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한 편, 사회의 시선을 바꾸고, 세상을 움직이는 영화가 탄생할 것인가. 12월 25일 개봉해 관객을 만나고 있는 영화 <면접교섭>(감독 이주아) 이야기다. 제목부터 생소한 ‘면접교섭’은 ‘이혼으로 자녀와 떨어져 사는 비양육자가 정기적으로 자녀와 만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의미한다. 영화는 각자의 사정으로 이혼한 김재훈 씨(45세, 9살 딸을 둔 비양육자), 배상문 씨(54세, 10살 아들을 둔 비양육자)가 법적으로 매달 2회 보장된 면접교섭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자녀와의 시간을 되찾기 위해 끝없이 고군분투하는 상황을 따라가며, 현재 대한민국의 면접교섭권 실태를 조명한다. 실제로 미성년 자녀의 정서적 발달에 가장 중요한 면접교섭권은 상황에 따라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이들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장치와 제도가 미비한 것이 현실이다.
<면접교섭>으로 첫 장편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이주아 감독은 법의 허점 속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두 아버지와, 양육자-비양육자 사이에서 상처받는 아이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내며 현실의 벽을 마주한 이혼 가정의 목소리를 전한다. 이 감독의 강렬한 장편 데뷔작 <면접교섭>은 학부생들이 뭉쳐 만든 작품으로 제작 완료 전부터 충청지역에서 화제가 되면서 각종 매체 인터뷰 및 방송 출연 등으로 주목을 받았다. 세종특별자치시, 세종시문화관광재단, 세종시청자미디어센터, 한국영상대학교 등이 제작지원한 것도 지역을 무대로 활동하는 영화예술가들이 눈여겨볼 지점이다.
비양육 부모라면 유책 사유가 있을 것이란 편견으로 비양육 부모들은 세상에 나오길 꺼린다. 세상은 양육비 미지급에 대해서는 아이의 생존권과 직결돼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지만, 면접 교섭을 방해하는 건 별일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른들의 끝없는 다툼 속에서 피폐해져만 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이 감독은 “이 아이는 언제 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상황을 목도한 감독의 서늘하고도 무서운 증언이다. 아이들에게는 양육비나 상속권 같은 돈 얘기보다 두 부모 모두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는 것이 더 중요할 텐데 말이다. 현재 지방에서 작업 중인 이 감독을 줌으로 만났다. 독감에 걸려 갈라진 목소리였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또렷했다.

영화 잘 봤습니다. 너무 흡입력 있더라고요. 우선 ‘면접교섭권’이라는 생소하면서도 다소 무거운 주제에 스물다섯의 청년 감독님이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궁금해지더라고요.
미혼부가 친자에 대해 출생 신고하지 못하는 상황을 알게 된 게 2021년이에요. 영화에 첫 번째 사례자로 나온 김재훈 씨였죠. 그때부터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었고, 촬영하면서 면접교섭권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면접교섭권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많이 안 들었어요.
김재훈 씨는 혼인신고를 하기 전에 아이가 태어나서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상황이었어요. 3~4개월을 따라다니다 보니, 이분에게는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과거 상황보다, 앞으로 면접 교섭을 하는 게 가장 큰 문제가 될 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분의 일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머니가, 많은 아버지가 면접 교섭을 못 하는 여러 상황을 봤습니다.
사실 요즘은 이혼가정이 너무 흔하고, 면접 교섭을 하는 가정이 많으니 당연한 걸로 여겼는데, 비양육부모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더라고요. 양육비는 아이의 생명과 직결돼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면접교섭권이 아이의 정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못 해본 것 아닌가 싶었죠. 그렇게 저 역시 비양육부모에 대한 편견이 좀 있었는데, 김재훈 씨를 촬영하면서 점점 더 면접 교섭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그렇군요. 영화 오프닝에 ‘면접교섭권’의 정의를 자막으로 설명하는데요. 제목은 ‘면접교섭’으로 하셨어요. 이유가 있었을까요?
‘권’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면 법적으로 너무 딱딱하게 느껴져서 싫더라고요. 사실 면접 교섭이라는 단어 자체도 어색한 단어잖아요. 자신의 아이를 만나는데 왜 교섭을 해야 하고 면접을 해야 하는 건지…. 비양육부모들 역시 면접 교섭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더라고요. 단어 자체가 주는 불편함이 있다 보니, 더 딱딱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면접 교섭으로 했습니다.
처음부터 제목은 <면접교섭> 이었나요?
김재훈 씨만 촬영하던 초반에는 ‘미혼부, 아버지로 살고 싶다’ 같은 제목이었어요. 어쩌면 아이를 잊고 살 수도 있잖아요? 법적 책임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요즘 같은 세상에 부성애 있는 사람이 여기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면접 교섭이라는 단어가 대단히 생소했어요. 양육권, 상속권 이런 건 알겠는데, 이렇게 중요한 권리인 면접교섭권은 너무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꼭 제목을 이렇게 지어야겠다고 결심했죠.

영화에 등장하는 두 미혼부, 김재훈 씨와 배문상 씨는 어떻게 섭외한 건가요? 쉽지 않았을 거 같은데요.
미혼부 카페, 미혼모 카페도 찾아보고, 한부모 가정을 찾아보기도 했어요. 스태프들이 지역주민센터도 갔죠. 그런데 대부분의 미혼부들이 세상에 나오길 꺼려 해요. 부끄러워하고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여자에게 버림받고 자신의 아이를 키우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주변의 시선 때문이더라고요. 3~4개월을 사람 찾는 데만 시간을 보낼 정도였어요. 그러던 중에 카페에 김재훈 씨가 출생신고를 못해서 아이를 만나지 못한다는 하소연을 올린 거예요.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댓글을 달았더니, 인천에 있다고 하셨어요. 직접 가서 뵙고, 촬영을 허락해주셔서 그간 소송했던 엄청난 양의 자료를 봤습니다. 그러면서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해서 만난 분이 두 번째 주인공인 배문상 씨고요.
이 두 분의 경우 면접 교섭만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부모따돌림’의 보편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더라고요. 아이를 처음 본 순간이 영화 속 상황과 똑같았어요. 이 두 분을 통해 ‘부모따돌림방지협회’를 알게 됐고요, 그 안에서 수십 명의 비양육자 부모를 만나면서 더 많은 사람의 이야기로 느껴졌던 거 같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영화에서 ‘부모따돌림방지협회’라는 단체가 있더라고요. ‘세계부모따돌림의 날’에 모여서 플래카드를 걸기도 했고요. 조금 더 설명 부탁드릴게요.
영화에도 나오는 송미강 대표는 2009년부터 법원가사상담위원으로 활동하며, 한쪽 부모에 대해 이글거리는 증오와 적대감, 위악적인 행동에 함몰돼 있는 아이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해요. 2020년 몇분의 부모님과 문제의식을 가진 변호사들이 모여 자조모임을 시작했고 2023년 창립총회를 열었습니다. ‘면접교섭 방해, 부모따돌림은 정서학대’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카페에서 시작했더라고요. 사실 비양육 부모가 연대하는 경우가 잘 없었대요. 이혼하고 나면 보통 양육 부모보다는 비양육 부모에 대한 편견이 더 크잖아요. ‘아이를 못 키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바람피운 거 아니야?’, ‘뭔가 유책 사유가 있겠지’ 같은 편견요. 그런 편견들이 두려워 비양육 부모가 모이지 못했다가, 최근 한두 분의 움직임으로 점점 더 많은 분이 용기를 내면서 모임이 활성화된 거죠.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음악치료, 상담치료, 심리치료를 하면서 상황을 버티는 힘을 얻는 것 같아요. 저 역시 매달 그 모임에 참여했죠.
부모따돌림방지협회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이렇게 말하면 좀 잔인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이가 죽지 않으면 관심을 안 가지는 거 같아요. 옷 안의 멍조차도 발견 못 하게 하고요. 우리나라 법이 그 정도까지는 못 하고 있다고 봅니다. 부모따돌림방지협회는 ‘면접교섭권 반대=아동학대’라고 주장해요. 2023년 2월 7일 인천 초등학생 시우 군이 사망했습니다. 이혼 후 친부가 양육권을 가져갔고, 재혼하면서 친모에게 면접 교섭을 해주지 않았죠. 새엄마와 친부가 아이를 감금했고, 굶겼고, 폭행했어요. 13세 아이가 7세 아이의 몸무게였습니다. 면접 교섭을 할 수 없는 친모는 아이가 이렇게 학대받고 있는 것도 모르다가 자녀의 죽음을 알게 된 겁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등 언론들도 그제야 면접 교섭 방해가 아동학대이고, 아동의 생명과 직결돼 있다는 걸 인식한 거 같아요. 부모따돌림방지협회가 당시 면접 교섭의 중요성을 피력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부모따돌림이라는 건 이혼가정뿐만 아니라 일반 가정에도 있죠. 한쪽 부모를 미워하게 만든다거나 하는 거요. 극소수의 가정이 아니고서야 한 번쯤 부모의 이혼 갈등을 경험하면서 자라온 자녀들도 많잖아요. 그게 문제라고 이야기하지 못했는데, 그걸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협회인 셈이죠. ‘아동학대’라고요.

김재훈 씨와 배상문 씨의 사례를 보면 너무 화도 나고, 무기력해지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아이가 너무 걱정이 되더라고요. 영화에서는 ‘부모따돌림’이라는 단어로 설명했지만, 어찌 보면 양육권을 가진 부모가 아이를 ‘가스라이팅’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촬영하면서 어떤 기분이셨을지 궁금해요.
그런 부분을 정말 많이 봤어요. 일단 김재훈 씨 같은 경우는 전 부인도 만났잖아요. 아이가 처음에는 아빠랑 살고 싶다고 이야기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아이가 그 어떤 이야기도 꺼내지 않는 거예요. 상황에 너무 지친 거죠. 처음에는 김재훈 씨가 말하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아빠랑 살고 싶다고, 도와달라고 말했거든요. 그런데 촬영 끝날 때쯤에는 거의 말을 하지 않더라고요. 두 부모 사이에서 너무 지친 거죠. 영화에 담지 못한 부분들도 많아요. 비양육 부모를 빗대서 상처를 주는 말도 스스럼없이 하기도 하고요. 그런 이야기는 물론 이혼가정이 아닌 상황에서도 일어날 수 있지만, 이혼가정 자녀에게는 그게 더 큰 상처가 되는 거니까요.
배문상 씨 전 부인은 아예 만남 자체를 거부했어요. KBS 같은 언론사에서도 컨택을 했는데 안 됐다고 하더라고요. 면접교섭 장소가 마트이다 보니 아이를 볼 수 있잖아요. 계산대 앞으로 아이가 오는데, 이 아이는 누가 봐도 진심이 아니에요. 너무 이상하게 진심이 아닌 이야기를 누가 시켜서 하는 것 같이 느껴져요. 실제로 배문상, 김재훈 씨나 다른 비양육 부모들도 블로그나 카페를 만들어서 몇 년간의 만남 전부를 기록해두고 있거든요. 아이와 잘 지냈던 과거 사진들, 영상들이 너무 많아요. 영화에도 잠깐 나오는데, 너무 기록이 많아요. 그러니까 계산대로 울면서 오면서 아빠랑 만나기 싫다는 아이의 모습은 누가 봐도 이상한 거였죠. 부모따돌림이라는 용어가 생소하겠지만, 그렇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면접 교섭 안 하는 건 상대적으로 큰 이슈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양육비 미지급에 대해서는 ‘배드 파더스’ 같은 단체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사회적으로 호응도 큰 거 같아요. 아마 아이 생존과 직결되는 경제적인 부분이라서 그런 거 같습니다만, 감독님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처음에는 저도 아주 의아했어요. 양육권이 있으면 면접교섭권이 있는 거고, 그러면 당연히 만날 수 있어야 하고, 못 하게 하면 과태료가 나오거나, 제재가 가해져야 하는 건데 왜 안 되는 걸까? 하는 고민이었죠. 그런데 이 정서적 학대라는 게 법적으로 기준화시킬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이혼하지 않은 가정에서도 정서학대, 아동학대가 일어나죠. 그렇다고 양육권이 바뀌진 않잖아요.
그런데 이혼가정이면 아이가 강제로 분리, 단절되면서 그런 정서학대를 더 강하게 느끼는 거예요. 아이는 비양육친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양육친에게 잘못 보이지 않으려고 한대요. 살려고요. 그런 환경에서요. 그러니까 비양육친을 잊고 싶어도 한 달에 두 번 만난다고 해도 당연히 관계의 신뢰도가 양육친에 비해 떨어지게 되죠. 양육친에게 잘 보이려고 비양육친에게 나쁜 말도 하고요.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알 수도, 정서학대를 입증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기자님. 면접 교섭을 못 하게 하는 ‘무적의 방법’이 있다는 거 아세요?

그렇게 기다리는 면접 교섭을 못 하게 하는 무적권이 있다고요?
아이가 ‘보기 싫다’고 말했다고 하면 끝이에요. 모든 면접 교섭을 반대하는 양육친들은 이런 방법을 쓰는 거죠. 너무 당연한 일이에요. 가정폭력은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잖아요. 변호사들이 말해요. 정말 가정폭력이 있는 집안에서는 면접 교섭 방해가 일어나지 않는다고요. 가정폭력을 한 비양육친은 아이를 보고 싶어 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면접교섭 방해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죠. 그런데 대부분 정상적인 사랑들이라면 이혼했더라도 자녀는 보고 싶을 거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면접 교섭을 강제로 하는 건 아이에게 위험할 수 있다고 주장하더라고요. 만약 있다 해도 극소수일 거 같은데…. 저는 어찌 됐든 면접교섭권은 강제가 돼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아동학대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비양육친이 아이가 잘 지내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봐요. 관계를 잘 쌓아가려면요.
최근 정우성 배우가 혼외자를 인정하고 책임지겠다고 하면서 이슈가 됐는데요. 면접교섭권에 대한 인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봐도 될까요?
네. 그렇기 때문에 면접교섭권 강제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강제’라는 말이 위험한 단어이긴 합니다. 면접 교섭을 하지 못하는 비양육친이 너무 많아요. 안 하려는 비양육친도 분명 있어요. 돈, 시간을 써야 하는데, 이혼까지 했겠다 굳이 애착 관계 형성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에 그 시간과 돈이 아까운 거죠. 혹 재혼을 준비하는 과정이라면 더 그럴 테고요. 그런데 전 아이를 만나지 않는 건 양육비를 안 주는 것과 똑같다고 봐요. 두 부모 모두에게 사랑받을 권리가 아이에겐 있잖아요. 나이 많이 든 사람도 엄마, 아빠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누구나 부모를 만날 권리가 있잖아요.
혼외자라면 더더욱 필요하다고 봐요. 앞으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혼외자가 더 늘 거예요. 일반 결혼가정에서 낳는 아이보다 혼외자가 더 많을 수도 있죠. 그러면 우리나라가 면접교섭권, 양육비 이런 걸 사회적으로 어떻게 보호하고 책임지는지 더 중요해질 겁니다. 법이 통제하지 못한다면 또 얼마나 많은 무책임한 부모들이 아이들이 비양육친을 만나지 못하게 할까,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상처를 받을까, 이런 걱정이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컸어요.

감독님은 혼인과 이혼으로 구분 짓는 친권, 양육권자의 권리 등에 대해 영화로 이의를 제기한 셈인데요. MZ 세대들에게 결혼은 어떤 의미인지, 또 이혼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아니지만, 김재훈 씨 딸 같은 상황을 겪은 스태프가 있었어요. 이혼이 폭력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친구들도 많고요. 그런데 이혼이 나쁘다고는 말할 수도 없고, 말해서도 안 되죠. 개인마다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다만, 결혼하거나 이혼하면 저희 세대들이 똑같이 생각하는 건 ‘책임을 지라’는 거예요. 양육비든 면접교섭권이든 부모로서 책임을 지자는 거요. 주변에 이혼 가정인데 면접교섭권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지인이 있어요. 면접 교섭 자체를 못 해봤대요. 또 어떤 지인은 면접 교섭이라는 단어는 몰랐지만, 비양육친을 잘 만나면서 어른이 됐어요. 전 후자가 당연시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정말 부모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재훈 씨와 배상문 씨는 영화 촬영 후 일상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도 궁금해지네요.
김재훈 씨는 양육권 변경 소송을 아직 진행 중입니다. 양육비 미지급이라든가 아이를 때려서 눈에 보이는 멍이나 상처로는 양육권이 바뀔 수 있는데요. 법원은, 말씀드렸지만 정서학대를 보지 못해요. 아이가 죽고 싶다고 할 정도면 바뀌죠. 그런데 지금 김재훈 씨 같은 경우는 가사조사만 3년째 진행 중입니다. 제가 촬영하면서 실제로 불안했던 건 아이가 죽을까 봐서요. 이러는데도 양육권이 바뀌지 않고, 면접교섭권 방해라는 것만으로도 이 상태를 지속하는 건 정말 큰 아동학대하고 있는 거거든요.
그 와중에 사랑도 받지 못하고. 몇 시간 잠깐 비양육친을 만나 마음의 치유를 받는 건데요. 저는 촬영하면서 저 아이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러면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인천 초등학생 고 시우 군처럼 면접 방해를 겪고 있을지, 아이들의 상태는 어떤지, 이런 것도 모르고 비양육친은 살고 있을 테고, 아이가 죽고 나면 그제야 알겠구나 싶은 거죠. 그런데 그런 극단적인 케이스가 나왔는데도 바뀌지 않더라고요.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럼 배문상 씨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배문상은 5초의 면접 교섭도 못 하고 아예 아이를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에요. 하루하루 버티면서 살고 있어요. 영화 촬영을 마치고 3개월 후에 받은 문자를 보여주더라고요. 아이가 아빠 보기 싫다는 내용으로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고요. 아이가 지적장애가 있어서 글도 잘 못 쓰는데, 문자 내용이 마치 챗GPT가 쓴 것처럼 너무 정리가 잘 돼 있는 거예요. 직접 쓴 게 아닌 거 같은…. 그래서 저는 마음이 너무 아파요. 면접 교섭 시간에라도 아빠가 아이 얼굴 보면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었는데, 그 짧은 5초의 시간마저 양육친이 끊어버린 것 같아서요.
감독님 이야기를 들을수록 너무 화도 나고, 아이들이 불쌍해서 마음도 무거워집니다. 가벼운 질문 하나 드릴게요. 음악이 참 좋더라고요. 인물의 감정선을 방해하지 않고 따라갈 수 있게요. 음악감독에게 신경 써달라고 주문한 부분이 있나요?
저도 데뷔작이다 보니 음악은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음악감독님 생각을 많이 들어보려고 했죠. 그래도 비양육친이 더 불쌍하게 느껴지게, 양육친에게 아이가 너무 선물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음악이 강요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있어요. 너무 슬프지만도 않게, 그냥 이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하는 데 음악이 도움을 주면 좋겠다고요. 비양육친의 면접교섭권은 중요하지만 한쪽 입장을 옹호하지 않으면서요. 이혼은 어린 자녀에게 부담, 상처였을 테니 부모의 입장을 더 옹호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고요. 좀 슬픈 느낌은, 아빠들이 아이를 보고 싶어 하는 감정이 드러나는 장면에서 음악이 살려주면 좋겠다는 부탁은 드렸습니다. 이 영화의 흐름을 음악감독님이 정말 잘해주셨어요. 최정훈 음악감독님인데, 저희 대학교수님이셨습니다. 믿고 맡겼죠.(웃음)

교수님을 데뷔작 음악감독으로 섭외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웃음) 영화 외적으로도 <면접교섭권>은 학부생들이 모여서 찍었고, 지역의 지원을 받았으며, 영화 제작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았죠. 들려줄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아요.
제가 4학년이던 2022년에 스무 명이서 시작했어요. 졸업하고 2년을 더 팔로우 하면서 스태프들 물갈이가 한 번 되기도 했네요. 신인감독으로 뭔가 다년에 걸친 영화를 연출한 건데요.(웃음) 사실 제 학부 전공은 항공촬영입니다. 지원은 뭐 영화진흥위원회 같은 곳에서 제작 지원을 받는 게 흔히 알려진 루트이긴 한데, 신인 감독에게는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세종시에서 하기로 했죠. 당시에 시에서 관심을 많이 가져줬어요. 졸업하고 시에서 제작 지원을 받은 케이스라 방송이나 방송에 출연하면서 학교에 얽매인다는 생각보다는, 지역에서 활동할 가능성이 있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이야기를 많이 했고, 그러면서 감사하게도 청년 지원을 받게 됐습니다.
그런데 막상 세종시 ‘2023년 청년예술 창작지원 사업’ 다원 예술 분야에 선정은 됐는데, 항목 중에 영화는 없더라고요. 전시, 미술, 도서, 공연, 연극 같은 카테고리는 있는데 말이죠. 그러다 보니까 예산을 쓸 때 좀 힘들었습니다. 저희 순 제작비가 5,000만 원 정도 들었어요. 학교에서 후반작업을 지원해주셨지만, 저희들이 아르바이트하고 빚내가면서 했거든요.(웃음) 인천도 가야 하지, 영화에는 안 나왔지만 철원, 부산도 갔었어요. 당시에는 차도 없어서 렌트비도 만만찮게 들었거든요. 그런데 시에서는 유류비도 식비도, 인건비도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연극 등 다른 예술 장르는 세목이 정해져 있는데, 영화는 보이는 게 없다 보니, 좀 서러웠어요. 아, 그래도 지금은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덕분에 영화 잘 만들 수 있었습니다!(웃음)

개봉 전에 칸 영화제에 출품한다고 했었는데, 정말 하셨나요?
네. 칸에 출품은 했는데 성과는 없었습니다.(웃음) 이제 개봉하면서 프리미어는 깨졌지만, 해외영화제의 문은 여전히 두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둘 결과들이 나오고 있어요.
젊은 감독님이 꽤나 묵직한 데뷔작을 내놓으셨어요. 차기작은 뭐로 준비 중이세요?
차기작에서는 연극 예술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저 역시 영화 예술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고민이 많았거든요. 우리나라에서 예술인으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 거 같아서요. 청주에 오래된 극단이 있어요. 40주년 기념 공연을 작년에 했는데,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연기를 시작했던 극단입니다. 극단이 40주년을 맞이하면서 매체에서 연기하던 배우들이 돌아가서 무대를 3~4개월 올렸어요.
아까 영화 예술을 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고민이 많았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극단 40주년 기념 공연에 돌아온 연극배우들, 그러니까 결혼, 임신 등으로 경력이 단절됐던 여배우들이 그 기념 무대 하나 올리겠다고 고생을 정말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청주의 연극인, 예술인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면 많이 울어요. 다들 불효하는 거 같다면서요. 그러면서도 왜 이 사람들은 연극 예술을 지키려고 하는가,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가가 궁금했어요. 그 질문은 스스로에게도 하고 있어요. 이렇게 힘들면서까지, 빚내면서까지 영화를 하고자 하는 이유는 뭘까. 또래도 마찬가지지만, 40대, 50대, 60대 연극배우들을 보면서 그런 질문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현재 3~4개월 정도 촬영했고, 앞으로 1년 정도는 더 할 것 같습니다.

영화 예술인으로서 자신의 고민을 연극 예술인 선배들의 모습에서 찾아보는 영화라니, 기대가 되네요.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볼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영화는 비양육친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어머니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좀 편견이 있었어요. 아버지 이야기만 나오니까요. 여자 입장도 들어봐야 하는 게 아닐까 했는데, 이건 여자 입장이 아닌 거였어요. 양육자와 비양육자의 입장이었던 거죠. 영화를 본 관객 중에 엄마 입장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걸 여자, 남자 구도로 보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는 정말 비양육친의 고충을,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면접교섭권이라는 권리에 대해 한 번만 더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빠, 엄마를 만나지 못하는 이혼가정 아이들 이야기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해요. <굿파트너>나 <부부의 세계>에서도 나왔잖아요. 어른들의 갈등 속에서 너무 흔하게 접하지만 정작 아이들은 보지 못했던 거죠. 그 자극적인 소재와 흥미에 가려서 보지 못한 건 아닐까요? 많은 비양육친들은 그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부끄러움 때문에 세상으로 못 나오고 있는데 말이죠. 영화를 통해 세상이 180도 바뀔 거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면접교섭권이란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걸로도 많은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개인적인 감정으로 면접 교섭 방해를 했던 양육친들 중에 양심에 찔려서라도 아이를 면접 교섭에 내보낼 수도 있겠고요. 그렇게 많은 분들이 면접교섭권 한 번만 더 생각해주시고, 비양육친의 권리도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 이걸 여자 vs 남자 구도로 보지는 말아주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