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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TJ, INTJ? 내향인 끝판왕 여성의 관계 맺기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추아영기자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포스터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감각적으로 그린 영화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원제 Sometimes I Think About Dying)가 9월 4일 개봉한다. 동명의 단편 영화를 각색한 영화는 반복된 일상에서 죽음을 상상하며 삶의 공허함을 견디는 프랜이 자신과 다른 남자 로버트를 만나면서 변해가는 과정을 담는다.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이하 <사랑은 하고 싶어>)는 2023년 선댄스영화제 미국 극영화 경쟁부문에 초청된 작품으로 아름다운 미장센에 대한 기대를 불러모은다. 영화는 선댄스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해외영화제에 초청되어 호평을 받았다.

이번 영화에서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시퀄 삼부작에서 레이 역을 맡았던 배우 데이지 리들리의 연기 변신을 볼 수 있다. 데이지 리들리와 함께 데이브 메르헤예가 주연을 맡았다. 영화의 연출은 장편영화 <인 더 레이디언트 시티>(2016)로 데뷔한 레이첼 램버트 감독이 맡았다. 레이첼 램버트 감독은 주목할 만한 신예 감독 중 한 명으로 매체 ‘인디와이어’에서 ‘떠오르는 여성 영화감독 28인’으로 선정한 바 있다. 해외 언론과 평단의 호평을 받고 있는 영화 <사랑은 하고 싶어>를 먼저 살펴보았다.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프랜

프랜(데이지 리들리)은 바다에 인접한 작은 마을에 사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프랜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삶의 목적도 자기만의 문화적 취향도 가지고 있지 않는 그녀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무미건조하게 살아간다. 단 때때로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는 순간만큼은 황홀함을 느끼면서. 어느 날, 프랜이 근무하는 회사에 로버트(데이브 메르헤예)가 새 직원으로 온다. 사회적 고립을 자처하던 프랜은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로버트에게 관심이 생기면서 서서히 변해간다.

 


 고립과 관계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프랜의 권태로운 일상은 에밀 시오랑 작가의 책 「태어났음의 불편함」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엇을 하십니까? -나는 나를 견딥니다”. 프랜은 직장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소통하는 동료들과 달리 좀처럼 입을 떼지 않는다. 퇴근 후에도 혼자 퍼즐 게임을 하며 시간을 때우고, 가족에게 걸려 오는 전화조차 받지 않는다. 자발적으로 외톨이가 된 그녀는 늘 무표정을 하고 있지만, 사실 그녀의 공허한 표정은 실존적 불안을 숨겨두고 있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데이지 리들리의 미니멀한 연기는 삶의 권태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 애쓰는 프랜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프랜의 고립된 삶은 그녀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주변 인물들의 모습으로 더욱 부각된다. 영화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프랜의 시선 또한 담아낸다. 프랜은 퇴근길에서 두 아이와 함께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여성을 보게 된다. 프랜은 아이와 장바구니를 동시에 신경 쓰느라 분주한 여성을 바라보다가 이내 집으로 들어간다. 프랜의 동료 직원인 캐롤의 은퇴도 그녀의 마음에 균열을 일으킨다. 영화에는 과거 캐롤이 근무한 모습을 떠올리는 프랜의 몽타주가 나오는데, 직장 내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은 프랜과 달리 시도 때도 없이 잡담을 늘어놓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캐롤의 오지랖은 직원들의 취향을 파악하고 있는 배려가 되기도 한다. 캐롤은 프랜과 가장 대조적인 인물로 영화의 후반부에 다시 등장해 프랜의 내면 변화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다.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프랜의 일상에 불쑥 찾아온 로버트 역시 프랜과 달리 사려 깊은 배려심과 쾌활한 성격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뭔가를 깨닫게 되고 이해하는 과정”을 겪을 수 있기에 영화를 좋아한다. 이는 로버트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서도 이어진다. 로버트는 함께 영화를 보고 나온 프랜과 자신의 감상이 확연히 다른 것을 알게 되지만, 다름을 틀림으로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유연하게 받아들인다. 로버트는 프랜의 닫혀 있는 마음을 열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그녀로 하여금 관계 맺기의 두려움을 직접적으로 마주하게 한다.

 


자연 속에서의 죽음, 안식의 이미지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프랜은 죽음을 상상하지만, 영화의 제목과 달리 죽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녀의 공상은 죽음을 갈구하는 것이 아닌 안식을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레이첼 램버트 감독은 “프랜은 자신을 다치게 하는 데 관심이 없고, 그것이 그녀의 목표도 아니다. 고통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니다. 그녀가 느끼는 고통은 오로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과 그 모든 것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했다. 프랜이 죽음을 상상하며 불러온 이미지에서도 죽음에 대한 프랜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프랜은 자신이 죽어 있는 장소로 수풀이 우거진 어두운 숲속과 아무도 없는 광활한 해변과 같은 자연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리고 프랜의 집안을 감싼 벽지와 소파, 테이블과 같은 가구는 온통 페이즐리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그녀는 식물을 많이 키우기도 한다. 프랜은 죽음을 안정감을 느끼는 집과 같은 장소이자 삶의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은신처로 여긴다.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영화 속 프랜이 살고 있는 마을은 거대한 선박이 드나드는 곳이자 사람들이 과거의 생활방식을 고수한 채 살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산업과 자연, 과거와 현재의 사이에 있는 중간 지점처럼 보인다. 레이첼 램버트 감독은 “오리건주에 ‘애스토리아’라는 마을이 있는데, 처음부터 우리가 찾던 마을이라고 너무나도 확신했다. 바닷속에 오랜 세월 동안 있던 작은 유리병처럼 보이지만, 그곳에는 현대인들이 생활하고 일을 하고 있다. 영화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반영한 장소였다”고 말했다. 또 프랜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처럼 고요한 곳이기도 하다. 영화의 공간은 프랜이 편안함을 느끼는 것과 낯선 것이 공존하는 곳이자 자발적 고립과 사람과의 상호작용 사이에서 갈등하는 프랜의 내면을 외면화한 곳이다. 닫혀 있으면서 동시에 열려 있는 공간은 프랜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는 듯하다.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프랜 역 데이지 리들리

 

고전적인 멜로드라마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 음악도 이 영화만의 환상적인 무드를 더해준다. 마을의 자연 경관을 감싸안는 듯한 현악기의 선율은 로맨틱한 분위기와 동시에 따뜻한 느낌을 준다. 프랜과 로버트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장면에서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1937)의 음악 ‘With a Smile and a Song’이 흘러나오는데, 프랜의 내면 속 상상의 세계와 외부의 현실이 겹쳐지는 장면과 더없이 어울린다. 레이첼 램버트 감독은 영화 음악의 컨셉에 대해 “당시에 나는 왠지 모르겠지만 1950~60년대 하와이안 러브 발라드를 듣고 있었다. 음악 감독은 내게 헨리 맨시니, 넬슨 리들 같은 작곡가의 음악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이는 영화를 받쳐주는 완벽한 언어가 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가 처음에 생각했던 내레이션(초고에 있었지만 끝내 사용하지 않은 프랜의 1인칭 내레이션)으로도 사용되었다. 이는 영화의 시각적인 부분과 프랜의 내면적인 삶 사이에 다리를 연결하는 방법처럼 느껴졌다. 멘시니의 'Lujon'에도 매료되었고, 대브니 음악감독은 이를 삽입곡으로 사용하였다”고 전했다.

 


씨네플레이 추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