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약 당신이 후대에도 길이 남을 ‘무모한 창작자 10인’을 꼽는다면 인도 출신 할리우드 감독 타셈 싱 감독을 빼면 안 된다. <피츠카랄도>(1982)를 찍으면서 특수효과를 거부하고 100% 리얼로 배를 산 위로 옮기는 촬영을 고집해 배우와 스태프 모두를 ‘죽음’의 현장으로 몰아넣은, 독일 감독 베르너 헤어조크 같은 감독이 들어가는 그 악명 높은 창작자 리스트에 말이다. 타셈 싱은 불에 타는 나무 장면을 찍으려고 일단, 당연히 진짜 거대한 나무를 옮겨 심는 것부터 시작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다.

<더 폴: 디렉터스 컷>(2006)(이하 <더 폴>)은 <더 셀>(2000)에 이은 타셈 싱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이자 타협 없는 그의 집념이 만들어 낸 두 번 다시 만들 수 없는 영화다. 1920년 할리우드의 한 병원, 무료한 병원 생활을 달래기 위해 다리를 다친 배우 로이(리 페이스)가 호기심 충만한 소녀 알렉산드리아(카틴카 언타루)를 위해 자신이 지어낸 서사시를 들려주는데, 영화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인 악당 ‘오디어스’를 향한 다섯 영웅의 복수를 그린 거대한 이야기까지 모두 화면에 불러온다. 타셈 싱이 우연히 본 불가리아 영화 <요호호>(YO HO HO, 1981)에 매료되면서 시작된 프로젝트로 판권 구매에만 걸린 시간이 15년, 총 28개국 로케이션을 위한 장소 섭외에만 17년, 영화에 딱 맞는 주인공을 찾기까지 7년, 실제 촬영 기간 4년 반이 걸렸다.

그리고 이 모든 촬영의 절대 원칙은 CGI의 사용 전면 배제! 모든 장면과 촬영은 직접, ‘발품’ 팔아, ‘핸드메이드’로 만든다. 제작연도가 지금으로부터 어느덧 20여 년이 되어가니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무슨 소리. <엑스맨> 시리즈와 <슈퍼맨>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가 줄줄이 개봉하던 때다. 2006년 할리우드 영화도 특수효과가 없었다면 만들어지지도 못했을 영화들의 전쟁이었다. 그러니 ‘적당히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영화를 찍었을 리 없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제대로’ 미친 창작자들이 시대를 대표해 영화계에 꼭 나온다.

어느 정도냐, 제작비의 상당 금액인 6,500만 달러도 타셈 싱이 모두 투자했다. 타셈 싱은 이미 나이키, 코카콜라, 아우디, 폭스바겐을 비롯해 여러 명품 CF와 뮤직비디오 연출로 유명했는데, 그렇게 차곡차곡 벌어놓은 돈이 이 프로젝트에 다 들어갔다. 영화에 정신 팔린 남친에 넌더리가 난 여친이 떠나자, 모아둔 결혼자금도 몽땅 제작비로 투자했다. 제작비 6,500만 달러의 상당 부분이 본인의 돈이다. 타셈 싱 본인도 말한다. “광고계 사람들은 모두 언젠가는 자기 돈으로 영화를 만들 거라고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무려 이 영화의 프로듀서가 데이비드 핀처다. 그는 타셈 싱이 ‘그걸 현실화한 유일한 멍청이’라고 말한다.

“앞으로도 난 대중적이지 않을 것이고, 머슴처럼 할리우드가 원하는 영화를 찍지 않을 것이다”라는 일념으로 시작한 영화. ‘이미지의 향연에 불과하다’는 전작 <더 셀>에 대한 혹평도 그를 말리지 못했다. 물론 4년 반의 촬영을 거친 현장의 시간은 타셈 싱 자신조차도 그렇게 오래 지속될지 몰랐던 악전고투의 시간이었다. 환상적인 영화 장면들은 약간의 리터칭을 제외하고는 모두 실제 풍광에서 찍은 결과물이다.

타셈 싱은 사막, 정글, 고대 도시를 오가며 실제 로케이션을 감행했다. 참고한 비주얼은 스코틀랜드, 파리, 인도, 캄보디아, 볼리비아, 나미비아, 아르헨티나, 중국, 터키, 남아프리카, 이탈리아, 체코 등을 오가며 발로 찾은 장소로부터 나왔다. 때로 다른 이들이 이곳을 촬영한 적도 있지만 같은 장소도 타셈 싱의 시각으로는 다르게 보이는 마법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이 중 어느 한 곳도 접근하기 쉬운 곳이 없었다. 타셈 싱 본인이 “촬영한 어느 곳도 주차장이 있는 곳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영화에 나온 장소들이 언젠가는 변할 것이고, 또 아무도 완벽하게 복원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지치고 힘든 가운데도 그를 움직였다. 주 6회 비행을 하면서 공항과 비행기 안에서만 보낸 시간이 삶의 95%였다면 믿을까. 파란 하늘을 찍기 위해서, 바로 뉴욕에서 마드리드로 떠나는 삶, 상상이 가는가. 다시 말하지만, 적당히 미치지 않고서야 이건 불가능한 촬영이다. <더 폴>은 모두가 미쳤다고 할 때, 결코 진짜라고 상상하기 힘든 장면을 관객의 눈앞에 고스란히 불러온 필생의 결과물이다. <더 폴: 디렉터스컷>의 공개로 다시 만난 판타스틱한 공간, 그렇게 타셈 싱이 발로 뛰어 만난 <더 폴>의 주요 촬영지 다섯 곳을 소개한다.
(1) 타셈 싱에겐 모든 게 다르게 보인다,
인도 자이푸르 계단 우물
찰스 다윈이 영혼의 동반자인 원숭이 월레스를 잃은 계단. 찬드 바오리는 인도 라자스탄 주 자이푸르 근처 아바네리 마을에 위치한 계단 우물이다. 16세기에 건축된 복잡한 건축 디자인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공간이다. 500~600년 된 이 계단은 과거 세금을 계산하려고 물의 깊이를 잴 때 사용했던 것. 물이 깊을수록 높은 세금이 매겨지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이곳은 원래 보통 물속에 잠겨 있던 계단이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곳이다. 그러다 보니 촬영 비하인드 스토리가 재밌다. 주민들은 촬영에 열중인 제작진을 보고 왜 저런 시시한 우물 따위를 찍고 있을까 궁금해했다고 한다. 그러나 타셈 싱의 눈에는 더없이 아름다운 촬영지였다. 그렇게 타셈 싱이 그 아름다움을 발견한 이후 다수의 인도영화가 이곳에서 촬영됐다.

(2) 카메라 앵글을 바꾸면 달리 보인다,
인도 자이푸르 미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던 인디언의 아내가 오디어스를 거부한 죄로 감금당한 절망의 미로. 타셈 싱은 별스럽지 않은 이 공원을 카메라의 앵글을 조정해 주위 환경을 제거함으로써 혼돈과 뒤얽힘, 벗어날 수 없는 미로의 이미지로 재현해낸다. 특히 이곳에 있는 400년 된 전망대 잔타르 만타르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고대 인도의 천문학과 건축적 독창성을 보여주는 곳. 계단이 하나의 별을 향해 있고 호는 다른 별을 따라 세워져 있는 독특한 모양이다.


(3) 원하는 이미지는 반드시 만든다,
인도 조드푸르 블루시티
다섯 용사의 원수인 오디어스의 성이 있는 푸른 도시. 인도 라자스탄의 조드푸르에 있는 도시다. 이곳 주민들은 도시의 요새를 감추기 위해 집집마다 벽을 파란색으로 칠했다고 한다. 불에 타는 나무를 찍기 위해 커다란 나무 한 그루를 옮겨 심기까지 했던 타셈은 이 장면을 찍을 때도 자신이 생각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위해 집요하게 매달렸다. 타셈 싱은 모든 주민들에게 페인트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낡은 벽을 새로 칠해 촬영을 진행했다. 조드푸르는 한국영화 <김종욱 찾기>(2010)의 배경지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4) 장소를 위해 장면도 새로 쓴다,
피지 섬 버터플라이 아일랜드
다섯 용사가 오디어스로부터 추방당해 모인 바다 한가운데의 나비섬으로, 피지에 있는 암초 중 하나. 섬 모양이 위에서 보면 마치 나비 같다 하여 ‘Butterfly Reef’(버터플라이 암초)라고 불린다. 피지는 연중 내내 따뜻한 바닷물, 풍부한 열대어, 생기 넘치고 거대한 산호초가 있는 아름다운 섬. 하지만 버터플라이 리프는 마나 섬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지도에서 찾기가 꽤 어려운,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타셈 싱은 이곳을 광고 연출을 하면서 찾아냈고, 언젠가 “내 영화를 이곳에서 찍겠다”고 찜해둔 장소 중 하나다. 섬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타셈 싱은 이 장면을 넣기 위해 나비가 들어가는 대본을 만들었을 정도다. <더 폴>은 단 한 장의 시나리오도, 어떤 구체적인 제작 계획도 없이 만들어 나간 작품인데, 특히 이 장면은 장소가 영화의 내용에 영향을 끼친 예다. 안타깝게도 이곳은 다른 태평양 섬나라와 마찬가지로 해수면 상승의 위협에 직면해 다음 세기에는 사라져 인류가 다시는 보지 못할 지상의 낙원으로 남을 수 있다. 타셈 싱이 이 영화를 찍으면서 ‘영화에 나온 장소들이 언젠가는 변할 것이고 또 아무도 완벽하게 복원하지 못할 것이라는 마음으로’ 그 장소들을 좇았다는 말이 더 와닿는 장면이다.

(5) 스태프들마저 최고로 꼽는 아름다움,
인도 라다크의 끝없는 사막, 레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배경으로 다섯 영웅들이 오디어스의 것으로 추정되는 강렬한 붉은색 마차를 발견하고 노예를 구출하기 위해 돌진하는 장면. 히말라야의 15,000피트 상공에서 30명의 전문가와 함께 약 4일간에 걸쳐 찍어 완성한 장면으로 스태프들이 “가장 어려운 촬영이자, 가장 멋진 곳”이라고 말한 장소다. 레(Leh)는 라다크에서 가장 큰 도시다. 넓고 넓은 사막의 풍광을 찍기 위해 심지어 타셈 싱은 다른 산의 정상에 가 있어서 촬영 내내 스태프들과 배우들은 감독을 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지금처럼 디지털 장비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던 때, 그 고생이 어땠을지 짐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