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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보통의 가족〉 허진호 감독 “식사 장면은 심리적인 액션 씬”

김지연기자
〈보통의 가족〉 허진호 감독. 사진제공=(주)하이브미디어코프, (주)마인드마크
〈보통의 가족〉 허진호 감독. 사진제공=(주)하이브미디어코프, (주)마인드마크



허진호 감독의 신작 <보통의 가족>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꽤나 이질적인 성격을 띤다. 허 감독의 특기인 세밀한 감정 묘사는 여전하지만, <보통의 가족>은 장르적이며, 시의성 있고, 어쩌면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보통의 가족>은 제목의 반어적인 의미처럼 수많은 아이러니로 가득한 영화다. 영화는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던 네 사람이 아이들의 범죄현장이 담긴 CCTV를 보게 되면서 벌어지는 파국을 담는다.

 

허진호 감독은 <덕혜옹주>(2016) <천문: 하늘에 묻는다>(2019)에 이어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와 다시 한번 손을 잡고 웰메이드 영화를 선보였다. 16일(수) <보통의 가족> 국내 개봉을 앞두고 지난달 26일 오후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허진호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보통의 가족〉 스틸컷
〈보통의 가족〉 스틸컷

 

<보통의 가족>은 국내 개봉에 앞서, 제48회 토론토국제영화제 등 국제 영화제에 19번이나 초청됐습니다. 전 세계의 관객들이 영화를 어떻게 보던가요.

 

토론토 영화제를 시작으로, 타이베이 영화제를 마지막으로 다녀왔어요. 영화를 어떻게 볼까 싶었는데, (모든 국가에서) 공통되게 초중반은 생각보다 많이 웃었어요. 웃음 포인트마다 재미있게 보셨던 거 같고, 관객들이 후반에는 긴장감 있게 봤던 것 같고요. 처음 시사를 할 때는 관객들이 많이 웃은 것 같긴 한데,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말씀하신 대로, 마냥 진지하고 어두운 영화인 줄 알았는데, 영화는 생각보다 장르적이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또 곳곳에 유머도 배치되어 있습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니, 다 같이 빵 터지는 장면이 많았어요. 유머는 의도적으로 배치하신 건가요?

 

초중반까지는 인물들에 대한 소개가 필요했어요. 그걸 어떤 톤으로 가져갈까 하다가, 약간의 유머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현장에서 배우들도 그런 부분들에 대한 의견을 많이 냈고요. 지수(수현)와 연경(김희애)의 화장실 장면에서는 김희애 배우가 “‘거울을 보세요’라는 대사를 하면 어떨까요”라는 의견을 냈어요. 그래서 ‘너무 재밌는데요. 한번 해보죠’라고 했고. 테이크 갈 때마다 다르게 하고, 더 재밌을 것 같아요. 저는 현장에서 바꾸는 걸 좋아해서, 물론 옛날에는 더 많이 바꿨지만. 사람이 모여서 말하는 순간의 공간과 공기와 그런 것들이 다 다르잖아요. 그런데 거기서 나오는 어떤 의외성들이 더 진짜 같아요. 거기서 유머가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잖아요.

 

〈보통의 가족〉 허진호 감독. 사진제공=(주)하이브미디어코프, (주)마인드마크
〈보통의 가족〉 허진호 감독. 사진제공=(주)하이브미디어코프, (주)마인드마크

 

처음 <보통의 가족> 연출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떤 감정이 드셨는지 궁금해요. 원작 소설은 <보통의 가족> 이전에도 <더 디너>(메노 메이제스, 2013), <더 디너>(이바노 데 마테오, 2014) <더 디너>(오런 모버먼, 2017) 등으로 네덜란드, 이탈리아, 미국에서 세 차례 영화화되었는데요. <보통의 가족> 대본을 받고는,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처음에는 나에게 이걸 왜 보냈을까라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재미는 있었고요. 소설을 원작으로 한 다른 영화들도 봤는데, 영화들이 되게 좋더라고요. 이미 영화들이 있으니까 또 만드는 게 부담스럽죠. 그래서 고민을 했는데, 원작 소설과 대본,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부분은 인간에 대한 양면적인 모습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자면, <보통의 가족>의 첫 장면이 차로 사람을 쳐서 죽게 만드는 장면이잖아요. 그런 건 우리가 뉴스에서 많이 보는 장면인데, 거기서는 그 사람의 다른 면은 볼 수 없잖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고, 원작을 가지고 왔을 때 한국 사회의 문제들과 잘 맞는 부분이 있었어요. 특히 교육 문제, 계층 문제 등. 제가 그전까지는 (사회 문제를) 영화에서 일부러 배제시키기도 했는데, 나도 한번 사회 문제를 얘기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용기를 내서 선택했죠.

 

계층 문제를 얘기하셨는데, 재완(설경구)과 재규(장동건)가 사는 집의 공간적인 대비도 눈에 띕니다. 재완의 공간은 딱 보자마자 ‘부자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반면, 재규의 집은 상대적으로 검소해요. 공간의 대비를 통해 말하고자 싶은 건 뭐였나요.

 

어쨌든 둘은 다 기득권층이죠. 하지만 재완은 실리적으로 사는 사람이에요. 돈이 되는 일들을 하고, 아이를 최고의 학교로, 외국으로 보내고 싶고. 그게 이 사람에게 가치를 주는 일이죠. 재규라는 인물은 물론 재완을 속으로는 부러워할 수도 있겠지만, 굉장히 실력 있는 소아과 의사이고, 해외에서 봉사를 하고, 아이를 살리는 것이 자기 인생의 가치인 거죠. 아마도 연경이와 재규는 그렇게 만난 것 같고. 그래서, 재완과 재규 부부가 서로 다른 가치를 지니고 있는 형태인데, 또 영화를 보다 보면 그들이 바뀌는 부분이 있잖아요.

 

〈보통의 가족〉 스틸컷
〈보통의 가족〉 스틸컷

 

원작이 헤르만 코흐의 소설 「더 디너」(2009)인 만큼, <보통의 가족>에는 세 번의 중요한 식사 장면이 등장합니다. 식사 장면은 카메라 세 대로, 여러 번 반복해서 찍었다고 들었어요.

 

저는 그게 ‘심리적인 액션 씬’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4명을 찍어야 하는데, 그게 되려면, 각각에 카메라가 있어야 하거든요. 이번에 처음으로 세 대를 썼어요. 또 대화는 흐름이 있으니까, 중간에 누군가가 성질을 내는 장면만 따로 찍을 수는 없잖아요. 배우들이 4~5분을 계속 긴장감을 가지고 연기를 풀로 해야 하니까, 그런 부분이 배우들에게는 힘들었죠.

 

특히, <보통의 가족>은 촬영 기법이 눈에 띕니다. 말씀하신 식사 장면에서는 인물들의 관계에 따라 촬영 기법이 달라지기도 하고요. 세 번째 식사에 이르면 핸드헬드 기법으로 촬영해 고조된 인물들의 감정처럼 떨리는 화면을 연출하셨고요. 또, 부감 숏이 많이 등장하기도 하고, 창밖에서 인물들을 찍은 숏도 많습니다.

 

고락선 촬영감독과 콘셉트에 대해 얘기도 하고, 촬영감독이 제안을 많이 해줬어요. 촬영감독이 이번 영화에는 부감을 많이 썼으면 좋겠다 해서 멀리서 관찰자로 보는 시선 같은 부감 장면이 많고요. 또, 저는 원래 풀샷부터 찍었는데, 식사 장면은 타이트하게 들어갔어요. 두 번째 식사 장면은 가장 감정 표현이 많은 연경부터 찍었고요. 그런데, 연경 역의 김희애 배우가 자기가 안 나오는 장면에도 감정을 막 실어서 계속 연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선배님이 그렇게 하니까, 다른 배우들도 그렇게 하게 됐어요. 저도 처음 써보는 앵글들을 많이 썼어요.

 

현장에서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촬영을 하신 것으로 보이는데요. 수많은 테이크들을 찍은 만큼, 편집을 할 때도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아요.

 

되게 힘들죠. 분량이 많기 때문에 경우의 수가 더 많이 나오거든요. 그래도 연기를 제일 우선으로 보고, 연기가 제일 좋은 부분들을 썼어요. (촬영본이 많은 것의) 장점은, 지루하지 않게, 긴장감 있게 편집을 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더라고요. 예전에는 대화 속 포즈(pause) 등이 필요한 경우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과감하게 그 부분을 잘라내고 바로 인물들이 부딪히게끔 붙일 수가 있었어요.

 

 

〈보통의 가족〉 스틸컷
〈보통의 가족〉 스틸컷

 

국내 개봉 버전과 영화제 버전의 차이도 궁금합니다. 영화제 버전과 달리 편집된 부분이 있을까요?

 

첫 시사 이후 새벽에 박찬욱 감독이 문자를 했는데, 평이 너무 좋다고 하는 거예요. 평을 보니, 서스펜스 스릴러라는 느낌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서스펜스’라는 장르가 생기는 거잖아요. 그래서 영화제를 여러 군데 돌아다니면서 편집을 어떻게 하다가 고민을 하다가, 조금 더 속도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호흡이 조금 길다고 느껴져서 그런 호흡들을 조금 잘라냈어요.

 

<보통의 가족>의 음악도 영화의 몰입감을 강화하는 요소입니다. 항상 같이 작업하시던 조성우 음악감독과 함께 이번에도 협업하셨는데요. 조성우 음악감독은 ‘비극의 탄생’이라는 테마 곡을 작업하기 위해 오스트리아에 직접 가서 비엔나 방송교향악단과 함께 곡을 녹음하는 등 많은 노력을 들였다고요.

 

조성우 음악감독과는 <호우시절>(2009) 빼놓고는 영화를 다 같이 했으니까. 같은 학교 같은 과 친구고, 제가 단편 영화를 할 때 처음으로 음악을 맡겨서 같이 시작했어요. 그런데 <보통의 가족>은 이전에 제가 하던 영화들과는 좀 다르잖아요. 이전의 영화는 서정성이 담긴 영화였다면, 이번 영화는 좀 더 긴장감 있고 장르적인 영화이기 때문에 음악에 대한 의견을 서로 많이 주고받았어요. 첫 시사했을 때도 음악이 좋다는 평들이 많아서 기분이 좋았어요. 그런데, 저는 항상 그전 작품 찍을 때 음악감독에게 음악을 좀 줄이자고 했었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음악감독이 음악을 좀 줄이자고 하는데 저는 오히려 키우자고 했어요. 왜냐하면 음악으로 긴장감을 끌고 가면서, 자식과 가족에 대한 장면에 어울리지 않는 현악기 선율이 나온다던가, ‘보통의 가족’과 같은 반어적인 느낌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보통의 가족〉 스틸컷
〈보통의 가족〉 스틸컷

 

고등학생 연기를 한 두 명의 마스크가 서로 상반되는 느낌인 것도 인상적이에요. 혜윤이를 연기한 홍예지 배우는 악역의 느낌이 나는 얼굴이라면, 치호 역의 김정철 배우는 완전히 순진무구하고, 어리숙한 고등학생의 느낌이 나는데요. 아역 두 명을 캐스팅할 때, 중점을 둔 부분은요.

 

오디션에서 연기를 중점으로 봤어요. 치호 역의 김정철 배우는 그때가 중학교 3학년이었는데, 영화에서는 고등학교 1학년으로 나왔어요. 그런데 극 중에서 치호는 갑자기 대치동으로 전학을 왔고, 적응을 못하고, 학교폭력을 당하니 그런 (어려 보이는) 느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오디션을 했을 때 연기가 너무 좋더라고요. 되게 몰입감이 있었어요. 혜윤 역의 홍예지 배우도 오디션을 봤는데, 재미있었던 건 오디션이 끝나고 조감독한테 연락이 왔어요. 자기가 다 못 보여준 것 같은데, 다시 한번 하면 안 되겠냐고. 원래도 되게 괜찮았는데, 그 자세가 되게 좋았어요. 그런데 홍예지 배우는 혜윤이의 성격과는 완전히 다른 것 같아요.


※아래 문단부터는 <보통의 가족>의 결말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보통의 가족〉 스틸컷
〈보통의 가족〉 스틸컷

 

범죄자의 변호도 서슴지 않던 재완은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생각을 바꿉니다. 아이들을 경찰서에 데려가 자수하게 하자고요. 재완은 왜 생각을 바꿨을까요?

 

설경구 배우와 함께 그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재완이 왜 바뀐 것 같은지. 그런데, 재완은 안 바뀌었을 수도 있어요. 실리적인 판단을 한 거죠. 가장 실리적인 거는, 자식을 가만히 놔두는 것보다는 스스로 자수를 하라고 하는 게 훨씬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좋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을 거라는 얘기를 했어요. 또 어떻게 보면, 재규는 처음부터 아이를 자수시킬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어요. 자기의 도덕, 윤리가 가족이랑 연결이 됐을 때 무너져버리는 거잖아요. 재완이 실리적인 건, 어떻게 보면 선을 넘지 않는 도덕적인 기준을 지키는 거라고 봐요. 우리는 실리적인 것들은 너무나 박해 보이고, 실리적인 사람은 그랬으면 좋겠다(도덕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그런데, 사회에서도 기본 선을 지킨다면 실리적인 게 선한 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치호는 재규에게 범죄 사실을 들킨 후, 아버지와 함께 한강에 앉아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범행을 뉘우치고, 올바르게 살 것을 다짐합니다. 그러나, 세 번째 식사에 이르면 혜윤이와 치호가 둘만 있을 때 나눈 대화가 드러나며, 치호가 아버지 앞에서 흘린 눈물은 거짓이었음이 암시되죠. 그러나, 저는 치호가 아버지를 보며 흘린 눈물도 진심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럴 수도 있죠. 아빠와 있을 때는 진심이었는데, 혜윤이와 남겨지자 센 척하는 거죠. 계속 사람을 죽일 애들은 아닐 거예요. 그때(아빠와 있을 때)는 정말 아빠의 마음을 돌리려고 했을 수도 있고요. 세 번째 식사 때 재규가 “이건 그냥 애들끼리 하는 얘기잖아”라는 대사가 있는데, 진짜 그럴 수도 있어요. 저도 마음에 걸렸던 건, 우리가 아이들을 너무 나쁘게 그린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누가 이 아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하면 저는 부모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보통의 가족〉 허진호 감독. 사진제공=(주)하이브미디어코프, (주)마인드마크
〈보통의 가족〉 허진호 감독. 사진제공=(주)하이브미디어코프, (주)마인드마크

 

<보통의 가족>은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는 영화임은 분명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복합적인 사회 문제가 얽혀 있는 작품인데요. 감독님이 <보통의 가족>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질문’인 것 같아요. 재완은 결국 개과천선해서 착한 사람이 되고, 또 착한 사람(재규)이 나쁜 사람이 되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영화를 보고 ‘나는 어떻게 할까’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고. 사람들은 ‘내가 어떤 짓을 하지 않을 것 같다’라고는 하지만, 내가 그런 짓을 할 수도 있잖아요. 우리가 정말 윤리, 도덕을 지키고 살 것 같지만, 그러지 못할 수 있어요.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해 확신하지 말자,라는 부분을 말하고 싶었기도 하고, 그리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한 질문들. 예를 들어, 노숙자의 목숨과 아이들의 생명에 차별을 두려고 하잖아요. 그건 ‘나는 사람 많이 살렸으니까, 착한 일 많이 했으니까 나는 이래도 돼’ ‘나는 나라를 위해서 봉사를 하니까 나는 나쁜 짓 해도 돼’라는 것과 똑같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저까지 포함해서, 반성을 할 수 있으면 어떨까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