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성탄절, 크리스마스다. 엄밀히 따지면 종교기념일이지만, 연말을 앞두고 오는 크리스마스는 종교 유무를 떠나 연말을 기분 좋게 보내는 데 도움을 준다. 특히 이맘때면 그 누구보다도 어린아이들을 한껏 들뜨는데, 바로 크리스마스에 받게 될 선물 때문. 어린 시절 산타클로스에게 받는 선물은 그 신기함과 기쁨이 배로 느껴져 어린이들은 '울면 안 돼'라는 말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이처럼 전 세계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크리스마스의 아이콘 산타클로스는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데, 할리우드도 그중 하나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산타가 주인공이거나 소재로 나오는 영화가 한 편 정도는 늘 있다. 올해의 (조금 이르게 도착한) <레드 원>을 비롯해 산타클로스로 변신한 배우들을 정리했다.
J.K. 시몬스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은 산타클로스


올해는 '크리스마스' 겨냥 영화가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미 지나갔다. 11월 개봉한 영화 <레드 원>이 그 주인공인데, 산타클로스가 납치되면서 산타클로스의 경호원 칼럼(드웨인 존슨)과 최고의 추격자란 별명과 달리 허술하기 짝이 없는 잭(크리스 에반스)이 협력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 영화에서 코드명 ‘레드 원’으로 불리는 산타클로스는 <위플래시>,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유명한 J.K. 시몬스가 맡았다. 풍채가 크고 푸근한 느낌의 산타클로스의 이미지와 달리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강력한 인물로 그려지는 것이 특징. 과거 운동 사진이 화제를 모았던 배우였기에 이번 <레드 원>에서 근육질의 산타를 맡는 것이 그리 낯설지 않다. J.K. 시몬스는 이전에도 산타와의 인연이 있는데, 2019년 애니메이션 <클라우스>에서 산타클로스에 영감을 받은 캐릭터 클라우스를 연기한 바 있다. 본인 말로는 20대에도 백화점에서 산타클로스 아르바이트를 한 적 있는데 “역대 최악의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엄청난 애연가였기에 10분마다 담배 피우러 가도 되냐고 물어봤다고.
팀 알렌
자신만의 시리즈가 있는 할리우드 대표 산타클로스


우리에겐 “To infinity and beyond!”를 외치는 목소리로 익숙한 팀 알렌은 1994년부터 2022년까지 이어진, 본인만의 <산타클로스> 시리즈를 보유한 대표 산타 배우다. 1994년 영화 <산타클로스>에서 팀 알렌은 본인 집에 들어오려다가 사고를 당한 산타클로스를 보살피다가 점점 진짜 산타클로스가 돼가는 스콧 캘빈 역을 맡았다. '자식에게 무관심했던 부모가 어떤 사건으로 자녀와 관계가 돈독해지는' 가족드라마의 전형에 얼렁뚱땅 가짜 산타가 점점 진짜 산타클로스로 거듭나는 전개가 훌륭한 시너지를 내 크리스마스 대표 영화로 자리 잡았다. 점점 풍채가 좋아지고 수염이 덥수룩하게 나는 등 우리가 아는 산타클로스로 점점 변하는 과정이 웃음을 자아낸다. <산타클로스>는 제작비의 9배 정도 되는 흥행 기록을 남겼는데 속편은 2002년에 돼서야 나왔다. 영화는 현실에서의 세월을 반영하듯 스콧이 산타로 활동한 8년 후를 그린다. 아들과의 문제, 크리마스 전까지 결혼할 신부 구하기 등 여러 문제가 얽혀 다소 정신없게 돌아가지만, 산타클로스 말고도 다양한 신화적 존재가 나오는 부분이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전작에 비해 규모가 커지고 반면 흥행은 비슷했지만, '미워도 다시 한번' 정신인지 2006년에 3편을 개봉했다. <산타 클로스3: 산타의 탈출>은 서구권에서 '겨울' 하면 또 유명한 잭 프로스트가 숙적으로 등장한다. 전작들에 비해 영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1억 달러는 벌어들였다(루머로는 제작비가 1200만 달러라는데, 그럼 충분히 벌고도 남는 돈이다). 이렇게 회차를 갈수록 하락세였지만, 역시 팀 알렌의 산타를 보며 자란 세대가 많기 때문일까. 디즈니는 자사의 OTT 플랫폼 독점으로 <산타클로스> 드라마를 제작해 2022년에 시즌 1를, 2023년에 시즌 2를 공개했다. 공개 주간 미국에서 가장 많이 시청한 TV시리즈 10위에 올랐으니 확실히 현지에서 팀 알렌 산타의 향수는 강한 모양이다.

에드워드 애스너
산타클로스 명예의전당이 공인한 산타클로스 대표 배우

남들은 한 번도 하기 힘든 산타클로스를 8번이나 맡은 배우가 있다. 에드워드 애스너다. 2021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애스너는 총 8편의 영상물에서 산타클로스를 연기했다. 가장 먼저 드라마 <천사 조나단>(Highway to Heaven
)의 시즌 4 12화에서 산타클로스를 연기했다. 굳이 따지자면 산타클로스는 아니고 '해롤드'라는 이름으로 천사인데 자신의 힘을 이용해 인간을 직접적으로 돕다가 천사 규칙 위반으로 200년간 지구에 남겨진 인물. 그의 가장 대표 산타(?)라면 2003년 영화 <엘프>에서의 산타다. 인간인 버디가 엘프마을에서 자라게 된 원흉(?)이긴 하지만 반대로 스스로 엘프로서도, 인간으로서도 도움이 안 된다고 믿는 버디를 끝까지 믿어준 듬직한 보호자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애스너는 TV프로그램이나 광고, 애니메이션 등에서 산타 전문 배우로 활동했는데, 앞서 말한 8편은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기록일 뿐 그보다 더 많은 산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에 산타클로스 명예의전당 2015년 입회자로 이름을 올렸다. 다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크리스마스를 기념일로 삼지 않는 유대교 집안 출신이라고.


찰스 더닝
가는 날마저 산타클로스 같았다는 배우


찰스 더닝을 아는 사람이라면 다소 낯설 수도 있다. 찰스 더닝이 산타클로스를? 그는 <스파이 하드> <허드서커 대리인>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 등 코미디 영화로 한국 관객들에게 익숙했기 때문. 하지만 현지에서 방영한 TV영화에서 총 다섯 번이나 산타클로스를 맡아 연기한 바 있다. 처음 산타를 맡은 건 1989년 <It Nearly Wasn't Christmas>로 더 이상 자신을 믿지 않는 세상에 환멸을 느끼고 일을 그만두는 산타클로스 역할이었다. 그러다 순수한 소녀 제니퍼와 동행하게 되면서 다시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위해 마음을 돌린다. 마지막으로 산타 역을 맡은 영화는 2004년 <A Boyfriend for Christmas>로 여기선 '남자친구를 주세요'라는 다소 허무맹랑한 소원을 들어주는 산타클로스로 출연해, 사랑을 이어주는 큐피드 역할까지 해낸다. 찰스 더닝은 2012년 12월 24일, 그러니까 크리스마스이브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산타클로스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어쩐지 그가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이뤄주기 위해 하늘로 돌아간 것이 아닐까 생각할지 모르겠다.
존 굿맨
실사화급 풍채에도 의외로 산타클로스 작품은 실패한

풍채만 봐선 누가 봐도 산타클로스 1순위인데, 의외로 산타 역은 거의 해본 적 없는 존 굿맨. 그는 지금까지 딱 4번 산타클로스 연기를 펼쳤는데, 그중 2006년 TV영화 <The Year Without a Santa Claus>를 제외하면 모두 목소리 출연이다. (물론 목소리 출연한 작품도 쟁쟁한데, <네모바지 스펀지밥>의 크리스마스 스페셜 회차(‘스폰지밥 크리스마스!’)와 <퓨처라마> 시즌 2의 ‘크리스마스 스토리’에서 산타클로스 목소리를 맡았다) <The Year Without a Santa Claus>는 1974년 동명 애니메이션의 실사화 버전인데(원작에선 미키 루니가 목소리를 맡았다) 제목처럼 산타클로스가 선물 배달 포기를 선언한 크리스마스를 그린다. 원작과 거의 유사한 스토리를 가져왔지만, 엄청난 혹평을 받았다. 아무래도 배경을 현대 미국으로 하면서 힙합을 하는 청년과 만나는 등(!) 리메이크 과정에서 손 본 부분들이 호응을 사지 못했던 것. 물론 존 굿맨이나 배우들의 연기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 이제 존 굿맨이 다이어트 대성공으로 훌쭉해져서 산타를 맡을 일은 없어보이니 아쉬울 따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