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기사 카테고리

Movie & Entertainment Magazine from KOREA
>영화

사요나라, 나카야마 미호

씨네플레이
영화 〈러브레터〉의 한장면
영화 〈러브레터〉의 한장면

6일 배우 나카야마 미호가 사망했다. 향년 54세, 도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초 이날 오사카에서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열 예정이었지만 건강 문제로 중단한 상태였다. 사인은 확실치 않다. 1985년 아이돌 가수로 데뷔해 일본 레코드 대상 최우수 신인상을 받는 등 큰 사랑을 받은 그는 배우로도 활동하며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1995) 등에 출연했다. 나카야마 미호를 추모하며, 생전 그의 활동을 모아봤다. 


아이돌로 시작한 커리어

나카야마 미호의 싱글앨범 'C'
나카야마 미호의 싱글앨범 'C'

국내에선 영화 <러브레터>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나카야마 미호는 일본을 대표하던 아이돌 출신의 배우다. 중학교 1학년 때 도쿄 하라주쿠에서 연예기획사에 스카우트돼 연예계에 데뷔한 그는 광고 모델에서 가수, 배우로 활동 영역을 넓히며 1980년 후반 아사카 유이, 쿠조 시즈카, 미나미노 요코 등과 함께 '아이돌 사대천왕'으로 큰 인기를 끈다. 1985년 14살 때 발표한 싱글앨범 'C'는 17만 장이 팔리며 나카야마에게 그해 일본레코드대상 신인상을 안겨주기도. 이후에도 ‘세상 누구보다 분명히’(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 1992)와 ‘그냥 울고 싶어져’(ただ泣きたくなるの, 1994) 등의 노래가 밀리언 히트를 기록하며 1990년 후반까지 왕성하게 활동한다. 1999년 9월 앨범 발표를 끝으로 신곡을 내놓지 않다가 20년 만인 지난 2019년, 자신의 35년간의 흔적을 돌아보는 오리지널 앨범 ‘Neuf Neuf’를 발매해 가수로서의 활동을 이어왔다.


영원한 첫사랑의 아이콘 <러브레터>

〈러브레터〉 나카야마 미호
〈러브레터〉 나카야마 미호

 

배우로의 커리어도 성공적이었다. 데뷔 초인 80년대부터 전성기를 경험한 90년대, 2000년대 초까지 모두 주연을 꿰찼고 출연작들도 평균 20% 이상의 높은 시청률로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특히 영화 <러브레터>(1995)에서 죽은 옛 연인을 잊지 못하고 편지를 보내는 신비롭고 애련한 분위기의 ‘와타나베 히로코’와 그녀에게 답장을 보내는 맑고 활발한 ‘후지이 이츠키’의 1인 2역을 맡아 서로 다른 인물의 미묘한 감정선을 훌륭히 소화해 큰 인기를 끌었다. 흰 눈이 덮인 설산에서 빨간 스웨터를 입은 나카야마 미호가 “오겡끼데쓰까?”(잘 지내나요?)를 연달아 외치는 장면은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조차 아는 명장면. 1995년 개봉한 러브레터는 당시 일본에서 1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울렸고, 한국에는 일본 문화가 개방된 이후인 1999년 개봉돼 약 14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1999년 이후 한국에서 무려 8번 재개봉된 <러브레터>는 25년이 지난 지금도 역대 한국 개봉 일본 실사 영화 중 가장 성공한 작품으로 꼽힌다.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 참석차 내한한 나카야마 미호는 취재진에게 “러브레터가 개봉한 지 벌써 25년이 흘렀는데, 아직도 한국 관객분들이 '오겡끼데스까'라고 해주시는 것이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고 말하며, “대만에서 지난해에 재개봉을 해서 제가 몰래 보러 갔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재개봉을 한다면 몰래 와서 구경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 개봉 25주년, 탄생 30주년을 맞아 오는 1월 1일 9번째 재개봉을 앞두고 있던 <러브레터>. 주인공의 사망 소식이 과거 인터뷰와 포개지니 모두의 첫사랑, 배우 나카야마 미호의 죽음이 실감된다. 

아이돌 가수였던 나카야마에게 <러브레터>는 전환점이 되었다. 1인 2역을 연기력으로 소화한 나카야마는 일본 요미우리신문과 인터뷰에서 “이전에도 드라마·영화에서 연기했지만 대부분 아이돌 이미지를 내세운 작품이었다”며 “아이돌 배우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났고, 배우로서 큰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레브레터>로 블루리본상·호치영화제·요코하마영화제·다카사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그는 이후 <도쿄 맑음>(1997)으로 일본아카데미상 우수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쥔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어 <사요나라 이츠카> <나비잠>

 

〈사요나라 이츠카〉
〈사요나라 이츠카〉

2002년 소설가인 츠지 히토나리와 결혼해 결혼 생활 중 프랑스 파리에 머물며 오랜 기간 공백기를 가진 나카야마는 1998년 드라마 <잠자는 숲> 이후 약 12년 만인 2010년 연기 활동을 재개하는데 한국계 미국인 이재한 감독의 영화를 통해서였다. <내 머리속의 지우개>를 연출한 이재한의 <사요나라 이츠카>에서는 나카야마는 남자에게 멋진 차를 사줄 수 있는 재력을 갖춘 데다가, 그를 굴복시키는 마성의 관능까지 지닌 미망인 마나카 토우코로 분해 <러브레터>의 이미지를 완전히 지운다. 

〈나비잠〉
〈나비잠〉

<고양이를 부탁해>를 연출한 정재은 감독이 12년 만에 내놓은 영화 <나비잠>(2018)에서는 배우 이재욱과 함께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7년 부산영화제 갈라프레젠테이션 부분에 초청되기도 한 <나비잠>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작가 료코(나카야마 미호)와 일본에 유학 온 한국 청년 찬해(김재욱)의 사랑을 그린 멜로영화로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두 남녀의 감정이 가슴속까지 먹먹하게 전해지는 수작이다.

영화에서 나카야마는 연애소설을 쓰는 전업 작가 료코를 연기한다. 자기 일을 돕던 청년과 사랑에 빠지지만, 점점 악화하는 병세를 그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이별을 고하는 료코로 분한 나카야마는 자존심을 지키면서 사랑의 기억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중년 여성의 우아하면서도 담담한 모습을 훌륭히 표현해냈다. <나비잠>으로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그는 “나이 들수록 역할이 줄어드는 걸 느낀다. 그게 시대 때문인지, 사회 시스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이와 함께 깊이를 더해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며 배우라는 삶에 대한 아쉬움과 희망을 전하기도 했다.


나카야마의 생전 마지막 흔적은 사망 하루 전 그가 인스타그램에 남긴 포스팅이다. "난 지옥에 갔다 왔다. 그리고 이 말은 해야겠다. 그곳은 멋진 곳이었다.(I have been to hell and back. And let me tell you, it was wonderful)" 라는 문구가 수놓인 루이스 부르주아의 전시 작품 사진과 함께 ‘며칠 전 전시회에 갔다 왔는데 사진 잘 못 찍어서 죄송해요. 2~3일간 마음이 찢어들 듯 아파서, 같이 갔던 친구하고만 이야기할 수 있었어요’라는 글이 남겨져있다. 떠난 그곳에서 부디 편히 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