’이라는 인생 캐릭터를 남겼다.
<30일>

영화 <30일>은 2023년 당시 극장가에 놀라운 성적을 보여준 작품이다. 개봉 한 달여 만에 누적관객 수 200만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을 넘었고 당해 한국 영화 흥행 4위까지 오른 것이다. 의외의 성과이다. 2023년 손익분기점을 넘긴 작품은 <범죄도시3>, <콘크리트 유토피아> 등 제작비 100억 이상의 대작. <30일>은 불과 60억으로 기존의 흥행작들에 비해 적은 예산으로 제작되었다. 그럼에도 영화 <30일>이 관객을 극장으로 데려올 수 있었던 이유는 철저한 흥행공식의 대작에 지친 분위기를 저격하는 타율 좋은 유머 덕일 것이다.

금수저 영화 PD 홍나라(정소민)와 흙수저 1년차 변호사 노정열(강하늘)은 우여곡절이 많은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그러나 결혼은 현실. 서로에 지쳐 이혼을 선택하고 완전한 이별까지 30일의 유예기간을 부여받는다. 그러던 중 뜻밖의 사고로 두 사람은 기억을 잃게 된다. 이들은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마치 첫 연애를 하듯 서로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영화 <30일>의 가장 큰 매력은 숨 쉴 틈 없이 이어지는 두 인물의 티키타카이다. 정소민은 <스물>로 한차례 호흡을 맞춘 배우 강하늘과 8년 만에 재회해 더 무르익은 케미스트리를 선보인다. 정소민은 한 인터뷰에서 강하늘에 대해 “<스물>을 찍을 때는 서로를 어느 정도 조심스럽게 대했다. 그런데 <30일>을 찍을 때는 마치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것처럼 편해졌다"라며 찰떡 호흡의 비결을 전했다.
<아버지가 이상해>

'흥행 보증' KBS 2TV 주말극답게 <아버지가 이상해>는 첫 방송 22.9%로 시작해 33.7%의 안정적인 시청률로 종영했다. <아버지가 이상해>는 아버지 변한수(김영철)와 어머니 나영실(김해숙), 그리고 4남매가 사는 곳에 아이돌 출신 배우 안중희(이준)가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KBS 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는 정소민에게서 묵직한 청춘의 얼굴을 끌어낸 작품이다. 정소민은 극 중 취준생 변미영을 맡았다. 변미영은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가장 많은 변화를 보이는 인물이다. 학창 시절 왕따를 당하며 소심한 성격이었던 미영은 시간이 지나 자신을 괴롭혔던 김유주(이미도)와 다시 만나며 괴로움을 감추지 못한다. 가정 내외적으로 김유주와 계속해서 얽히게 되는 미영은 점점 단단한 모습을 보이며 자기 자신을 찾아간다.

밝고 순수하지만 철없는 인물을 주로 맡았던 정소민은 <아버지가 이상해>를 통해 청춘의 어두운 면을 잘 담아낸 연기로 호평받았다. 그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취업 준비를 하고 늘 자신보다는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변미영이 성장하는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내 경쟁 사회에서 억눌려 있는 많은 젊은 시청자들에게 위로를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