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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구룡성채: 무법지대〉유준겸 배우, “유덕화의 시대에 이어, 유준겸의 시대가 열릴 것이니.”

주성철편집장
유준겸 배우 (사진제공=콘텐츠판다)
유준겸 배우 (사진제공=콘텐츠판다)

<구룡성채: 무법지대>의 유준겸(Terrance Lau) 배우를 만났다. 두기봉 사단의 일원이자, 어느덧 홍콩영화계를 대표하는 대가로 성큼 올라선 정 바오루이 감독의 <구룡성채: 무법지대>는 ‘홍콩 액션영화의 부활을 알리는 작품’이라는 평가와 더불어, 지난 5월 1일 홍콩 개봉 이후 한 달 넘게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킨 메가 히트작이며,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도 초청됐다. 1980년대,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하는 동시에 사회, 경제적으로 혼돈의 시대를 보내고 있던 홍콩을 배경으로, 찬록쿤(임봉)이라는 남자가 빅보스(홍금보)가 이끄는 갱단에게 쫓기던 도중 우연히 구룡성채로 몸을 피한다. 구룡성채는 사이클론(고천락)이 이끌고 그 뒤를 받치는 세 남자 신이(유준겸), 십이소(호자동), AV(장문걸)의 조직이 지배하고 있다. 그들의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함부로 구룡성채에 발을 들일 수 없다. 이들의 도움으로 찬록쿤은 구룡성채 생활에 적응하게 되나, 그를 잡으려고 구룡성채로 진입하려는 악당들의 위협은 점점 더 거세진다. 홍금보, 고천락, 임현제 등 베테랑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특유의 카리스마를 뽐낸 주인공이 바로 그다.

<구룡성채: 무법지대>에서 사이클론을 보위하는 조직의 2인자 ‘신이’로 출연해 강렬한 눈빛과 액션을 선보인 유준겸은, 현재 중화권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기대주 중 한 명이다. 홍콩연예학원 연극원을 졸업한 뒤 2017년 연극 <하늘밖으로>로 제9회 홍콩연극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영화 데뷔작인 주관위 감독의 <환애>(Beyond the Dream, 2020)로는 홍콩 금상장과 대만 금마장 등 신인배우상을 휩쓸었다. 이후 홍콩을 대표하는 가수이자 배우였던 매염방의 일대기를 그린 <아니타>(2022)에서 장국영을 연기하며 국내 팬들의 눈도장을 받은 바 있다. 지난 여름에는 <구룡성채: 무법지대>가 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폐막작으로도 선정되어 씨네플레이와 줌 인터뷰를 갖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10월 16일 개봉에 맞춰 방한한 유준겸 배우를 직접 대면했다. 엄청난 내향형 인간이라 시상식에 가는 것마저 머뭇거린다는 그가 긴 이야기를 들려줬다.

유준겸 배우 (사진제공=콘텐츠판다)
유준겸 배우 (사진제공=콘텐츠판다)

<구룡성채: 무법지대>에 캐스팅됐을 때의 느낌은 어땠나.

사실 최근 홍콩영화계가 침체되어 있다는 얘기가 많은 상황이라, 새로운 작품이 들어온 것만으로도 좋았다. 사실 오디션을 볼 때도, 내가 액션영화에 출연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돼도 좋고 안 돼도 상관없고’ 하는 편한 마음이었다. 당시 오디션에 준비해 간 연기는 <대부>(1972)에서 알 파치노가 했던 연기였다. 결혼할 때 했던 대사와 형제에게 내 가족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 그렇게 두 장면을 연습해 갔다.

 

정 바오루이 감독은 이미 홍콩을 대표하는 감독 중 하나다. 그와의 만남은 어땠나.

워낙 경력이 화려한 감독님이라 뭐든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웃음) 그리고 정 바오루이 감독님은 배우가 뭔가 치밀하게 준비하고 고민해서 현장에 오는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매일의 환경과 정서에 따라 자연스레 연기하는 걸 좋아하시고, 나 또한 그게 나와 잘 맞아서 촬영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별로 없었다. 신이 캐릭터를 위해 무언가 레퍼런스로 삼아야겠다는 생각도 해본 적 없다.

〈구룡성채: 무법지대〉오른쪽 두 번째 유준겸 배우
〈구룡성채: 무법지대〉오른쪽 두 번째 유준겸 배우

영화의 배경인 초고밀도 주거지역 구룡성채는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1995)의 도시 비주얼에 영향을 주기도 했고, <성항기병>(1984)과 <아비정전>(1990)의 마지막 장면이 촬영되는 등 다른 여러 홍콩영화의 중요한 영화적 무대이기도 했다. 최근작 중에서는 유덕화, 견자단 주연 <추룡>(2017)이 구룡성채를 주 무대로 삼아 만들어진 영화이기도 하다. 혹시 이곳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소멸된 곳이기에, 개인적인 경험은 전혀 없지만 홍콩 사람들에게는 홍콩의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과거 구룡성채는 영국과 홍콩과 양쪽 모두 손을 놓고 있던 무법지대였고, 치안이라는 것이 없었다. 정 바오루이 감독님께 전해 듣기로는, 범죄의 소굴이었다고 하지만 그 안에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연기하는 신이는 바로 그곳에서 나고 자란 인물이기에 구룡성채를 외부의 침입자들로부터 지켜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자신에게는 고향이자 목숨과도 같은 곳이다. 그래서 에필로그처럼 들어간 마지막 장면을 좋아하는 홍콩 사람들이 정말 많다. 홍콩의 ‘뿌리’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만드는 장면이라고나 할까.

 

단검을 이용한 스피디한 액션과 오토바이로 구룡성채 내부를 질주하는 장면 등 강도 높은 액션신을 직접 소화했다. 옥상에서 벌어지는 클라이맥스 액션신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촬영 도중 큰 화상을 입었다고 알고 있다.

좁은 골목에서 오토바이를 타야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내가 타는 오토바이가 무거워서 균형을 잡기 힘들었다. 게다가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워낙 구형 오토바이여서 아무리 연습해도 다루기가 힘들었다. 그때 오토바이 배기관이 뜨거워지면서 종아리에 화상을 입었다. 촬영하는 동안에는 아픈지 잘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까 아예 피부가 통째로 벗겨져 있었다.

〈구룡성채: 무법지대〉고천락과 홍금보(오른쪽)
〈구룡성채: 무법지대〉고천락과 홍금보(오른쪽)

고천락 배우와 함께 하는 장면들이 많다. 그와 꽤 깊은 정이 들었을 것 같다.

맞다. 둘이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언제나 반대쪽에 서 계셨다. 피곤하면 대역을 쓰셔도 될 텐데도 꼭 함께 감정을 교환하는 표정으로 함께해 주셨다. 그런 배려가 카메라 앞에서나 뒤에서나 언제나 느껴져서 감동적인 순간들이 많았다. 게다가 한번은 내가 온몸으로 적들을 막아내고 버텨서는 장면을 촬영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때 조용히 내게 다가오셔서 종이컵을 건네고 가셨는데, 거기 위스키가 담겨 있었다.(웃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드실 때 개인적으로 그렇게 견뎌내시는 것 같았다. 그때도 정말 감동했다. 그리고 홍콩영화계의 전설 중의 전설이라고 할 수 있는 홍금보 선배님은 워낙 훌륭한 무술감독님이기도 하다. 나와 함께 찍은 장면은 별로 없지만 이런저런 동작 지도를 해주셨고, 그가 시키는 대로 할 때마다 뭔가 내 한계를 뛰어넘는 느낌이었다. 배우로서의 홍금보는 정말 군더더기가 없었다. 매번 첫 테이크에 오케이였는데 연기면 연기, 액션이면 액션, 오랜 세월 그냥 몸에 배었구나, 하고 감탄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옥상 결투 장면은 거의 열흘 넘게 쉬지 않고 촬영했다고 들었다. 정 바오루이 감독의 이전 영화들 중에서 격투 액션이 위주가 되는 <구교구>(2006)와 <군계>(2007)를 보면, 인물들이 기진맥진해질 때까지 몰아붙일 정도로 강도 높은 액션을 소화하는 경우를 볼 수 있었는데, 바로 <구룡성채: 무법지대>의 그 옥상 장면이 그 끝판왕이 아닐까 싶다. 사실 이번 영화가 당신의 첫 번째 액션영화라고 하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열흘 넘게 매일 16~17시간 정도 촬영했고, 24시간 쉬지 않고 꼬박 촬영한 날도 있다. 쉬는 시간에도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다. 특히 나는 늘 붙어 다니는 십이소(호자동)와 AV(장문걸)와 함께 액션 연기를 하는 장면이 많았는데, 촬영이 끝나면 대기실에 가서 함께 바로 뻗었다.(웃음) 그러다 제작팀이 와서 깨우면 다시 나가서 액션신을 찍는 식이었다. 사실 그런 혼미함이 반영된 액션신이기도 해서 모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촬영에 임했다. 멋진 장면을 만들어내고 싶다고 다들 의기투합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홍콩 액션영화의 레전드인 견자단 배우가 출연한 <특수경찰: 스페셜 ID>(2013)의 무술감독을 맡고, 정 바오루이 감독님과는 <몽키 킹>(2014)을 함께 한 타니가키 겐지 무술감독님이 이것저것 디테일하게 잘 지도해 주셨다. 아무래도 최종 빌런을 연기한 오윤룡 배우가 액션 연기에 능숙한 분이다 보니, 내게 좀 더 시간을 할애해 주셨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별다른 불평 없이 작품에 임했다.(웃음) 그리고 오래전부터 연극을 해왔지만, 기본적으로 훌륭한 배우는 대사 연기뿐만 아니라 몸도 잘 써야 한다는 게 나의 연기 철학이라면 철학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래서 <구룡성채: 무법지대>가 내 첫 번째 액션영화라고 할 수 있기에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구룡성채: 무법지대〉가운데 유준겸 배우
〈구룡성채: 무법지대〉가운데 유준겸 배우

오윤룡 배우가 구룡성채의 실력자로 떠오르면서 장국영의 히트곡 ‘모니카’를 부르는 장면이 있다. 당신은 <아니타>(2022)에서 바로 그 장국영을 연기했던 인물이기에 기분이 남달랐을 것 같다. 혹시 장국영의 어떤 노래를 좋아하나.

사실 <아니타>를 촬영할 때는, 당시 내게 첫 번째로 규모 있는 영화였기에 머리가 텅 비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잘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어서 두려움이 더 컸다. 물론 장국영이라는 전설의 이름이 가진 무게감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럼에도 두려웠지만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내가 장국영을 연기하다니! 그에 대해서는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우리 부모님이 매일 그의 노래를 들을 정도로 장국영의 열렬한 팬이어서 언제나 그에 대한 얘기를 듣고 자랐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주로 장국영의 발라드 곡이다. 특히 영화 <금지옥엽>(1994)에 나오는 두 노래 ‘추’(追)와 ‘금생금세’(今生今世)를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장국영의 영화도 궁금하고, 홍콩영화의 1980~1990년대 전성기 시절을 빛낸 영화와 배우 중 누굴 좋아하는지도 궁금하다.

장국영의 영화 중에서는 <패왕별희>(1992)를 가장 좋아한다. <아니타>에 캐스팅된 후 계속 그의 노래를 듣고 영화도 다시 보기 시작했는데 예술가로서 그의 삶과 고독, 멈출 수 없었던 열정 그 모든 것이 오롯이 담겨있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홍콩영화를 한 편 골라달라고 하면 내 대답은 언제나 주윤발의 <가을날의 동화>(1989)다. 그리고 양조위도 무척 좋아하는데 양조위와 장국영이 함께 출연한 <해피투게더>(1997)를 정말 좋아한다. 다시 오지 않을 빛나는 시절의 이야기라 볼 때마다 울컥하게 된다.

〈구룡성채: 무법지대〉
〈구룡성채: 무법지대〉

<구룡성채: 무법지대>는 김용 작가의 무협지를 보는 것처럼 수많은 고수들이 등장한다. 혹시 김용 작가의 작품들도 좋아했나.

홍콩 사람들은 TVB 방송국에서 제작한 무수히 많은 김용 작가 원작 무협 시리즈를 보면서 성장했다. 당연히 어려서부터 그를 일상처럼 접하고 살았고, 특히 <소오강호>를 좋아했다. 구름처럼 떠돌고 근심 없이 살아가는 인물들이 부러웠다. <소오강호>는 만화, 드라마, 소설 모두 여러 번 봤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고 알고 있다. 그 리스트가 궁금하다.

이창동 감독을 정말 좋아하는데, 특히 <오아시스>(2002)가 가장 좋다. 드라마를 얘기하자면 어렸을 때부터 좋아한 <겨울연가> <가을동화> <풀하우스>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가을동화>를 보면서는 오열한 적도 있다.(웃음) 그 정도로 한국 드라마에 빠져 살았다. 최근 본 드라마 중에서는 <무빙>이 가장 좋았다. <우리들의 블루스>도 재밌게 봤다.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 한국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고 싶고, 한국어도 배우고 싶다.

〈구룡성채: 무법지대〉
〈구룡성채: 무법지대〉

운동선수를 꿈꾸기도 했고 모델로 활동하면서도 꾸준히 연극 무대에 섰고, <하늘 밖으로>라는 작품으로 연극상 남우주연상도 받았다. 그리고 영화 데뷔작인 주관위 감독의 <비욘드 더 드림>(2020)으로 그해 거의 모든 신인상을 다 받았다. 어떻게 배우의 꿈을 꾸게 된 건가.

사실 어려서부터 배우의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학업성적이 좋지 않아 예체능계로 진로를 정한 것뿐이다.(웃음) 연극을 하면서도 처음부터 좋았던 것도 아닌 것 같다. 말씀하신 그 연극상을 타게 됐을 때, 남들 앞에 서는 게 부끄러워서 안 가면 안 되냐고도 했었다.(웃음) 지금도 사람 많은 데 가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그러다 운 좋게 영화까지 하게 되어 <비욘드 더 드림>이라는 영화를 하게 됐는데, 어느 날 그 영화를 3번 봤다는 한 관객을 만났다. 처음 보고 두 번째 볼 때는 별 느낌이 없었는데, 3번째 볼 때 마치 자기 얘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왈칵 눈물이 났다는 거다. 배우가 혹시 남의 인생을 대신 살고 연기하는 사람이라면 그 위로와 힐링이 무척 중요하다고 본다. 그때 처음으로 어떤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았다. 배우라는 존재의 가치가 바로 거기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