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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예수를 만난 세 명의 노숙자 이야기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추아영기자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포스터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포스터

12월 11일 전 세계 애니메이션 영화사에 천재 감독으로 남은 곤 사토시의 영화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이 4K 리마스터링 개봉해 극장가를 다시 찾았다. <퍼펙트 블루>(1997), <천년여우>(2001), <파프리카>(2006) 등 곤 사토시의 작품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꿈의 세계를 이미지화했다. 세 명의 홈리스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이하 <기적을 만날 확률>)은 그의 영화 중에서 가장 사실적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세 명의 홈리스가 도쿄의 거리를 누비면서 일어나는 소동을 담은 영화는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감동을 자아낸다.

 


(왼쪽부터)긴, 미유키, 하나 -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왼쪽부터)긴, 미유키, 하나 -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도쿄 신주쿠의 뒷골목. 술에 기대 사는 괴팍한 노숙자 긴, 감성적인 트랜스젠더 하나, 10대 가출 소녀 미유키는 서로 유사 가족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세 명의 도쿄 방랑자는 눈이 소복이 내린 크리스마스 날 밤 쓰레기 더미에서 버려진 아기를 발견한다. 엄마가 되기를 꿈꿔 온 하나는 아기에게 ‘키요코’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노숙자의 신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기를 돌보려 한다. 긴과 미유키도 대책 없는 하나의 주책에 말려들고, 그와 함께 아기의 친부모를 찾아 나선다. 그들은 도쿄의 거리를 누비다 연이어 사건에 휘말리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자신의 인생과 마주한다.

 


“리얼하게! 리얼하게!”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곤 사토시 감독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을 선보이며 꿈의 마법사라 불렸다. 그의 영화는 인물의 평범한 일상에 꿈이 틈입하고, 불완전한 기억이 뒤섞이는 혼란스러운 환상의 세계다. 사실주의와는 거리가 먼 그의 양식화된 작화는 더욱 관객을 현실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의 영화 속에서 인간은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해 혼란을 느낀다. <기적을 만날 확률>은 양식화된 화풍을 선보였던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현실에 닿아 있는 작품이다. 과거 인터뷰에서 곤 사토시 감독은 “<퍼펙트 블루>와 <천년여우>는 꿈과 현실이 어우러져 있다. 항상 해왔던 방식대로 만들면 중복될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종류의 이야기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단순하게 만들고, 등장인물들의 배경을 더 많이 노출하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또 곤 사토시와 함께 <기적을 만날 확률>을 작업한 애니메이터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그는 <기적을 만날 확률>의 원화를 그리면서 애니메이터들에게 “리얼하게! 리얼하게!”를 계속 외쳤다고 한다. 그는 작화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도쿄의 곳곳을 사진으로 찍어서 그려냈다. 영화에는 번화한 상가 아래로 쓰레기 더미와 에어컨 실외기 등이 어지럽게 늘어선 도쿄 뒷골목의 풍경이 정교하게 담겨 있다. 다만 <기적을 만날 확률>의 한층 사실적인 그림이 담아내는 풍경은 우리의 무신경한 인식 너머의 보이지 않는 현실이다.

 


도쿄의 화려함에 가려진 어둠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괴팍한 노숙자 긴과 트랜스젠더 하나, 가출 소녀 미유키는 아기의 친부모를 찾아 떠난다. 그들의 동행은 도쿄의 화려함에 가려진 어두운 이면을 드러낸다. 곤 사토시는 이번 영화의 서사적 기본 토대를 구상하면서 존 포드 감독의 영화 <3인의 대부>(3 Godfathers, 1948)의 설정을 가져온다. <3인의 대부> 속에서 3명의 무법자는 사막지대에서 만삭의 여인을 발견한다. 그들이 그녀의 아기를 받아주고, 이내 여인은 숨을 거둔다. 그들은 아기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 위해 모래폭풍이 불어닥치는 죽음의 사막을 건너기로 한다. <3인의 대부> 속 세 명의 무법자는 곤 사토시의 영화 속에서 소수자성을 지닌 현대적이고 독특한 캐릭터로 변주된다.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도박 빚으로 가족들과 헤어지고 거리에 나앉은 알코올 중독자 긴은 사회에 발붙일 곳 없는 홈리스다. 친모의 얼굴도 모르는 하나는 드래그 퀸 클럽에서 키워진 트랜스젠더다. 과거 뚱뚱한 체형이었던 미유키는 유일하게 마음을 내준 고양이 엔젤이 실종되자 이성을 잃고 아빠를 칼로 찌른다. 미유키의 가족들은 그녀가 집에 돌아오기를 바라지만, 미유키는 죄책감에 돌아가지 못하고 거리를 떠돈다. 그들은 크리스마스에도 하루 살아갈 양식을 구하기 위해 교회에 가고, 쓰레기 더미를 뒤진다.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곤 사토시 감독은 당시 홈리스가 늘어나는 도쿄의 현실을 반영해 세 명의 홈리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는 사회에서 소외되어 있는 그들의 삶에 어떠한 잣대도 들이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려낸다. 영화의 중반부에 담긴 긴과 또 다른 알코올 중독 홈리스 할아버지의 만남은 이들의 처지를 잘 보여준다. 홈리스 할아버지는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숨을 거둔다. 긴은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지켜본 직후 바로 도시의 부랑배들을 맞닥뜨린다. 그들은 도시를 청소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긴에게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두른다. 그들의 폭력은 숨이 붙어있지 않은 시체에도 주저하지 않고 계속된다. 그들의 녹록한 삶에도 불구하고 세 명의 홈리스와 아기의 동행은 제법 유쾌하게 그려진다. 난데없이 시상이 떠오르면 시를 짓는 하나의 버릇과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긴과 미유키가 일으키는 소동은 영화에 소소한 재미를 불어넣는다. 사회에서 내쳐진 이들은 선의를 저버리지 않고, 서로 도우며 아기를 추위와 굶주림으로부터 지켜낸다.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뿐만 아니라 우연과 인물의 돌발적인 행동으로 일어난 영화의 다양한 에피소드는 홈리스와 더불어 더 많은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담고 있다. 영화에는 남미계 외국인 부부와 드래그 퀸 클럽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미유키는 남미계 외국인 부부를 통해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고, 드래그 퀸 클럽의 사람들은 부랑배들의 폭력으로 인해 거리에 쓰러진 긴을 보살핀다. 또 하나와 미유키에게 잠시 쉬어갈 곳을 내어준다. 곤 사토시 감독은 오히려 따뜻하고 친절한 마음으로 활기차게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의 모습으로 사람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보편적인 고민을 해소해 준다. 또 곤 사토시는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아기로 마구간에서 태어난 예수의 탄생 설화를 변주해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그려낸다. 아기를 구하겠다는 그들의 선의는 끝내 도시의 어둠을 밝히며 떠오르는 햇빛 아래 기적을 일으킨다.

 


씨네플레이 추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