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창업. 얼핏 거창해 보이는 창업의 세계에 도전한 씨네필이 있다. 일단은 유튜브 채널 개설로 시작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진짜 한국영화 이야기’를 하겠다는 목표로, 한국영화에 관심 있는 구독자 및 시청자를 대상으로 미드폼 및 숏폼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we make film FILM MAKE US’라는 슬로건으로 시작한 김창섭 대표의 ‘필름메이크어스’는 바로 그 유튜브 채널을 기반으로 단편영화 콘텐츠 제작사를 만들고, 더 나아가 유의미한 지원 사업을 벌이고 싶다는 사업 계획으로 용산구 창업지원센터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어딘가 소속되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창업’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꿈꿀 수 있었던 데는 이전의 경험이 발판이 됐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마을 미디어 지원센터라고, 로컬 미디어 제작자들을 지원하는 기관에서 일한 적 있다”는 그는 “부지런히 찾아보면 창작자뿐만 아니라 창업자들을 지원하는 공공 지원 사업이 꽤 많다. 당연히 선정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해야겠지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꼭 한 번 도전해보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필름메이크어스는 향후 전개하고자 하는 단편영화 유료 스트리밍, 배우 및 감독 초대석, 오프라인 상영회 개최, 오리지널 단편영화 제작 등 사업의 초석으로 시작했다. 현재는 한국영화계의 여러 담론에 대해 다루고 있는 정보성 콘텐츠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추후 내용이나 형식 면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해 선보일 예정이다. 아직 ‘대표’라는 이름이 쑥스럽다고는 하지만, 올해 2월부터 필름메이크어스 유튜브 채널 운영을 시작하고 3월부터 센터에 들어가게 된 ‘필름메이크어스’의 김창섭 대표를 만났다. 그에게 영상 관련 일의 시작은 이른바 ‘방송국 PD’였다. 언론고시를 준비하다가 진로를 바꿔 방송국으로 취업하게 된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CJ ENM 스토리온에서 라이프스타일 관련 콘텐츠를 만들었지만, 애초의 꿈은 ‘연출’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 PD였다. 하지만 그와는 거리가 먼 일을 오래 하게 됐고, 2014년을 전후로 CJ ENM의 계열사로 ‘스튜디오 드래곤’이 만들어지던 시기에 부서 이동도 수월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과감하게 퇴사를 택했다.

“영화와 사랑에 빠지는 세 단계가 있다. 첫 번째는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직접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는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말(이라고 알려진 오역)처럼, 김창섭 대표는 가장 먼저 ‘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목표에 도전했다. 어딘가에 출품해 주목받거나 일정 정도의 성취를 이루지 못한다 해도 ‘그냥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계속 무언가를 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시간 여유가 생기면서 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모은 돈을 털어 단편영화 제작에 도전했다”는 그는 “참여해주신 촬영감독님과 인연이 되어 제작사에 들어갈 수 있게 됐고, 몇몇 드라마와 상업영화 현장을 경험해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덮치면서 준비하던 현장이 엎어지고, 급여 문제 등과 더불어 다른 현장으로 넘어가는 것도 쉽지 않게 되면서 이후 술술 풀려나갈 것만 같던 일들이 모두 멈춰지고 말았다. 불과 몇 년 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경력 단절 등의 문제는 많은 영화인들이 공감하고도 남으리라.

이후 ‘미디액트’의 문을 두드렸다. 미디액트는 시민영상창작과 독립영화제작 활성화를 위해,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무상으로 혹은 저렴하게 영상 기자재를 대여하여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공공 문화 기반 시설이자, 국내 최초로 세워진 공공미디어센터다. “독립 창작자들을 지원하는 사업이나 상설 강좌도 좋고, 장편 시나리오 과정까지 있어서 막연하게 영화의 꿈을 꾸는 창작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곳”이라는 그는 미디액트에서 3년 정도 일하며 본격적으로 창업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다시 미디액트를 나와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대상으로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 대행해주는 프로덕션에서 근무했고 지금의 필름메이크어스 창업에 이르렀다. 일단 영화인들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커뮤니티인 ‘필름메이커스’와 유사한 이름을 지어 어그로를 끌려는 것 아니냐는 농담 섞인 질문을 던졌다. “나 역시 필름메이커스를 통해 실제로 도움받은 일도 많고 우여곡절도 많았다. 약간 애증의 커뮤니티이긴 하나, (웃음) 영화인들이라면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그 자장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도 맞다”는 그는 “일단 필름메이커스는 영화팬들이나 관객이 들어갈 일이 잘 없고, 분야도 전혀 겹치지 않는다. 필름메이크어스 창업과 함께 내세운 슬로건이 ‘we make film FILM MAKE US’인데 ‘우리가 영화를 만든다’라는 개념보다 ‘영화가 우리를 만든다’는 것에 보다 방점을 찍고 시작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올해 2월부터 김창섭 대표가 꾸준히 생산해내고 있는 콘텐츠는 무척 흥미롭다. 영화 리뷰가 주를 이루고 있는 영화 유튜브들 사이에서 산업에 대한 얘기가 많아 단연 돋보인다. 저널리스트라고 해야 할지 크리에이터라고 해야 할지 헛갈리지만, 그에게는 딱히 의미 없는 분류법이기도 하다. 그저 ‘아무도 말하지 않는 진짜 한국영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목표에 충실하고픈 생각뿐이다. [단편영화 제작지원] 소식으로 시작해 실제 단편영화 제작에 나서고자 하는 [제작 예산 분석] 카테고리가 무척 유용할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촬영 계획 분석] 웹드라마 좋좋소 카메라 블로킹 어떻게 짰을까’, ‘[제작 환경 분석] 영화 스태프 하면 얼마 벌 수 있을까’를 비롯해 ‘[씬리스트 분석]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광고로 만드는 과정은?’, ‘[촬영 장비 분석] 아이폰으로 영화 찍기 정말 가능할까?’, ‘[연출 과정 분석] 영화 스토리보드, 야, 너두 그릴 수 있어!’ 등에서 구체적인 제작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는 ‘무슨 영화를 봐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 영상을 꼭 보세요!’, ‘왜 극장에 가야 되나요?’, ‘무비랜드가 다른 극장과 차별화되는 2가지 이유’ 등 보통의 관객에게 도움이 될 만한 콘텐츠뿐만 아니라 ‘주연 배우 출연료 감당이 안 돼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AI 영화 미리보기’, ‘<파묘>도 당한 영화티켓 할인의 진실’, ‘최민식 배우 저격한 카이스트 교수, 팩트 체크 들어간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왜 한국영화인을 프로불편러로 만드나?’ 등 최근 논란 및 이슈가 된 사안들도 폭넓게 다루고 있다. 그러다 드디어 ‘프로야구는 잘되고 한국영화는 안 되는 이유’라는 영상이 14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댓글이 1,300개가 넘으면서 채널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사실 올해부터 프로야구를 보기 시작했는데, (웃음) 텅 빈 영화관과 달리 사람들이 정말 많더라. 영화관도 이렇게 관객으로 꽉 차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코로나 팬데믹 이후 극장 문화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근본적인 대책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풀어본 콘텐츠인데 공감과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프로야구는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분명하게 밝히면서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반면, 영화를 비롯한 예술 소비자들은 어떻게 다를까, 하는 가벼운 의문이었다”는 그는 “채널 개설 이후 큰 용기를 얻은 순간이었고, 필름메이크어스 채널에 꾸준히 들어오고 관심 가져주시고 계속 함께 할 수 있는 분들도 많이 알게 됐다. 향후 어떤 방식으로 사업을 풀어갈 수 있을까, 하는 점에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고 말한다.




어쨌거나 창업과 직결되는 것은 수익화의 문제다. 필름메이크어스를 꾸준히 운영하면서 이제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미션과 본격적으로 대면해야 할 시기다. 현재 그는 ‘단편영화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기존 OTT 플랫폼들에서도 단편영화를 제공하고 있지만 보다 색다른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독립 단편영화의 유료 스트리밍과 함께 하는 가이드 콘텐츠와 소통 콘텐츠, 그리고 온라인 커뮤니티와 프라이빗 상영회 등을 통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꿈꾸고 있다. 그러다 보면 향후 오리지널 콘텐츠를 향한 플랜도 무르익을 것이라 보고 있다. “비록 작은 규모의 OTT 서비스가 될 수도 있겠지만 ‘여러 OTT들 중 하나’에 머무르지 않고 단편영화와 관련된 제작자나 배우, 그리고 여러 영화인들과의 대화도 추진하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넘어 확장성을 가진 서비스를 구상 중”이라며 “여전히 극장에서의 경험만큼은 따라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단편영화 역시도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그 경계를 넘어 그런 관객 공동의 경험을 나누고 가져갈 수 있을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연결 문제를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처럼 그는 이 사업의 잠재고객들이 충분하다고 믿고 있다. 이런 작은 발걸음이 어디까지 내디딜 수 있을지 지켜보고 싶다. 앞서 얘기한, 영화와 사랑에 빠지는 트뤼포의 세 단계에 ‘창업’이라는 새로운 단계를 더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