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 뭐 이런 것들은 꽤 다양한 장르에 걸쳐 많은 사람들에 의해 다뤄져 왔습니다. 이유는 뭘까요?

아마도 사람은 다른 사람이든, 일이든 어떤 것이든 처음부터 내 맘대로 되는 일보다는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일에 미련을 갖고 고민을 하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내 맘대로 안 되는 일은 삶과 죽음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구든 죽으니까요. 사람의 삶과 죽음 앞에 다른 문제들은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부차적일 수밖에 없죠. 사람이 죽는 순간 그 사람의 세계는 소멸하는데 그 사람의 세상 모든 일들은 그 세계 속의 일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고대의 신화로부터 지금까지, 그 어쩔 수 없는 일들을 이야기하는 예술 작품들은 정말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콘스탄틴>도 바로 그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삶과 죽음, 그리고 살아 있을 때는 갈 수 없는 죽음 너머의 세계와 그 세계에 속한 객체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콘스탄틴>의 주인공 존 콘스탄틴(키아누 리브스)과 여주인공 안젤라(레이첼 와이즈)의 동생 이사벨(레이첼 와이즈, 1인 2역)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혼혈 악마와 천사를 보아 왔다는 것이죠. 아직 인격이 형성되기 전인 어린 시절부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보며 커 왔다면 어떤 어른이 될까요?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기와 다른 존재에게 인색한 법이니 다른 사람과 섞여 살아야만 하는 인간 사회 속에서 성장한 그들이 성격 좋고 맘 넓은 어른으로 자라기는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주인공 존 콘스탄틴은 그나마 삶에의 욕구, 그리고 천국으로 가고 싶은 욕망으로 똘똘 뭉친 다크 히어로 정도 수준이었지만 레이첼의 동생 이사벨은 아예 정신병원에 입원되어 있었죠. 그 이사벨이 자살하면서 영화는 시작됩니다.

천국으로 가기 위해 평생 혼혈 악마를 지옥으로 보내며 살아온 콘스탄틴. 많은 스트레스 때문인지 항상 술과 담배로 세월을 보냅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여주인공 안젤라가 찾아옵니다. 위에서 말한 대로 자살한 이사벨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서죠. 이사벨이 정말 자살한 건지 알기 위해 콘스탄틴은 지옥으로 가고 그곳에서 이사벨이 지옥에 있다는 증거를 갖고 옵니다. 안젤라도 콘스탄틴의 도움으로 지옥에 다녀오게 되고 이후 안젤라와 콘스탄틴은 세상에 튀어나오는 혼혈 악마들을 같이 사냥하기 시작하죠. 과도한 흡연과 음주로 폐암에 걸렸음을 알게 된 콘스탄틴은 아픈 몸을 무릅쓰고 악마를 계속 추적해갑니다. 이후 악마에게 납치된 안젤라를 구하기 위해 콘스탄틴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지대를 맡고 있는 자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안젤라를 이용해 세상으로 들어오려던 악마를 막아내게 되죠. 이후 콘스탄틴은 천사 가브리엘(틸다 스윈튼)과 악마 루시퍼(피터 스토메어) 사이에서 마지막 싸움을 벌이게 됩니다. 특히 이 장면(아래)의 손가락 욕은 매우 유명하죠.

영화 내내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콘스탄틴. 다른 술들은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습니다만 단 한 개의 술이 아주 명확하게 보입니다. 바로 아드벡(Ardbeg).

아드벡은 스카치 싱글 몰트위스키 중 특히 아일라 위스키라 불리는 위스키입니다. 스카치 싱글 몰트는 원래 영국, 그중에서도 스코틀랜드의 지역 민속주이고 그러다 보니 지역별로 그 색이 뚜렷한 차이를 보이곤 하죠. 최근에는 각 증류소마다 새로운 제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다 보니 지역색이 약간 희석되는 면이 없지 않습니다만 아일라 위스키라 분류되는 위스키들은 다른 지역 위스키 대비 아주 명확한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피트(peat) 향이라고 보통 부르는, 얼핏 병원 소독약 같은 향을 갖고 있죠.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피트 향이라 부르는 향은 피트(peat) 그 자체의 향은 아닙니다. 피트는 우리 말로 이탄(泥炭)이라 부르는, 우리가 보통 아는 석탄이 되어가는 중간단계를 말하죠. 실제로 석탄은 식물들이나 기타 원료물질들이 땅속에서 오랜 기간 동안 열과 압력을 받아 만들어지는데 피트는 석탄이 되다 만 물건이다 보니 풀 조각, 섬유질 같은 것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석탄과 달리 얕은 지층에 있는 경우가 많아 스코틀랜드 같은 경우 삽으로 땅만 파도 나오는 경우가 많죠.

이렇게 동네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연료를 위스키를 만드는 데 사용했고 그게 바로 스카치 위스키에 개성을 불어넣는 효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향을 맡아보면 그냥 흙냄새 풀냄새 뭐 그런 종류의 냄새밖에 안 납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볼까요? 스카치 위스키는 보리로 만듭니다. 보리를 발아시켜 맥아를 만든 뒤 이를 발효시킨 후 발효된 액체를 다시 증류해서 오크통에 담아 숙성시키면 위스키가 되죠. 이 과정에서 보리를 발아시킨 뒤 어느 시점에서 보리를 가열해 발아를 중지 시켜야 합니다. 가열하기 위해 보통은 석탄을 사용하지만 위에서 말한 이탄, 즉 피트를 사용해 가열하는 경우도 많죠. 이때 연료로 피트를 사용해서 발아를 중지시키면 그 맥아에 피트 태운 향이 배죠. 그 맥아로 위스키를 만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피티한 향을 가지는 위스키가 됩니다.

이렇게 피티한 특성을 갖는 위스키로 유명한 위스키는 아드벡 이외에도 라프로익, 라가불린, 쿨일라 등 여러 위스키가 있고 각각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맛을 냅니다.

아드벡 증류소 역시 다른 스카치위스키 증류소들처럼 1700년대 후반 소위 밀주를 만드는 시골의 작은 증류소였습니다. 그러다 1815년 존 맥도겔이라는 사람이 정식 면허를 취득하고 본격적으로 증류소를 확장시키기 시작했죠. 이후 외부 자본을 영입하며 확장을 계속하던 아드벡 증류소는 스코틀랜드 최초로 1855년 여성인 마가렛 맥도겔과 플로라 멕도겔이 증류소를 물려받아 공동 운영을 시작합니다. 세계 어디서든 양조는 가장 보수적인 영역인데 1800년대 중반에 여성이 증류소 운영을 맡았다는 것 자체가 아드벡의 개혁적 성향을 대변한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네요.

이후 승승장구하며 1800년대 후반 아일라 섬의 증류소들 중 최고 생산량을 기록한 아드벡 증류소는 1900년대 이후 점점 생산량이 줄어들다 결국 한때 폐쇄됩니다. 당시는 블렌디드 위스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때였는데 역설적으로 피트 향이 너무나 강한 아드벡은 블렌디드 위스키의 재료로 쓰이기엔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죠. 이후 유명한 글렌모렌지에서 아드벡을 인수하고 다양한 제품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하면서 현재에 이르게 됩니다. 2008년엔 짐 머레이(유명한 위스키 평론가)의 위스키 바이블에 아드벡 10년이 “올해의 세계 위스키”(World Whisky of the Year)로 선정되기도 했죠.

아드벡 10년 이외에도 우가달, 코리브레칸, 우리버디(발음과 스펠이 좀 낯선 건 제품명 대부분을 스코틀랜드 토속 언어 게일어로 짓기 때문입니다.) 등의 제품들이 유명합니다. 개인적으론 우가달을 매우 좋아하고, 아드벡 10년의 경우 그냥 마셔도 좋지만 민트줄렙같은 칵테일을 만들어도 아주 개성 있는 칵테일을 만날 수 있죠.

아드벡 민트쥴렙. Bar Cobbler

영화 내내 콘스탄틴은 천사와 악마의 틈에 끼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운 좋게도 폐암이 낫는 기적을 받았지만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일 겁니다. 술은 인류 문화의 총아라는 찬사를 받지만 동시에 대표적인 발암물질이기도 하니까요. 얼핏 병원 냄새같은 향을 갖고 있지만 그 향 덕분에 열광적인 팬들을 갖고 있는 아일라 위스키, 너무 많이 마시면 자칫 진짜 병원 냄새를 맡아야 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하시길. ^^

Drink Responsibly!

콘스탄틴

감독 프란시스 로렌스

출연 키아누 리브스

개봉 2005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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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렉 / 술 애호가