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마도 모르는 이가 없을 것 같은 브랜드 페라리, 단지 고급 스포츠카 생산 기업이라는 사실 외에도 이탈리아 시가 총액 1위의 대기업이라는 정보를 덧붙이면 되려나. 마이클 만의 신작 <페라리>는 1957년을 배경으로, 파산 위기에 놓인 엔초 페라리(아담 드라이버)의 길고도 길었던 1년의 시간을 다룬다. 회사 존폐의 기로에서 사사건건 충돌하는 아내 라우라(페넬로페 크루즈)와는 아들 알프레디노 페라리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가 자리해 있다. 알프레디노가 죽은 뒤 생산된 모든 페라리 V6 차량에 아들의 별명인 ‘디노’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그리고 알프레디노의 묘를 찾아간 순간 페라리가 유일하게 눈물을 보인다. 이후 또 다른 여인 리나(쉐일린 우들리)와의 사이에서 아들 피에로가 태어나는데, 리나는 그를 페라리 가문의 정식 가족으로 인정하라고 압박한다. 그처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페라리는 1957년 여름, 이탈리아 전역 공도를 가로지르는 광기의 1,000마일 레이스 ‘밀레 밀리아’에서 판도를 뒤집을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려 한다.

페라리와 엔초 페라리
영화 속 엔초 페라리라는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포드 V 페라리>(2019)의 헨리 포드 2세와는 달리 실제 레이싱 드라이버 출신의 CEO라는 점이다. 어려서부터 차에 매혹됐던 그는 알파 로메오라는 팀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레이싱 드라이버였다. 그러다 1929년 자신의 레이싱 팀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설립하게 되는데, 이는 페라리라는 회사의 모태가 된다. 그 과정에서 알파 로메오와 갈등을 빚던 그는 직접 레이스카를 만들기 위해 1939년 모데나에 자신의 법인을 만들고, 1940년 밀레 밀리아 레이스 외 13개의 레이스에 참가해 6번의 우승을 일궈낸다. 하지만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자동차 경주는 금지됐으며, 모데나의 페라리 공장은 군수물자를 생산하게 된다. 그러던 도중 영화 속 플래시백으로 묘사된 것처럼 폭격을 맞아 페라리는 지금의 마라넬로 시로 옮겨가게 된다. 그렇게 드디어 1947년 자신의 회사를 설립하는데, 이 회사는 파산 위기를 극복하고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자동차 회사 페라리가 된다.

이후 페라리는 최고의 레이싱팀이자 최고급 스포츠카 메이커로서 입지를 굳건히 했으며, 1969년 50%부터 시작해서 2014년 90%까지 페라리의 지분을 점유한 피아트 그룹의 산하로 들어가게 된다. 페라리는 자동차 제조사들 중에서 가장 먼저 레이싱팀을 만들었고, 그 레이싱팀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양산차를 만들기 시작했으니 페라리에게 레이싱은 존재 이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레이싱에 집중하기 위해 양산차의 경영권을 넘기려고 미국의 포드와 피아트 사이에서 밀당하는 페라리의 모습은 <포드 V 페라리>에서 볼 수 있다. 물론 <포드 V 페라리>에서 묘사되는 엔초 페라리를 빌런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페라리라는 회사는 단순히 양산형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처음부터 스쿠데리아 페라리라는 레이싱팀을 운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회사였다. 회사 수익의 절반 가까이를 레이싱에 투자할 정도였다. 말 그대로 자동차 경주를 위해 존재하는 회사라는 얘기다. 마이클 만이 엔초 페라리라는 인물의 광적인 집착에 매혹을 느낀 지점도 그것이었을 것이다.

한편, ‘페라리 레드’라 불리는 로쏘 코르사(Rosso Corsa)는 페라리를 상징하는 컬러다. ‘Rosso’는 ‘빨간’, ‘Corsa’는 ‘경주’라는 뜻으로 페라리의 경주용 붉은색 차를 상징한다. 1920년대에는 각 브랜드별로 출신 국가를 알 수 있도록 색상을 통일해야 했는데, 페라리를 포함해 알파 로메오와 마셰라티 등 이탈리아는 ‘이탈리안 레이싱 레드’ 빨간색, 프랑스는 ‘프렌치 레이싱 블루’ 파란색, 영국은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 진한 녹색 등으로 맞추게 됐다. 1960년대 들어 그런 상징적 도색은 사라졌으나 일부 레이싱팀은 여전히 그 색상을 고집했고, 그 대표적 브랜드가 바로 빨간색의 페라리다.

1957년 밀레 밀리아
페라리가 살아생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로드 레이스’라고 말한 밀레 밀리아(Mille Miglia)는, 이탈리아어로 1000마일(약 1,600 킬로미터)을 뜻하는 말이다. 1927년부터 시작되어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주의 작은 도시 브레시아에서 출발해 로마를 거쳐 다시 브레시아로 돌아오는 카레이싱 경기의 이름이다. 페라리가 파산 위기를 맞은 회사를 구하고자 출전을 결심하는 밀레 밀리아 경기는 <페라리>에서 가장 결정적 순간이다. 제작진은 당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던 경기인 만큼 당시 경기의 모습을 영화 속에서 완벽하게 재현하고자 했다. 또한 이탈리아 전역의 로케이션 과정을 거쳐 선정된 도로에서 그린 스크린 없이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레이싱 장면들을 촬영해, 1957년 밀레 밀리아 경기가 벌어지는 현장에 있는 듯 생생한 체험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마이클 만의 영화 중 가장 많은 이들이 좋아할 만한 <히트>(1996)의 후반부 LA 시가 클라이맥스 총격전이 그렇듯, 그는 개방된 공간에서의 액션을 즐긴다. <페라리>처럼 주인공의 이름을 그냥 제목으로 쓴 <알리>(2002)에서 클라이맥스는 역시 야외 복싱 경기장이다. 1974년 10월, 아프리카 콩고에서 알리(윌 스미스)와 조지 포먼의 대결, 이른바 ‘럼블 인 더 정글’(Rumble in the Jungle)로 불리는 세계 복싱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명승부로 손꼽히는 시합이 바로 실내 경기장이 아닌 야외 경기장에서 펼쳐졌다. 그런 점에서 야외 로케이션의 풍광을 만끽할 수 있는 밀레 밀리아라는 배경 역시도 마이클 만의 마음에 쏙 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알리>에서 알리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간에, 난 내가 원하는 내가 될 거야”라고 얘기하는데, 그건 마이클 만의 남자 주인공들을 관통하는 대사이기도 하다.

그런 밀레 밀리아가 1957년에 벌어진 치명적인 사고로 중단됐는데, 그것이 바로 <페라리>의 클라이맥스 사고 장면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 후 재개된 밀레 밀리아는 어느 순간부터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경주차가 더 강력해지고 빨라지면서, 일반 도로 레이스가 꽤 이어지는 밀레 밀리아는 심각한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는 경고가 있었다. 결국 영화 속 스페인 드라이버 데포르타고(가브리엘 레오네)가 몰던 페라리가 제어되지 못하고 펑크가 나면서 구경하던 관중을 덮치면서 무려 12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중 5명은 어린아이들이었다. 이로 인해 밀레 밀리아는 1977년까지 금지됐고, 엔초 페라리에 대한 청문회가 열렸다.

1957년 밀레 밀리아에서 일어난 사고로 데포르타고는 28살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공교롭게 이를 연기한 브라질 출신 배우 가브리엘 레오네는 지난해 11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6부작 시리즈 <세나>(2024)에서 브라질 출신의 전설적 레이서 아일톤 세나를 연기하기도 했다. 포뮬러 원, 보통 F1이라 부르는 모터스포츠의 전설 아일톤 세나는 월드 챔피언을 3회 차지한 브라질의 국민적 영웅으로, 그 또한 1994년에 34살의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세나> 이전에도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 <세나: F1의 신화>(2011)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포드 V 페라리>
<람보르기니: 전설이 된 남자>
<페라리>가 만들어지기 전에 만들어지게 된 두 편의 영화가 있다. 바로 레이싱 대회의 최강자 페라리를 꺾으려는 포드의 도전을 그린 <포드 V 페라리>(2019)와 엔초 페라리에게 무시당한 람보르기니가 제네바 모터쇼에 최고의 차를 선보이는 <람보르기니: 전설이 된 남자>(2022)가 그것이다. 실제로 마이클 만이 기획을 맡았던 <포드 V 페라리>에서 1960년대 들어 매출 감소에 빠진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는 판매 활로를 찾기 위해, 스포츠카 레이스를 장악한 절대적 1위 페라리와의 인수 합병을 추진한다. 직접 이탈리아로 엔초 페라리(레모 기론)를 만나러 가지만, 피아트사와의 인수 합병 과정에서 몸값을 높이기 위해 포드를 이용했다는 것을 알고, 화가 난 헨리 포드 2세(트레이시 레츠)는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페라리를 박살 낼 차를 만들 것을 지시한다. 르망 24시간 레이스에 출전 경험조차 없는 포드는 대회 6연패를 차지한 페라리에 대항하기 위해, 르망 레이스 우승자 출신 자동차 디자이너 캐롤 셸비(맷 데이먼)와 최고의 레이서 켄 마일스(크리스찬 베일)를 영입한다.

<람보르기니: 전설이 된 남자>에서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후 고향으로 돌아온 페루치오 람보르기니(프랭크 그릴로)는 트랙터 회사를 만들어 성공한다. 이후 그는 평소 동경해온 엔초 페라리(가브리엘 번)를 찾아가 동업을 제안하지만 “농사꾼 양반, 가서 계속 트랙터나 만들게”라는 모욕적인 말만 듣고 돌아온 뒤, 유능한 자동차 엔지니어를 스카우트해 페라리의 슈퍼카를 능가할 최고의 차를 만들고자 한다.


죽음과 함께 살아가는 레이서들
<페라리>의 원작은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한 브록 예이츠가 쓴 「엔초 페라리: 남자, 차, 질주」다. 제목만 봐도 마이클 만 감독이 이 원작에 왜 끌렸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 제목을 ‘마초 감독’ 마이클 만 감독에 대입해 새로 쓰자면 「마이클 만: 남자, 카메라, 연출」 쯤 될 것이다. 밀레 밀리아는 오직 1957년 이전에 제작된 클래식카만 참여할 수 있는 레이스다. 어쩌면 OTT 시대에 오직 극장용 장편 극영화만 상영할 수 있는 전통적인 극장과도 같은 곳이랄까. 게다가 경영은 뒷전이고 오직 레이싱에만 관심 있는 엔초 페라리는, 갈수록 감독이 제작도 하고 투자도 받아야 하는 시대, 더 나아가 CG를 전제한 채 촬영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버거워하는 ‘옛날 감독’ 마이클 만 감독 자신일 수도 있다. 한편으로 그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남자의 황혼에 대한 묘사이기도 하다.

<포드 V 페라리>에서도 포드의 직원들이 페라리를 찾아갔을 때, 현대적 컨베이어 벨트 방식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한 포드의 공장에 비하면, 페라리는 엔지니어 1인당 1개의 엔진을 직접 조립하는 가내수공업적인 장인의 공정을 보여준다. ‘포드에서 하루에 만드는 자동차 대수가 페라리에서 1년 동안 만드는 자동차 대수보다 많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게다가 두 기업의 총수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도 헨리 포드 2세는 거대한 공장의 최상층부에서 노동자들을 내려다보며 수직적인 형태를 취하지만, 엔초 페라리는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노동자들과 같은 눈높이로 대화하는 수평적인 형태를 취한다. 장인 정신에 대한 묘사 이전에 끈끈한 남자들의 우정인 것이다.

먼저 마이클 만의 연출자이자 장인으로서의 집요함은 유명하다. 1957년 밀레 밀리아를 재현한 여러 장면들은 거의 고증 그대로다. 공개된 ‘그때’와 ‘지금’ 스틸 중, 그때 스틸들은 1957년 밀레 밀리아 경기 당시 촬영된 실제 사진들이며 지금 스틸들은 영화 <페라리> 속에서 재현된 사진 속 장면을 담았다. 첫 번째 그때와 지금 스틸은 엔초 페라리와 그의 팀 소속 레이서 피터 콜린즈(잭 오닐)가 함께 있는 장면이다. 배경에 보이는 건물은 물론 두 사람의 의상, 액세서리, 헤어스타일과 손가락 끝의 포즈까지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듯 놀라운 싱크로율을 자랑한다. 두 번째 그때와 지금 스틸은 페라리 팀의 유망주로 꼽힌 레이서 알폰소 데포르타고(가브리엘 레오네)와 그의 연인이자 당대 인기 배우였던 린다 크리스티안(사라 가돈)이 경기 시작 전 키스를 나누는 장면이다. 당시 목숨을 걸고 레이싱을 참가한 선수들과 그들의 곁을 지켰던 연인의 애틋한 감정을 생생하게 재현해 먹먹한 감정을 자아낸다.

최고 카스턴트맨 로버트 네이글
당연히 <페라리>의 실감 나는 자동차 경주 장면을 위해 캐스팅한 이는 바로 당대 최고의 카 스턴트 코디네이터 로버트 네이글이다. 앞서 <포드 V 페라리> 뿐만 아니라 <존 윅>(2014),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2015), <베이비 드라이버>(2017), <그란 투리스모>(2023) 등 대표적인 카 스턴트 영화들의 주역일 뿐만 아니라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 작품들 중 인상적인 카 스턴트를 보여준 <베놈> <블랙 팬서> <캡틴 아메리카> <앤트맨> 시리즈에도 참여했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도 7편부터 참여해오고 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원래 자동차 드라이버 겸 엔지니어였던 그가 영화계 경력을 시작한 것도 마이클 만 감독을 만나면서부터였다. <콜래트럴>(2004)에서 톰 크루즈의 카 스턴트 대역, <마이애미 바이스>(2006)에서 콜린 패럴의 카 스턴트 대역을 하며 점차 자신의 입지를 넓혀갔던 것. 그렇게 톰 크루즈의 마음에 들어 이후 <잭 리처>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 합류하게 됐다.

하지만 역시 <페라리>에서 가장 매혹적인 지점은, 마이클 만이 언제나 그려온 ‘일밖에 모르는 워커홀릭 남자’들의 세계다. 더구나 카레이서들이야말로 죽음과 가까이 있는 남자들이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경기가 시작되기 전, 레이서들이 가족에게 마치 유서처럼 편지를 남기는 장면이다. 마치 전쟁터로 떠나는 남자들처럼 보일 정도다. 카레이싱은 전쟁 그 자체다. 엔초 페라리가 죽은 아들 디노 페라리의 묘지에 가서 눈물을 보이며 읊조리는 얘기는 “언젠가 나도 여기에 묻힐 거야. 오늘도 살아내러 간다”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무조건 빨라야 하고, 기록을 깨야 하며, 어쨌건 끊임없이 한계에 도전하는 모터스포츠 세계의 남자들이야말로 마이클 만이 반드시 그려내고 싶은 존재들이었을 것이다. <포드 V 페라리>의 기획자 또한 그였으며, 오래전부터 <히트>(1996)를 함께 한 로버트 드 니로를 엔초 페라리로 캐스팅해 이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을 정도로, 마이클 만에게 <페라리>는 무척이나 오래된 프로젝트다.

그런 점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엔초 페라리를 비롯한 페라리의 레이싱 관계자들이 성당에서 미사를 보면서도, 각자 초시계를 들고 교차편집으로 테스트하는 레이싱카의 기록을 재는 장면이다. 어떤 순간에도 일밖에 모르는 그들의 모습을 전통적인 교차편집으로 보여준다. 또한 그것은 이른바 ‘마초의 낭만’으로도 이어진다. 밀레 밀리아의 푸타 고개 산길 코스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치열하게 대결하던 두 대의 차 중 한 대가 곡선 도로에서 이탈해 쭉 미끄러져 내려온다. 그러자 곡선을 돌고 도착한 페라리의 레이서 ‘백전노장’ 타루피(패트릭 뎀시)가 “지름길로 간 거요?”라고 농담을 건네고는 태워준다. 상대 레이서는 탈까 말까 고민하는 장면도 없이 페라리의 차를 얻어타고 온다. 당연히 그는 중간 기점에 도착하자마자 “야! 넌 자존심도 없냐, 어떻게 페라리를 얻어타고 올 수 있어. 그냥 걸어서 왔어야지!”라는 잔소리를 듣고야 만다.

<엔초 페라리>가 아닌
<라우라 페라리>
한편으로는, 1943년생 마이클 만보다 한 살 많은 1942년생 마틴 스코세이지가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 출신이어서도 그렇지만, <나의 이탈리아 여행기>(1999)를 만드는 등 그 세대 많은 감독들에게 페데리코 펠리니, 루키노 비스콘티, 로베르토 로셀리니,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로 대표되는 이탈리아 영화는 어떤 이상향과도 같았다. 그런 마이클 만에게 어쩌면 <페라리>는 자신이 마치 그때 그 시절 이탈리아 감독이 된 것처럼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이탈리아 남자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만 같은 유혹적 무드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더구나 로셀리니 <무방비도시>(1945)의 안나 마냐니, 펠리니 <달콤한 인생>(1960)의 아누크 에메와 아니타 액베리, <아마코드>(1973)의 푸펠라 마지오(주세페 토르나토레의 1988년작 <시네마천국>에서 토토의 엄마로 출연), 비스콘티 <레오파드>(1963)·펠리니 <8 1/2>(1963)·세르지오 레오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1970)의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여성 대배우들의 계보가 있다.

페넬로페 크루즈가 연기하는 엔초 페라리의 아내 라우라 페라리가 바로 그 계보에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페라리>의 라우라 페라리는 지금껏 마이클 만 영화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강렬한 여성 캐릭터다. 라우라 페라리는 베니스와 칸영화제 모두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이탈리아의 대배우 소피아 로렌을 연상시킨다. 물론 페넬로페 크루즈는 스페인 출신이긴 하지만 평소 이탈리아 여성배우들에 대한 깊은 경외심을 표현해 왔었고, 심지어 세르지오 카스텔리토 감독의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합작 영화 <빨간 구두>(2005)에서 맡았던 배역의 이름 자체가 ‘이딸리아’였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들은, 영화에서 꽤 지질한 모습을 보여주는 엔초의 머리 위에 라우라가 있다는 점이다.

놀랍게도 마이클 만 영화에서 이처럼 대사량이 많았던 여성 캐릭터는 라우라 페라리가 최초고, <페라리> 후반부의 정서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두 사람의 눈싸움이 펼쳐지는데, 눈싸움의 승자도 라우라다. 그리고 밀리 밀리아에서 벌어진 사고를 사면초가에 놓인 엔초에게 “기자들을 찾아가 당당히 싸우라”고 말하고, 회사의 자금줄을 풀어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질 위기에 놓인 엔초를 구해주기도 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시간이 흘러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회사가 된 페라리의 현재를 만든 이가 바로 라우라 페라리인 것이다. 그때 라우라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엔초의 운명은 거기서 끝났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페라리>라는 제목을 좀 더 길게 만든다면 <엔초 페라리>가 아니라 <라우라 페라리>가 될 것이다.
씨네플레이 주성철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