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루 벨벳>(1987)과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 등 어둡고 초현실적인 예술적 비전으로 자신의 영화 세계를 확고히 구축했을뿐더러, <트윈 픽스> 시리즈로 기존 TV 시리즈의 개념에도 탁월한 혁신을 선사했던 데이빗 린치 감독이 향년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평생 흡연자로 살아온 그는 2024년에 폐기종 진단을 받았으며, 더 이상 연출을 위해 집을 떠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었다. 유족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그의 사망을 알리며, 그가 평소 했던 얘기를 인용해 “그가 더 이상 우리 곁에 없으니 세상에 큰 구멍이 생겼다. 하지만 그가 말하듯 ‘도넛 구멍이 아닌 도넛을 주시하라’(Keep your eye on the doughnut, not on the hole)고 말하곤 했습니다”라고 썼다. 칸영화제에서 <광란의 사랑>(1990)으로 황금종려상, <멀홀랜드 드라이브>로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엘리펀트맨>(1981)으로 감독상과 각본상, <블루 벨벳>으로 감독상, <멀홀랜드 드라이브>로 감독상 후보에 오른 적 있으나 수상은 하지 못했고 2020년에 공로상을 수상했다.

괴상한 블랙 유머로 가득한 장편 데뷔작 <이레이저 헤드>(1977)를 통해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보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며 주목받은 그는, <엘리펀트맨>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8개 부문 후보에 올라 단숨에 미국을 대표하는 감독 중 하나가 됐다. 드디어 프랭크 허버트의 원작 소설 「듄」을 영화화하는 거대한 프로젝트에 매달렸으나, 3년간의 고된 촬영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흥행 실패를 겪고 말았다. <블루 벨벳>과 <광란의 사랑>으로 재기에 성공한 그는, 작가 마크 프로스트와 함께 1989년부터 시작한 시리즈 <트윈 픽스>를 통해 미국 TV 드라마 역사와 시스템에 혁명을 일으켰다. 이후 <로스트 하이웨이>(1997)와 <멀홀랜드 드라이브>, 그리고 <인랜드 엠파이어>(2006)를 통해 인간 내면의 심연에 자리한 이중인격과 욕망, 그리고 초현실적인 서사와 스타일을 추구하며 세상에 오직 그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와 세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최근에는 연재만화를 기고하고 자신의 그림을 전시하는 것은 물론 솔로 및 협업 음악 앨범을 발표하며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고, 스필버그의 <파벨만스>(2022)에서 존 포드 감독 역으로 카메오 출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